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재 시장 소용돌이 - ‘칭다오 변고’ 中의 진짜 속셈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 소용돌이 - ‘칭다오 변고’ 中의 진짜 속셈은
국내 언론에는 별로 소개 되지 않았지만 6월 들어 글로벌 원자재 상품시장을 들쑤셔 놓은 뉴스가 하나 있다. ‘칭다오 변고(變故)’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중국 당국이 칭다오항만 운영업체인 칭다오항국제유한공사(이하 칭다오항)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사실 항만운영사인 칭다오항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당국 조사는 금속 원자재 중개상인 ‘더청마이닝’에 맞춰져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더청마이닝은 칭다오 보세창고에 보관된 구리와 알루미늄·알루마이트 등을 담보로 국내외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문제는 해당 담보물건으로 은행 한곳에서만 대출을 받은 게 아니라, 여러 군데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끌어다 썼다는 데 있다. 일종의 유령 담보를 이용한 대출 사기다. 칭다오항은 수사협조를 위해 보관 중인 실물 금속자재의 현황을 당국에 제공하고 있다.
담보물 가치보다 훨씬 많은 돈 빌려그간 중국의 철강 및 비철금속 업체, 그리고 금속 중간상들은 해외에서 수입한 금속 원자재를 담보로 대출을 끌어다 썼다. 일종의 무역금융으로 이 자체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 중화권 금융계에서는 흔히 ‘메탈 파이낸싱’이라고 불린다. 금속 원자재에만 국한되지 않고 천연고무나 대두 등 좀 더 포괄적인 상품을 담보로 활용하는 만큼 이를 통칭해서 상품담보자금조달(CCFD:Chinese commodity financing deals)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런 거래가 순수하게 실수요에 기반한 것만은 아니다. 창고보관증(워런트)을 위조하거나, 보관증을 업자들끼리 서로 빌려주면서 은행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쓰는 불법이 만연했다. 창고에 보관된 담보물 가치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다 쓴 것이다. 이는 중국 내 그림자금융의 한 축을 차지해 왔다. 사기대출을 받은 이들 업체들이 부도를 내야만 실제 손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다.
일례로 2012년 10월, 상하이의 한 철광석 중개업자가 문을 닫자 담보 확보를 위해 보세창고로 몰려든 채권자(은행들)는 10여곳이 넘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 은행은 모두 동일한 담보를 잡고서 자금을 빌려줬다. 그런데 더 기가 찰 노릇은 창고보관증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돼 있던 철광석이 실제로 가봤더니 온데 간데 없더라는 거다. 창고보관증을 위조해 유령 담보를 만들어 사기대출을 받은 것이다.
중국에서 이런 식의 불법 무역금융과 사기대출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상당수 기업들이 오랜 세월 이런 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 기업들은 왜 이런 거래를 일삼아 온 걸까. 돈놀이를 위해서다. 위안화가 지속적으로 강세 흐름을 보이고 중국 금융권에서 판매하던 금융상품이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던 시절, 기업들은 이런 거래를 통해 해외은행들에서 달러를 단기로 빌려와 본토의 고수익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리고 만기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유사한 방식으로 자금을 계속해서 차환했다. 기업들 입장에선 가만히 있어도 위안화 강세로 달러 대출 원금이 줄고, 높은 투자수익도 올릴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고’였다. 업황이 나빠져 유동성이 바닥났을 때는 회사 긴급 운영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이런 담보사기는 금융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며 상품거래 시장 전반의 신용을 파괴하는 중대한 금융범죄”라면서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칭다오 관련 뉴스가 전해지면서 본토 및 외국계 은행들은 중국 기업들에게 빌려줬던 상품담보 대출이 안전한지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스탠다드차타드와 씨티 등 외국계 은행은 중국 기업에 대한 CCFD 거래를 잠정 중단하고 기존 대출도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금융회사 모두가 내 담보는 무사한지 노심초사하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상품선물 시장 내 구리와 철광석 등의 가격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향후 중국 기업의 원자재 담보대출이 줄어들게 되면 담보용 원자재 수입도 급감할 게 자명해서다. 동시에 담보로 쓰이던 구리와 철광석 등이 현물시장에 출회할 것이라는 우려도 더해지고 있다. 당국 수사가 칭다오항에 그치지 않고 다른 항만으로까지 옮겨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시장 분위기는 더 가라앉고 있다.
한편으로 CCFD 방식의 달러 자금 조달 길이 막힌 기업들로선 달러빚 갚기가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은 디폴트가 불가피할 것이며 금융권 손실도 현실화할 것이다. 소수의 디폴트를 시작으로 연쇄반응이 나타나면 충격파는 조금 더 오래 갈 지 모른다.
사실 이번 사안은 워낙 뿌리가 깊어 당국도 인지하고 있던 건이다. 더구나 경기 둔화세가 완연한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류의 경제사범 수사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한층 위축시킬 뿐이다. 이 같은 위험 부담을 알면서도 중국 당국이 전면 수사에 착수한 이유는 뭘까.
표면적 이유는 금융질서 세우기다. 당국이 지향하는 다층적인 자본시장 발전과 올바른 금융질서 확립, 그리고 그림자금융의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병폐를 계속 내버려 뒀다가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잠재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른 가설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한 당국의 의도적 손보기였다는 것이다. 올 2월 중순부터 인민은행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해 위안화의 급격한 약세를 유도해 왔다. 그러나 위안화가 약해지는 만큼 본토 기업들의 위안화 환산 원자재 수입 비용도 상승한다.
통화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절하되면 생산원가 부담이 지나치게 올라가 오히려 채산성이 떨어지는 법이다. 당국으로선 위안화 약세가 불러오는 역기능을 최소화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자재 수입 가격 끌어내리기가 이번 수사의 진짜 배경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소문의 진위를 가리기는 힘들다. 그냥 다목적 포석이라 해두자.
표면적 이유는 금융질서 확립?올 들어 중국 경제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 실종되고 주택 신규 착공이 급감하면서 그간 성장을 이끌어왔던 고정자산 투자 증가세는 확연히 꺾이고 있다. 그 여파로 건설 및 건자재산업 전반이 동반부진을 겪고 있다.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니 새 집에 들어갈 가전과 가구의 판매도 부진하다. 내수가 좀처럼 빠른 회복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러하자 인민은행도 어쩔 수 없이 일부 은행의 지준율을 낮추고 있으며 국무원은 재정집행 속도를 높이려 애쓰는 중이다.
중국은 5월에 시진핑이 언급했듯 ‘뉴 노멀(New Normal)’ 국면에 진입했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더 이상 두 자릿수 성장을 보이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은 성장률의 현상 유지 속 개혁과 구조조정에 필요한 체력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경기 하강 위험이 커지면 서둘러 경기방어책을 꺼내 놔야 하고,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으면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집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얼핏 보면 오른쪽 깜빡이를 켠 것인지, 왼쪽 깜빡이를 켠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러모로 고난위도 기술 구사가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이야긴데, 그만큼 중국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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