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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Bike | 충북 옥천 향수 100리길 - 금강 줄기 따라 ‘향수의 본향’ 한바퀴

Travel with Bike | 충북 옥천 향수 100리길 - 금강 줄기 따라 ‘향수의 본향’ 한바퀴

정지용 시의 무대 … 도로·농로·흙길 혼재된 전원풍경 인상적
옥천 구읍에 자리한 정지용 생가가 향수 100리길 출발점이다. ‘향수’ 시에 나오는 실개천은 생가 앞을 흐른다.



부평초처럼 뜨내기 인생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지막 기댈 곳은 고향 아닐까. 흔히들 도시 출신은 고향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다. 서울 출신이 그대로 서울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말이 나왔을 뿐, 서울 사람도 다른 지방에 살 때는 구(區)나 동(洞) 단위로 축소된 고향의 테두리에 무한한 향수를 느낀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에서 ‘향수’의 대상은 21세기 첨단시대에도 산업화 이전 1960~70년대의 가난했지만 소박했던 전원풍경으로 화석화되어 있다.

한국적 ‘향수’의 절절한 애상을 담아낸 시로 정지용의 ‘향수’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애창곡의 노랫말이 되어 더욱 친숙하다. 그렇다면 정지용 ‘향수’의 무대는 어디일까. 당연히 그곳은 시인의 고향일 것이다. 그곳이 충북 옥천이다. 정지용은 한국전쟁 때 실종되어 안타깝게 최후를 맞았는데, 그의 넋조차 휴전선 어디쯤에서 고향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옥천군은 ‘향수’를 테마로 한 자전거코스 ‘향수 100리길’을 조성했다. ‘향수’라는 단어가 주는 서정적인 어감과, 아득한 거리감을 풍기는 ‘100리’가 어울려 이름부터 매력을 발산한다. 충북 내륙 산간지대에 자리한 옥천은 인적이 드물고 경관이 빼어난 금강 상류를 끼고 있다.

2. 금강유원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여인. 잠수교 건너 보이는 건물이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3. 말끔히 복원된 육영수 생가. 생전의 육 여사 사진과 자료 등도 전시되어 있다. 4. 둔지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좌우로 반전된 모양이지만 인상적인 풍경이다. 향수100리길은 지형 왼쪽의 강변을 따라 간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옥천(沃川)도 비옥한 강이라는 뜻이니 ‘비단 물결’ 금강과 잘 어울린다. 옥천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중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금강휴게소’를 떠올리면 된다. 금강휴게소가 바로 옥천에 있고, 향수 100리길도 그 옆을 지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았을 ‘금강휴게소’의 그 싱그럽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렬한 인상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쳐 지나는 길에 보는 그런 풍경은 ‘언젠가는 저 강변을 걷고 싶다’는 막연한 충동을 일으키면서도 기약 없는 약속으로 잊혀져 갈 뿐이다. 부질없어 보이는 미련의 실마리도 한번쯤은 풀어보는 것이 삶의 묘미 아닐까.

향수 100리길은 영월 동강처럼 구절양장을 그리는 금강 상류의 맑은 물길을 따른다. 도로·농로·흙길이 뒤섞인 길은 시의 배경이 된 전원풍경을 꿈결처럼 흘러간다. 실로 다채롭고 맑은 풍경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는 100리길이다. 실제 거리는 100리를 훌쩍 넘는 50㎞에 달한다.

코스의 출발점은 옥천 읍내에 자리한 정지용 생가다. 물레방아가 재현되어 있고, 집 앞에는 시에도 등장하는 실개천이 흐른다. 산간지대인데도 읍내 주변은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하늘에서 보면 정사각형에 가까운 독특한 침식분지다. 삼국시대에는 이곳을 두고 백제와 신라가 쟁패를 거듭했던 곳이다. 백제 몰락의 서곡이 되었던 관산성전투(554년) 현장도 바로 여기다.

읍내를 북쪽으로 벗어나면 100리길은 금강 물줄기와 만난다. 대청호의 최상류쯤에 해당되어 수량이 많은 편이다. 이제 길은 대체로 강을 따라 전원 속을 들락날락 누빈다. 안남면에는 물줄기가 구비치면서 빚어낸 한반도 지형도 숨어 있다. 한참 강변길을 돌아 금강휴게소 아래를 지날 때는 특별한 감상에 젖는다. 기억 저편에 아련히 남은 환상의 풍경 속으로 직접 뛰어든 느낌이랄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금강휴게소를 지나면 100리길은 강변에서 멀어지며 다랭이 논밭이 구석마다 숨어 있는 구릉지대를 울렁대며 넘는다. 산간마을을 휘돌아나가는 한갓진 농로에서 ‘향수’ 구절은 저절로 읊조려진다. 싯귀와 풍경의 조화에 조금이라도 심금이 흔들린다면, 어느새 진짜 고향 생각에 시름이 깊어지고 정서적으로는 충만해질 것이다. 자주 못 가더라도 언제든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천리고 혼이 된 시인의 절규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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