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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S 50 RICHEST - KAKAO FOUNDER KIM, BEOM-SOO

KOREA'S 50 RICHEST - KAKAO FOUNDER KIM, BEOM-SOO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과 카카오를 성공으로 이끈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그는 타고난 성공 DNA를 지녔을까. 그만의 성공 비결은 뭘까. 포브스코리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의 기업가정신에 주목했다.



김범수(48)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한국의 50대 부자 32위에 올랐다. 첫 진입이다. 김 의장의 순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카카오가 내년 상장 계획을 발표한 뒤로 투자자들의 기대가 한껏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회사 지분을 5.6% 보유한 게임업체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주가상승 원인을 카카오 상장에서 찾기도 한다.

올해 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카카오의 기업가치가 24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카카오가 상장된다면 2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카카오 측은 “2015년 상장을 계획하고 있지만 정확한 시기와 세부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카카오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4월 17일 거래가는 12만2000원이었다. 이 가격대로라면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주당 5만원대로 장외시장에 나온 카카오 주식은 10월 종업원들이 우리사주 25만 주를 삼성증권을 통해 매각할 때 7만9560원으로 올랐다.

올 초 말레이시아 재벌로 알려진 버자야그룹이 지분 0.4%를 110억원에 사들이면서 9만원대로 거래되다가 3월 25일 주당 12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이 가격이라면 기업가치는 3조5000억원으로 상승한다. 장외주식 정보제공업체 프리스닥의 정인식 대표는 “며칠 전에도 1만 주 이상 사겠다는 개인 투자자가 있었다”며 “비상장주인만큼 아주 활발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거래되는 종목”이라고 말했다.

외신 보도와 장외거래 내역을 종합해보면 카카오의 기업가치를 2조1000억~3조5000억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성종화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카카오의 가치를 2조~3조원으로 본다”며 “빠르게 성장하는 카카오의 기업가치를 추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성 연구원은 “단기간에 가치가 높아졌다고 해서 섣불리 고평가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김 의장은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의 지분 29.9%를 보유하고 있다. 또 김 의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케이큐브홀딩스가 카카오 지분을 23.7% 보유한다. 김 의장이 카카오의 지분 53.6%를 가진 셈이다. 단순 계산으로 김 의장의 지분가치를 1조1000억~1조9000억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포브스코리아와 포브스아시아는 카카오의 가치를 산정하는데 같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의 가치를 고려했다. 또 회사의 재무상태, 예상 상장 시기까지 남은 기간, 매출의 주요 수익원, 해외시장 진출 전망 등을 감안해 김 의장의 재산을 9974억원으로 산정했다. 카카오가 설립 4년 만에 수조원대 회사로 성장한 배경에는 창업자 김 의장이 있었다.

포브스코리아는 이번 결과를 김 의장에게 이메일로 알리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여느 1세대 벤처기업가들처럼 그 역시 언론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생·예비창업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는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2012년 포브스코리아 12월호 커버스토리로 김 의장을 다뤘을 때도 만남을 고사하던 그를 “청년들에게 선배로서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달라”고 설득해 인터뷰가 성사됐다. 김 의장의 생각을 최대한 그대로 담기 위해 그가 한 강연들의 내용을 토대로 김범수 식 성공 비결을 전한다.

김 의장의 화두는 언제나 ‘소통’이었다. 그는 코딩과 PC통신을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때 PC통신 전자게시판(BBS)을 접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세상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느꼈다고 한다. PC통신을 주제로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이 PC통신 유니텔 사업을 할 때다.

김 의장은 유니텔 개발과 기획 업무를 맡았다. 그는 “훌륭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고민하다 당장 눈앞의 일보다 ‘6개월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로 시점을 바꿔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눈 여겨본 것은 C++(프로그래밍 언어)였고 6개월 후 그는 다른 직원들 앞에 C++를 가르치는 강사로 섰다.

이후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안정된 삶을 살던 그는 ‘인터넷에서 게임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1998년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을 창업한다. PC방을 운영하며 자금을 벌고 게임 개발에 집중해 1999년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게임은 고스톱·바둑 같은 친숙한 게임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가입자 수를 늘려갔다. 다시 그의 인생이 전기를 맞은 것은 2000년 7월 서울대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창업한 네이버컴과 합병하면서다. 둘은 공대 동기이자 삼성SDS 입사 동기다.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한게임과 수익모델이 아쉬웠던 네이버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두 의장은 검색과 게임을 주축으로 NHN을 부동의 포털 1위에 올려놨다. 당시 둘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사장(김범수)은 말수가 적어 항상 내가 말을 해야 한다, 이 사장(이해진)은 성격이 너무 꼼꼼해 불편하다”고 웃으며 서로를 평가(?)하기도 했다.



네이버와 한게임의 절묘한 만남김 의장은 한 강연에서 “30대 후반에 정상에 서고 나니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하면 행복해질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인생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2007년 돌연 NHN USA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유다. 그는 직원들에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회사를 떠났다. 김 의장은 “20·30대를 일에 다 바치고 허탈함을 느꼈다”며 “문제 인식의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마흔 살 되던 해, 김 의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중·고등학생인 아들, 딸을 휴학시키고 함께 여행을 다녔다. “’너 오늘 뭐했니?’가 아니라 ‘너 오늘 기분어땠니’”라고 소통했습니다.” 하지만 ‘안식년’은 1년을 채우지 못했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김 의장은 새로운 세계에 눈떴다.

그가 귀국할 무렵인 2009년 한국에도 아이폰이 출시됐다. 김 의장은 10년 전 한게임을 창업할 때처럼 다시 도전했다. 김 의장은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꾸려 직원들에게 스마트폰 앱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는 “당시 10만 개 앱이 있었다. 수많은 앱 가운데 무엇을 만들까, 왜 만들어야 하나 스스로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소통을 떠올렸다. PC통신이 그랬듯 전화기를 사용하는 본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김 의장은 그룹 대화를 위한 ‘카카오 아지트’,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위한 ‘카카오수다’, 1대 1대화를 위한 ‘카카오톡’을 개발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가장 반응이 좋은 하나를 고른 것이 카카오톡이다.

2010년 3월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그리고 김 의장은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또 한 번 성공을 이뤘다.

“카카오는 원래 웹 서비스를 고민하며 만든 회사입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입니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차별화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주의할 것은 많은 창업자가 스스로 생각한 차별화에 골몰하는데 문제 인식과 해결은 고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용자들이 다르다고 할 만한 것을 만들라는 얘기지요.”

김 의장은 또 다른 강연에서 “카카오 창업 당시 생태계 경제에서 ‘무엇을 어떻게 팔까’가 아닌 ‘누구를 참여시키고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생태계 경제란 규모를 키우면 영향력이 생기는 규모의 경제와 다르게 정해진 규칙만 지키면 누구나 비즈니스에 참여할 수 있는 구글·애플 등장 이후의 경제를 말한다. 그는 “카카오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게임, 이모티콘, 음악 같은 다양한 콘텐트와 사용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서비스가 결국 카카오 성공의 핵심이다.

또 그는 팀(team)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성공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팀의 역량에서 나옵니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중요합니다. 호칭만 바꿔도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회사에서 ‘브라이언(Brian)’으로 통합니다.”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경쟁력있는 팀 둘 중 하나라도 확보해야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끊임없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은 인연으로 함께 직장인을 위한 힐링사업을 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2012년 ‘꿈으로 끝내지 않고, 꿈을 끝내지 않고’ 강연에서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힘든 대학 시절을 보냈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서도 돈이 없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도하게 생각하면 소심해지는 것 같다”며 “다른 사람 눈의 노예가 되지 말고 결정할 때 망설이지 않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2013년 11월 서강대 학생생활상담연구소 강단에 선 김 의장은 학생들에게 “힘들 때 자기비판을 하기 쉽다”며 “그러지 말고 어깨에 손을 한번 올려보라”고 했다. “이제 톡톡 쳐보세요. 괜찮아, 잘했어.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위로해 보세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다른 회사는 매출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 고민하지만 카카오는 추구하는 바가 뭔지 고민한다”며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비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비전을 정하고 그 방향대로 살다 보면 성공은 따라온다고 했다. 그는 이어 “행복의 비결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성공의 비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며 “나는 인생에서 진짜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강연 말미에 단편 애니메이션 ‘키위새의 꿈’이 방영됐다. 날개가 없지만 날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키위새 이야기다. 키위새는 절벽에 나무를 직각으로 고정하고 숨을 들이마신 뒤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키위새에게는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나는 것이다. 비로소 날게 된 키위새는 눈물을 흘리며 점점 땅과 가까워졌다. 영상이 끝나고 김 의장은 “꿈을 포기하지 마라. 열정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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