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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경쟁하고 때론 협력해 시장 키운다

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경쟁하고 때론 협력해 시장 키운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200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 .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4년 겨울, 프랑스 외곽 지역에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영국·독일군이 참호 속에서 대치 중이다. 한 차례 무서운 총격전이 오가고 나면 유령처럼 내려앉는 숨막히는 정적. 참호 전은 병사들의 피를 말린다. 그런데 이때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병사들이 스스로 전쟁을 멈추고, 세계 전쟁 역사상 전무후무한 화해와 평화의 시간을 갖는다.

사건의 발단은 노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영국군들이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산의 속삭임 강물의 노래 소리, 언제나 듣던 그 노래가 그립네. 나는 여기 외로이 홀로 서서 영원한 고향을 꿈꾸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한 가사가 이어진다. 졸병 신세는 졸병이 안다고 노래를 듣고 감정이 북받친 반대편 독일군 참호에서도 누군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을 소개한 영국 ‘데일리 미러’의 1면 기사.
어느새 크리스마스 이브의 눈 덮인 전장(戰場) 위에 성탄 캐럴이 울려 퍼지고 무언가에 취한 듯 세 나라의 병사들이 하나 둘씩 참호 너머로 몸을 내민다. 의심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탐색하는 표정들이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생각이 없음을 확신하며 서서히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총구 겨누던 적과 평화의 크리스마스 이브를집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초콜릿과 샴페인을 교환하기도 하며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가 된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며 영국군 군종신부 한 명이 예배를 주관하고 모두 함께 눈 쌓인 벌판에서 성탄을 축하한다.

징집된 독일군 남편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찾아 온 독일 소프라노 가수 안나(다이앤 크루거)가 청아한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열창하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이제 병사들의 눈빛에 적의는 없다. 더 이상 싸울 이유도 명문도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종 자발적 협력이 도출되기도 한다. 미국 예일대 네일버프 교수와 하버드대 브란덴버거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코피티션(Coopetition)’이라고 불렀다.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을 합쳐 만든 신조어이다.

만일 게임을 한번만 하는 경우라면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것이 당연히 옳다. 게임의 결과는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똑같은 게임이 여러번 반복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발씩 양보해 가며 오래도록 이득을 나눠 갖는 게 유리할 수 있다. 단골이 되면 가끔 외상도 주고 깎아도 주는 것처럼 협력의 여지가 생긴다는 말이다.

흔히 기업 간 경쟁은 승자와 패자로 뚜렷이 구분되는 제로섬 게임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코피티션은 반드시 패자가 있어야한다는 도식적인 논리를 부정하고 참가자들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아무리 단순해 보이는 비즈니스일지라도 그 속에는 밸류체인에 속한 공급업자, 하청업자, 보완제품 생산자, 경쟁자, 고객사 등 복수의 관계가 중첩돼 있다. 이들과의 관계를 득실의 프레임으로 획일화하기보다는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다.

거기에 협력의 묘미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암묵적 혹은 명시적 규칙이 있어야 한다. 한번 쌓인 신의를 저버리면 관계는 그 날로 끝이다. 단골이라고 여겨 특별히 신경 써 줬더니만 다른 데 가서 다른 소리한다든지, 혹은 꾸준히 팔아주면 언젠가는 득을 보겠거니 했는데 해가 지나도 단골 보기를 소 닭 보듯 하면 협력은 물 건너 간 거다.

한국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저가 출혈경쟁을 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약삭빠른 외국 발주처들은 은근히 한국 업체간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공멸이다. 경쟁할 부분은 응당 경쟁하되 힘을 합칠 부분은 협력하는 지혜가 아쉽다.

예를 들어 PF(프로젝트 파이낸싱)나 기본설계 등 한국이 취약한 부분에서는 같이 힘을 모으고, 그 밑단(다운 스트림)의 시공에서는 경쟁하는 형태를 고려해 봄직하다. 한국이 자랑하는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해외의 특허 공세와 한국 따돌리기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리가 취약한 원천기술은 출연연 등을 축으로 협력해 공동개발하고, 디자인·제조·마케팅·서비스 등에서 진검승부를 펼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회사 내에서도 그렇다. 매년 인사 시즌이 되면 물망에 올랐던 라이벌들이 서로 견제하고 헐뜯다가 같이 미끄러지고 레이다에 잡히지 않던 엉뚱한 사람이 어부지리를 얻기도 한다. 회사가 친목회나 종교단체가 아닌 이상, 서로를 환한 미소와 열린 마음으로만 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겨루기를 하고 기 싸움을 해도 서로를 상하게 하지는 않는 긍정적 라이벌 의식이 있어야 같이 클 수 있다.

선순환의 또 다른 얼굴은 악순환,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잘한 선순환 협력고리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이러한 고리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더 큰 선순환을 확대재생산해 낼 수 있어야 회사가 발전한다(많은 회사에서 칭찬하기, 감사하기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이벤트성에 그칠지 나름의 선순환 고리를 촉발시킬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선순환과 악순환은 종이 한 장 차이자, 다시 영화 이야기. 이미 짐작하겠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전쟁터에 꽃 핀 아름답지만 아슬아슬한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병사들은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에 이 놀라운 ‘크리스마스 휴전(The Christmas Truce)’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당시는 살벌한 전시 상황, 적과의 우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건 곧 국가에 대한 반역을 뜻한다. 편지를 검열하던 각국 사령부는 기겁을 하며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병사들은 소환되거나 처벌되고, 아니면 뿔뿔이 흩어져 또 다른 전쟁터에 내던져진다.

당시 기록을 보면 크리스마스 휴전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서부전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짧게는 2~3일에서 1주일, 혹은 이듬해까지 휴전이 이어진 곳도 있었다. 이런 사실은 암암리에 알려져 당시 영국의 ‘더 데일리 미러’의 1면 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들 3개국의 군사기록 보관실에는 병사들이 축구를 하거나 어깨동무를 한 사진, 가족들에게 보낸 서신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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