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열정적이다. ‘여성의 섬세함과 남성의 강단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가다. 그는 약품유통의 혁신을 주도하며 업계 최강자로 우뚝 섰다.

지난해 12월 3일 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하루 종일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2002년 지오영을 설립한 지 만 11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지오영그룹 차원에서는 2011년 이미 1조원을 넘었지만 지오영 단일법인으로는 약업계(의약품도매업·제약업·약국업·의약품수출업) 최초의 일이다.

조선혜 회장은 “약사를 그만두고 1991년 처음 성창약품을 세웠을 때가 생각나 온종일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그는 37세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남성 산업으로 불리는 약품유통업계에 드문 여성 CEO였다. “당시 거래처에서 사장 찾는 전화가 와 비서가 바꿔주면 그래도 또 사장을 찾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자신이 대견했고, 또 함께 걸어온 임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첨단물류시스템 선도하며 급성장그동안 제약업체든, 유통업체든 약업계의 화두는 매출 1조원을 넘는 것이었다. 1조원이라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 제약업체는 연구개발(R&D)이 활성화되고 유통업체는 혁신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0년의 약업 역사 동안 단 한 기업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조 회장은 일주일 뒤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 제약업체, 병의원, 약사회 등 약업계 인사들을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고 감사패도 전달했다.

조선혜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 CEO다. 조 회장은 2012년말 기준 지오영(393위)과 지오영네트웍스(453위) 두 회사를 모두 매출 500위 안에 올렸다(CEO스코어데일리 집계). 9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는 지오영그룹 전체 매출은 2012년 1조2279억에서 지난해 1조3586억원으로 성장했다.

지오영 1조700억원을 비롯해 지오영네트웍스 등 계열사를 포함한 순매출이다. 최근 5년 연속 두 자리 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성과로 그는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2014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된 국내 여성 CEO 3명 중 유일하게 자수성가한 경우라 더욱 주목 받는다.

숙대 약대를 졸업한 조 회장은 지방공사 인천병원의 약제과장으로 일하다 1991년 성창약품을 인수하면서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약품유통업체의 낙후된 시스템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며 “약품 유통구조만 바꿔도 의료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병원 약제부 내의 업무에 문제점이 많아서 이를 수없이 개선했다. 하지만 병원에 약품을 공급하는 업체와 시스템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약품 유통업에 뛰어든 이유다.”

지오영의 장점은 국내 모든 약품을 구비했고, 배송이 빠르다. 이는 인수합병을 통한 지역 영업망 확보와 물류센터 구축 덕분이다. 2002년 사명을 지오영으로 바꾼 조 회장은 ‘약품 유통의 선진화·대형화·투명화’를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섰다.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회장은 “작은 규모로는 외국계 기업과 경쟁이 힘들고, 또 국내 의약품 유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우선 지오영이 커버하고 있는 수도권에 집중해 기업 규모를 키웠다. 이후 지역에 물류센터를 구축하며 영업망을 넓혔다. 강원지역에는 강원지오영, 충청지역은 대전지오영, 호남지역은 호남지오영을 세웠고, 영남지역은 청십자 약품을 인수해 지역거점으로 삼았다. 2009년 골드만삭스가 투자한 400억원은 인수합병의 실탄이 됐다.

지오영은 2003년 MIS 물류시스템을 가동한 이후 현재 수도권 6개 등 전국적으로 16개의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그동안 취약지역이었던 호남지역에도 지난해 물류센터를 구축하면서 3개월 만에 호남지역 약국·병의원 30%에 약품을 유통하는 성과를 냈다.

조 회장은 혁신의 CEO로 불린다. 업계 내 효시라고 불릴만한 일을 많이 이뤄냈기 때문이다. 우선 자동화물류센터 구축이다. 특히 2007년 완공한 인천물류센터는 업계의 롤 모델이 됐다. 연면적 1만2000㎡(3500평) 규모의 자동화물류센터다.

2011년에는 연면적 1만㎡ 규모의 3자 물류 전용센터를 증축했다. 3자 물류는 타기업의 물류를 취급하는 것으로, 약품 유통을 넘어 전문 물류 사업으로 영역을 다각화했다. 고정비용 감소를 통해 저마진 수익구조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그가 인천물류센터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선 모두 말렸다. 당시 회사 연매출은 3500억원 수준. 유통마진이 낮은 약품유통업체가 350억원이나 들여 자동화물류센터를 짓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었다. 그 비용으로 중견 제약회사 하나를 인수하자는 말도 나왔다.

조 회장은 “글로벌 시대에 매출 큰 것이 자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경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물류센터 건설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지역별 물류센터는 지오영의 급성장을 가능케 했다. “물류 투자는 유통기업의 기본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기업들은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약품 유통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뒤지지 않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상물 분류’도 업계 최초다. 지오영 사옥에는 약품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영업사원들이 사무실에서 전화로 주문을 받고 창고에서 약품을 들고 배달 가는 시스템이지만 조 회장은 영업과 물류를 분리했다. 지오영에선 영업사원은 영업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배송은 물류센터에서 진행한다. 유통업 핵심인 영업사원의 기를 세워준 것이다.

약품 재고 공개 역시 지오영이 선도했다. 업계 최초로 웹사이트를 통해 재고를 밝히고 있다. 약사들은 지오영 웹사이트에 들어와 물류센터의 재고를 파악하고 스스로 주문한다. 조 회장은 “유통기업이 재고를 밝힌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약품 사재기를 방지하고, 약국의 재고를 해결하는 등 의약품 유통 선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조 회장은 “우리가 먼저 발을 내딛으면 다른 기업들이 따라 걸어 왔다”며 “처음엔 우려의 시선도 많았지만 결국 이것이 지오영을 시장의 최강자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약업체의 R&D 투자는 신약 개발이고, 유통업체의 R&D 투자는 IT시스템과 물류기반 구축이다. 이를 기반으로 약국과 병의원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지오영은 전국 2만1000개 약국 중 50%에 해당하는 1만여개의 약국과 서울대병원·한양대병원·인하대병원·차병원 등 50여 개의 병원에 약품을 유통하고 있다.



여성 CEO의 장점을 살리다조 회장은 상당히 열정적이다. “오너가 슬럼프에 빠지면 임직원들도 의욕을 잃는다. 그래서 오너는 늘 에너지 넘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직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목소리도 밝게 내고 행동이 커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조 회장을 ‘남성보다 오히려 강단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를 보는 이들은 ‘여성의 섬세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한정희 지오영 부사장은 “직원들의 표정이나 행동만 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척척 알아보기 때문에 ‘독심술이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고 했다. 조 회장은 “여성 CEO의 최대 장점은 섬세함”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관점으로 보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영업사원의 역량이 중요한 유통기업에서는 목표에 사람을 맞추기보다 그 사람의 역량에 맞는 목표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영자로서, 선배로서, 여성으로서 그런 면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회사명은 ‘지오그래픽(geographic)+榮(영화로울 영)’의 조합이다. 이 땅의 삶을 영화롭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직원에 대한 복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1월 입주한 신사옥은 영업사원이 많은 기업은 사옥 투자가 불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지상 7층 규모로, 설계단계부터 디자인과 편의성에 신경썼다.

조 회장은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등 기업이 됐으니 그들에게 최적의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근무환경이 좋아야 자긍심도 생기고 일의 능률도 오른다”고 말했다. “자기 집은 대궐처럼 잘 꾸미면서 회사는 창고처럼 방치하는 경영자도 있다. 내 집에 에어컨 달면 반드시 회사에도 에어컨을 달아야 한다. 성창약품 당시엔 회사벽을 핑크색으로 칠했다. 여직원들이 좋아해서다.”

구내식당은 ‘지오영 직원들은 밥 먹으러 회사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조 회장은 “아침식사부터 저녁식사까지 어머니가 내오는 밥상처럼 차리고 싶다”며 “그래서인지 우리 회사 영업사원의 이직률은 업계에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다른 회사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 자축연에서 ‘매출 3조원을 조속히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1조원 매출 돌파의 기쁨도 잠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눈덩이를 처음 뭉치기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굴리기만 해도 덩치가 커진다. 매출 1000억원, 3000억원 넘기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5000억원, 7000억원, 1조원으로 이르는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3조원 매출도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오영의 ‘제2비전’을 선포했다. 핵심 내용은 공정경영, 나눔경영, 상생경영이다. 제약사에는 진정한 협력회사, 고객에게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포부다. 이날 임직원들이 함께 외친 구호는 ‘트러스트(Trust) 지오영’이었다. 한 부사장은 “회사는 직원을 믿고, 직원은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는 약품유통기업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1등 파트너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며 “한걸음 앞선 서비스를 통해 고객감동을 실천하고 신뢰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올해 1000억원 규모의 R&D 투자를 계획했다. 그 중 핵심이 새로운 IT 시스템 구축이다. 지오영을 세우면서 구축한 IT 기반 시설이 이미 12년이 넘었기 때문에 향후 10년 동안 사용할 프로그램을 다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IT 회사를 인수할 예정이다. 인수한 회사와 함께 선진화된 첨단 시스템을 개발해 물류서비스의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상반기 안에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제2비전 선포하며 매출 3조원 겨냥미국 등 선진국은 서너 개의 약품유통업체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빅3가, 일본의 경우 빅10이 시장을 주도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약품 유통 상위 3사의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20%수준이다. 지오영도 현재 매출액 기준으로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다지고 있지만 전체 시장 점유율은 10%대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조 회장은 “향후 30%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문화 교육을 강화해 전국 260명 영업사원 모두를 약품유통업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선은 유통 규모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도매회사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위에 얹힐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하다. 핵심인 약품유통을 중심으로 많은 사업을 구상 중이다. 약품유통업계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서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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