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회사채 시장 첫 디폴트 - 중국판 베어스턴스 사태(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도화선) 터지나
中 회사채 시장 첫 디폴트 - 중국판 베어스턴스 사태(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도화선) 터지나
올해 중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이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에서 정해졌다. 거시경제 목표는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정적 성장 속 개혁 및 구조조정 지속’이라는 슬로건은 올 한 해도 유효하다. 전반적으로는 성장과 거시경제 안정에 방점이 찍혔다.
올해 경제운용 방향 못지 않게 주목할 사건이 이번 양회 기간(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 개최기간) 중 벌어졌다. 중국 당국이 본토 회사채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디폴트(채무 상환불능 선언)를 용인한 것이다.
굳건히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주변국 기업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변화다. 우선 전인대에서 결정된 올해 경제운용 방향을 간단히 짚어보자. 중국의 올해 성장목표는 지난해와 같은 7.5%로 유지됐다. 소비자물가 억제 목표선과 광의통화(M2) 증가율 목표도 변화가 없다. 그간 중국 국영 씽크탱크와 시장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도부가 성장률 목표를 7.5%에서 7.0%로 낮춰 구조조정과 개혁에 조금 더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성장, 개혁, 구조조정, 환경오염과 전쟁당국이 성장률 목표를 작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신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지난해 900만개에서 올해 1000만개로 늘려 잡은 것은 대내외 여건이 여전히 좋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통치 안정을 위해선 성장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며 무엇보다 고용시장이 안정돼야 한다. 당국의 이번 거시지표 목표치만 놓고 보면 올해 중국의 경착륙 위험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중국에선 부채 1단위가 생산해내는 부가가치가 급감했다. 따라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부채팽창속도가 더 빨라질 위험도 도사린다. 물론 당 지도부는 빚에 의존한 고정자산 투자의 비중은 낮추는 대신 가계 소비를 촉진하겠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금융시장 개혁 등 핵심 부문의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안정적 성장도 도모하고 개혁과 구조조정도 추진하는 동시에 환경오염과의 전쟁도 불사해야 하는, 네 마리 토끼 잡이에 나선 것이다. 역시 관건은 당국이 일자리와 성장률을 지켜내면서도 설비과잉업종(석탄·철강·조선·알루미늄)에 대한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개혁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달성할 수 있느냐다.
그런 관점에서 3월 7일 중국 당국이 태양광업체인 ‘상하이차오리태양과학기술’을 구제하지 않고 디폴트가 나게 내버려둔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상하이차오리는 2년 전 발행한 10억 달러어치 회사채에 대한 이자 8980만 위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해 디폴트를 냈다. ‘중국 본토 회사채 시장에서 디폴트란 없다’는 신화는 깨졌다.
그간 중국 정부는 국영은행이나 지방정부 등을 통해 디폴트 위기에 몰린 회사채나 그림자금융상품(이재상품·신탁상품)을 구제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행을 깨고 디폴트를 용인했다. 전력설비업체 바오딩톈웨이바오볜전기유한공사의 주식·채권 거래도 중단됐다. 이는 당 지도부가 약속한 ‘안정적 성장과 개혁 및 구조조정 지속’을 병행할 것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치다.
중국 금융소비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채나 금융상품이 부실해져도 당국이 원금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왔다. 실제 당국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끊임 없이 디폴트를 막아왔다. 그러나 이는 도덕적 해이만 부추겼다. 당국이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투자자들은 몹시 위험한 기업인데도, 금리가 높다는 이유로 자금을 댔다.
이로 인해 중국 내 많은 돈이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는데 쓰였다. 상당한 재화가 돈이 될 만한 곳으로 흐르지 않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곳으로 흘러 들었다. 당국이 이번에 상하이차오리의 디폴트를 허용한 것은 이 같은 문제를 바로잡고 효율적인 재화의 배분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 위해서다.
그러나 상하이차오리의 디폴트는 양날의 칼이다. 단기적으로는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재료지만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의 고통과 혼란을 키울 수 있는 재료인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다.
당국의 디폴트 용인이 규모가 훨씬 큰 그림자 금융 영역(이재상품)으로까지 확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면 분위기는 살벌해진다. 이재상품과 신탁상품에 몰린 자금 사이에서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움직임, 즉 ‘펀드런(Fund Run)’이 발생하면 신용경색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돼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림자 금융 상품은 일반 예금상품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해 고객자금을 유치해 왔다. 이렇게 모은 돈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주로 대출됐다. 상하이차오리는 설비과잉 문제가 심각한 태양광업체였다는 점에서 그림자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부동산개발업체나 과잉설비 업종인 철강업과 석탄업종 등의 한계기업 디폴트 가능성 또한 종전보다 더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시장과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빠르게 위축될 경우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당국도 알고 있는 만큼 향후 정책은 ‘선별적 디폴트’로 모아질 가능성이 크다. 당국은 간헐적이고, 선별적인 디폴트, 즉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업을 중심으로 디폴트를 용인해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는 한편, 신용평가에 기반한 합리적 투자를 유도하고자 할 것이다.
제2, 제3의 상하이차오리 등장 우려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당국의 통제 아래 적절히 관리될 것이라는 100% 보장은 없다. 상하이차오리의 디폴트가 불러올 결과를 비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도화선이 된 2007년의 베어스턴스 파산을 떠올리고 있다. 중국 전체 금융시장에서 상하이차오리의 디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시장 내 공포심리가 확산돼 연쇄반응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높은 확률의 경우의 수는 아니지만 금융시장 분위기가 점점 흉흉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민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한층 안전관리에 주력하겠지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올 상반기까지 중국 경기는 둔화 또는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 경기가 부진한데다, 이를 메워줄 만큼 내부 소비 동력도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3분기부터 당국의 인프라 촉진책과 신형도시화 사업, 환경오염 방지사업 등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국 경기는 반등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 의지로 연간 성장률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한계기업들이 발행한 채권과 이들에게 자금을 댄 신탁상품 등의 만기가 쉼 없이 도래하는 만큼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제2, 제3의 상하이차오리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연쇄부도의 기운이 고조되면 원자재 상품(구리·철광석) 시장과 주변국 경제도 출렁일 수밖에 없다. 중국 기업과 연을 맺어온 기업들은 혹시 모를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한 차례 회오리는 언젠가 가라앉겠지만 멍하니 있다가 휩쓸려가선 곤란하다.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비은행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고수익·고위험 금융상품을 뜻한다. 선진국에서는 헤지펀드·사모펀드·투자은행·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등이 그림자 금융의 핵심 세력으로 간주된다. 금융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중국에서는 투자신탁회사·사채업자 등이 그림자 금융회사에 해당된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중국의 그림자 금융회사가 제공한 자금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0%인 21조 위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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