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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엇갈린 경기고 동기

운명 엇갈린 경기고 동기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속승진 … 입지 강화 이형근 vs 사퇴한 최한영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



최한영(62) 현대자동차 상용담당 부회장이 2월 7일 사퇴하면서 최 부회장과 경기고 동기인 이형근(62) 기아자동차 부회장과의 엇갈린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최 부회장은 현대차 상용부문 해외 사업이 일단락됐고 상용차를 생산하는 전주공장의 주간연속 2교대와 증산이 마무리돼 용퇴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통상 연말에 임원 승진인사를 하고 부회장단 인사는 설 전후로 단행한 관행에 미뤄 보면 최 부회장의 사퇴는 어느 정도 점쳐졌다. 현대차그룹은 통상 부회장단의 정년이 만 60세 정도다. 현장직 노조원의 60세 정년과 다르지만 사실상 60세가 넘으면 언제 그만둬도 정년을 다한 셈이다.

가끔씩 정 회장이 부회장단과 담화를 나누는 도중에 “자네 몇 살인가”라고 물을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한국 나이가 아니라 ‘만 나이’로 대답하는 게 현대차그룹 만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승하(63) 현대제철 부회장 등을 포함해 아직까지 부회장단 인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2011년 4월 28일 중국 쓰촨성 청뚜시 진장 호텔에서 쓰촨성 최대 상용차 업체인 쓰촨난쥔기차유한공사와 ‘쓰촨현대기차유한공사’ 합자계약을 했다. 당시 정만영 총영사, 리쟈 쯔양시 서기, 정몽구 회장, 리총시 쓰촨성 상무부서기, 류우익 대사, 황시아오샹 쓰촨성 부성장, 설영흥 부회장, 최한영 부회장.


최 부회장 상용차 밀어내기 수출이 화근이·최 부회장은 1952년생으로 경기고 67회 동기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1977년 현대그룹 공채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최 부회장은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우그룹에 입사했다가 1984년 현대건설 경력사원으로 이직했다. 1986년 현대자동차 해외 영업으로 옮겨 주로 홍보실에 근무했다.

최 부회장의 사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지난해 상반기 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상용차 밀어내기 수출과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일부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법정소송까지 가면서 그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상용차 조직을 정비하고 ‘포스트 최 부회장’ 체제로 사실상 전환했다.

당시 상용차 해외 판매업체인 A사의 모 사장은 일부 언론에 “최 부회장은 2011년부터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한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말이 다가오면 밀어내기 수출을 강요했다. 허위 세금계산서뿐 아니라 생산하지도 않은 차량에 대한 선입금도 있었다”며 관련 서류를 제공해 파문이 일었다.

현대차 감사실도 비슷한 투서를 받아 자체 감사를 진행했다. 담당 간부를 보직 변경하는 선에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이때 경질되지 않았다. 정 회장 측근으로 그가 차지했던 과거 비중이 더 컸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임원 회의 때마다 누누이 “어떤 임원이든 간에 허위보고는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당시 최 부회장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경기고 시절 모범생으로 전형적인 ‘KS(경기고-서울대의 약칭)’ 코스를 밟은 이 부회장은 현대차에서 해외 상품 및 마케팅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입사 이래 줄곧 해외 마케팅·상품 분야에서 근무했다. 학구적인 스타일에 꼼꼼한 일처리로 입사 이후 항상 동기들 가운데 선두였다. 유창한 영어와 해외 자동차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으로 1998년 정세영(포니 정) 명예회장이 물러날때까지 현대차의 상품 전문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동기들 가운데 가장 이른 1996년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하지만 1998년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시련이 시작됐다. 당시 정 회장이 몸담았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들이 현대차 경영층을 장악하면서 포니 정 시대에 잘 나갔던 임원들은 밖으로 내몰렸다. 이 부회장은 자동차 전문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임원 승진이 빨랐던 죄(?)로 한직으로 물러났다.

시련의 시작이다. 그는 그러나 2005년 기아차 중국법인장으로 옮기면서 뒤늦게 만개했다. 2007년 기아차 유럽법인장(부사장)을 맡으면서 판매망을 대폭 손질했다. 그러면서 유창한 영어·중국어, 탁월한 자동차 지식으로 당시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눈에 들었다. 아울러 기아차 해외 영업 총괄이었던 현 김용환 부회장과의 인연도 깊어졌다.



이 부회장 상품·마케팅 능력 돋보여이 부회장은 2009년 8월 부사장에서 기아차 사장으로 6년 만에 진급하면서 K시리즈 돌풍을 일으켰다. 다음해 기아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현대차보다 한 수 아래 이미지로 굳어져 있던 기아차를 젊고 역동성 있는 새로운 브랜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 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매사 치밀한 그에게 붙은 별명은 뜻밖에 ‘탱크’다(내부에서는 이니셜 H를 따서 ‘행크’로 부른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는 스타일로 추진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다. 예컨대 노래 부를 때도 한 번 마이크를 잡으면 웬만해서는 놓지 않는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최 부회장은 현대차에서 잘 생긴 외모에 통이 커 대인관계가 좋았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승진도 이 부회장보다 뒤졌다. 두 직급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에게 운이 따라온 것은 정 회장 시대가 오면서부터다. 1993년부터 홍보실로 옮겨 차장으로 근무했는데 현대정공 출신들이 경영진을 장악하면서 기존 홍보실 간부들이 대부분 그만두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그러던 중 1999년 정 회장과 동생인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사이에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분쟁이 일어나면서 그가 두각을 나타냈다. 타고난 말 주변과 판단력, 정 회장만큼이나 두텁고 큰 손이 그의 장점이었다.

홍보실 임원 대부분이 그만두면서 부장에서 불과 2년 만에 이사대우를 건너뛰고 이사로 발탁됐다. 이후 평균 1.5년 만에 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부회장’까지 7년이 채 안 걸렸다. 이형근 부회장을 추월한 셈이다. 현대차그룹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 부회장만큼 빠른 승진을 한 경우는 김용환 부회장 정도가 꼽힌다.

최 부회장은 정 회장 주변을 맴돌면서 새로운 가신으로 분류됐다. 2004년 그룹 전략조정실 사장을 맡았을 때는 사실상 2인자였다. 미래 전략을 짜고 정부기관을 포함한 그룹의 공식 창구 역할까지 하면서 정 회장의 신임은 두터워졌다. 여기에 빠른 판단력, 친화력으로 여러 업무를 소화해냈다.

대정부 관계에서는 경기고 인맥이 강점이었다. 그러면서 현대정공 출신 측근들과 갈등이 시작됐다. 2007년 현대차그룹이 여수 엑스포 유치에 주력할 때 그가 다시 중용됐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고 중용설이 돌기도 했지만 결과는 상용차 복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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