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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SAFETY - 우주방사선을 막아라

AIR SAFETY - 우주방사선을 막아라

고에너지 입자가 항공기 안전을 담당하는 전자장치에 고장 일으킬 위험성 커져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외계로부터 새로운 위협이 대두되고 있다. 우주 멀리서 일어나는 현상들로 인해 컴퓨터가 먹통이 되거나 심지어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우주선(cosmic rays, 천체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방사선)은 컴퓨터 메모리를 지우거나 항공기 안전에 중요한 전자장치를 파손할 수 있다. 그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유럽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할 만큼 심각한 문제로 간주된다.

우주에는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s, 하전 입자를 가속시켜 큰 운동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프랑스어 두문자 CERN으로 더 유명)의 대형강입자가속기보다 수천만 배 강력하다. 이들 천체 가속기들이 무엇인지 또는 어디에 위치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아원자 입자로 이뤄진 우주선(宇宙線)이 우리가 사는 지구로 항상 날아든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우주 멀리서 죽어가는 별들이 하나의 근원일 수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지구의 항성인 태양이 만들어내는 우주기상(space weather, 가령 태양에서 분출되는 전기 입자의 흐름을 말하는 태양풍)이다.

우주선의 아원자 분자 하나가 테니스 선수 앤디 머레이의 세컨 서브 만한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다. 빛에 근접하는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이들 방사선이 지구의 고층대기(upper atmosphere)를 이루는 원자와 충돌한다. 그 원자들을 흩뜨려 놓아 제2의 아원자 입자, 주로 중성자들의 소나기를 유발한다. 이는 나아가 지상에 있는 컴퓨터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우주항공 업계와 컴퓨터 업계는 20여년 전부터 그 위협을 알고 있었다. 1990년대 초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미국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산하 무기용중성자연구시설의 뉴멕시코 소재 무기 중성자 과학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당시 모든 실험실 환경 중 가장 강력한 고에너지 중성자원(neutron source, 중성자를 발생시키는 장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철골 구조물 아이스 하우스(ICE House)를 개발했다. 순항고도(안전한 비행에 필요한 해발 고도) 에서 100년간 우주선에 노출된 메모리칩에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한 시간 만에 재현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1초에 1㎠당 100만 개의 중성자를 각 칩에 쏘는 원리였다. 그 결과 ICE 하우스의 칩이 시간 당 평균 1200건의 에러를 일으켰다.

이제 제2의 전용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국은 강력한 ISIS 중성자원에 850만 달러를 들여 ‘치피르(Chipir)’를 세웠다. 옥스퍼드 인근 디드코트에 위치한 러더포드 애플턴 연구소의 과학기술시설협회가 운영한다. 치피르는 전자장치 테스트의 속도를 크게 높여 수백 년의 비행시간 동안 마이크로칩을 고에너지 중성자에 노출시키는 것과 동등한 효과를 단 한 시간에 만들어내게 된다. 이는 마이크로칩 테스트에서 유럽의 황금표준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중국도 중성자를 이용해 마이크로칩을 테스트하는 독자적인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둥관에 소재한 중국 파쇄중성자원). 현재 공사 중이며 2018년 완공 예정이다.

크리스 프로스트가 이끄는 유럽 중성자원 프로젝트는 영국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대형시설투자기금(Large Facilities Capital Fund)의 후원을 받는다.

대체로 중성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물질을 통과한다. 마이크로칩의 실리콘 원자에 고에너지 중성자가 충돌할 때 전하가 발생해 일과성 고장(single-event upset)으로 불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논리 회로에서 0이 1로 또는 반대로 바뀌거나, 아니면 트랜지스터가 ‘켜짐’에서 ‘꺼짐’ 상태로 전환되는 이른바 ‘소프트’ 에러다. 단순히 동영상에서 한 장면을 건너뛰게 되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조종장치가 뒤엉킬 경우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08년 10월 7일 바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여겨진다. 호주 퍼스를 떠나 싱가포르로 비행 중이던 콴타스 항공의 에어버스 A330-303기가 고장을 일으켰다. 비행조종 시스템에 부정확한 데이터가 입력되면서 비행기가 갑자기 심하게 급강하했다. 승객 110명과 승무원 9명이 부상했다.

2003년엔 벨기에 스하르베크의 자동투표기에 슈퍼컴퓨터 에러로 수천 표가 추가로 기록됐다. 그리고 10억 달러를 들여 지은 미국 사이프레스 반도체사 공장이 번번이 멈춰 섰다. 모두 중성자가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제 이 보이지 않는 위협이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칩 기반 비행장치를 사용하는 무인기·비행기·우주선·위성들이 해마다 증가하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위협도 커진다. 1만m의 순항고도에선 비행기 표면 1㎡ 당 1초에 2000개 가량의 중성자가 침투해 동체·승객·좌석·전자장치를 통과한다. 그로 인해 이 고도에서의 에러율이 해수면의 수백 배에 달한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위협도 커지고 있다. 데이터 저장용 서버를 더 많이 구축하고, 데이터를 전 세계로 보내기 위해 더 많은 라우터에 의존하고, 하나의 마이크로칩에 수십억 건의 데이터를 담기 위해 트랜지스터 크기를 계속 줄여나가기 때문이다. 전자회로 트랜지스터의 고밀도화는 끝이 없는 듯하다.

예컨대 무어의 법칙은 하나의 회로에넣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약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그에 힘입어 컴퓨터 성능이 끊임없이 향상돼 왔다. 아울러 우리는 통신·금융·의학·GPS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리콘칩에 갈수록 더 의존하게 됐다.

무어의 법칙이 곧 깨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십 나노미터 규모로 또는 더 작게 트랜지스터를 소형화하는 능력이 한계에 도달해서가 아니다. 중성자의 위협 때문이다. 트랜지스터가 소형화함에 따라 중성자로 인해 발생하는 훨씬 더 작은 전하로도 에러가 생길 수 있다. 밀도가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지고 전력소비가 적어지면서 중성자로 인한 소프트 에러가 더 빈번히 발생하리라고 마이크로칩 제조사들은 예상한다.

앞으로 한두 달 뒤 치피르가 가동되면 생명과 관계된 시스템(가령 비행기 자동조종 시스템)에 사용되는 회로들의 성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우주선에 대처하는 방안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트랜지스터 설계로부터 에러를 수정하는 소프트웨어, 예비 시스템 등 갖가지 대처방안이 있다.

“우리가 트랜지스터 크기를 소형화하는 만큼 중성자 위협을 극복하는 데 독창성이 필요하다”고 프로스트가 말했다. 전자기기가 더 민감해짐에 따라 또 다른 우주선 입자의 영향도 조사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전자 질량의 207배가량 되는 무거운 입자 뮤온이다. 이 입자도 중성자와 비슷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컴퓨터는 일상생활에서 계속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기차·비행기·자동차를 인도하고, 주택을 난방하고, 통화를 이동시킨다. 운이 따라준다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무어의 법칙이 앞으로 최소 10년간 더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향후 몇 년 간 세계는 우주 그렘린(비행기에 고장을 일으키는 가상의 작은 악마)들보다 계속 한 발 앞서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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