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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N AFFAIRS - 현대판 쇄국정책

RUSSIAN AFFAIRS - 현대판 쇄국정책

푸틴은 크림공화국 합병 후 이전과 다른 지도자가 됐다. 경제 복지는 무시하고 오로지 이념만 중시하는 지도자다.



흔히 듣던 이야기다. 옛 소련의 위대함을 그리워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향수.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려는 그의 야심. 반대파 탄압. 러시아가 세계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반항과 고집. 집권 14년 동안 푸틴은 늘 그랬지 않았는가?

그러나 크림공화국이 러시아에 합병된 후 몇 주만에 푸틴은 전례 없는 일을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크렘린은 공공연하게 러시아를 세계와 단절시키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푸틴은 서방의 체제와 가치를 거부하고 내부의 적과 반역자들을 사악한 세력으로 몰아가는 새로운 국가 이념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스스로 고립된 상태로 하강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며 그 강도도 강하다. 지난 3개월 동안 크렘린과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의 충성파가 한 일을 보라. 보안을 이유로 출국이 금지된 러시아 공무원의 수가 거의 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누구든 국가 공인 역사를 비판하면 형사 처벌을 가하는 법을 도입했다.

이중국적자는 의무적으로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법을 제정했다. 외국의 재정지원을 받는 모든 비정부기구(NGO)에 ‘외국 대리기관’으로 낙인 찍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게다가 반정부 시위 도모를 형사 범죄로 규정하는 가혹한 ‘반극단주의’ 법을 블로거에게도 적용시키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페이스북, 스카이프, 유튜브, 트위터에 접근을 제한하는 정책을 검토하는 한편 러시아 전용 인터넷 구축을 제안했다. 얼마 남지 않은 독립적인 웹사이트들과 인터넷 기반 TV 방송국도 폐쇄됐다. grani.ru라는 한 웹사이트가 그런 조치에 반발하자 러시아의 한 법정은 “당국이 웹사이트 운영자에게 차단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또 팔로워 3000명이 넘는 블로거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S)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야 한다.

동시에 푸틴은 비자·마스터카드와 경쟁하기 위해 자체적인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중앙은행에 지시했다. 정부에 고용된 프로그래머들은 ‘스푸트닉(Sputnik)’이라는 러시아 전용 인터넷 검색엔진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러시아 정부는 미국에 기반을 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러시아 기지국 설치를 금하면서 러시아에서 개발된 경쟁 시스템 ‘글로나스(GLONASS)’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러시아성(Russianness)이 외부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푸틴이 채택한 새로운 철학의 근거가 됐다고 뉴욕대 마크 갤리오티 교수가 말했다. “푸틴의 메시지는 ‘세계의 흐름과 달리 우리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다. …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틴의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이념은 사실 수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크림반도 합병 이후엔 그 이념이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얼마 전 러시아 문화장관은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다”라고 공식 선언했다. 또 푸틴은 서방식 관용(tolerance)과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목청 높여 비난하며 서방의 “소위 ‘관용’이란 것은 생식력도 없고 성도 없다(infertile and sexless)”고 말했다.

지난 5월 중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오스트리아의 여장 남자 콘치타 부르스트가 우승하자 러시아의 동성애 혐오 의원들이 격분했다. 최근 친동성애 ‘홍보’를 금하는 법을 만든 비탈리 밀로노프 의원은 러시아가 그런 ‘남색 쇼’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림공화국 세바스토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행사를 참관하고 있다(5월 9일).
러시아 국민의 삶과 사상을 통제하려는 크렘린의 노력에서 핵심을 이루는 전략은 “동성애자, 이민자, 다문화주의, 서방, 파시즘 같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미국 피츠버그대 러시아·동유럽 문제 연구소의 숀 길로리 교수가 지적했다. “그 ‘다름’을 배제하고 악마화함으로써 가상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사회를 단합시킨다. …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다른 편’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포위된 요새해외 여행에 대한 크렘린의 입장이 새로운 편집증적인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지난 4월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공화국 합병을 빌미로 러시아인들을 편파적으로 대한다며 미국의 그런 터무니없는 조치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든 러시아 국민에게 “해외 여행, 특히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나라들의 방문을 삼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려고 송환시킨 러시아인의 사례로 불법 무기상 빅토르 보우트와 마약 밀수를 기도한 콘스탄틴 야로셴코를 들면서 “미국식 사법체제는 러시아 국민을 차별한다”고 경고했다. 영화 ‘로드 오브 워’의 모델이 된 보우트는 2008년 태국 방콕에서 체포됐다. 야로셴코는 2010년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서 체포됐다(체포 당시 그는 코카인 4t을 운송하고 있었다).

러시아 외무부는 해외에서 러시아인들이 “주로 의심스러운 혐의를 근거로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사실상 납치돼 미국으로 보내질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경고했다. 그런 국가 목록에는 러시아인들의 인기 휴가지인 터키와 이집트를 포함해 세계 대다수 나라가 포함돼 있다. 예외는 바티칸, 안도라, 발칸 반도와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중국, 인도네시아, 북한 등이다.

최근 제정된 법은 러시아 내무부에 소속된 모든 직원의 출국을 일괄적으로 금한다. 국가 기밀의 누설을 방지한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다. 또 지난 5월부터 러시아 검찰총장실의 모든 직원은 여권을 반납하고 해외 휴가를 가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일부 승인된 국가에 한해서만 여행이 허용된다.

러시아 국가두마의 야당 의원 출신인 블라디미르 리즈코프는 “군인, 경찰, 정보요원들이 직접 자신의 눈으로 외부 세계를 볼 수 없다면 ‘포위된 요새’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하기가 훨씬 쉽다”고 말했다. 러시아 의원들은 현재 병역 기피자들을 대상으로 여행 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병역 기피자는 매년 징집 대상인 18세의 약 92%를 차지한다.

채무자의 출국도 금지된다. 올해 1분기에만 주차위반 벌금부터 위자료까지 다양한 채무를 가진 사람이 19만 명에 이르렀다. 이제 그 법은 정권 반대자들에게로 확대될 수 있다. 시위에 참가하거나 국가나 정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론인 보리스 스토마킨은 “신을 모욕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고 알렉산드르 2세 황제를 암살한 테러리스트의 행동(1881년의 일이다!)을 정당화한 죄”로 최고 8년 징역형을 선고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중국적자의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국수주의자인 안드레이 루고보이 의원은 이중국적을 가진 러시아인을 “국익 배반자”로 간주하며 그런 관행이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적들은 늘 우리의 취약점을 노린다”고 루고보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그는 정부 비판자들이 서방 정보기관들의 지원과 사주로 “러시아인의 정상적인 삶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루고보이는 런던에서 러시아 첩보원 출신 망명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를 독살한 혐의로 영국에서 수배 중이다.

해외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모든 NGO를 ‘외국의 대리기관’으로 낙인 찍는 새로운 법에도 똑같은 편집증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스탈린의 굴라그(강제노동수용소)부터 오늘날 러시아 경찰의 인종차별까지 인권침해를 기록하는 단체 ‘메모리얼’의 스베틀라나 가누슈키나는 “NGO 직원들은 무조건 불충하다는 의심을 받는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행사에서 기병들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심각한 두뇌 유출대다수 러시아인은 세계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가 2012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80%는 해외 여행 경험이 전무하며, 외국어 대화가 가능한 러시아인도 5%에 불과했다. 그러나 억압적인 조치의 가장 해로운 결과는 똑똑하고 세계화된 러시아인의 두뇌 유출이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리즈코프는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2기와 3기 집권 사이에 잠시 대통령직을 맡았을 때 그런 인재들의 귀국을 촉구했다.

“지난 20년 동안 약 500만 명이 러시아를 떠났는데 그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2만 명”이라고 리즈코프는 말했다. “러시아인이 누리는 미미한 자유에 가해지는 제한과 억압이 심해지면 크렘린은 지금 남아 있는 인재들을 러시아에 붙잡아 두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파벨 두로프가 가장 최근 러시아를 등진 사람 중 한 명이다. 러시아의 인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브콘탁테’(VKontakte)를 만든 두로프는 수 개월 동안 당국의 압력에 시달리다가 지난 5월 결국 러시아를 떠났다. 당국은 그에게 브콘탁테를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의 시위를 지지한 단체의 조직원들에 관한 개인 정보를 넘기고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블로그를 폐쇄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그는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그 테크크런치닷컴(Techcrunch.com)에 “나는 러시아를 떠났고 돌아갈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당국에 협력하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푸틴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5월 9일).
사실 두로프가 러시아를 떠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러시아인은 별로 없을 듯하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크림공화국 합병에 동반된 공격적인 러시아 국수주의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부상하는 중산층 대다수가 그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3년 전만해도 교육 받고 인터넷을 잘 아는 러시아인 10만 명이 모스크바 거리에서 국가두마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소련 붕괴 후 크렘린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최신 여론조사들은 러시아의 엘리트 대다수가 푸틴의 새로운 국수주의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 학술원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중산층의 79%는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 78%는 “변화보다 안정이 중요하다”, 49%는 “러시아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중산층’으로 간주되는 러시아 인구의 40% 중 13%만이 기업가였고, 절반 이상은 공무원이었다.

지금 푸틴은 러시아의 도시에 사는 기술관료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소수 인구의 비위 맞추기를 포기하고 대신 러시아의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전념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세계화와 이민의 경제적 영향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푸틴의 보호주의적이고 보수적이며 기술혐오적인 메시지가 그토록 잘 먹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크림공화국 합병 이전의 푸틴은 본질적으로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안정과 번영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이따금씩 일어난 시위와 신흥거부들을 단속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푸틴은 주저하지 않고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 그러나 크림반도 합병 후 푸틴은 이전과 상당히 다른 지도자가 됐다. 이제 그는 러시아의 경제적 복지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이 믿는 이념을 밀고 나갈 생각이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이 세계 전체의 2%도 안 된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는다. 푸틴은 비자카드도, 국제 자금시장도, 해외 휴가도, G8이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회원권도 러시아엔 필요 없다고 믿는다. 또 타락한 서방의 가치가 판치는 인터넷의 영향으로부터 러시아 국민을 차단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푸틴은 독자적인 러시아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이 고립과 자본 도피와 우수한 두뇌의 유출로 이어진다고 해도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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