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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조두섭의 일본 기업 재발견 - 제품 지향? 고객 지향이 성공 지름길

Management | 조두섭의 일본 기업 재발견 - 제품 지향? 고객 지향이 성공 지름길

일본 뮤지컬계 선두 극단 ‘시키(四季)’의 예술 마케팅 … 독특한 발성법, 학생 교육 등으로 인기
극단 시키의 아사리 케이타 사장은 뮤지컬로 돈 버는 연기를 지향한다.



일본의 예술단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예술단체들은 정부나 기업의 후원금이 큰 돈줄이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이 이어지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이 여파가 예술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할 게다.

특히 전통적인 무대예술인 연극이나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 등이 관객 부족으로 공연 횟수를 줄이거나 간판을 내리기 일쑤다. 일본 무대 예술의 피크는 2000년 전후다. 그 이후 관객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시에 수익도 저하되면서 적자 단체가 태반이다. 12개 단체가 경쟁하는 도쿄 수도권 오케스트라는 절반 이상이 적자다.



정부 지원은 줄고 관객도 줄고이렇게 무대예술이 부진한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는 정기회원의 감소다. 일본의 대표적인 예술단체의 경영은 정기회원들의 예매 덕에 유지된다. 정기회원에게는 좋은 좌석을 배정하고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NHK 교향악단의 정기공연 수입의 80%는 정기회원이 내는 회비다.

따라서 별다른 경영노력을 하지 않아도 경영이 안정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런 정기 회원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NHK 교향악단의 회원 갱신율이 60%로 추락했다. 감속 스피드가 워낙 빨라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다른 단체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둘째 지원금의 고갈이다. 일본의 많은 예술단체는 행정 지원금 비중이 크다. 지방자치단체 교향악단 예산의 40%가 지원금이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우선적으로 이런 지원금을 삭감하고 있다.

셋째 소득 감소다. 일본은 1990년대 말 불경기에 돌입한 이래 지금까지 급여를 포함한 개인 소득이 지속적으로 줄었다. 이 기간 한국은 세 배 정도 소득이 늘었다. 이와 달리 일본은 제자리 걸음이다. 어느 나라든 가처분소득이 줄면 제일 먼저 문화예술관련 소비가 줄게 마련이다.

넷째 다양한 오락의 출현이다. 인터넷·게임기기·DVD 등 무대예술을 대체하는 오락이 출현했다. 이 대체재의 출현은 향후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IT기술 진화론에 따르면 공간을 극복한 인간에게 시간이 가장 귀중한 재산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무대예술은 시간과 장소 양쪽을 다 구속한다. 대세에 역행하는 오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네 가지 요인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가능성은 작다. 정기회원은 계속해서 줄 것이고 지원금은 고갈될 것이다. 가처분소득도 쉽게 증가할 것 같지 않다. IT기술은 새로운 오락수단을 끊임 없이 등장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일본만아니라 현대사회)의 무대예술 쇠퇴는 운명이며 필연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예술 그 자체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관심의 대상이나 수단이 변한 것이다. CD 매출은 줄었지만 클래식 파일 다운로드 횟수는 늘고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관람 횟수는 줄었지만 영화관이나 미술관은 관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또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1970년대는 예술의 전반적인 쇠퇴기였지만 지금은 일부 예술단체들이 다시 살아나 눈부신 성공을 자랑하고 있다. 떠났던 고객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고객을 창출(위대한 경영학자 드러커 박사의 말을 빌리면 고객창조)에도 성공했다.

대표적인 예가 쇠퇴하던 서커스를 화려한 무대예술로 승화시켜 연간 9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실크 드 솔레이유(태양의 서커스)’일 것이다. 서커스 산업의 전통이었던 동물쇼나 유명한 스타를 기용하는 전략을 버렸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같은 상징적인 콘텐트는 그대로 두고 다양한 메뉴를 하나의 스토리로 통합한 새로운 서커스를 창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고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물론 학계로부터도 블루오션 창조 사례로 주목을 받는다.

태양의 서커스처럼 치밀한 전략을 세워서 예술 마케팅을 전개하면 무대예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즈니스의 관점을 활용해 문화사업을 성공시키자는 것과 예술과 경영, 예술과 사회의 만남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이런 움직임은 2007년 일본어로 번역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조앤 쉐프 번스타인이 지은 『예술을 파는 방법』(한국어 번역본은 『문화예술마케팅』)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저자는 예술은 생활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많은 마케팅 노력이 필요한데도 현실은 반대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예술 마케팅의 도입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많다. 예술 마케팅이란 말 그 자체가 예술을 시장화한다는 의미에서 상호 대립되는 개념이다. 예술은 ‘제품지향’인데 반해 마케팅은 ‘고객 지향’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혼신의 힘으로 창작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 색채가 강하다. 이는 고객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고객에 영합하는 작품은 예술의 타락이라고 인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예술과 고객 사이의 다리를 놓아야 하는 예술 마케팅은 쉽지 않다. 예술 분야뿐 아니라 ‘제품 지향’이 강한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마케팅이 경시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일본 제조업의 문제는 제품 지향이 너무 강하다는데 있다. 만든 제품을 팔려고 했지(Technology-Push), 팔리는 제품을 만들지 않았다(Market-In)는 점이다. 일본제는 기술과 품질이 뛰어나니 무조건 사라는 식이다. 잘 팔리지 않으면 그 탓을 고객들의 무지로 돌렸다. 이런 오만이 예술에서는 더욱 크게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 극단 시키의 뮤지컬 ‘라이온킹’의 한 장면.





예술과 경영, 예술과 사회의 만남 추구예술 마케팅은 단순히 고객을 끌어 모아 만원사례가 되면 성공한 게 아니다. 예술에 대한 애착을 가진 새로운 고객을 창조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예술에 대한 애착은 결국 예술단체에 대한 애착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 예술단체의 경영성과가 높아진다. 최근 많은 예술단체들이 예술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마찰도 꽤 있는 모양이다.

예를 하나 들면, 일본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마키 아사미(牧阿佐美)’ 발레단은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했다. 이 전문가는 화장품 회사와 제휴해 마케팅을 시작했다. 화장품 회사가 공식 스폰서로서 재정 지원뿐 아니라 발레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뒤에 그는 해고됐다. 발레단의 예술감독은 ‘예술은 싸구려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예술 마케팅의 어려움을 잘 나타낸 사례다. 너무 고객 지향으로 서비스를 한 게 예술가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새다.

성공한 사례는 뉴욕시 발레단이다. 미국 전 발레단의 연간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호두까기 인형’에 특별한 가족 서비스를 제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추가 요금을 낸 가족에게는 차와 쿠키를 제공하고 댄서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아이들의 색칠 그림도 지도해주는 서비스가 붙어있다. 또 댄서들의 훈련 모습을 찍은 DVD를 여성에게 제공하고 아이들을 위한 바비인형 호두까기인형 DVD도 발매했다. 발레를 예술로 선전하는 것뿐아니라 어른에게는 스포츠로, 아이들에게는 오락으로 정보를 발신한 것이다.

이 예술 마케팅을 통해 뉴욕시 발레단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는 초대자와 친구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시사점이다. 제품 지향에서 고객 지향으로 초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노후 모델이 등장한다. 고령화를 새로운 출발이나 자신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친구나 가족 사회와의 관계를 대단히 중시한다. 누군가가 초대해 준다면 문화활동에 참가한다. 예술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영업이익 250억엔의 초우량 기업일본도 급격한 고령화와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이나 친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와 무대예술, 생각을 바꾸면 블루오션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다. 일본 최고의 사례는 극단 ‘시키(四季)’다. 뮤지컬 분야에서 독보적 성과를 보여준다. 간단한 경영지표를 보자. 1953년 설립해 1967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사장은 아사리 케이타(淺利慶太) 단장이다. 직원수는 1200명에 전용극장 9개. 연간 관객은 310만명이다.

지금까지 60년 간 공연활동을 하면서 30년 넘은 ‘캐츠’를 비롯해 ‘오페라극장의 괴인’이 25년, ‘라이언킹’은 동일 극장에서 15년 연속 무기한 공연기록을 갱신 중이다. 영업이익은 250억엔으로 30년 간 적자를 낸 적은 한 번뿐이고 부채는 ‘0’인 초우량 기업이다. 배우들 중에는 3000만엔(약 3억2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무대 예술의 역사가 깊다고 해도 뮤지컬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일본에서 이 극단은 경이적인 경영을 계속한다. 사례 그 자체가 예술 마케팅의 교과서다. 이 극단도 초기에는 고고한 예술성만 추구하는 학신극단의 하나였다. 자기만족에 치중해 당연히 수입은미미하고 청빈함을 추구했다.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대사와 주제를 고집하면서 예술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사리 단장은 의문을 가졌다. “채소가게는 채소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왜 극단은 연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까?” 신극단에서 뮤지컬로 돈을 버는 연기를 지향했다. 제품에서 고객으로 전환한 것이다. 성공의 계기였다. 문학적 요소가 강해 난해한 대사 중심의 신극단과 노래 중심의 뮤지컬을 융합해 ‘사계식’ 뮤지컬을 창조했다. 여기에는 아사리 단장의 독특한 발성법이 한 몫 했다. 극단 시키의 연기자 대사는 청중의 귀에 쏙 들어온다는 평판은 이 발성법 덕분이었다.

비밀은 모음법·호흡법·문단가르기법 세 가지다. 기본은 듣고 알기 쉬운 일본어를 발성하자는데 있다. 일본어는 모음의 숫자가 적어 동음 이의어가 많다. 따라서 청취력에는 탁음이나 장단음의 구별과 문맥의 공유가 필수적이다. 그는 지난해 『극단 사계의 아름답게 말하는 법』이란 독자적인 발성법 저서를 발간했다. 이 발성법을 익히면 아름답고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사리 단장은 또 이 발성법을 보급하기 위해 특별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사계의 배우 3명이 한 조가 돼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간단한 연극형식으로 학생들에게 모음법의 기초를 알려준다. 2005년이래 지금까지 23만명이 교육을 받았다. 최근에는 방송국이나 항공회사에서도 요청이 온다. 장래의 고객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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