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아! 참을 수 있는 가벼움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아! 참을 수 있는 가벼움
최근 TV 광고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유머’다. ‘팔로 미(follow me)’를 외치는 가수 지드래곤의 근사한 광고도 좋지만, ‘발로 미’를 외치며 발 연기를 선보이는 장수원의 광고에 왠지 더 눈길이 간다.
15년 전 보기만 해도 오글거리는 음료 광고를 찍어 ‘조매실’이란 별명을 얻었던 가수 조성모씨는 당시 광고를 패러디한 새 광고에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정장을 잘 차려 입은 멋진 남성의 금융권 광고는 이제 식상하다. 심각하고 멋있는 배우보다 일상적이고 해학적인 코드에 사람들이 더 크게 반응한다.
최근 인기를 끄는 제품은 ‘멋있는 것’ ‘값비싼 것’이 아니라 가볍고 유머러스한 기호를 반영한 제품이다. ‘펀(fun)’한 가치에 열광하는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깃털만큼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대중의 취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신랄한 풍자패션 업계에서는 이런 트렌드가 잘 드러난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서 유행하고 있는 ‘페이크 패션(Fake Fashion)’이 대표적이다. 페이크 패션이란 교묘하게 눈속임하거나 비틀어 기존 제품과 비슷하게 만들어낸 제품을 일컫는다. 2007년 영국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가죽이나 모피와 비슷한 효과를 낸 원단들을 사용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동물의 생명과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악어 가죽이나 밍크 등의 원단 대신 가짜 모피나 페이크 섬유를 활용해 옷이나 가방을 만든다. 아예 천으로 된 가방에 럭셔리 백의 디자인을 입힌 에코백이 등장하기도 한다. 홍콩의 페이크 패션 브랜드 ‘진저백’은 얼핏 보기엔 에르메스 버킨백처럼 보이지만 실은 흰 천에 에르메스 가방을 프린팅한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적극적인 페이크 패션으로는 우리가 ‘짝퉁’이라고 부르던 형태를 아예 브랜드화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연예인들의 공항패션으로 화제가 됐던 ‘브라이언 리히텐버그’ ‘SSUR’ 등은 대표적인 명품 패러디 브랜드다. 예를 들어 라이언 리히텐버그에서는 명품 브랜드 헤르메스(Hermes)를 패러디한 호미스(Homies) 티셔츠를 선보였다. 샤넬(Chanel)은 캔슬(Cancel), 구찌는 부찌(Bucci), 프라다(Prada)는 프리마(Prima)·프라우드(Proud)가 된다. 셀린(Celine)은 여가수 이름인 셀린 디옹(Celine Dion)으로 패러디 되기도 한다. 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명품 브랜드를 가볍게 풍자하는 것이다.
기업이 제품을 홍보할 때에도 ‘가벼움’을 적절히 차용한다. 숙취 해소제인 ‘레디큐’가 최근 선보인 ‘페이크 다큐’는 얼핏 보면 심각한 내용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웃긴 TV광고다. 레디큐가 제작한 ‘술과 개와 인간’ 다큐편에서는 민속학자가 등장해 수준 높은 교양강의를 진행한다. 그 내용인 즉슨 12간지 중 ‘술(戌)’에 해당하는 동물이 바로 ‘개’이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면 개가 된다’는 속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탁월한 가벼움 덕분에 해당 동영상은 유튜브의 누적 조회수 56만건을 돌파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가벼움에 열광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분명한 것은 심‘ 각하고, 엄숙하고, 멋있는 것’보단 ‘재밌고, 웃기고, 가벼운 것’이 우리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무게를 잡던 기존의 가치들, 값비싼 명품 브랜드, 똑똑한 체하는 교양 강좌, 이런 것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훨씬 더 직관적이다.
불황 여파로 좀 더 단순하고 가볍게가벼움의 소비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우리 사회는 우울하고 어려운 기사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가십거리 정도의 기사를 더 자주 클릭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어려운 책보다는 읽기 편한 짧은 SNS 게시물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심각한 보도 프로그램보다 개그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훨씬 높은, 그야말로 가벼움에만 반응하는 문화다. 가벼움의 소비 트렌드는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이 소비화된 것이다. 특히 불황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보다는 단순하고 가벼운 유쾌함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갖기 위해 열망하던 것의 가치도 변했다. 몇 년 동안 저축을 해서라도 샤넬 가방을 사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역으로 그것을 갖지 않음으로써 쾌감을 경험한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페이크 패션에서 이런 변화가 잘 나타난다. 페이크 패션은 짝퉁과 엄연히 다르다. 짝퉁은 해당 브랜드가 아니면서 그 브랜드인 척한다. 즉 ‘숨기기’가 핵심이다.
이와 달리 페이크 패션은 대놓고 당당하게 베낀다. 모방한 자체를 드러내는 것, 즉 원전이 살아있는 일종의 ‘패러디’다. 뭣 하러 가방이나 옷에 그렇게 비싼 돈을 쓰느냐는 비꼼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나치게 멋있는 척하고 있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가볍게 놀린다.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을 표현하고 물질만능주의를 조롱하는 의미도 담지만 그 방법은 역시 심각하지 않고 가볍다.
가벼움의 소비 트렌드는 어쩌면 미래의 소비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 게이오대 정책미디어연구과 나츠노 다케시 교수는 “루이비통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치장하는 것은 촌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 표현에서 패러다임 변화의 힌트가 엿보인다. 그동안 소비자의 욕망을 이끌어왔던 ‘프리미엄’ ‘고급’ ‘럭셔리’의 가치가 옅어진다. 그 사이 ‘가벼움’이 새로운 소비 가치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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