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스캔들로 코미디판이 된 프랑스 정계
섹스 스캔들로 코미디판이 된 프랑스 정계
분수의 반짝이는 물과 인디언 서머(가을에 한동안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따스한 기간)의 건강한 나뭇잎들.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엘리제궁(프랑스 대통 령 관저)이 어느 때보다 우아하게 보인다.
하지만 금 도금 장식의 철문과 밤나무들, 그리고 주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경찰관들로도 감춰지지 않는 게 있다. 밤낮으로 엘리제궁의 근위병 교대가 계속되는 동안 프랑스 정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에 프랑스 정치는 보통사람들에겐 그저 재미없고 따분하고 멀게 느껴졌지만 최근엔 온 나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신랄한 코미디가 됐다.
여론조사를 통해서든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든 프랑스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치와 관련해 그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은 실업이나 경제 같은 심각한 문제뿐인 듯하다.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가십은 저속한 앵글로색슨족(영국인)에게나 관심거리가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전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베일레(올랑드와 결별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가 올랑드와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정치인들의 연애사를 다루는 주간지의 구독률이 증가하는 프랑스의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사생활 보호법이 가장 엄격한 편에 속하는 프랑스에서 이런 잡지들은 툭하면 고소를 당한다. 애초에 정치인들을 위해 마련된 법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프랑스 사회에 감도는 모순과 위선의 분위기는 한층 더 짙어진다. 프랑스 판사들은 이런 사건에 대해 가벼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정치인의 사생활 폭로 기사를 쓰고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는 것이 이들 주 간지의 일상사가 됐다. 엘리제궁 근처의 거리를 잠깐만 돌아다녀봐도 정치가 심각한 문제에서 코미디로 탈바꿈한 현실이 감지된다. 엘리제궁에서 샹젤리제 거리 맞은 편 쪽으로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큰 그가 단호하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투지가 넘쳐 보인다. 드골은 살아생전 단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 속에서 그의 부인은 뜨개질을 하고 그는 책을 읽고 있다. 드골은 대통령으로 엘리제궁에 기거할 당시 자기 집안 몫의 전기 요금을 냈다. 그는 옛 프랑스의 전형적인 대통령 상을 확립했다. 경제적으로 검소하고 사생활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이다. 언론은 정치인들을 존중하며 거리를 유지했고 정치인들은 누구도 자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골 동상에서 가까운 한 뉴스 가판대에 나붙은 포스터들은 새로운 현실을 말해준다. 올랑드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트리에르베일레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이 순간에 감사합니다(Merci pource moment)’에서 폭로한 내용을 보여주는 포스터들이다.
트리에르베일레의 글은 슬픔과 분노에 차 있다. 올랑드가 여배우 줄리가예와의 밀회를 위해 모터사이클 헬멧과 방수 외투로 변장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사진 이 공개된 후 그는 사악한 우디 앨런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올랑드는 사회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스캔들로 출마하지 못하게 되자 중앙 무대로 떠오르면서 “우연히 대통령이 된 인물(accidental president)”로 여겨져 왔다.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였던 스트로스칸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여 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나중에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스트로스칸의 빈자리를 틈타 대통령이 된 올랑드는 전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만큼 사생활이 복잡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세실리아 사르코지로부터 시작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부인 세실리아는 양쪽 다 두 번째 결혼으로 만났으며 세실리아는 남편이 대통령 직에 오르기 전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4개월 동안 남편을 떠났었다. (파리 마치는 뉴욕에서 그녀가 연인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보도했고 그 후 이 잡지의 편집장은 사임했다.) 세실리아와 이혼한 사르코지는 믹 재거의 여자친구였던 슈퍼모델 출신의 카를라 브루니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마치 프랑스 보드빌(노래·춤·곡예·촌극 등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지는 공연)처럼 극적인 이야기였다. 사르코지는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의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세실리아와 첫 남편의 결혼식을 주재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또 카를라 브루니와의 새로운 연애 사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유로디즈니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이 목격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돈이 관심의 초점이 됐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휴가여행을 다니는 ‘사치스러운 대통령 (President Bling)’의 생활방식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의 침실 문이 살짝 열렸다 닫히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올랑드와 트리에르베일레의 결별을 계기로 활짝 열어젖혀졌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여다봤다. 올랑드는 이런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 가족 중 누구도 참석시키지 않았다. 사르코지가 취임식 날 이미 사이가 틀어진 부인(세실리아)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것만큼이나 이상해 보였다. 올랑드는 취임식에 혼자 나타났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자동차 행렬을 벌이던 도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려고 시트로엥의 선루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는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다.
잡지 코죄르의 뤽 로젠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에는 정치인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문화가 없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에도 그런 문화가 자리잡아 간다. 과거엔 정치인의 성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반면 돈 문제가 화제의 초점이 됐다. 비록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정치인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일은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트로스칸의 성범죄 스캔들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프랑스인들도 영국인들처럼 정치인의 성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리 마치의 편집장 올리비에 루아양도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프랑스인 특유의 무관심이 제1세계의 개방성에 자리를 내주면서 프랑스 정치인과 사생활 보호법, 언론, 국민 사이의 관계가 갈수록 묘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프랑스 국민은 전통적으로 정치인을 보통사람보다 더 지적이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 왔다. 그들은 정치인을 숭상했다. 정치인들은 그런 문화를 좋아했다. 개인 재산과 사생활을 비밀에 부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예로 들자면 그의 사생활은 마치 소설처럼 비밀로 가득 차 있었다. 파리 마치는 1994년 그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그것은 큰 스캔들이 됐다. 그의 인생 전체가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심지어 그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 보도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면 뉴욕타임스의 지지가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이 스캔들은 비난을 모면한 미테랑 자신보다 언론 보도에 더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저널리스트 안-엘리자베스 무테는 “미테랑은 정치인으로서 올랑드에게 없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엔 베이비붐 세대가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했다”고 루아양이 말했다. “2007년 사르코지가 취임했을 때 근대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인과 함께 나타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드골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훌륭한 군인(good soldiers)’처럼 행동하는 정치적인 부인을 두었으며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대통령의 놀라운 러브스토리를 목격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의 권위적인 스타일을 싫어했지만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그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올랑드의 신뢰성은 의문시돼 왔다. 그는 유머 감각을 지닌 느긋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리에르베일레의 책은 올랑드를 그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평범(Monsieur Normal)’을 자처하는 그를 사기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책에는 올랑드가 너무 가난해서 치아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자신의 가족을 “꼴불견(not a pretty sight)”이라고 말한 것을 포함해 정나미 떨어지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마치 이혼 법정에서처럼 상대방에 대한 온갖 비방이 쏟아졌다”고 루아양이 말했다. “퍼스트레이디가 이런 말들을 쏟아내다니 이전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 후 올랑드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그를 봤는데 그의 몸짓이 영 어색해 보였다.”
미국인과 영국인들은 ‘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남자는 나라에도 거짓말을 할지 모른다’고 여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직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정치인들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듯 보이는 건 좋아하지 않 는다. 게다가 그런 인물이 올랑드뿐이 아니다. 파리 마치는 최근 플로랑주의 용광로 폐쇄에 반대하다 물러나 거나 교체된 그의 전 각료 두 명(양쪽 다 독신이다)이 연인 관계라고 폭로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여자친구였던 오렐리 필리페티 전문화 장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르노 몽트부르 전 산업부흥 장관과 팔장을 끼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변호사 출신으로 사회당 소속인 몽트부르는 대통령의 야심을 지닌 인물로 여자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그는 그런 사실을 폭로하려는 언론을 상대로 1인전쟁을 펼치는 듯 보인다. 루아양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9월 정부 중심부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를 몰고 온 두 명의 주인공이 필리페티와 몽트부르였다. 필리페티는 자신의 이상을 좇아 문화 장관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사랑을 좇아 떠났다.”
“프랑스 신문들은 우리가 보도하는 기사를 무시했다. 우리 기사가 나간지 36시간 안에 두 사람 다 우리를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사생활 보호법은 보통사람들과 영화배우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정치인들이 이용한다. 사르코지, 올랑드, 세실리아, 카를라 등이 모두 그 법을 이용했다. 우리는 지난 5월 몽트부르와 여배우 엘사 질베르스텡이 한 레스토랑 밖에 서 있는 사진을 내보낸 뒤 1만 4000유로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줬다.”
질베르스탱은 영화 ‘아티스트(The Artist)’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장 뒤자르댕의 전 여자친구다. (프랑스에서는 약 50명의 유명인사가 서로 번갈아가며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마치 끝나지 않는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줄리가예는 파리 마치를 상대로 8만 유로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가 1만 2000유로를 받았다. 보도의 정당성을 증명할 만큼 적은 액수였다. 루아 양은 다른 편집장들과 마찬가지로 사생활 보호 욕구보다 대중의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트리에르베일레가 파리 마치의 기자였다는 사실이 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루아양은 그녀와 잡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보수를 원했다. 트리에르베일레는 올랑드와 자신의 기사가 보도될 때마 다루아양에게 “고약한 문자(bad texts)”를 보냈다. 루아양은 그녀가 책을 쓰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자로서 그녀는 거짓말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비밀로 묻어두려 했던 내용을 공개했지만 공개적으로 망신과 보복을 당했다.”
이제 이 부조리극(theatre of absurdity)과 위선이 어쩔 수 없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 듯하다. 루아양은 정 치인들이 사생활 공개의 압박을 받게 되리라고 믿는다.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시대에 뒤지고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저널리스트 안-엘리자베스 무테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에 관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프랑스 TV에선 트리에르베일 레의 회고록 출간이 분별있는 행동인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논쟁을 벌이지만 그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됐다. 난 트리에르베일레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차없이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녀를 제2의 발작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그 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심한 불만을 나타낸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왕족처럼 여기며 대중을 경멸하고 그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끝이 없으며 권력자에 대해서는 지나친 노예근성을 드러낸다. 매우 불쾌하다.”
그런 특권의식과 노예근성의 근절을 앞당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 대해서는 안 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금 도금 장식의 철문과 밤나무들, 그리고 주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경찰관들로도 감춰지지 않는 게 있다. 밤낮으로 엘리제궁의 근위병 교대가 계속되는 동안 프랑스 정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에 프랑스 정치는 보통사람들에겐 그저 재미없고 따분하고 멀게 느껴졌지만 최근엔 온 나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신랄한 코미디가 됐다.
여론조사를 통해서든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든 프랑스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치와 관련해 그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은 실업이나 경제 같은 심각한 문제뿐인 듯하다.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가십은 저속한 앵글로색슨족(영국인)에게나 관심거리가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전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베일레(올랑드와 결별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가 올랑드와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정치인들의 연애사를 다루는 주간지의 구독률이 증가하는 프랑스의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사생활 보호법이 가장 엄격한 편에 속하는 프랑스에서 이런 잡지들은 툭하면 고소를 당한다. 애초에 정치인들을 위해 마련된 법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프랑스 사회에 감도는 모순과 위선의 분위기는 한층 더 짙어진다. 프랑스 판사들은 이런 사건에 대해 가벼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정치인의 사생활 폭로 기사를 쓰고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는 것이 이들 주 간지의 일상사가 됐다. 엘리제궁 근처의 거리를 잠깐만 돌아다녀봐도 정치가 심각한 문제에서 코미디로 탈바꿈한 현실이 감지된다. 엘리제궁에서 샹젤리제 거리 맞은 편 쪽으로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큰 그가 단호하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투지가 넘쳐 보인다. 드골은 살아생전 단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 속에서 그의 부인은 뜨개질을 하고 그는 책을 읽고 있다. 드골은 대통령으로 엘리제궁에 기거할 당시 자기 집안 몫의 전기 요금을 냈다. 그는 옛 프랑스의 전형적인 대통령 상을 확립했다. 경제적으로 검소하고 사생활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이다. 언론은 정치인들을 존중하며 거리를 유지했고 정치인들은 누구도 자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골 동상에서 가까운 한 뉴스 가판대에 나붙은 포스터들은 새로운 현실을 말해준다. 올랑드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트리에르베일레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이 순간에 감사합니다(Merci pource moment)’에서 폭로한 내용을 보여주는 포스터들이다.
트리에르베일레의 글은 슬픔과 분노에 차 있다. 올랑드가 여배우 줄리가예와의 밀회를 위해 모터사이클 헬멧과 방수 외투로 변장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사진 이 공개된 후 그는 사악한 우디 앨런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올랑드는 사회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스캔들로 출마하지 못하게 되자 중앙 무대로 떠오르면서 “우연히 대통령이 된 인물(accidental president)”로 여겨져 왔다.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였던 스트로스칸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여 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나중에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스트로스칸의 빈자리를 틈타 대통령이 된 올랑드는 전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만큼 사생활이 복잡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세실리아 사르코지로부터 시작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부인 세실리아는 양쪽 다 두 번째 결혼으로 만났으며 세실리아는 남편이 대통령 직에 오르기 전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4개월 동안 남편을 떠났었다. (파리 마치는 뉴욕에서 그녀가 연인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보도했고 그 후 이 잡지의 편집장은 사임했다.) 세실리아와 이혼한 사르코지는 믹 재거의 여자친구였던 슈퍼모델 출신의 카를라 브루니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마치 프랑스 보드빌(노래·춤·곡예·촌극 등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지는 공연)처럼 극적인 이야기였다. 사르코지는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의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세실리아와 첫 남편의 결혼식을 주재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또 카를라 브루니와의 새로운 연애 사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유로디즈니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이 목격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돈이 관심의 초점이 됐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휴가여행을 다니는 ‘사치스러운 대통령 (President Bling)’의 생활방식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의 침실 문이 살짝 열렸다 닫히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올랑드와 트리에르베일레의 결별을 계기로 활짝 열어젖혀졌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여다봤다. 올랑드는 이런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 가족 중 누구도 참석시키지 않았다. 사르코지가 취임식 날 이미 사이가 틀어진 부인(세실리아)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것만큼이나 이상해 보였다. 올랑드는 취임식에 혼자 나타났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자동차 행렬을 벌이던 도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려고 시트로엥의 선루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는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다.
잡지 코죄르의 뤽 로젠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에는 정치인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문화가 없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에도 그런 문화가 자리잡아 간다. 과거엔 정치인의 성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반면 돈 문제가 화제의 초점이 됐다. 비록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정치인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일은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트로스칸의 성범죄 스캔들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프랑스인들도 영국인들처럼 정치인의 성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리 마치의 편집장 올리비에 루아양도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프랑스인 특유의 무관심이 제1세계의 개방성에 자리를 내주면서 프랑스 정치인과 사생활 보호법, 언론, 국민 사이의 관계가 갈수록 묘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프랑스 국민은 전통적으로 정치인을 보통사람보다 더 지적이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 왔다. 그들은 정치인을 숭상했다. 정치인들은 그런 문화를 좋아했다. 개인 재산과 사생활을 비밀에 부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예로 들자면 그의 사생활은 마치 소설처럼 비밀로 가득 차 있었다. 파리 마치는 1994년 그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그것은 큰 스캔들이 됐다. 그의 인생 전체가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심지어 그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 보도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면 뉴욕타임스의 지지가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이 스캔들은 비난을 모면한 미테랑 자신보다 언론 보도에 더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저널리스트 안-엘리자베스 무테는 “미테랑은 정치인으로서 올랑드에게 없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엔 베이비붐 세대가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했다”고 루아양이 말했다. “2007년 사르코지가 취임했을 때 근대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인과 함께 나타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드골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훌륭한 군인(good soldiers)’처럼 행동하는 정치적인 부인을 두었으며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대통령의 놀라운 러브스토리를 목격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의 권위적인 스타일을 싫어했지만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그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올랑드의 신뢰성은 의문시돼 왔다. 그는 유머 감각을 지닌 느긋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리에르베일레의 책은 올랑드를 그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평범(Monsieur Normal)’을 자처하는 그를 사기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책에는 올랑드가 너무 가난해서 치아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자신의 가족을 “꼴불견(not a pretty sight)”이라고 말한 것을 포함해 정나미 떨어지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마치 이혼 법정에서처럼 상대방에 대한 온갖 비방이 쏟아졌다”고 루아양이 말했다. “퍼스트레이디가 이런 말들을 쏟아내다니 이전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 후 올랑드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그를 봤는데 그의 몸짓이 영 어색해 보였다.”
미국인과 영국인들은 ‘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남자는 나라에도 거짓말을 할지 모른다’고 여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직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정치인들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듯 보이는 건 좋아하지 않 는다. 게다가 그런 인물이 올랑드뿐이 아니다. 파리 마치는 최근 플로랑주의 용광로 폐쇄에 반대하다 물러나 거나 교체된 그의 전 각료 두 명(양쪽 다 독신이다)이 연인 관계라고 폭로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여자친구였던 오렐리 필리페티 전문화 장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르노 몽트부르 전 산업부흥 장관과 팔장을 끼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변호사 출신으로 사회당 소속인 몽트부르는 대통령의 야심을 지닌 인물로 여자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그는 그런 사실을 폭로하려는 언론을 상대로 1인전쟁을 펼치는 듯 보인다. 루아양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9월 정부 중심부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를 몰고 온 두 명의 주인공이 필리페티와 몽트부르였다. 필리페티는 자신의 이상을 좇아 문화 장관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사랑을 좇아 떠났다.”
“프랑스 신문들은 우리가 보도하는 기사를 무시했다. 우리 기사가 나간지 36시간 안에 두 사람 다 우리를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사생활 보호법은 보통사람들과 영화배우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정치인들이 이용한다. 사르코지, 올랑드, 세실리아, 카를라 등이 모두 그 법을 이용했다. 우리는 지난 5월 몽트부르와 여배우 엘사 질베르스텡이 한 레스토랑 밖에 서 있는 사진을 내보낸 뒤 1만 4000유로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줬다.”
질베르스탱은 영화 ‘아티스트(The Artist)’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장 뒤자르댕의 전 여자친구다. (프랑스에서는 약 50명의 유명인사가 서로 번갈아가며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마치 끝나지 않는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줄리가예는 파리 마치를 상대로 8만 유로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가 1만 2000유로를 받았다. 보도의 정당성을 증명할 만큼 적은 액수였다. 루아 양은 다른 편집장들과 마찬가지로 사생활 보호 욕구보다 대중의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트리에르베일레가 파리 마치의 기자였다는 사실이 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루아양은 그녀와 잡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보수를 원했다. 트리에르베일레는 올랑드와 자신의 기사가 보도될 때마 다루아양에게 “고약한 문자(bad texts)”를 보냈다. 루아양은 그녀가 책을 쓰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자로서 그녀는 거짓말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비밀로 묻어두려 했던 내용을 공개했지만 공개적으로 망신과 보복을 당했다.”
이제 이 부조리극(theatre of absurdity)과 위선이 어쩔 수 없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 듯하다. 루아양은 정 치인들이 사생활 공개의 압박을 받게 되리라고 믿는다.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시대에 뒤지고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저널리스트 안-엘리자베스 무테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에 관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프랑스 TV에선 트리에르베일 레의 회고록 출간이 분별있는 행동인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논쟁을 벌이지만 그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됐다. 난 트리에르베일레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차없이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녀를 제2의 발작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그 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심한 불만을 나타낸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왕족처럼 여기며 대중을 경멸하고 그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끝이 없으며 권력자에 대해서는 지나친 노예근성을 드러낸다. 매우 불쾌하다.”
그런 특권의식과 노예근성의 근절을 앞당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 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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