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로비에 발목 잡힌 환경호르몬 규제
업계 로비에 발목 잡힌 환경호르몬 규제
드니 비베이란은 47세에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그보다 최소한 20년 연상의 남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희귀한 형태의 질병이다. 그의 여동생 마리는 불운이라고 치부했다. 그들에게 일과 삶의 터전인 보르도의 포도원 주변에는 그의 연령대 남성들 사이에 암이 흔히 발생했다. 그리고 담도암이 특히 드물지도 않았다.
2010년 18개월도 채 안 지나 마리 비베리안의 일곱 살짜리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연말께는 아이의 보통 두 배 정도 나이 소녀들을 연상시킬 만큼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직후 월경이 시작됐지만 신체 발육은 둔화돼 거의 멈춰버렸다. 의사들은 고전적인 성조숙증(precocious puberty)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성적인 조기 발육을 유발하는 호르몬 이상이다. 건강한 어린 소녀에게는 드문 일이었지만 유례가 없지는 않았다.
비베리안은 이미 오래 전에 운을 믿지 못하게 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인 질환 중에서도 희귀암, 파킨슨병, 호르몬성 발달장애의 유사 사례를 겪은 가족이 인근 지역에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었다. 지역 학교에선 자폐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같은 학습장애의 전례 없는 증가 추세를 교사들이 보고하고 있었다.
원인을 찾아나선 그녀는 포도원에서 사용된 농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포도나무에 일상적으로 살포되는 수백 종의 농약 중에서도 학계에서 특히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화학물질 항목이 있었다.
통칭 내분비계 교란물질(EDCs, 환경호르몬)로 불리는 이 물질들은 호르몬계에 간섭해 이상을 일으킨다. 그녀가 오빠와 딸에게서 목격했던 유와 아주 유사한 문제들을 이 같은 물질들이 유발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 연구들이 지난 20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EDC는 도처에 깔려 있다. 화장품, 방부제, 약품뿐 아니라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매일 사용하는 샴푸와 치약 같은 수많은 가정용품에서도 발견된다. 농약 DDT와 ‘유산방지제’ DES 등과 같은 일부 제품은 수년 전에 금지됐지만 건강과 환경 문제의 유산을 남겼다. 그밖에도 다수가 여전히 사용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EDC의 정의·식별 그리고 필요할 경우엔 금지하기 위한 기준을 수립하는 중이다. 이는 벌써부터 전 세계의 기업 중역실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유럽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 조항이기 때문이다. 일용품이 시장에서 회수되며 업계에 수십 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벌써 업계의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미 시한을 1년 남짓 넘긴 그 절차가 마침내 여론청취 단계로 넘어갔다. 거기서 역풍을 만났다.
“그 정책은 업계에 납치당했다.” 녹색당유럽자유연맹의 환경·건강 고문 악셀 싱호펜이 말했다. “그들은 문제의 과학적 뿌리를 망각한 듯하다. 국민건강과 야생에 어떤 희생이 따르든 관계없이 업계 이익을 돌보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프랑스 내분비 학자 샤를 술탄은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20년 넘게 연구해 왔다. “아동의 발육 부전과 육체적 기형, 그리고 인생 후반부에 특히 생식기 암이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직 전모를 알지도 못한다. 노출 후 수십 년 나아가 수 세대 뒤에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많은 환경보호운동가들은 EU가 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리라고 큰 기대를 가졌다. 근면하기로 소문난 EU 집행위원회 환경총국(DG Environment)이 담당기구였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 안드레아스 코르텐캄프 교수가 이끄는 국제적인 내분비학자 팀이 그 정책의 토대 수립을 맡았다. 연구팀은 환경총국의 의뢰를 받아 EDC가 인간의 건강과 야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기존 논문의 리뷰를 작성해 그에 따라 정책 방안을 설계하기로 했다.
2012년 초 환경총국의 웹사이트에 코르텐캄프의 리뷰가 게재됐을 때 그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그 화학물질을 “발암물질, 돌연변이 유발원, 생식 독성물질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고 리뷰는 지적했다.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그들의 평가는 놀라웠다. EDC가 암과 자폐증, 생식기 기형과 비만 등 갖가지 이상을 유발했다. 야생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했다. EDC가 생물종의 암수 비율을 왜곡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리고 “야생동물 개체수가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그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친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었다. 노출 수준은 대체로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량의 노출도 때로는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다.
“EDC의 독성이 극히 위험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점이 많다. 모든 EDC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안전한 수치가 있는지, 어떤 피해를 초래하는지 또는 그런 피해를 언제 유발하는지 등을 모른다. 안전한 접근법은 예방조치를 취하는 길뿐이다.”
이것이 환경총국이 택한 노선이다. 2013년 봄 환경총국은 전략을 세우고 엄격한 예방 조치를 촉구했다. 어떤 제품에서든 EDC로 밝혀진 모든 화학물질을 금지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적어도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말이다. 그 정책이 발표되기 직전 초안이 유출됐다. 곧바로 업계의 공격이 시작됐다.
독성학 학술지 편집자 18명이 집단으로 유럽 집행위원회의 수석과학고문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 정책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으며 상식적이고 근거가 뚜렷한 과학과 위험평가 원칙을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서명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명을 빼고 모두 규제 대상 업계에 줄이 닿았거나 현재 닿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세계 최대 화학업체와 업계 단체 중 다수를 대변했다.
대표 작성자 다니엘 디트리히는 유럽화학물질생태독성·독성센터라는 업계 단체의 고문을 지냈다. EDC 규제 문제로 EU를 상대로 로비를 펼치는 단체다. 이 단체의 후원사로는 신젠타, 바이엘, 다우케미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등이 꼽힌다. 다른 서명자들도 몬산토,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그리고 업계의 후원을 받는 미국화학협회와 관련이 있다.
“물론 그 리뷰는 공격받게 돼 있었다”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우리의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유럽 정책이 수립될 예정이었으니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공격하라고 업계에 공개초청장을 보낸 격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조금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시간을 벌기 위해 트집을 잡았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기후변화 논쟁에 비유하면 딱 들어맞는다. 99%의 과학자가 동의하는데 소수파가 마치 논란이 있는 듯이 조작한다.”
프랑스 기자 스테판 호렐이 입수한 일련의 문서들은 유럽 집행위원회의 닫힌 문 뒤에서 업계 로비스트들이 비상 태세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6월과 7월. 화학업계 로비계는 잇따른 이메일과 성명서로 유럽집행위원회에 맹공을 퍼부었다. 모두 환경총국 전략의 철저한 재평가를 촉구했다.
그 문서들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 상층부에선 업계 대표와 집행위원들 간에 거의 주 단위로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국가 정부들도 뛰어들었다. 영국과 독일이 ‘효능 고려사항’의 포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EU로선 “가장 핵심적인 내분비 교란물질을 제외하고 나머지도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할 수밖에 없는 허점이라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시종일관 EDC 규제가 EU-미국 통상관계에 초래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뒤 2013년 7월 정책수립 시한 수 개월 전 EU 집행위원회 상부의 명령으로 규제절차가 동결되고 규제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따라서 정책 시행은 최소한 2015년 이후로 연기됐다.
“우리는 전략을 추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통로가 차단됐다. EU 집행위원회 수뇌부에서 우리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환경총국의 한 고위 소식통이 말했다. 마감시한이 지나자 스웨덴은 EU의 지연에 책임을 묻는 법적 조치에 착수했다. 그들은 “집행위원회가 내분비 교란물질 금지 작업을 중단하고 지연시킨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덴마크·네덜란드가 스웨덴을 지지하고 나섰다.
농약과 화장품 업계가 불안해 할 만도 하다. 유럽 작물보호협회 대변인에 따르면 규제로 인해 농약 시장의 40%가 증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 하나의 업종에서 80~90억 유로의 손실을 의미한다. 로레알은 모발관리 제품에 사용되는 잠재적인 내분비 교란물질을 둘러싸고 이미 비판을 받아온 많은 화장품 업체 중 하나다. 그들의 제품에 프탈레이트 같은 화학물질 성분이 들어 있다. 다른 제품에는 이미 금지됐으며 EU 전략에서 주요 규제 대상물질로 꼽힌다. 로레알은 최근에야 또 다른 위험 화학물질 트리클로산의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나 로레알은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뉴스위크의 질문에 로레알은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라고 답변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용제품에 함유된 특정 물질을 겨냥해 반복적인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물질이] 인간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합당한 과학적 조사 결과는 아직 없었다.”
드니 비베이란은 2009년 암 진단 후 1년도 채 못돼 생을 마감했다. 2년 뒤 여동생 마리는 농민 지원 서비스 당국을 법정으로 끌어냈다. 포도원에서 일하던 수년 동안 오빠가 노출됐던 농약이 그의 사망과 연관됐음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를 수집한 뒤였다.
“오빠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 직업적인 위험에서 비롯됐음을 인정받고 싶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포도원에서 일하다가 병이 생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험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농약과 내분비 교란물질이 사망과 관련됐음을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났지만 그 사건의 재판과정에는 거의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전역에 걸쳐 비슷한 소송이 갈수록 빈번하게 재판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는다”고 비베이란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인을 상대한다. 몬산토와 바이엘 같은 대기업들이 프랑스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단 한 건의 소송에서라도 그런 기업들의 제품이 암을 유발했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그들로선 붕괴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업계 로비스트들은 머리 속에 더 큰 그림을 갖고 있다. EU와 미국은 현재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협상 중이다. 타결될 경우 유럽과 미국의 기술적 규제와 승인 절차가 표준화될 것이다. EU와 미국 간 재화이동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허물어 잠재적으로 양 지역경제가 수천 억 유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유럽의 상당수 규제를 미국이 설정한 낮은 기준으로 하향조정하게 된다는 의미다.
“TTIP가 여태껏 발표된 노선을 따라 통과된다면 EDC 규제는 더 지연되거나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국제환경법센터의 변호사 데이비드 아줄레이가 말했다.
“TTIP는 이번 사례뿐 아니라 유럽의 근본적인 규제 메커니즘을 바꿔놓을 것이다. 유럽은 예방적 대책을 이용해 잠재적으로 위험한 제품을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시장에서 금지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대책이 업계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껍데기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유럽도 미국과 비슷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미국에선 일단 어떤 화학물질이 위험한 것으로 입증되더라도 정부가 그것을 판매금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화학물질에 걸린 이해가 특히 크다”고 아줄레이가 말했다. “화학업계가 아주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 간의 규제 차이가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줄곧 예의 주시하는 사회의 두려움이 갈수록 커져간다. “
사람들이 겁을 먹었는지 어떤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9월 유럽에서 EDC에 관한 여론청취가 시작된 이후 불과 5명이 로그인해 의견을 개진했다.
마리 비베이란은 자신이 무관심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귀 기울이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EU가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대기업에 넘겨줬다”는 사실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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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8개월도 채 안 지나 마리 비베리안의 일곱 살짜리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연말께는 아이의 보통 두 배 정도 나이 소녀들을 연상시킬 만큼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직후 월경이 시작됐지만 신체 발육은 둔화돼 거의 멈춰버렸다. 의사들은 고전적인 성조숙증(precocious puberty)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성적인 조기 발육을 유발하는 호르몬 이상이다. 건강한 어린 소녀에게는 드문 일이었지만 유례가 없지는 않았다.
비베리안은 이미 오래 전에 운을 믿지 못하게 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인 질환 중에서도 희귀암, 파킨슨병, 호르몬성 발달장애의 유사 사례를 겪은 가족이 인근 지역에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었다. 지역 학교에선 자폐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같은 학습장애의 전례 없는 증가 추세를 교사들이 보고하고 있었다.
원인을 찾아나선 그녀는 포도원에서 사용된 농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포도나무에 일상적으로 살포되는 수백 종의 농약 중에서도 학계에서 특히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화학물질 항목이 있었다.
통칭 내분비계 교란물질(EDCs, 환경호르몬)로 불리는 이 물질들은 호르몬계에 간섭해 이상을 일으킨다. 그녀가 오빠와 딸에게서 목격했던 유와 아주 유사한 문제들을 이 같은 물질들이 유발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 연구들이 지난 20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EDC는 도처에 깔려 있다. 화장품, 방부제, 약품뿐 아니라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매일 사용하는 샴푸와 치약 같은 수많은 가정용품에서도 발견된다. 농약 DDT와 ‘유산방지제’ DES 등과 같은 일부 제품은 수년 전에 금지됐지만 건강과 환경 문제의 유산을 남겼다. 그밖에도 다수가 여전히 사용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EDC의 정의·식별 그리고 필요할 경우엔 금지하기 위한 기준을 수립하는 중이다. 이는 벌써부터 전 세계의 기업 중역실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유럽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 조항이기 때문이다. 일용품이 시장에서 회수되며 업계에 수십 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벌써 업계의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미 시한을 1년 남짓 넘긴 그 절차가 마침내 여론청취 단계로 넘어갔다. 거기서 역풍을 만났다.
“그 정책은 업계에 납치당했다.” 녹색당유럽자유연맹의 환경·건강 고문 악셀 싱호펜이 말했다. “그들은 문제의 과학적 뿌리를 망각한 듯하다. 국민건강과 야생에 어떤 희생이 따르든 관계없이 업계 이익을 돌보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프랑스 내분비 학자 샤를 술탄은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20년 넘게 연구해 왔다. “아동의 발육 부전과 육체적 기형, 그리고 인생 후반부에 특히 생식기 암이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직 전모를 알지도 못한다. 노출 후 수십 년 나아가 수 세대 뒤에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많은 환경보호운동가들은 EU가 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리라고 큰 기대를 가졌다. 근면하기로 소문난 EU 집행위원회 환경총국(DG Environment)이 담당기구였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 안드레아스 코르텐캄프 교수가 이끄는 국제적인 내분비학자 팀이 그 정책의 토대 수립을 맡았다. 연구팀은 환경총국의 의뢰를 받아 EDC가 인간의 건강과 야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기존 논문의 리뷰를 작성해 그에 따라 정책 방안을 설계하기로 했다.
2012년 초 환경총국의 웹사이트에 코르텐캄프의 리뷰가 게재됐을 때 그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그 화학물질을 “발암물질, 돌연변이 유발원, 생식 독성물질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고 리뷰는 지적했다.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그들의 평가는 놀라웠다. EDC가 암과 자폐증, 생식기 기형과 비만 등 갖가지 이상을 유발했다. 야생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했다. EDC가 생물종의 암수 비율을 왜곡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리고 “야생동물 개체수가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그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친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었다. 노출 수준은 대체로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량의 노출도 때로는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다.
“EDC의 독성이 극히 위험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점이 많다. 모든 EDC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안전한 수치가 있는지, 어떤 피해를 초래하는지 또는 그런 피해를 언제 유발하는지 등을 모른다. 안전한 접근법은 예방조치를 취하는 길뿐이다.”
이것이 환경총국이 택한 노선이다. 2013년 봄 환경총국은 전략을 세우고 엄격한 예방 조치를 촉구했다. 어떤 제품에서든 EDC로 밝혀진 모든 화학물질을 금지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적어도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말이다. 그 정책이 발표되기 직전 초안이 유출됐다. 곧바로 업계의 공격이 시작됐다.
독성학 학술지 편집자 18명이 집단으로 유럽 집행위원회의 수석과학고문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 정책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으며 상식적이고 근거가 뚜렷한 과학과 위험평가 원칙을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서명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명을 빼고 모두 규제 대상 업계에 줄이 닿았거나 현재 닿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세계 최대 화학업체와 업계 단체 중 다수를 대변했다.
대표 작성자 다니엘 디트리히는 유럽화학물질생태독성·독성센터라는 업계 단체의 고문을 지냈다. EDC 규제 문제로 EU를 상대로 로비를 펼치는 단체다. 이 단체의 후원사로는 신젠타, 바이엘, 다우케미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등이 꼽힌다. 다른 서명자들도 몬산토,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그리고 업계의 후원을 받는 미국화학협회와 관련이 있다.
“물론 그 리뷰는 공격받게 돼 있었다”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우리의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유럽 정책이 수립될 예정이었으니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공격하라고 업계에 공개초청장을 보낸 격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조금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시간을 벌기 위해 트집을 잡았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기후변화 논쟁에 비유하면 딱 들어맞는다. 99%의 과학자가 동의하는데 소수파가 마치 논란이 있는 듯이 조작한다.”
프랑스 기자 스테판 호렐이 입수한 일련의 문서들은 유럽 집행위원회의 닫힌 문 뒤에서 업계 로비스트들이 비상 태세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6월과 7월. 화학업계 로비계는 잇따른 이메일과 성명서로 유럽집행위원회에 맹공을 퍼부었다. 모두 환경총국 전략의 철저한 재평가를 촉구했다.
그 문서들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 상층부에선 업계 대표와 집행위원들 간에 거의 주 단위로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국가 정부들도 뛰어들었다. 영국과 독일이 ‘효능 고려사항’의 포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EU로선 “가장 핵심적인 내분비 교란물질을 제외하고 나머지도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할 수밖에 없는 허점이라고 코르텐캄프가 말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시종일관 EDC 규제가 EU-미국 통상관계에 초래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뒤 2013년 7월 정책수립 시한 수 개월 전 EU 집행위원회 상부의 명령으로 규제절차가 동결되고 규제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따라서 정책 시행은 최소한 2015년 이후로 연기됐다.
“우리는 전략을 추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통로가 차단됐다. EU 집행위원회 수뇌부에서 우리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환경총국의 한 고위 소식통이 말했다. 마감시한이 지나자 스웨덴은 EU의 지연에 책임을 묻는 법적 조치에 착수했다. 그들은 “집행위원회가 내분비 교란물질 금지 작업을 중단하고 지연시킨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덴마크·네덜란드가 스웨덴을 지지하고 나섰다.
농약과 화장품 업계가 불안해 할 만도 하다. 유럽 작물보호협회 대변인에 따르면 규제로 인해 농약 시장의 40%가 증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 하나의 업종에서 80~90억 유로의 손실을 의미한다. 로레알은 모발관리 제품에 사용되는 잠재적인 내분비 교란물질을 둘러싸고 이미 비판을 받아온 많은 화장품 업체 중 하나다. 그들의 제품에 프탈레이트 같은 화학물질 성분이 들어 있다. 다른 제품에는 이미 금지됐으며 EU 전략에서 주요 규제 대상물질로 꼽힌다. 로레알은 최근에야 또 다른 위험 화학물질 트리클로산의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나 로레알은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뉴스위크의 질문에 로레알은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라고 답변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용제품에 함유된 특정 물질을 겨냥해 반복적인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물질이] 인간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합당한 과학적 조사 결과는 아직 없었다.”
드니 비베이란은 2009년 암 진단 후 1년도 채 못돼 생을 마감했다. 2년 뒤 여동생 마리는 농민 지원 서비스 당국을 법정으로 끌어냈다. 포도원에서 일하던 수년 동안 오빠가 노출됐던 농약이 그의 사망과 연관됐음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를 수집한 뒤였다.
“오빠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 직업적인 위험에서 비롯됐음을 인정받고 싶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포도원에서 일하다가 병이 생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험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농약과 내분비 교란물질이 사망과 관련됐음을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났지만 그 사건의 재판과정에는 거의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전역에 걸쳐 비슷한 소송이 갈수록 빈번하게 재판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는다”고 비베이란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인을 상대한다. 몬산토와 바이엘 같은 대기업들이 프랑스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단 한 건의 소송에서라도 그런 기업들의 제품이 암을 유발했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그들로선 붕괴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업계 로비스트들은 머리 속에 더 큰 그림을 갖고 있다. EU와 미국은 현재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협상 중이다. 타결될 경우 유럽과 미국의 기술적 규제와 승인 절차가 표준화될 것이다. EU와 미국 간 재화이동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허물어 잠재적으로 양 지역경제가 수천 억 유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유럽의 상당수 규제를 미국이 설정한 낮은 기준으로 하향조정하게 된다는 의미다.
“TTIP가 여태껏 발표된 노선을 따라 통과된다면 EDC 규제는 더 지연되거나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국제환경법센터의 변호사 데이비드 아줄레이가 말했다.
“TTIP는 이번 사례뿐 아니라 유럽의 근본적인 규제 메커니즘을 바꿔놓을 것이다. 유럽은 예방적 대책을 이용해 잠재적으로 위험한 제품을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시장에서 금지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대책이 업계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껍데기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유럽도 미국과 비슷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미국에선 일단 어떤 화학물질이 위험한 것으로 입증되더라도 정부가 그것을 판매금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화학물질에 걸린 이해가 특히 크다”고 아줄레이가 말했다. “화학업계가 아주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 간의 규제 차이가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줄곧 예의 주시하는 사회의 두려움이 갈수록 커져간다. “
사람들이 겁을 먹었는지 어떤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9월 유럽에서 EDC에 관한 여론청취가 시작된 이후 불과 5명이 로그인해 의견을 개진했다.
마리 비베이란은 자신이 무관심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귀 기울이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EU가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대기업에 넘겨줬다”는 사실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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