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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내 오랜 여친의 국제결혼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내 오랜 여친의 국제결혼



“지금 저 독일에 있어요. 이번엔 좀 오래 있을 듯. 빈센트와 결혼하려고요. 축하해 줘요. 한국 떠나기 전 전화도 못 했네….” 오랜 만에 사랑하는 여친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뮌헨이란다. 결혼을 한단다. 이 뭔? ‘사랑하는’도 사실이고 ‘여친’인 것도 틀림없는데, 사랑하는 내 여친의 결혼을 축하해줘야 할 사정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겠다.

영이는 작가다. 몇 권의 소설집을 냈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다. 영이는 또한 학자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부를, 미국과 스웨덴에서 역사전공으로 학위를 했다. 공부하는 학자는 맞는데 교수가 되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만 전전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특이사항이 있으니 외모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점이다. 젊은 날 한 번의 이혼 경력을 거쳐 오랜 독신생활이 몸에 뱄고 언행이 신중하다.

남자 친구는 많지만 성행동은 대단히 규범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가 누구와 잤다는 소문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게 말해줬을 것이다. 뭘 감추지 않는 성격이니까. 술자리 후에 육탄돌격을 감행한 모 신문사 국장이며, 집요했던 어느 선배의 공략을 소상히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 ‘왜 하지 않느냐’는 내 핀잔에 대고 ‘꼭 해야 하느냐’는 항의로 옥신각신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한 여성의 사연이다. 내가 여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까닭은 단 둘이 만나서 밤 깊도록 대화를 나누고 “나 피곤해. 잠깐 잘게요”하면서 스스럼없이 소파에서 깜빡 잠을 자기도 한다는 데 있다. 언젠가 “내가 덮치면 어쩌려고?” 했더니 “못할 거면서”하고 피식 웃는 반응이 돌아왔다. 좋아하지만 육정이 배제된 여친을 두고 ‘여자사람친구’라고 표현한다.

기회 되면 어떻게 해보고도 싶었던 예쁜 영이는 그러니까 내 여자사람친구다. 10여 년 된 관계에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서로 어색해지기 싫어서다.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면 내 쪽에서 벌써 무리를 했을 텐데 그걸 가로막는 위엄이 그녀에게 있다. 그녀와는 그저 말, 말, 말이 오가는 사이다.



나와는 그저 말, 말, 말이 오가는 사이느닷없이 날아온 영이의 결혼소식. 역시나 예상을 뛰어넘는 진전이다.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그, 독일 남자 빈센트와의 관계 진전은 항상 예상을 벗어났다. 한국 여자와 독일 남자가 사귀다 결혼할 수도 있는 것이지 ‘뭔 놀랄 일이지?’ 할 법도 하다. 탕웨이가 한국 감독과 결혼 발표도 하는 세상인데 그래, 국제 결혼 정도에 신기해할 사람은 없다. 다소 신기하고 특별한 사정은 다른 면에 있다.

그녀가 일본의 학술 모임 뒤풀이에서 빈센트를 처음 만났을 때 둘의 대화 주제는 ‘제국주의’였다고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아니라 독일 사회에도 여전히 제국주의의 잔영이 남아있다고 자국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순종 독일인 빈센트가 좀 별나 보였단다. 한·독 간의 제국주의 비판이 키스를 유발했다. 그때는 그저 친해졌다고만 들었다.

빈센트가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찾아오면 꼭 내 작업실을 들러 ‘쓰리섬’ 대형이 이루어졌는데 아쉽게도 포르노와 달리 셋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악듣기만 하는 쓰리섬이다. 빈센트 숙소는 혼자 사는 분당 영이의 집이다. 한번 짓궂게 물어본 적이 있다. “빈센트 잘 해? 힘 좋아?” 영이는 손사래를 친다. “에이, 설사병 나서 요즘 아무것도 못해 큭큭” 이런 정도다.

그럭저럭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5~6년이 흘러갔고 양쪽 집안 간에 인사도 나눈 사이가 됐다. 나는 여전히 영이의 남친이지만 오빠나 삼촌 비슷한 역할로 굳어져 갔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데 건축가 빈센트는 참 괜찮은 사내다. 그리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독일 교양인의 풍모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취직한 설계사무소를 나와서 친구들과 건축 쪽 벤처회사를 차린단다.

아직도 내 여친 결혼의 특별한 점을 꺼내지 못했다. 요즘은 TV 드라마에서도 흔히 다루는 테마라는데 현실로 맞닥뜨리니 어정쩡한 기분을 어쩌지 못하겠다. 영이와 빈센트 사이는 ‘잠시 그러다가 말겠거니’ 하는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추세가 영 그게 아니다. 대양을 가로질러 애절함과 간절함을 더해가더니 결국 남자의 프러포즈가 있었고 여자는 거사를 치르러 독일로 날아갔다. 이 뭔!

이 둘의 관계에 놀라지 않는다면 뻥이거나 겉멋이다. 나 역시 세련되게 ‘오케이! 그게 뭐 어때서?’ 하고 싶지만 솔직히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옛날 김지미와 나훈아가 결혼 발표를 했을 때 대중이 놀란 것은 나이차 때문이다. 실제로는 12년, 공식적으로는 여자 쪽이 7년 연상인 결혼은 드물고도 이상해 보였다. 7년씩이나 유지된 그들의 사실혼 관계가 대단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 이제 내 여친 결혼의 특이점을 말해야겠다. 연인으로 대단히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그들의 나이 차이가 정확히 20년이다. 사랑스러운 내 여친은 스무살이나 어린 외국 남자와 정식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일탈이나 모험심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온건하고 이지적인 남녀가 엄마 아들 사이만큼 벌어진 나이차를 넘어서 결혼을 한다. 놀라와 하는 내 반응이 촌스러운 것이리라. 영이는 곧 60살이 될 텐데 남편은 갓 마흔 살이다. 잘 되어야 할 텐데, 할 텐데….



결혼에 대한 상식부터 벗어나자베스트셀러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의 주인공 김영희 씨도 독일 남편보다 14년쯤 연상이었다. 아이를 여럿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결국은 이혼했다. 아빠 마음으로 영이의 결혼을 염려하는 건 상식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해서일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해로’ 관념에 붙들려서 그런 것 같다. 부부란 ‘검은 머리 파뿌리’까지, 그러니까 인생의 최종 순간까지 동행해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이제 영이의 결혼을 계기로 관점을 바꾸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시간까지 함께 사는 행위’를 결혼이라고 부르자. 100년 전 졸탄 코다이라는 헝가리 작곡가는 스물 두 살에 오십줄 넘은 여성동료 음악가와 결혼했고 아내가 97세로 사망할 때까지 해로했다.

시야를 넓혀 보면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나이차를 제약으로 인식하는 건 지극히 한국식 사고방식이다. 생각해 보니 방송일 하다가 진짜로 이성적 매력을 느꼈던 여성이 한 사람 있다. 그녀 나이가 일흔이나 돼서 아무 표현도 못했지만 언행이 꼭 소녀같다. 한번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볼까, 선우용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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