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리얼 버추얼리티(Real Virtuality)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리얼 버추얼리티(Real Virtuality)
한 때 우리 사회에선 ‘가상현실’이라는 의미의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란 단어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를 동원해 가상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특정한 존재를 말한다. 온라인에 현실처럼 학교가 생기고, 기업이 들어서고, 사람들 사이에 물질적 거래가 이뤄지는 또 다른 현실세계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상황을 얼마나 가상공간에 실감나게 재현해 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이젠 그 반대의 현상이 발견된다. 온라인 세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가상공간의 논리나 법칙을 거꾸로 현실의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 가상’이라 번역되는 ‘리얼 버추얼리티(Real Virtuality)’는 가상현실이라는 의미의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를 뒤집어 만든 조어(造語)다. 가상공간의 논리·정서·상황이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줄만큼, 가상과 실재가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얼 버츄얼리티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현실에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간 인기가 지속되고 있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논리를 그대로 현실화시킨다. 흔히 ‘육성게임’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아이·애완동물·유명인 등을 기르는 과정을 흉내 낸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가령 ‘수퍼스타K’ 시리즈의 시청자들은 마치 육성게임을 하듯이 출연자들, 특히 최종 톱10에 대해 투표를 하고 생존자들의 성장을 지켜본다. 매주 출연자들이 각각의 새로운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서 ‘내가 평가해서 내가 키운 스타’라는 동일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네티즌 스스로도 온라인의 약속을 오프라인 현실에서 지키기도 한다. ‘인증샷’ 올리기 놀이가 대표적인 예다. 예를 들어 ‘13일에 비가 오면 내가 명동에서 춤을 추겠다’고 온라인 공간에서 약속하고, 실제로 그 날 비가 오면 그것을 현장에서 실행한 후 인증샷을 가상공간에 올리는 식이다. 이 수행 과정을 보기 위해 네티즌들이 현장에 모여 하나의 플래쉬몹(flash mob, e메일이나 휴대폰 연락을 통해 약속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을 이루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나의 평판을 현실 세계의 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소셜금융플랫폼 렌도(Lenddo)는 ‘SNS 신용’을 기준으로 일반인들에게 대출서비스를 진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의 페이스북 친구 중에 대출상환 실적이 좋지 않거나 연체 중인 사람이 있다면, 신청자도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식이다.
필리핀·콜롬비아·멕시코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회사는 이미 유수의 투자자들로부터 8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지난 9월에 발표한 ‘2014 기술선도기업(Technology Pioneers)’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로서 독일의 신용평가기관 ‘크레디테크(Kreditech)’는 페이스북·이베이·아마존의 소비자 계정을 신용평가에 활용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출신청을 하는 고객의 행태까지도 꼼꼼하게 분석해 신용등급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크레디테크 사이트에서 대출 신청을 할 때, 이와 관련된 정보를 꼼꼼히 읽었는지, 신청서를 성실하게 작성했는지, 신청서를 직장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는지 등의 8000여 가지 온라인 행태를 분석해 현실의 신용점수를 매긴다. 최근엔 이들이 보유한 신용평가 기술 자체가 러시아와 체코 등 다른 국가의 온라인 대출업자에게 판매되면서 기업에게 새로운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실제로 온라인의 법칙을 현실에 잘 적용해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국민은행의 스마트폰 예금은 마치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듯이 저축활동을 유도해 성공을 거뒀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꾹 참고 스마트폰뱅킹 애플리케이션의 커피 아이콘을 누르면 커피값이 자동으로 저축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스마트뱅킹 내에서 농장도 가꾸고 마을도 키운다. 일종의 온라인 게임과 닮아 있다.
‘SNS 신용’ 기준으로 대출하기도의류업계에서도 가상세계의 법칙을 현실에 적용하느라 분주하다. 리바이스나 CJ오쇼핑 등은 ‘디지털 피팅룸’을 도입해 소비자가 매장에 가지 않고도 옷을 직접 입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의류는 직접 입어볼 수 없어 온라인 쇼핑을 꺼리게 된다는 소비자의 인식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국가의 산업기술기반조성사업 일환으로 출범된 아이패션 의류기술 비즈센터(i-Fashion Biz Center)는 대한민국 국민의 체형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마치 게임을 하듯 자신에게 꼭 맞는 사이즈를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는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신기한 공간이었다. 그러다 현실을 열심히 닮아가고, 급기야는 현실의 영역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온라인과 현실을 하나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제가 무너지고 항시 온라인 접속 상태인 일상이 유지되면서, 소비자들은 게임 같은 현실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현실 속의 기업들이 온라인 생태계를 벤치마킹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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