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SPA 브랜드, 홈쇼핑과 고군분투 … 점유율·매출·주가 모두 떨어져 비비안과 비너스는 대형마트에 입점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 2011년 롯데백화점 잠실점 스타킹 판매코너에 경찰이 출동했다. 매장 위치와 크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비비안과 비너스 직원이 육탄전을 벌여서다. 두 회사 직원들을 모두 연행한 경찰은 이들을 형사 입건 했다.
#2. 2014년 4월 부산지역 롯데백화점 4개 지점은 비너스와 비비안 공동 판매 행사를 벌였다. 그간 비너스는 2월, 비비안은 8월에 판촉행사를 벌여왔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 처음 서울에서 공동전을 열었고, 부산에선 이번이 처음 여는 공동행사라 고객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비비안 vs 비너스. 한국 속옷업계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1954년 같은 해 등장한 남영비너스와 신영와코루는 각각 대표 브랜드 비너스와 비비안을 앞세워 60년 간 속옷시장 1등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비너스는 형상기업 합금을 적용한 ‘메모리브라’, 비비안은 가슴이 커보이는 ‘볼륨업브라’ 같은 제품을 앞다퉈 내놓으며 시장을 양분했다.
김남주·송혜교·김태희·김아중·윤은혜·신민아·신세경을 앞세운 비너스와 김규리·고소영·장진영·한예슬·이하늬를 앞세운 비비안의 스타 마케팅도 업계의 화제였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도 이들은 신경전을 벌였다. 비비안은 “우리가 먼저 소셜네트워크(SNS)를 활용한 마케팅을 시작했다”며 “비너스는 우리 SNS 마케팅 방식을 모방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비너스는 “우리가 먼저 기획했다”며 “비비안이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오랫동안 팽팽히 맞서온 두 기업 사이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등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비비안과 비너스가 함께 판촉행사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간 치열하게 경쟁하며 시장을 지배해온 이들의 변화를 이끈 요인은 새로운 유통강자인 홈쇼핑과 패션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글로벌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다.
글로벌 SPA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유니클로·자라·H&M에서 속옷을 구매하는 젊은층이 빠르게 증가했다. 게스·리바이스 등 캐주얼 브랜드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해외 브랜드를 앞세운 홈쇼핑의 파상 공세에 떠밀려 양사 모두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백화점에서 사상 최초 공동 판촉행사남영비비안은 지난해 2627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전년 대비 2.4% 줄어든 수치다. 영업 손실은 같은 기간 14억원에서 60억원으로 불어나며 경영 실적이 악화됐다. 신영와코루도 지난해 전년보다 3.5% 줄어든 198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98억원으로 32.7% 줄었다. 비너스와 비비안은 회사를 세운 뒤 지금까지 거의 적자를 내지 않았던 기업이다. 하지만 요즘 두 회사 경영진 분위기가 심각하다. 시장에서의 지위가 시간이 갈수록 흔들리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SPA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홈쇼핑이 새로운 유통채널로 떠오르며 속옷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시장 현황을 설명했다. 그는 “기존 속옷업체들이 젊은층 취향에 맞춘 디자인과 제품 개발에 나서며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으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실적은 주가에도 반영됐다. 6월 19일 기준 신영와코루는 10만200원(액면가 5000원), 남영비비안은 7200원(액면가 1000원)의 주가를 기록했다. 신영와코루의 주가는 5월 7일 11만7000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하향세다. 4월 17일 6720원 이던 남영비비안의 주가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00억원대 부동산 처분을 발표한 다음날 7500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이후 특별한 변화 없이 7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두 회사에 대한 증권업계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최근 패션업계에 부는 소비 양극화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저가도 고가도 아닌 중간 가격대에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 제품을 내놓고 치고 들어 오는 SPA 브랜드를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함승희 KDB대우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의류시장은 이미 SPA 브랜드가 독주하는 시장이 됐다”며 “속옷 분야도 SPA 브랜드가 승승장구하고 있어 기존 브랜드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도”라고 말했다.
코너에 몰린 비비안과 비너스는 반전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비비안은 브랜드 로고를 바꿨다. 17년 만의 변화다. 20~30대 여성에게 세련된 느낌을 주기 위해 새로운 로고를 디자인했다. 백화점 중심의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홈쇼핑과 대형마트로 유통채널을 확대했다. 고가부터 중저가의 다양한 브랜드를 출시했고, 단가도 낮췄다. 비너스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젊은 감각의 팝업스토어를 열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동시에 고급 브랜드를 출시하며 제품 다각화에 나섰다. 패션 브랜드의 속옷 시장에 맞서 새로운 패션속옷 제품도 출시했다. 20대~30대 고객을 흡수하기 위해 란제리보다 저렴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신상품도 시장에 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비안과 비너스는 어머니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20~30대 여성에게 젊고 세련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심어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브랜드’ 이미지 벗어야 산다홈쇼핑 판매도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10년 전 비너스 경영진은 새로운 유통망으로 떠오른 홈쇼핑 판매를 놓고 고심했다. 회의 끝에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의평 신영와코루 사장은 “싼 가격에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는다면 고객이 만족하겠느냐”며 “좋은 제품을 공급하며 비너스 브랜드를 지키는 것이 고객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비비안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더욱 정교한 제품을 만들고, 기존 유통망을 새로 정비하는 것이 비비안 경영진의 결론이었다. 비비안은 홈쇼핑에공격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장기적인 유통 전략을 세워 유통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외곽 상권과 중복 상권의 점포 개설을 줄이고 동일 상권 안에서 경쟁력 있는 지점으로 통합해나갔다.
1997년 2000개에 달라던 매장 수를 5년 만에 백화점 100개, 전문점 200개로 정예화했다. 하지만 홈쇼핑을 활용한 신규 업체들이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의 속옷 유통이 늘었다. 뒤늦게 홈쇼핑에 진출했지만 이미 다른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한 뒤라 회복이 어려웠다. 시장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한 두 기업은 변화를 강요 받고 있다.
비비안과 비너스는 여전히 한국 시장 점유율 1, 2위를 놓고 경쟁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생겼다. 기업의 생존이다. 유통 방식의 변화, SPA 브랜드와의 경쟁,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여야하는 등 새로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나란히 환갑을 맞은 전통 속옷 기업의 변신에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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