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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쟁탈전 불붙나

북극 쟁탈전 불붙나

러시아의 신형 보레이급 핵잠수함이 지난해 대륙간 탄도 미사일 ‘불라바’ 발사 실험에 처음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러시아의 K-550 전략 핵잠수함 알렉산드르 네브스키호가 러시아와 북극 사이의 바렌츠해(북극해의 일부)로 잠수해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발사된 미사일은 예정된 노선을 따라 러시아 극동 캄차카 반도의 가상 목표를 명중시켰다. 두 척의 다른 러시아 핵잠수함(블라디미르 모노마흐·유리 돌고루키)도 지난가을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북극해를 항해 중인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쇄빙선은 배 앞머리를 튼튼하게 제작해 얼음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깬다.
러시아 핵잠수함은 오랫동안 북극해에서 활동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대서양과 태평양에 함대를 배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극 인근 지역에서 실시한 미사일 실험은 섬뜩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 실험에 성공한 핵잠수함 3대는 러시아의 신형 불라바 핵미사일을 20기까지 탑재할 수 있는 신세대 보레이급 핵잠수함에 속한다. 불라바 핵미사일은 미사일 1기에 핵탄두 10개 탑재가 가능하고 사정거리가 8000㎞(예를 들면 모스크바에서 시카고 사이의 거리)인 가공할 무기다. 옛 소련 국방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평화연구소 교수인 파벨 바에프는 “우크라이나사태 때문에 서방은 러시아가 핵병기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핵강대국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신형 보레이급 핵잠수함은 위력이 그처럼 막강하지만 러시아가 현재 교체 중인 노후한 잠수함 함대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진 않다. “물론 신형 핵잠수함 몇 대가 전력을 크게 향상시키지는 않는다”고 바에프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푸틴은 현재 핵무기로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서방은 말려들고 싶지 않은 위험한 게임이다. 푸틴은 그 게임을 먼저 시작하면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공식 핵무기를 보유한 5개국(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전부 병기고를 현대화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방대한 소련 시대 병기 재정비는 어느 나라보다 야심차다.

러시아는 그 외 다른 식으로도 북극에 발자국을 남기려고 애쓴다. 지난해 10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서부의 무르만스크주에서 극동의 추코트카주까지’ 4700㎞에 이르는 러시아의 북극 해안 전체에 군 부대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은 이미 추코트카의 케이프 슈미트와 북극해의 랭겔섬, 코텔니섬에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올해엔 케이프 슈미트에 공항을 개장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 초엔 핀란드 국경 부근의 알라쿠르티 기지를 재가동했고(병력 3000명 주둔), 12월 1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북극 사령부 창설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2007년 북극 해저에 국기를 꽂으면서 북극 경쟁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래 협력이 우선시됐다. “그러다가 러시아 때문에 다시 북극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바에프 교수가 말했다. “현재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인 최우선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북극에서 러시아가 이처럼 군사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푸틴이 북극 프로젝트를 좋아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북극은 세계에서 러시아가 스스로 강하다고 느끼는 지역 중 하나다.”

중국의 쇄빙선이 북극해 부근의 부빙 사이로 항해하고 있다. 중국도 북극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아울러 북극은 미개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아직 탐사되지 않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약 22%가 그곳에 매장돼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의 자원에 접근하기가 더 쉬워지면서 노르웨이의 스타토일부터 러시아의 로스네프트까지 에너지 거대기업이 그 지역에 눈독을 들인다. 또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 북극해 얼음이 녹으면서 일반 해운 사업도 더 활발해지고 있다. 2013년 러시아 쇄빙선의 호위로 선박 71척이 화물 140만t을 싣고 북극 북항로를 통과했다(상하이에서 함부르크까지 수송 시간을 30% 줄일 수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북극지정학 전문가 던컨 디플레지는 “그러나 국제 해운회사 대부분은 북극 항로를 선호하지 않으며, 중국이 새로 건조한 대형 컨테이너선은 그곳을 통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2013년 북극 항로를 통과한 화물선 71척은 같은 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1만6596척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북극권 안에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북극 항로 개척을 아주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브뤼셀에 개발 사무소를 열었다. 폴란드도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한 ‘고아크틱(GoArctic)’ 캠페인을 시작했다.

중동과 마찬가지로 북극 지역에서도 석유와 군대는 불가분의 관계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의 카타르지나 지스크 부교수는 “북극에선 러시아가 최강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르웨이도 그 지역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한다. 경제와 국방 정책에서 북극해가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캐나다도 그런쪽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미국의 관심도 계속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사태 발전을 예의주시한다. 특히 현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기지의 재가동은 겉보기보다 더 평화로울지 모른다. “북극 지역의 모든 활동은 어느 정도 안보의 측면이 필요하다”고 디플레지가 말했다. “북극 지역 대부분에서 경찰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군대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한 국가가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면 경쟁국들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 북극 지역에서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나토의 최초 북극 군사 작전센터가 위치한 노르웨이는 북쪽으로 병력과 장비를 전진 배치했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최근 북극 지역에 대한 우려 때문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자국 전투기를 이라크와 시리아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공습에 파견하지 않고 자국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노르웨이는 북극 지역 영해를 순찰할 최첨단 정찰선을 도입했다.

캐나다도 북극 주권 보호에 전력을 기울인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운데)가 북극과 가까운 최북단 누나부트를 방문했다.
만약 제2의 냉전이 시작된다면 발트해 연안만이 아니라 노르웨이와 러시아 사이의 북극해도 전선이 될 수 있다. 덴마크 국방대학 교장으로 북극 전문가인 닐스 왕 해군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북극해의 유럽 쪽에서 관측되는 러시아의 급증한 군사활동을 다른 북극해 국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덴마크도 우려한다. 재가동된 군사기지가 해안경비대 역할도 하지만 러시아는 필요하다면 북극 주권을 지키는데 그 기지를 활용하겠다고 세계와 자국민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극 지역의 바다와 육지에 매장된 자원은 이미 북극 연안 5개국(러시아·캐나다·덴마크·노르웨이·미국)에 배당됐다. 따라서 북극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면 다른 곳에서 일어난 분쟁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크다.”

덴마크도 북극 사령부를 창설했다. 오랫동안 북극 지역의 초강대국을 꿈꿔온 캐나다는 대형 국기를 단 해군 함정과 때로는 정부 각료들을 자주 그곳으로 보내 존재감을 알린다.

북극의 3분의 1은 육지, 3분의 1은 차가운 공해, 나머지 3분의 1은 대륙붕 위의 얕은 해수 지역이다. 북극 연안 5개국은 국제법에 따라 자국의 북극 해안에서 이어지는 해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인정 받는다. 그러나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그곳의 대륙붕은 확보 경쟁이 치열한 국제 부동산으로 떠올랐다. 최근 세르게이 돈스코이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대륙붕의 1.2㎢가 러시아에 속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돈스코이는 대륙붕 연장 승인을 올봄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신청하겠다고 밝혔다(2001년 신청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캐나다는 2013년 CLCS에 북극 대륙붕 1.7㎢에 대한 권리 승인 신청을 했다. 덴마크도 지난해 12월 초 유사한 내용의 신청서를 CLCS에 보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0~2035년 세계 에너지 수요의 35% 증가를 예측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북극 진출 경쟁은 어쩌면 당연할 일일지 모른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의 지스크 부교수는 “현재로서는 세계 전체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낮기 때문에 북극 에너지 탐사 투자가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계속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에너지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선 북극해에 진출해야 한다고 느끼고, 군사 주둔으로 그런 경제적 이익을 보호한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여기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런 경제적 잠재력이 북극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에너지를 개발하면 원유 유출이 “불가피해지고” 그런 상황이 오면 오염되지 않은 그 지역의 북극곰, 바다표범, 고래, 어류 등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친다. 그린피스의 북극 담당 찰리 크로닉은 “원유가 유출되면 누가 정화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때 석유회사 BP는 수백 척의 배와 수천 명의 근로자를 투입했다. 그런데도 멕시코만의 마콘도 유정에서 원유 400만 배럴이 유출됐다. 북극해에는 멕시코만에서 사용했던 기반시설과 장비가 전혀 없다. 따라서 원유가 유출돼 얼음 아래로 퍼져나가면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최북단 대륙인 북극은 여전히 극도로 추운 곳이다. 푸틴이 북극 사령부 창설을 발표했을 때 코텔니섬은 영하 30℃를 기록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난 바에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군의 기존 북극 기지는 소련식으로 건설돼 거주에 적합하지 않다. 겨울철엔 그곳에 도달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혹독한 기후에 비하면 나토가 북극에서 러시아에 가하는 위협은 별것 아니다. 현재로서는 자연 외에는 그곳의 러시아군을 위협하는 세력이 없다.”

바로 그 점이 골치 아픈 문제다. 진정한 적군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주변 국가들은 서로 대치하기보다 협력하고 에너지 자원과 수송에 관심을 갖는 게 훨씬 이롭다. 분쟁을 벌이게 되면 불확실한 보상을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북극에서 펼쳐지는 대결은 대부분 허세에 불과할 듯하다. 캐나다 퀘벡 소재 라발대의 북극 지정학 전문가인 프레데릭 라세르 교수는 “러시아 정부는 자국민에게 러시아가 아직 강대국임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도 북극에서 갖는 자국의 힘과 주권을 보여주기 위해 위협을 부풀리고 있다. 둘 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제스처일 뿐이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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