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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정수현의 바둑경영 - 생각의 진화가 기술의 진보 낳아

Management | 정수현의 바둑경영 - 생각의 진화가 기술의 진보 낳아

바둑의 정석·포석도 끊임 없이 발전 … 고정관념 버려야



비즈니스를 포함한 일상의 여러 면을 보면 무엇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민등록등본을 떼기 위해 동사무소까지 가야 했지만 어느 틈엔가 집에서 출력할 수 있게 바뀌었다. 예전에 차장이 받던 버스 요금을 기계가 대신 받더니 요즘은 신용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발전에는 기술의 진보와 사고방식의 진화가 내포돼 있다. 즉,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술이 발전하며 삶의 방식도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생각이 삶과 비즈니스를 바꾸는 주요한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는 전화를 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손 안의 컴퓨터가 됐고,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터 역할도 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프로게이머나 사립탐정과 같은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가 진화하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묘수는 없다바둑의 기술도 생각에 따라 점점 발전하고 있다. 300년 전의 고수들이 두던 바둑과 현대의 프로기사들이 두는 바둑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1800년대의 최고수 슈사쿠 명인은 “바둑의 규칙이 변하지 않는 한 영원불멸의 호수”를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사들은 슈사쿠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부분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역은 ‘돌의 사활’에 관한 부문이다. 바둑돌이 살고 죽은 것과 관련된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구는 돈다는 자연법칙처럼 사활에 관한 기술은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포석과 정석 등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옛날의 명인들이 두던 포석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두는 사람은 없다. 옛날 유행하던 정석들은 흘러간 옛 노래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석대사전’을 보면 오늘날에 쓰이지 않는 정석이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 중반의 전투기술은 과거와 현재가 비슷하다. 그러나 전투에 관한 사고방식에서는 진화가 있었다. 바둑기술의 이런 변화는 상품의 진화와 닮은 데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1도]는 중국 원나라 말엽인 1349년에 나온 『현현기경』이란 책에 수록된 정석이다. 지금으로부터 650년 전에 나온 정석인데 오늘날의 정석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흑4로 끊은 돌을 희생타로 이용해 흑이 튼튼한 세력을 쌓는 모양이다. 이 정석은 우리가 먹는 된장찌개와 비슷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먹던 된장찌개도 현대의 된장찌개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정석과 비교해 보면 어딘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2도]의 모양이 오늘날의 정석이다. 흑4의 끊음에 백5로 단수하여 흑돌의 모양에 단점을 남긴 것이 옛날 정석과 다르다. 옛날 정석에서는 끊어온 돌을 잡는데 초점을 맞춘 반면 현대의 정석은 돌의 능률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옛날 정석에서 흑12로 키워 버리는 수법도 현대 기사들은 두지 않을 것이다. 굳이 석 점으로 키울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수법에도 과거의 생각과는 다른 사고의 진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세와 현대의 차이를 보여주는 더 중요한 점이 있다.

[3도]의 모양은 정석책의 앞 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정석이다. 흑1에 붙이고 백2로 젖힐 때 흑4로 가만히 뻗는다. 백7, 흑8로 평화롭게 안정하는 것이 기본적인 정석이다. 그러니까 앞의 모양에서는 흑4로 끊는 수를 둔 것에 비해 여기서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사고해야원나라 때는 이 정석이 없었다. 바둑을 싸움으로 간주하여 끊어서 싸우는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기업경영을 경쟁자와의 투쟁으로 간주한 것이다. 경쟁자를 쓰러뜨려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 경영도 전투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운영을 적당히 이익을 교환하는 거래로 생각한다면 항상 투쟁적인 방식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둑의 정석에 담긴 생각의 진화를 살펴보았다. 영토(집)의 골격을 설계하는 포석 부문에서는 이런 진화가 훨씬 더 크다. 마치 옛날의 수묵화와 현대의 추상화만큼이나 차이가 있고 여기에는 생각의 진화가 담겨 있다.

바둑의 정석이나 포석처럼 우리가 이용하는 상품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자동차나 지하철의 시설과 서비스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중요한 점은 이런 기술의 진보에 생각의 진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서 기술도 발전하고 상품도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생각이 절실한 것 같다.

특히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는 것은 장애가 된다. 공중전화 박스가 흔하던 시절에 들고 다니는 전화기를 만들자는 생각은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그 전화기를 조그만 PC로 만든다는 생각을 더욱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사고방식을 기르고 자신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생각의 진화를 이룰 부분이 있는지 검토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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