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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내전의 진정한 승자는?

우크라이나 내전의 진정한 승자는?

도네츠크 부근 페스키 마을에서 경계근무 중인 자원부대 대원.
AK 소총을 든 앳된 군인은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우의를 입은 그 아이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군모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내 여권을 들고 흔들었다. “영국이군.” 그가 말했다. “영국에서 왔어.”

우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고속도로의 친러시아 반군 바리케이드에서 검문을 받았다. 그곳엔 감독하는 어른 군인이 없는 듯했다. 여윈 그 아이는 9월의 폭우 아래 내 여권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 더 어린 동료들은 부근의 모래주머니 위에 쳐진 방수포 아래 옹송그리며 모여 있었다. 우리를 검문하는 아이 군인은 기껏해야 20세 정도의 깡마른 농촌 청소년이었다. 천진하게 생긴 얼굴은 미소를 띠어야 제격이지만 그의 입은 보기 싫게 뿌루퉁했다.

“당신네 나라의 대니얼 래드클리프(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에게 전하시오.”

그 어린 반군은 따분해 죽겠다는 듯이 살의있는 권태감을 비치며 우리 차에 기댔다.

“나도 과거엔 해리포터를 좋아했다고 그에게 전해달란 말이오. 그런데 그가 마약중독자라는 기사를 읽었지. 내가 크게 실망했다고 그에게 전하시오.”

“유감이군…”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닌 데…”

그 아이는 콧방귀를 뀌며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삐뚜름하게 치켜 올렸다. 내 여권과 기자 등록증을 돌려주며 “하지만 난 기사에서 그렇게 읽었거든요”라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답할지 잠시 생각했다. “아니야. 정말인데 자네가 읽은 건 오보야.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마약쟁이가 아니야.”

그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내 말을 믿어주고 싶지만 자신이 더 잘 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운전기사와 나에게 도네츠크로 가도 좋다고 손짓했다. 그러곤 노변의 축 처진 방수포 텐트 안으로 돌아갔다.

불쌍한 친구군… 나는 생각했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생각하던 해리포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다 자라나자 세상이 자신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느꼈다. 지난해 9월만 해도 그는 아주 다른 나라에 살았다. ‘우크라이나’로 불리던 나라였다. 화합이 잘 됐다고는 말 못해도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그러다가 2013년 11월 소규모 시위대가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당시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유럽연합(EU)이 제안한 협력협정에 서명을 거부하는 것에 항의했다. 그들은 그 광장의 이름을 따 자신들의 운동을 ‘유로마이단’이라고 불렀다. 그때만 해도 그들의 시위는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상전벽해
자가선포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서 대형 깃발이 운반되고 있다
도네츠크 공항 부근의 불에 탄 터미널 건물 앞에 로켓 튜브가 눈 속에 꽂혀 있다
그러나 6개월 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전쟁에 돌입했다. 야누코비치와 그의 정부(情婦)는 해외로 탈출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에서 그런 영토 강점은 처음이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도 ‘인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등을 돌리고 러시아군과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의 지원을 받았다. 키예프 중심가는 수많은 시위대와 경찰의 끊임없는 충돌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이 반군의 미사일로 격추되면서 298명이 숨졌다.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이 내전으로 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모든 사태의 결과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국가’로서 자립할 수 있게 됐다. 소련에서 독립한 후 23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서쪽의 이웃나라이자 한때 우크라이나를 지배했던 폴란드처럼 법을 준수하는 유럽국이 돼야 할지 아니면 되살아난 러시아 제국 안에서 도둑정치를 일삼는 독재자 나라인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의 길을 따라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 문제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푸틴이 원했듯이 러시아계가 다수인 크림반도와 도네츠크, 루한스크가 사실상 떨어져 나가면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없다. 지난 10월 말 친유럽 정당들이 우크라이나 의회를 장악했다. 동시에 유럽연합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일시적일지는 모르지만 러시아를 제재하고 우크라이나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는데 과감히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동부를 차지하려는 전쟁이 계속됐다. 경제가 비틀거렸다. 우크라이나의 극단 국수주의자들은 최근의 선거에서 약진하진 못했지만 무장을 갖춘 ‘애국 민병대’를 조직했다. 유고슬라비아처럼 나라가 쪼개지는 대재앙을 초래할 만한 일일지 모르지만 대다수 우크라이나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희망에 차 있다. 록밴드 다크 도터스(Dakh Daughters)의 루슬라나 하지포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야 확실한 정체성을 찾았다.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이제 러시아의 암캐가 아니다.”

두 번째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의미가 더 크다. 세계적인 재앙을 불러올지 모르는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위기 때문에 러시아 자체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불과 몇 달 만에 예전의 더 사악한 러시아로 되돌아갔다.
 다시 찾은 도네츠크
도네츠크의 친러시아 반군 진영에는 세 가지 깃발이 있다. (위부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깃발, 노보로시야 깃발, 러시아정교군 깃발이다.
우리는 과거 해리포터의 팬이었다는 반군 소년병을 멀리 뒤로 하고 경운기로 갈아 놓은 넓은 들판을 통과했다. 초콜릿처럼 검고 찐득거리는 땅이었다. 돈 분지(Don Basin)였다. 반군이 장악한 이곳은 토지가 비옥한 농업 지역이다. 가을의 미국 동북부처럼 아름답고 황금빛이었다.

다음 검문소에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NR)의 이미지가 넘쳐났다. 검은색, 푸른색, 붉은색의 삼색기는 단명한 도네츠크-크리보로그 공화국 깃발에서 따왔다. 1918년 제정 러시아가 혁명으로 붕괴했을 때 잠시 독립을 선언했던 공화국이다. 새로 디자인된 노보로시야(Novorossiya, 신러시아) 깃발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깃발에서 따온 게 분명해 보였다. 노보로시야는 제정 러시아가 예카테리나 2세 시절 정복한 우크라이나 남부와 서부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금 크렘린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포함하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노보로시야로 부른다. 그외에도 피처럼 붉은색을 바탕으로 대형 금메달 속에 비잔틴 양식의 그리스도 얼굴이 들어 있는 깃발도 있다. 깃발 하나는 혁명을 상징하고, 또 하나는 러시아 제국을 상징하고, 나머지 하나는 러시아정교의 단호한 신을 상징한다. 우리는 계속 차를 몰아 간간이 광재 더미와 탄갱모가 보이는 평지를 통과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도네츠크 시가지는 섬뜩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내전 이전엔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고 한때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 중 하나였다. 중앙 대로 위에 걸린 거대한 게시판은 지난 4월 열린 콘서트를 광고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광고판에서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휴전 중인 지역인데도 포격이 잦았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9월 중순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했지만 몇 주가 지난 뒤에도 도네츠크 중심부에선 거의 온종일 포성이 울려 퍼졌다. 도네츠크 공항은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반군은 그곳에 포격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군도 도네츠크 시내를 향해 포탄과 미사일을 쏘며 반격을 가했다. 공항 건물 지하엔 1960년대 소련 벙커와 터널이 토끼굴처럼 만들어져 있다. 공항의 우크라이나군은 반군의 포격이 너무 심할 때면 곡사포와 함께 건물 아래의 터널로 퇴각한다. 저편엔 유리와 강철로 건설된 우아한 신공항 청사가 가을비와 포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도네츠크의 정부청사는 바람이 거센 광장 중앙에 서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돌출된 콘크리트 현관 아래 시민 스물댓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반군 지휘관이 민원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는 즉석에서 지시를 내렸다. “210번 사무실로 가서 줄을 섰다가 신청서에 서명하시오. … 그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니 다음주에 다시 오시오.”

공공장소에는 분무 페인트 낙서가 가득했다. 애국심에 불탄 연인 한 쌍은 이렇게 낙서했다. “레나+파샤 = ♥ 러시아!!!!” 캅카스 출신의 반군 자원병들(어쩌면 용병들)도 벽에 족적을 남겼다. 한 벽에는 “체첸은 도네츠크를 지지한다”고 적혀 있었다.

깡마른 청년 세르게이 페도렌코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가 “선전과 선동 전문가”로 반군 행정부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담배를 피우려면 남자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우겼다. 깨진 유리창, 어질러진 사무실, 새까맣게 탄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건전한 생활을 원하는 반군 지도자들은 금연을 엄격히 지시했다.

페도렌코에게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원치 않지만 대안이 없다. 키예프 시민이 마이단에서 깃발을 흔들며 뛰어다니는 동안 도네츠크에 있는 우리는 묵묵히 일만 했다. 과거 우리는 언제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장을 하고 격분해서 우리 땅에 들어오자 나는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자치권이었다. 이곳은 우리의 마이단이다. 다만 우리는 키예프를 장악하려고 군대를 보내지 않은 게 다를 뿐이다.”

청사 로비에 내려가자 민원인들이 뒤로 한참 물러나 있었다. 반군 거물들이 회의에 참석하려고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과 경호원들은 용모를 다듬느라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게 분명했다. 가죽 반장갑과 미제 고무 무릎보호대, 녹색 두건, 대가 휘어진 선글라스가 유행인 모양이었다. 젊은 지휘관들은 온라인 일인칭 슈팅게임 ‘콜 오브 듀티’의 팬, 나이든 지휘관들은 소련 시절 전쟁 영화의 팬인 듯했다. 그들은 무릎 아래를 홀친 헐렁한 반바지에 가죽 벨트, 검정색 롱부츠를 착용했다.
 아바나의 추억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사조직이 도네츠크 중앙광장에서 입대자 지원을 받고 있다.
밤이 깊어가자 깨끗이 청소된 거리가 11시 통금에 맞춰 텅 비었다. 불빛이 보이는 창문은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쿠바를 테마로 한 술집 아바나 바나나를 찾아갔다. 실내 장식은 슬라브식과 하와이식을 섞어 놓은 듯했다. 도네츠크 출신의 가장 유명한 작가 표도르 베레진이 무장 경호원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베레진은 22권짜리 미래형 군사 공상과학 소설을 펴냈다. 새로 활력을 찾은 소련과 타락한 미국 사이의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지난 4월부터 베레진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NR)의 국방 담당 부장관으로 일한다. 50대의 나이에 깨끗하게 다듬은 백발 수염을 자랑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이 터졌을 때 군 지휘관이 되고 싶은지 작가가 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난 4월 러시아로 도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종이 위에서 만이 아니라 실제의 세상에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 싶었다.”

그의 견해 중 일부는 좋게 말해 상궤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우리 모두는 복잡한 프로그램이 조종하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파시즘은 진보주의의 극단적인 차원”이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자원 쟁취를 위해 서서히 펼쳐지고 있는 세계 전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제3차 세계대전은 2001년 9월 11일 시작됐다. 그때 제국주의자들은 지구상의 천연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나라든 상관하지 않고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그 전쟁이 이라크에서 시작돼 시리아, 리비아로 번졌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도달했다. 러시아만이 그런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 러시아는 팔짱을 끼고 인내심 있게 앉아 ‘안돼!’라고 말한다.”

나중에 그의 책을 몇 권 읽고 알게 됐지만 베레진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방대한 규모의 세계대전이다. 섬뜩하게도 2009년 펴낸 소설의 제목은 ‘2010년의 전쟁(War of 2010)’이다. 또 ‘우크라이나 전선(Ukrainian Front)’은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되는 여객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예언적인 소설에서 베레진은 크림반도의 분쟁으로 촉발되는 세계대전을 그린다.

베레진은 푸틴보다 두 살 아래로 올해 60세다. 그의 세대가 대개 그렇듯이 베레진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해 양면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며 소련의 붕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소련은 1930년대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 희생은 정당화됐다. 1970년대에 우리가 어떠했는지 돌아보라. 모두가 필요한 것을 가졌고, 누구도 일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으며, 전부 다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었다. 따라서 1930년대에 대한 역사적 정당화가 이뤄졌다고 본다. 그러나 1990년대 소련 붕괴 당시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건 전적으로 부당한 학살이었다.”

이제 노보로시야의 생성으로 그는 품위와 공정성이 보장됐던 소련의 전성기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을 기회가 왔다고 믿는다. “우리는 노변에 설치됐던 슬롯머신을 전부 부쉈다”고 베레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을 엄하게 다뤘다. 그들에게 우리 군을 위해 참호를 파도록 했다. 이전엔 경찰에게 뇌물을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모델에선 개인보다 사회가 먼저다. 우리는 썩어빠진 서방의 가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린 동성 결혼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졸부들의 세상
포격전 중인 도네츠크 공항의 관제탑 위에 우크라이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10월 17일)
전시 경제의 수요 때문에 도네츠크를 탈출한 사업가와 신흥부자의 재산은 전부 몰수되고 있다. 전투가 이 지역의 광업과 기반시설을 손상시켰지만 베레진은 도네츠크가 머지않아 “위대한 금속 공화국”이 되리라 낙관했다. 아직도 우크라이나의 손에 들어 있는 항구 마루이폴만 빼앗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마루이폴과 도네츠크 공항을 탈환할 것이다. 이제야 싸움을 시작했다. 우리 선대는 파시스트들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라마다인 호텔의 바는 만원이었다. 멀리 한 구석에 헐렁한 셔츠와 운동복 바지 차림의 뚱뚱한 남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물담배를 주문했다. 모스크바에서 유행한 물담배가 지금은 도네츠크에서 최고 인기인 듯했다. DNR의 수석 각료인 그는 이전에 사업으로 성공했다. 그의 이전 경호원은 지금 노보로시야군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사병(私兵)이다.

그는 몇 주 전부터 시작된 로맨스를 즐기고 있었다. 30대의 금발 미녀가 그의 친한 친구다. 그녀는 은 장식이 달린 신축성 있는 1980년대 풍의 하이웨이스트 바지 차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 역시 복서 출신 사업가로 성공해 독자적인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다. DNR의 교도 당국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가끔씩 라마다인 호텔 바를 찾는다. 그럴 때면 머리 잘 돌아가는 고객들은 잽싸게 계산을 치르고 자리를 뜬다.

그러나 그날 밤은 그가 바에 오지 않았다. 이 불운의 연인들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서로 정답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서 한 명이 노키아 휴대전화가 가득한 나일론 백을 뒤적거렸다. 모든 전화기에는 라벨이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선불 전화였다. DNR은 범죄 드라마에서 보안 기술을 배운 듯했다.

“새 보스를 소개합니다. 근데 옛 보스와 똑같죠.” 한 미국인 동료가 신랄한 농담을 던졌다. “이곳 사회는 세 부류가 지배한다. 옛 소련의 관리자 부류,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지방 범죄자 부류, 그리고 러시아의 군사정보원 부류가 그들이다.”

그날 밤엔 두 번째 부류만이 확실히 보였다. 범죄자들 말이다. 베레진 같은 정직한 소련파는 라다마인 바의 8달러짜리 맥주를 마실 형편이 되지 않는다. 또 이곳의 러시아인들은 금욕적이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기자들과 부딪히기를 싫어한다.

노보로시야의 혁명에서 진정한 승자는 그런 현지의 배부른 자본가들이다. 러시아는 손해만 봤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개입으로 국제적인 ‘왕따’가 됐고 국제 제재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결딴나기 직전이다. 우크라이나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분열됐다(물론 우크라이나는 그 경험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러시아보다는 크다). 그리고 도네츠크 주민들은 연료와 식량이 부족해 춥고 배고픈 겨울을 맞고 있다. 국수주의적 말잔치와 공허한 약속만이 난무한다.

노보로시야 혁명은 젊음에 대한 늙음의 승리요, 현명함에 대한 우둔함의 승리다. 다시 말해 과거가 미래를 물리쳤다.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자가반복되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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