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백화점 업계 연봉 1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경영 10년
Issue | 백화점 업계 연봉 1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경영 10년
45억1100만원. 현대백화점그룹이 3월 31일 공시한 정지선 회장의 지난해 연봉이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에서 39억400만원(급여 13억5699만원, 상여금 13억7800만원, 성과금 11억7000만원), 현대그린푸드로부터 6억700만원(급여 3억100만원, 상여 3억600만원)을 각각 받았다.
참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백화점 업계 1위 롯데백화점이 포함된 롯데쇼핑에서 15억5000만원을 받았다. 신 회장이 롯데제과·롯데케미컬에서 받은 연봉을 모두 더하면 총 44억4000만원이다. 정 회장은 신 회장보다 많은 돈을 받아 백화점 업계 연봉 1위를 기록했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등기임원이 아니어서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
현대백화점은 3월 21일 주주총회에서 정지선(42) 현대백화점 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기존 사내이사였던 현대백화점 경청호 부회장과 하병호 전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현대백화점 김영태 사장과 이동호 기획조정본부 사장이 사내 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이번 선임 결과에 대해 업계에서는 세대교체가 본격화됐다고 평가한다. 경 부회장은 1975년 현대그룹으로 입사해 2002년 그룹 기획조정본부장, 2005년 그룹 기획조정본부 사장,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정 회장을 보좌해 그룹 부회장직을 수행했다.
이번 세대교체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고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과 현대홈쇼핑 등 35개 계열사를 둔 매출 6조원(2012년 기준) 규모의 회사다. 그러나 주력 사업인 백화점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홈쇼핑의 영업이익은 하락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3년 29.7%이었던 현대백화점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19.1%로 1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2003년 1월 그룹 총괄 부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2007년 회장에 취임해 현대백화점그룹을 이끌고 있다. 세간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업계에서는 “지난 10년 간 차별화하지 못한 사업전략의 실패”라는 평가가 많다. 한 대형 증권사 연구원은 “유통업은 경기에 따라 소비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롯데나 신세계는 경기 침체로 중저가 유통채널인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쇼핑몰 등에 집중 투자하며 사업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현대백화점은 변화에 늦게 대응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시작한 신규 사업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점유율 10년 사이 10% 넘게 떨어져현대홈쇼핑도 홈쇼핑 상위 3사 중에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448억원. 전년 대비 5.3% 줄었다. 이와 달리 GS홈쇼핑과 CJ오쇼핑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3.3%, 15.5% 늘었다. 그간 업계 1위를 놓치지 않던 현대홈쇼핑은 영업이익이 줄면서 3위로 쳐졌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고객 혜택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은 행사와 무이자 할부 등 각종 프로모션 진행으로 영업이익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다른 분석이 나온다. CJ오쇼핑과 GS홈쇼핑은 수익성 높은 패션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대홈쇼핑은 여전히 주방이나 식품 등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박유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해까지 상품 등에서 차별화를 꾀하지 못한 게 실적부진의 이유”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올해도 이익 개선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은둔의 CEO’로 불릴 정도로 외부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보가 달라진 건 2010년 전후다. 정 회장은 그 해 ‘현대백화점그룹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백화점·미디어·식품 등 기존 사업을 키워나가고, 동시에 인수합병(M&A)으로 신성장동력을 찾아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경상이익 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경쟁사인 롯데나 신세계의 적극적인 행보에 보수적인 경영을 했던 그가 ‘긴 침묵’을 깨면서 당시 관련 업계에선 화제가 됐다.
실제로, 2012년 2월 현대백화점은 가구업체인 리바트를 204억원에 인수했다. 리바트의 전신은 1977년 현대건설 가구사업부에서 현대그룹 계열사로 독립한 ‘금강목재공업’이다. 현대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차원에서 현재의 리바트를 고려산업개발에 매각했다. 이를 정지선 회장이 10년여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같은 해 3월에는 국내 여성복 1위 업체인 한섬을 4200억원에 사들였다. 정 회장이 직접 한섬 회장을 만나 단판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백화점과 홈쇼핑 등 패션사업을 위주로 한 시너지 효과 확대를 위해서다.
하지만, 인수한 두 회사 실적이 신통치 않다. 인수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섬은 여성 의류 부문에서 업계 1위로 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패션사업의 중심축이 돼야 할 회사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매출과 영업 이익이 하락 일로에 있다. 해외 브랜드인 ‘지방시’와 ‘셀린느’ 등의 판권을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뺏기면서 수입 계약 연장에 실패한 때문이다. 이 여파로 인수 직전인 2011년 매출 4970억원, 영업이익 983억원을 기록했던 한섬은 2년 내리 실적이 하락했다. 지난해 매출은 4689억원, 영업이익은 566억원이다.
리바트도 백화점과 연관성이 높은 가구업체로 중요한 계열사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리바트는 정 회장이 인수한 후 2012년 매출 5049억원, 영업이익 32억원을 냈다. 이는 전년도 대비 매출 3.1%, 영업이익 64%가 감소한 수치다. 정
회장이 경영진 교체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이후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매출 9.8%, 영업이익 299% 증가했다. 실적이 개선됐지만 영업이익률은 2%대에 불과하다. 여기에 국내 가구시장이 경기 침체로 장기 부진에 빠진데다 글로벌 가구업체인 이케아가 상륙을 앞두고 있어 향후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이케아는 올 연말에 경기도 ‘광명 1호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본격 진출한다.
미래 성장동력 아울렛 투자 롯데의 10분의 1 수준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는 2010년 29개에서 지난해 35개사로 늘었다. 계열사는 늘었지만 실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현대백화점의 지난해 매출은 1조1126억원으로 전년 대비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주가도 하락세다. 2011년 중순 20만원대를 돌파했던 주가는 4월 10일 현재 14만원대로 하락했다. 올해에도 실적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실적 부진 여파와 신규점 출점으로 인한 부담이 올해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 2.5%, 영업이익 3.6%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 회장은 한섬과 리바트의 실적 개선을 위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정 회장이 2조원 대의 국내 핸드백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계열사인 한섬을 통해 3월 20일 핸드백 브랜드인 ‘덱케(DECKE)’를 출시했다. 5년 안에 연 매출 1000억원대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덱케는 올해 백화점과 편집숍 등 10곳 이상에 매장을 열고 오는 4월에는 자체 온라인 몰도 열 계획이다. 한섬이 독자적으로 잡화 브랜드를 선보이는 건 1987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또 조만간 현대백화점 본점인 압구정점 지하 2층에 있는 ‘타임’ 매장을 명품 매장이 들어서 있는 3층으로 옮길 예정이다. 타임은 한섬에서 만든 여성 브랜드다. 타임을 수입 명품 브랜드처럼 파워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현대백화점은 앞으로 주요 경쟁력 있는 의류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렛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5월 서울 금천구 하이힐 아울렛의 위탁 운영을 시작하고, 9월에는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 매장을 일괄 임대해 아울렛으로 바꿀 예정이다. 12월에는 경기 김포시에 프리미엄 아울렛 매장을 연다. 정 회장은 프리미엄 아울렛을 신성장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이미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일찌감치 시장에 진출한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프리미엄 아울렛 3곳을 개장한 데 이어 올해도 경기 고양시·구리시·광명시 등에 추가로 열 계획이다. 신세계도 2017년까지 경기 하남시와 인천 청라지구, 고양 삼송지구 등 6곳에 복합쇼핑몰을 건설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만 비교해도 불리하다.
롯데는 지난해에 이어 프리미엄 아울렛 시장에 7조원 가량을 투자키로 했지만 현대백화점은 10분의 1수준인 7000억원에 불과하다. 김준영 현대백화점 부장은 “현대백화점은 외형 경쟁이 아니라 고객들이 편리하고 실속 있게 쇼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중 중인 코엑스몰 운영권 문제도 악재현재 소송 중인 코엑스몰 운영권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무역협회가 직접 운영하겠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자 현대백화점이 반발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한무쇼핑이 코엑스몰의 일부 음식점과 식음료 코너를 위탁 운영했다. 그러나 무역협회가 코엑스몰 매장관리 협약의 종료를 현대백화점 측에 통보했다. 현대백화점은 1986년 체결한 출자약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코엑스몰은 한 해 유동인구만 5000만명에 이르는 만큼 유통업계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현재 코엑스몰은 리모델링 중이다. 무역협회 박성경 차장은 “당시 계약은 2010년 5월에 기간 만료가 됐지만 3년 간 연장했고 지난해 2월 공식 계약이 종료됐다”고 말했다. 김준영 부장은 “위탁운영으로 1년에 버는 돈은 3억원에 불과하다”며 “돈이 아니라 계약서에 있는 권리에 대해 소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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