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수입차 열풍 - 가격·연비 겸비한 독일차 질주
일본에서도 수입차 열풍 - 가격·연비 겸비한 독일차 질주
“폴스크바겐 매장에 경차를 탄 고객이 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최대 수입차 판매업체 야나세(YANASE)의 이데 타케요시 사장의 말이다. 최근 수입차 구매층이 급속하게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1996년 34만대 판매(등록)를 기록한 이후 2009년까지 일본 수입차 시장은 줄곧 하향세였다. 하지만 2010년부터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6% 증가한 약 28만대에 달해 경차를 제외한 등록차 판매 점유율은 역대 최고인 8.6%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독일차가 수입차 시장을 이끌어 왔다. 폴크스바겐·벤츠·BMW·아우디가 전체 수입차 시장의 약 75%를 차지한다. 지난해에도 4사 모두 최고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기세는 여전하다. 1월 판매 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약 40% 증가했다. 폴크스바겐은 40% 이상, 벤츠는 70% 증가했다. 각 사의 일본법인은 ‘올해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며 모두 기세 등등하다.
수입차 판매 전년 대비 16% 늘어수입차의 호조 요인은 소형차와 낮은 가격대 차종에 충실한 점에 있다. 특히 독일 자동차 업체는 소형차이면서 고급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내장재나 주행기능을 겸비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월 일본에서 전면 개량 출시된 벤츠 A클래스다. 그 전에 비해 스포티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벤츠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284만엔(약 2600만원)이라는 가격도 한 몫 해 지난해 이 모델로선 역대 최고 판매(약 1만 2000대)를 기록했다.
우에노 킨타로 메르세데스벤츠 재팬 사장은 “다운사이징(소형화) 시도가 좋은 의미에서 일본시장에 맞아떨어졌다”며 “벤츠가 200만엔대 소형차도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며 신규 고객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도쿄 중심의 한 판매업자는 “일본 소형차에서 수입차로 갈아타려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령대도 예전에 약 30%를 차지하던 40대 이하 층이 50%로 증가했다. 소비층이 넓어진 것을 보여준다.
벤츠는 내년까지 ‘뉴제너레이션 콤팩트카(NGCC)’로 불리는 A클래스를 기본으로 한 소형차 5종을 세계 시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미 판매가 개시된 A·B·CLA 세 클래스에 올해 7월 출시되는 소형 SUV ‘GLA클래스’, 그리고 미발표된 모델 하나를 추가할 방침이다. 벤츠의 일본 판매량은 지난해 5만3731대로 2년 연속 20% 이상 증가했다.
유럽 자동차 업체가 소형차를 잇따라 투입한 배경에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는 연비 규제가 있다. 특히 본거지인 유럽연합의 규정에 따라 2021년 판매하는 신차의 평균 연비를 실질적으로 휘발유 1L당 24km로 올려야 한다. 대형 고급차를 주력으로 하는 독일계 각 사의 2012년 평균 연비는 16~17km다. 소형차·저연비차 확충이 필수다. 유럽차에 정통한 경영컨설팅 업체 롤랜드 베르거의 나가시마 사토시 시니어파트너는 “대형차만 만들어서는 기준을 달성할 수 없어 기존의 차종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소형차를 만드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폴크스바겐의 주력 차종인 ‘골프’의 7세대 신형차가 ‘일본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됐다. 수입차가 수상한 것은 사상 최초다. 일본 대중시장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폴크스바겐은 다른 독일 차에 비해 대중적인 성격이 강하다. 일본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최근 수년 간 여러모로 정책을 마련해 왔다.
폴크스바겐은 2012년 소형차 ‘업!’을 투입했다. 149만엔이라는 경차 가격대와 더불어 일본 소형차에서는 주류가 된 자동 브레이크를 당시로서는 드물게 표준 장착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일본인 배우를 기용한 광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형 골프 광고에서도 막 활동을 재개한 사잔 올스타즈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효과는 엄청났다. ‘업!’ 투입 후 종전에 비해 매장 방문자수가 25% 증가했다. 폴크스바겐그룹 재팬(VGJ)의 쇼지 시게루 사장은 “친숙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우선 매장에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며 “TV광고 효과가 컸다”고 만족스럽게 얘기했다.
폴크스바겐 산하의 고급 브랜드 아우디도 지난해까지 7년 연속 최고 판매대수를 경신하고 있다. 주력 상품인 A3·A4와 함께 2011년에는 가장 소형 모델인 A1을 투입하는 등 소형차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높여 왔다. 2001년 폴크스바겐 채널에서 판매를 독립하며 브랜드 단위로 이었던 점포 수를 최근 107개로 확대시켰다. 올해도 경쟁 일본차가 적은 중형차 A3세단을 연초에 출시해 판매에 박차를 가한다.
올해 중반에는 최고급 클래스인 A8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아우디 재팬은 앞으로 신규 출점뿐아니라 고객이 폭넓은 차종을 접할 수 있도록 전시 대수에도 신경을 쓸 방침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판매점 아우디 미나토미라이점은 전시 대수가 17대로 일본 최대 규모다. 입지 조건이 좋아 방문자 수는 월 평균 400~500팀이다. 다른 점포의 4배 이상이다. 방문자 연령층도 20~60대로 폭 넓다.
폴크스바겐 ‘골프’ 사상 첫 일본 올해의 자동차 선정BMW의 지난해 판매대수는 소형차 브랜드인 미니가 이끌면서 최고를 경신했지만 브랜드의 영향력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BMW 일본 법인의 앨런 해리스 사장은 “과거 최고를 갱신한 2006년에 비해 수입차 전체에서 가격이 저렴한 모델이 확산돼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올해 판매는 두 자릿수 증가를 노린다”고 덧붙였다. 주목 받는 모델은 BMW의 첫 전륜구동(FF) 소형 해치백 ‘2시리즈 액티브투어러’다. 올해 하반기에 일본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연비는 1L당 20km 이상으로 자사 최고 수준이다. 해리스 사장은 “이 차로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정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미니도 4월에는 7년 만에 새로운 차량을 투입한다. 소비세 증세 이후지만 판매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차와는 아직 차이가 크지만 독일 이외 브랜드들도 선전하고 있다. 중국 지리(Geely) 그룹 산하의 스웨덴산 고급차 메이커 볼보는 1996년을 정점으로 일본 내 판매대수가 하향세다. 그러나 최근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대수는 1만 6918대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지난해 2월 내놓은 소형 모델 V40으로 독일차처럼 소형 수입차 붐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발명한 볼보의 세계 목표는 ‘2020년까지 볼보차 사상자 제로’다. 안전성은 볼보의 최대 장점이다. 2009년 일본에 출시한 SUV XC60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동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주행중인 자동차를 인지하는 시스템을 지난해 11월부터 V40 전 차종에 표준 장착했다.
볼보카 재팬 관계자는 “작년 발매한 V40 중 99%에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이 탑재됐다”며 “구매자의 절반은 신규 고객”이라고 말했다. 또 이 모델에는 세계 최초로 보행자용 에어백을 탑재했다. 발군의 안전성에 대한 고집으로 올해도 전년 이상의 판매가 목표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이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피아트다. 지난해 피아트 브랜드의 일본 내 판매대수는 역대 최고인 7007대를 기록했다. 실적을 이끈 것은 2008년 출시한 주력 소형차 피아트500(친퀘첸토)이다. 단 한번도 모델 체인지를 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연 400대 이상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피아트500은 전장이 약 3.5m다. 수입차 중에서도 가장 작다. 가격은 199만엔(2000만원)부터다. 이 클래스의 차종으로는 다소 비싼 느낌이 들지만 귀엽고 스타일리시 한데다가 연비도 좋다. 남들과 다른 멋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취향에 호소한다. 배기량 0.9L 2기통 터보엔진을 탑재한 모델의 연비는 1L당 24km다. 일본산 경차에 필적한다.
피아트는 순조로운 판매를 배경으로 올해는 단숨에 점포망을 확충한다. 현재 77곳인 점포는 2008년 이후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나 이를 94개로 늘릴 계획이다. 폰터스 해그스트롬 피아트-크라이슬러 재팬 사장은 “애프터서비스를 충실히 하면서 지방 도시로의 판매도 확충해 가겠다”며 “올해는 두 자릿수 판매 증가를 노린다”고 말했다.
비(非)독일차의 가장 큰 과제는 낮은 인지도다. 피아트는 2008년에 도쿄 아오야마에서 ‘피아트 카페’를 열어 수입차 메이커로서는 가장 먼저 브랜드 거점을 세웠다. 안테나숍이나 레스토랑도 열어 실제 차량을 전시한다. 일본에서만의 독자적인 운영 구조다. 우선은 가볍게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고, 그 다음에 구매로 연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벤츠 등 다른 수입차 업체도 이와같은 거점을 세우고 있다.
일본 자동차 시장이 주춤한 가운데 수입차들이 일본차의 아성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표식을 떼면 어디 차인지 모르겠다고 평가되는 일본차와는 달리 수입차는 각각의 개성이 명확하다. 프론트 그릴이나 차체 형상과 같은 외관부터 운전할 때의 승차감까지 브랜드마다 저만의 기준이 분명하다. 오오키타 히로시 아우디 재팬 사장은 “일본 메이커들은 싸고 고품질의 차량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볼륨존(대량판매를 위한 상품가격대) 일 때 얘기다. 차에 대한 시장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어 모두 개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강세 당분간 지속될 듯환경규제로 수입차도 연비가 향상되고 있다. 에코카 감세 대상차도 증가한다. 주행 기능에 있어서도 독일차는 속도 무제한 도로 ‘아우토반’을 달릴 만한 품질로 만들어졌다. 차체 강성이나 주변 장치의 설계 구상이 일본차와 다르다. 가격이나 연비 등 수입차의 단점은 개선된 반면 독일 품질이 제고된 것이다.
선진국 자동차 시장의 해외 브랜드 점유율은 30%를 넘는다. 일본과 같은 자국 브랜드 편중은 드물다. 이데 사장은 “일본의 수입차 점유율은 이르면 올해 10%, 향후 15~20%로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와 함께 경제성도 높인 수입차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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