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① 해외 직구 - 쇼핑에 애국심을 들먹이지 말라
2014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① 해외 직구 - 쇼핑에 애국심을 들먹이지 말라
“기다린 보람이 있죠. 절반 가격에 싸게 샀으니까요. 여자친구 때문에 알게 됐는데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어요. 제품을 받기까지 보름 정도 걸리는 게 흠이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 참을 수 있어요.” 직장인 박인수(30)씨는 12월 초 미국 쇼핑업계의 최대 할인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연말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를 맞아 평소 눈여겨보았던 패딩 점퍼를 구입했다. 국내 백화점에선 약 80만원 정도에 판매하는 이 제품을 박씨는 39만원에 샀다. 그는 “여자친구도 A브랜드 캐시미어 코트를 80만원에 구입했는데 국내에선 180만원 정도에 파는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해외 사이트를 더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를 포함해도 국내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이른바 해외 직구(직접 구매)다. 국내 유통 업체를 통하지 않고, 원하는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산다는 의미다. 해외 온라인쇼핑몰에서 제품을 선택한 뒤 해외 배송 업체를 통해 제품을 인도받는 방식이다. 2010년 약 3000억원 정도였던 국내 소비자의 해외 직접 구매액은 지난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10월까지 누적액만으로 1조3500억원에 달한다.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거센 직구 열풍이 불었던 걸 감안하면 올해 약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와 새해 맞이 할인 행사인 ‘박싱 데이’가 다가온다. 이 세일 기간을 노리는 해외 직구족들이 다시 한 번 통 크게 지갑을 열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해외 직구가 소비 패턴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할 만큼 열풍이 더욱 거셌다. 해외 직구족이 급증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경기 침체로 소득 정체가 장기화하면서 고객들의 합리적 소비 성향이 강해졌다. 둘째, 해외 직구로 할인 혜택을 경험한 사람이 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용 계층이 훨씬 넓어졌다. 우리나라보다 간편한 결제 환경과 전문 배송대행 업체의 증가, 해외 직구 관련 커뮤니티 활성화도 한 몫 했다.
해외 직구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지난 10월 결혼한 권지영(31)씨는 혼수용품 중 절반가량을 해외 직구로 구입했다. 스마트TV, 커피 머신, 전자레인지, 그릇 세트 등이다. 국내 매장에서 샀다면 카드 할인을 포함해 650만원 정도 들었겠지만 해외 직구로 450만원만 썼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매장을 돌며 무엇을 살지 결정한 뒤 해외 쇼핑몰에 있는 제품일 경우 그곳에서 구매했다”며 “200만원가량 절약했다는 기쁨에 귀찮다는 생각도 잊었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직구족의 구매 품목은 의류·건강식품 위주에서 유아용품·가전제품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대상 국가 역시 미국 중심에서 중국·일본·독일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 직구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81.6%에서 올해 60% 후반으로 떨어졌다.
이런 해외 직구의 증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소비시장 개방도가 매우 낮다. 2012년 기준으로 수입의존도(국내총생산 대비 수입 비중)가 9.6%나 되지만 대부분 원자재다. 가계의 전체 재화 소비 중에서 수입 소비재의 비중은 2000년대 초 10% 수준에서 2011년 20.6%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0%)의 절반 수준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 개방도가 낮으면 국내 시장에서 제품 다양성이 부족해 국내외 가격 격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외국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가격차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해외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 업체들도 우리나라 직구족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상당수 쇼핑몰에서 한국어 안내문을 내걸었고, 빠른 배송을 원하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전세기까지 띄워 배송기간 단축에 나서고 있다. 한국어 홈페이지 제작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018년 해외 직구액이 8조원에 달하고 10조원도 금방 넘어설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가뜩이나 내수 침체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유통 업계는 시장 규모가 줄어들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12월 12일 11번가·롯데닷컴 등 국내 인터넷 쇼핑몰 10곳이 손 잡고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연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이날 각 쇼핑몰은 아이폰6과 같은 최신 스마트폰이나 패딩 점퍼 등을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나쁠 게 없는 행사였지만 의외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렇게 할인된 가격에 팔 수 있는데 이제껏 폭리를 취해온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실제로 해외 직구의 증가는 상당수 소비자가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던 유통 마진의 실체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런 소비자가 늘면 해외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굳이 해외 사이트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사이트가 익숙하지 않고, 배송 기간도 한참 더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격의 문제다. 국내 유통 업체들이 해외 직구 열풍을 계기로 가격 정책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손보지 않으면 소비자의 해외 이탈은 더욱 빨라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통 과정이 줄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건 확실하지만 해외 직구를 할 땐 유의할 점도 많다.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관세다. 해외 직구 때엔 제품 가격이 15만원 미만(원화 환산)일 때만 관세가 면제된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미국은 면세 한도가 200달러(약 22만원)다. 이 면세 한도에는 배송비도 포함된다. 상품마다 다른 관세율과 무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제품의 관세가 비싸다. 싸다고 덥석 샀다간 관세 때문에 덤터기를 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서비스도 문제다. 일단 국내에서 구입할 때와 달리 교환이나 애프터서비스(AS)가 쉽지 않다. 특히 의류를 구입할 땐 사이즈를 잘 살펴야 한다. 국내와 사이즈 표기법 자체가 다른데다 서구인의 체형에 맞춘 옷이 많다. 배송 중에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대처가 쉽지 않다. 카드로 결제할 때 원화가 아닌 현지 통화가 유리하다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대부분 둘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데 원화로 결제하면 해당 가맹점은 결제 대금을 현지 통화로 바꿔 비자·마스타 등에 청구한다. 비자·마스터는 다시 달러로 바꿔 국내 카드사에 대금을 청구하기 때문에 환전 수수료가 2~3번 붙을 수 있다.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 할 때는 관세나 배송료, 대행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인지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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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해외 직구(직접 구매)다. 국내 유통 업체를 통하지 않고, 원하는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산다는 의미다. 해외 온라인쇼핑몰에서 제품을 선택한 뒤 해외 배송 업체를 통해 제품을 인도받는 방식이다. 2010년 약 3000억원 정도였던 국내 소비자의 해외 직접 구매액은 지난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10월까지 누적액만으로 1조3500억원에 달한다.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거센 직구 열풍이 불었던 걸 감안하면 올해 약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와 새해 맞이 할인 행사인 ‘박싱 데이’가 다가온다. 이 세일 기간을 노리는 해외 직구족들이 다시 한 번 통 크게 지갑을 열 것으로 보인다.
의류·건강식품에서 유아용품·가전으로 확대
해외 직구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지난 10월 결혼한 권지영(31)씨는 혼수용품 중 절반가량을 해외 직구로 구입했다. 스마트TV, 커피 머신, 전자레인지, 그릇 세트 등이다. 국내 매장에서 샀다면 카드 할인을 포함해 650만원 정도 들었겠지만 해외 직구로 450만원만 썼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매장을 돌며 무엇을 살지 결정한 뒤 해외 쇼핑몰에 있는 제품일 경우 그곳에서 구매했다”며 “200만원가량 절약했다는 기쁨에 귀찮다는 생각도 잊었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직구족의 구매 품목은 의류·건강식품 위주에서 유아용품·가전제품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대상 국가 역시 미국 중심에서 중국·일본·독일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 직구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81.6%에서 올해 60% 후반으로 떨어졌다.
이런 해외 직구의 증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소비시장 개방도가 매우 낮다. 2012년 기준으로 수입의존도(국내총생산 대비 수입 비중)가 9.6%나 되지만 대부분 원자재다. 가계의 전체 재화 소비 중에서 수입 소비재의 비중은 2000년대 초 10% 수준에서 2011년 20.6%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0%)의 절반 수준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 개방도가 낮으면 국내 시장에서 제품 다양성이 부족해 국내외 가격 격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외국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가격차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해외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 업체들도 우리나라 직구족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상당수 쇼핑몰에서 한국어 안내문을 내걸었고, 빠른 배송을 원하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전세기까지 띄워 배송기간 단축에 나서고 있다. 한국어 홈페이지 제작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018년 해외 직구액이 8조원에 달하고 10조원도 금방 넘어설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가뜩이나 내수 침체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유통 업계는 시장 규모가 줄어들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12월 12일 11번가·롯데닷컴 등 국내 인터넷 쇼핑몰 10곳이 손 잡고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연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이날 각 쇼핑몰은 아이폰6과 같은 최신 스마트폰이나 패딩 점퍼 등을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나쁠 게 없는 행사였지만 의외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렇게 할인된 가격에 팔 수 있는데 이제껏 폭리를 취해온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실제로 해외 직구의 증가는 상당수 소비자가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던 유통 마진의 실체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런 소비자가 늘면 해외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굳이 해외 사이트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사이트가 익숙하지 않고, 배송 기간도 한참 더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격의 문제다. 국내 유통 업체들이 해외 직구 열풍을 계기로 가격 정책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손보지 않으면 소비자의 해외 이탈은 더욱 빨라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 싸지만 관세 등 따져볼 부분도 많아
서비스도 문제다. 일단 국내에서 구입할 때와 달리 교환이나 애프터서비스(AS)가 쉽지 않다. 특히 의류를 구입할 땐 사이즈를 잘 살펴야 한다. 국내와 사이즈 표기법 자체가 다른데다 서구인의 체형에 맞춘 옷이 많다. 배송 중에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대처가 쉽지 않다. 카드로 결제할 때 원화가 아닌 현지 통화가 유리하다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대부분 둘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데 원화로 결제하면 해당 가맹점은 결제 대금을 현지 통화로 바꿔 비자·마스타 등에 청구한다. 비자·마스터는 다시 달러로 바꿔 국내 카드사에 대금을 청구하기 때문에 환전 수수료가 2~3번 붙을 수 있다.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 할 때는 관세나 배송료, 대행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인지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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