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어디로-2기 아베노믹스의 미래는? | 선거에선 이겼지만 경제 성적표는…
세계 경제는 어디로-2기 아베노믹스의 미래는? | 선거에선 이겼지만 경제 성적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1월 18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극약처방을 내놨다. 당초 2015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을 1년 6개월 연기하고 11월 21일 국회를 해산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로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할 기회를 잡았지만, 소비세 인상으로 다시 경기가 후퇴할 위험이 있어 연기를 결정했다”면서 “중요 정책 변경인 만큼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한 선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4년 12월 26일 총리 취임 2주년을 맞은 그는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던져 장기 집권의 포석을 확실하게 깔았다. 중의원 해산에 따라 치러진 12·14 총선에서 연립여당(자민·공명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참의원 포함 양원 ‘여대야소’ 구도를 공고히 했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결정했을 때 대의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아베노믹스 밖에 희망이 없다는 주장이 먹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 금융완화와 재정 확대,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의 명암은 뚜렷하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아베노믹스의 경제 성과를 3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를 통한 돈 풀기와 활력을 찾은 금융시장, 덩달아 개선된 고용시장 등이다. 일본 정부의 공격적인 국채 매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일본의 금융시장은 활기를 나타냈다. 2013년 4월 이후 닛케이 지수는 40% 급등했고 엔화는 달러 대비 25% 떨어졌다. 고용시장의 수혜도 컸다. 2014년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대비 구인 비율)은 1.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6년 수준을 회복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골드먼삭스는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용 사정이 아무리 좋아져도 이것이 소득 증가로 연결되지 않으면 일본인들의 체감 경기는 회복되기 어렵다. 일본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2014년 11월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2.8% 줄었다고 밝혔다.
아베노믹스 2기 성공의 핵심 과제는 뭘까? 우선, 소비세 인상의 후유증을 극복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추가 인상은 연기했지만 기존 인상분의 여파는 만만찮았다. 일본은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했다. 잘 나가던 일본 경제가 다시 주저앉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사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소비세 인상이 일본 경기 회복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지갑을 닫아 버렸다. 소비 지출과 투자가 모두 쪼그라들었다. 1997년 소비세 인상 때보다 경기 둔화 현상이 훨씬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 탓에 1분기 성장 서프라이즈(1.6% 성장)를 뒤로 하고 일본의 2분기 성장률은 -1.9%를 기록했다. 3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였다.
일본은 세계 최대 국가 부채국이다. 공공 부채가 GDP의 244%(IMF 추산)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1경을 넘는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부채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지만 소비세 인상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소비 감소 효과다. 세금이 올랐으니 제품 가격이 오른다. 사는 사람 입장에선 덜 사거나 안 사고 싶다. 필수품 소비엔 큰 변동이 없겠지만 선택적 소비에선 구매력 감퇴가 강하게 나타난다. 가전·자동차 등 사용 기간이 긴 소비재 분야와 주택 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자동차의 교체 수요 감소는 철강·화학 등 소재 업종의 생산 조정에 영향을 미치고 제조 업체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한 마디로 산업·내수·수출 전반에 악영향이 크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려는 시점에 소비세 인상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일본은 1997년 소비세 인상 이후 급격한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이런 아픔에도 소비세 인상을 강행했다가 다시 호되게 당한 것이다.
수출 증가 여부도 관심사다. 일본은 엔화 약세 속에서도 29개월째 무역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 초 1달러에 85엔 정도였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 110엔선이다. 추가 금융 완화에 따라 2015년 상반기에도 120엔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단기적으로 수입액(수입가격x수입량)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수출액(수출가격x수출량)은 하락해 무역수지가 악화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격경쟁력 변화에 따라 수출 물량 조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이른바 J커브효과다. 이 이론이 통한다면 2015년부터 본격적인 수출 개선 효과를 볼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일본의 수출 부진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다. 우선 제조 업체 상당수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장기간 엔고에 시달려온 일본 기업은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지산지소 원칙’을 택했다. 일본 수출의 버팀목인 자동차만 봐도 그렇다. 2013년 일본 자동차 제조사 7곳의 수출은 467만대에 그쳤다. 2008년 672만대보다 30%나 감소한 수치다. 1위 도요타의 해외 생산 비중은 2001년 34.7%에서 2013년 62.2%로 늘었고, 혼다와 닛산은 80%를 넘어선다. 일본 자동차가 해외에서 잘 팔려도 수출엔 큰 영향이 없다. 제조 업체가 한번 해외 생산을 결심하면 쉽게 철수하기 어렵다. 실질임금 증가도 관전 포인트다. 아베노믹스 초기 일본 정부는 기업의 이익이 늘면 임금 인상과 소비 증가에 따른 내수 성장이란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1단계는 성공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실적 개선이 고용 증가나 임금 인상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본급이 조금씩 오르는 추세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2013년 5월 이후 계속 마이너스다. 엔화 가치 하락과 소비세 인상 여파로 소비자물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임금 상승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까지 나서 “임금 인상이 없으면 경제의 선순환을 끌어낼 수 없다”며 기업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내년에 임금이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은 작다. 일본 기업들은 사업구조전환, 투자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경제에서 아베노믹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속절없이 침몰하느니 목숨을 건 최후의 탈출 작전을 감행하자는 사회적 합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구조개혁(임금상승 포함)이란 세 번째 화살이 과녁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현금을 두둑이 쌓아두고 엔저 혜택을 덤으로 누리고 있는 기업과 각 산업·유통 부문 등의 기득권자들은 ‘철밥통’을 지키려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들과 강고한 커넥션을 맺고 있는 정치권도 따지고 보면 한통속이다. 말로만 개혁을 외칠 뿐 행동은 없다. 이래저래 일본경제는 2015년에도 침울한 흐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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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6일 총리 취임 2주년을 맞은 그는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던져 장기 집권의 포석을 확실하게 깔았다. 중의원 해산에 따라 치러진 12·14 총선에서 연립여당(자민·공명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참의원 포함 양원 ‘여대야소’ 구도를 공고히 했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결정했을 때 대의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아베노믹스 밖에 희망이 없다는 주장이 먹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 금융완화와 재정 확대,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의 명암은 뚜렷하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아베노믹스의 경제 성과를 3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를 통한 돈 풀기와 활력을 찾은 금융시장, 덩달아 개선된 고용시장 등이다. 일본 정부의 공격적인 국채 매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일본의 금융시장은 활기를 나타냈다. 2013년 4월 이후 닛케이 지수는 40% 급등했고 엔화는 달러 대비 25% 떨어졌다. 고용시장의 수혜도 컸다. 2014년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대비 구인 비율)은 1.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6년 수준을 회복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중의원 선거 대승으로 아베 총리 장기 집권 전망
아베노믹스 2기 성공의 핵심 과제는 뭘까? 우선, 소비세 인상의 후유증을 극복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추가 인상은 연기했지만 기존 인상분의 여파는 만만찮았다. 일본은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했다. 잘 나가던 일본 경제가 다시 주저앉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사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소비세 인상이 일본 경기 회복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지갑을 닫아 버렸다. 소비 지출과 투자가 모두 쪼그라들었다. 1997년 소비세 인상 때보다 경기 둔화 현상이 훨씬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 탓에 1분기 성장 서프라이즈(1.6% 성장)를 뒤로 하고 일본의 2분기 성장률은 -1.9%를 기록했다. 3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였다.
일본은 세계 최대 국가 부채국이다. 공공 부채가 GDP의 244%(IMF 추산)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1경을 넘는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부채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지만 소비세 인상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소비 감소 효과다. 세금이 올랐으니 제품 가격이 오른다. 사는 사람 입장에선 덜 사거나 안 사고 싶다. 필수품 소비엔 큰 변동이 없겠지만 선택적 소비에선 구매력 감퇴가 강하게 나타난다. 가전·자동차 등 사용 기간이 긴 소비재 분야와 주택 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자동차의 교체 수요 감소는 철강·화학 등 소재 업종의 생산 조정에 영향을 미치고 제조 업체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한 마디로 산업·내수·수출 전반에 악영향이 크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려는 시점에 소비세 인상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일본은 1997년 소비세 인상 이후 급격한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이런 아픔에도 소비세 인상을 강행했다가 다시 호되게 당한 것이다.
수출 증가 여부도 관심사다. 일본은 엔화 약세 속에서도 29개월째 무역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 초 1달러에 85엔 정도였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 110엔선이다. 추가 금융 완화에 따라 2015년 상반기에도 120엔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단기적으로 수입액(수입가격x수입량)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수출액(수출가격x수출량)은 하락해 무역수지가 악화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격경쟁력 변화에 따라 수출 물량 조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이른바 J커브효과다. 이 이론이 통한다면 2015년부터 본격적인 수출 개선 효과를 볼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일본의 수출 부진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다. 우선 제조 업체 상당수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장기간 엔고에 시달려온 일본 기업은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지산지소 원칙’을 택했다. 일본 수출의 버팀목인 자동차만 봐도 그렇다. 2013년 일본 자동차 제조사 7곳의 수출은 467만대에 그쳤다. 2008년 672만대보다 30%나 감소한 수치다. 1위 도요타의 해외 생산 비중은 2001년 34.7%에서 2013년 62.2%로 늘었고, 혼다와 닛산은 80%를 넘어선다. 일본 자동차가 해외에서 잘 팔려도 수출엔 큰 영향이 없다. 제조 업체가 한번 해외 생산을 결심하면 쉽게 철수하기 어렵다.
실질임금 늘지 않아 소비 발목
일본 경제에서 아베노믹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속절없이 침몰하느니 목숨을 건 최후의 탈출 작전을 감행하자는 사회적 합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구조개혁(임금상승 포함)이란 세 번째 화살이 과녁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현금을 두둑이 쌓아두고 엔저 혜택을 덤으로 누리고 있는 기업과 각 산업·유통 부문 등의 기득권자들은 ‘철밥통’을 지키려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들과 강고한 커넥션을 맺고 있는 정치권도 따지고 보면 한통속이다. 말로만 개혁을 외칠 뿐 행동은 없다. 이래저래 일본경제는 2015년에도 침울한 흐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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