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의 전쟁
잠과의 전쟁
‘멘로파크의 마법사(Wizard of Menlo Park, 토머스 에디슨의 별명)’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래 우리는 체내 시계(body clock)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갈수록 잠을 더 적게 자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하루 8시간 수면을 취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지침은 1880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면서 생겨났다.
역사학자들은 전기조명이 생기기 전엔 대다수 사람이 잠을 많이 잤으며, ‘분할 수면(segmented sleep)’을 취했다고 믿는다. 분할 수면이란 해가 지면 몇 시간 잔 뒤 한밤중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먹고 마시고 기도하고 친구와 이야기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자는 수면 형태를 말한다. 수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A 로저 에키르크에 따르면 전기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전체 수면 시간이 짧아졌다.
지금도 우리는 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전쟁에서 여전히 우리가 승리한다. 최근 시카고대 연구팀은 장기간에 걸친 수면 패턴을 연구한 결과 미국인이 60년 전보다 1~2시간 적게 잔다고 결론지었다. 1970년대 미국인 대다수는 하룻밤에 7.1시간의 수면을 취했다. 지금은 평균 수면 시간이 6.1시간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그 잠이 전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계속 잠을 빼앗기고 있을까?
당연히 현대 기술이 그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화면은 전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한다. 절전 효과는 크지만 우리의 체내 시계를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의 찰스 체이슬러 수면의학 과장은 “이런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빛은 응축된 달빛과 같은 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푸른빛은 신체의 밤낮 주기를 관장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의 생산을 억제한다. 따라서 침대에서 역광을 발하는 기기로 글을 읽으면 잠들기가 더 어려워져 다음날 더 피곤해진다고 체이슬러는 설명했다.
그러나 수면 문제를 전부 푸른빛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 솔직하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에디슨 덕분에 해가 져도 자극이 멈추지 않는 세계를 창조해냈고 지금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 자극에 중독됐다.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메일, 트위터 계정,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확인해 새로운 정보 조각을 얻을 때마다 우리 뇌는 쾌락과 흥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흥건히 젖는다. 워싱턴대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전문가 캐시 질은 “문자 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을 볼 때마다 우리는 즉시 만족(instant gratification)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파민의 즉각적인 쾌감을 맛보려는 유혹은 의지력으로 억누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의지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잠들 시간이 지난 지 오래도록 침대에 앉아 이메일 수신함을 초초하게 확인한다.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우리 머리를 베개 위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극 중독이 그렇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중독 때문에 잠을 없애려는 우리의 노력은 초현실적 차원으로 진화한다. 과거엔 커피와 차로만 섭취했던 카페인이 이제는 온갖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피부에 뿌리면 졸음을 방지해주는 카페인 스프레이, 샤워할 때 잠을 확 깨워주는 카페인 비누, 신으면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카페인 스타킹, 양치할 때 잠을 깨워주는 치약 등. 카페인이 함유된 식품은 전부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하다. 맥주, 마시멜로, 막대 사탕, 생수는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오락용 각성제를 만들려는 사람은 대중이 카페인을 그토록 강렬히 원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약전(의약품의 제법·성능·품질·저장법을 알려주는 책)을 뒤지며 제품 개발에 전력을 쏟는다. 의약품과 식품보조제를 각성 음료 첨가제로 용도 변경한다는 뜻이다. 인기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Red Bull)은 과거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타우린(taurine, 동물 조직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의 일종)을 유명하게 만들면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한편 미군도 경두개 직류자극(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tDCS)을 연구한다. 뇌를 전기로 자극하면 군인들이 끊임없이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미 공군의 연구자 앤디 매킨리는 그 현상에 관한 논문의 공동 저자다. 그는 “30시간 동안 깨어 있도록 했을 때 민첩성 증진에 tDCS가 카페인의 두 배 효과를 냈다”고 논문에 적었다. “효과의 지속 시간도 두 배 이상이었다. 카페인의 효과는 두 시간 정도지만 tDCS의 효과는 약 6시간 지속됐다.”
잠을 원치 않는 대중을 위해 규제도 승인도 받지 않은 tDCS 기기가 이미 출시됐다. 최근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강력한 각성제 모다피닐(modafinil)도 시판 중이다. 미국에서 프로비질(Provigi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모다피닐은 원래 기면증(narcolepsy, 수면 발작) 같은 수면장애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래 그 각성제는 월스트리트 금융사 임원 등 24시간 활력을 원하는 ‘알파 메일(alpha male: 강한 이미지의 남성들)’들이 애용하고 있다. 미국 의학협회 저널(JAMA) 내과학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그 약의 허가용도 외 사용은 2003~2013년 15배 이상 늘었다.
게다가 ‘위버맨(Uberman)’ 수면법도 있다. 4시간마다 20분씩 수면을 취해 하루 두 시간만 자는 방식이다. 인간은 두 종류의 수면을 경험하지만 생존에는 그중 한 가지만 필요하다는 이론이 위버맨 수면법의 근거다. 우리가 꿈꾸는 수면 단계인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REM) 수면은 실험실 연구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쥐에게 REM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자 단 5주 만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수면 시간의 20%만 REM 수면에 할애한다. 대부분 우리는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선 급속안구운동이 없는 비(非)REM 수면을 거쳐야 한다. 과학자들은 비REM 수면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분할 수면 옹호단체 폴리페이직 소사이어티(Polyphasic Society)는 우리에겐 비REM 수면이 필요 없으며, 그 수면에 사용하는 시간은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위버맨 수면법으로 뇌의 수면 주기를 변경하면 비REM 수면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REM 수면으로 들어가 매일 금쪽 같이 귀중한 시간을 차곡차곡 비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위버맨 수면법을 택한 사람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 같은 대단찮은 신체적 스트레스로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요즘 잠과 전쟁을 치르는 수단은 위버맨 수면법 외에도 많다. 건강을 지키려면 하루 8시간 잠을 자야 한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근년 들어 CEO 증언, 라이프해킹(life-hacking, 일상적 활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자신을 개조하는 방법) 조언, 심지어 일부 과학 연구도 하루 5시간만 자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려 애쓴다.
작가 더글라스 해도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을 세웠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이 돈이라는 논리다. 해도는 기존 상업 광고를 뒤틀고 뒤집는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비영리 격월간지 애드버스터 최신호 기고문에서 요즘 우리가 적게 자는 것은 우리가 잠귀신(sandman)과 월츠를 추는 동안은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일반 여가 시간과 달리 잠자는 동안엔 다른 사람이 만든 제품을 소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거래 같은 경제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
잠을 잘 때 우리 몸과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기억을 저장한다, 뇌를 재구성한다, 에너지를 절약한다, 면역체계를 복구한다는 등 이론이 다양하다. 그러나 잠자는 동안 우리 몸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은 스마트폰 게임 캔디 크러시에서 추가로 삶을 구입하거나 뉴스위크를 위해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 수면은 ‘능률의 적’으로 인식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낭비되는 시간인 것이다.
기업가와 자본가는 그런 사실을 오래 전부터 잘 알았다. 산업혁명(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 시대에 커피와 차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근로시간이나 그 혁명이 초래한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톰 스탠디지가 저서 ‘역사 한 잔 하실까요?: 여섯 가지 음료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The History of the World in Six Drinks)’에서 논했다.
공장 소유주는 긴 근로시간으로 직원들이 지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수면 시간을 늘려주는 대신 공짜로 차를 제공했다. 스탠디지는 이렇게 썼다. “차는 오래고 지루한 근무시간 동안 근로자가 졸지 않게 해주고 빨리 움직이는 기계를 작동할 때 집중력을 강화해줬다. 공장 근로자는 잘 돌아가는 기계의 부품 역할을 해야 했다. 거기서 차는 공장이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해주는 윤활유였다.”
요즘은 상황이 그보다 더 나쁘다. 지금은 하루 24시간 호출이나 지시에 대기하는 것이 일반화된 세계다. 1992년 ‘과로하는 미국인(The Overworked American)’의 저자 줄리엣 쇼어는 1990년의 미국인은 1970년의 미국인보다 평균 한 달을 더 일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주목을 끌었다. 그때 이후로 근무시간은 더 길어졌다. 1990년과 2001년 사이 미국인의 근로시간은 한 해 1주가 더 늘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요즘 미국인은 집계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일한다. 미국인 약 700만 명이 현재 두어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런 사람들은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고 불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과 여가시간을 갖기 어렵다.
특히 교대근무제 근로자의 상황이 열악하다. 영국 국민건강 조사(The Health Survey for England)에 따르면 아침 7시에서 저녁 7시 사이의 12시간 이외의 시간에 일하는 영국인이 낮 시간대에 일하는 영국인보다 ‘병을 앓거나 비만’인 경우가 훨씬 많다. 직업·환경의학 저널(The Journal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실린 2014년 논문은 교대근무제가 치매에 걸릴 위험을 크게 높인다고 지적했다.
역시 밀레니얼 세대(1982~1997년 출생한 세대, Y세대라고도 한다)가 가장 취약하다. 2014년 웰스파고 은행의 의뢰로 해리스폴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밀레니얼 세대 중 40%가 시간제, 계약제, 임시직, 1회직으로 일하며 절반 이상이 저축을 못하고 급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영국 국민건강 조사에 따르면 교대근무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연령층은 현재 16~24세다. 미국 심리학회(APA) 2014년 논문은 현재의 세대 분류(밀레니얼, X, 베이비붐, 노년층) 중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으며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잠이 없는 세대가 돼 가는 중이다. X세대가 하룻밤 수면 시간이 가장 적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 18~33세의 약 3분의 1은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모든 일을 생각하느라”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약 3분의 1은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해”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X세대의 경우 그렇게 응답한 비율은 19%,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는 13%에 그쳤다.
그러니 에너지 드링크 제조업체가 젊은 층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것도 당연하다. ‘대학 시절 잠을 더 자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가 레드불의 광고 문구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심한 청년층을 상대로 하는 판촉은 큰 수익으로 이어졌다. 현재 세계 전체의 에너지 드링크 시장은 275억 달러(약 30조원) 규모이며 미국에서 에너지 드링크 소비는 1999년 이래 5000% 증가했다.
최근 들어 수면 관련 장애가 증가하고 있다. 나이 많은 근로자 사이에서 조금씩 늘고 있으며, 젊은 층에서 아주 흔해졌다. 잠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 수면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추악하게 변형돼 여러 면에서 충분히 잠을 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최근 실린 논문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유전자 700개 이상의 발현 수준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유전자 중 다수는 염증, 면역,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이 있다”고 PNAS 연구에 참여한 영국 서리대의 맬컴 본 섄츠 교수가 설명했다. 수면 부족과 인지 결손(병식 형성 장애부터 작업 기억 감퇴까지 다양하다)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도 수십 건이 넘는다. 본 섄츠에 따르면 그 외에도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사망률 증가, 특히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인식 기능 손상과 관련 있다.
뇌세포를 유지하는 데는 특히 REM 수면이 필요하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의 체이슬러는 “사람들이 평생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체내 세포 중 하나가 뇌세포”라고 말했다. “우리 기억을 저장하는 뇌세포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대체하기 어렵다.” 잠잘 때 우리 몸이 축적한 독소가 뇌에서 빠져나간다. 잘 알려진 악성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가 그중 하나다. 그 플라크가 쌓이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 수 있다.
갈수록 잠을 늦게 잘 수 있도록 해주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지 않고 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뇌를 전기로 자극하거나 하루 2시간만 자는 것이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히 잠을 줄여갈 수는 없다. 인간은 어느 정도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한 가지 해결책은 맞바꾸기 거래를 하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할 일을 16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압축적으로 해내고 나머지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 약’을 사용해 그런 거래를 하는 사람이 많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리탈린, 애더럴, 그리고 누트로픽 계열인 피라세탐, 옥시라세탐 같은 인지기능 항진제가 그런 약에 속한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스마트 약’ 사용이 대유행이다. 미국에선 아이비리그(8개 동부 명문 사립대) 학생 중 18%가 인지기능 항진제를 사용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여러 면에서 볼 때 그런 약의 사용은 양립이 불가능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과 ‘잠을 많이 자는 것’의 요구에 대한 섬뜩할 정도로 합리적인 대응이다. 커피나 콜라, 모다피닐과 달리 그런 약은 잠을 빼앗지 않고 능률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간주된다. 피라세탐을 복용하는 사람은 탈진이나 극도의 피로나 불길한 건강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축복받은’ 8시간 동안 달콤한 잠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초한 무한 생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사회 전체가 스마트 약을 복용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일까? 그런 약의 사용과 남용에 따르는 건강 위험이 아직 광범위하게 연구되진 않았지만 신경과학 프런티어 저널(Journal Frontiers in Systems Neuroscience)에 실린 2014년 논문은 인지기능 항진제의 장기 복용이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단기적인 생산성 제고의 대가는 장기적인 창의성과 지능의 저하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까다로운 윤리적 문제도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신경학 교수 앤전 채터지는 우리 사회가 “성취를 목표로 하는 군비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진 사람(스마트 약을 구입할 수 있고 기꺼이 복용하려는 사람)이 갖지 못한 사람(그런 약을 구입할 여력도 없고 복용할 생각도 없는 사람)을 밀어내는 상황을 가리킨다. 군비경쟁처럼 그런 상황도 위험한 극단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잠을 줄이려는 그들의 욕구도 솟구친다. 진정한 해결책은 우리의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일지 모른다. 독일에선 공무원에게 근무 시간 외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금지됐다. 브라질 의회는 2012년 퇴근 후 고용주로부터 전화나 이메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근로자는 초과근무 수당을 받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선 일부 진보적인 기업이 앞장섰다. 온라인 뉴스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사내에 낮잠방을 설치했고, 교육전문 회사 트리하우스는 주 4일 근무를 제도화했다.
이런 노력은 모두에게 이롭다. 생활·근로 조건 증진을 위한 유럽재단(European Foundation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의 생산성은 직원이 1주에 약 30시간 일할 때 가장 높다. 또 국제학술지 인지저널(Journal Cognition)에 실린 2010년 논문에 따르면 직장에서 낮잠을 자는 것 같은 짧은 휴식도 일 집중도를 크게 높인다. ‘더 적게 자고 더 많이 일하는’ 추세에 저항하기 위해 과학을 따르는 나라와 기업은 수면이 낭비되는 시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 이제 우리 모두 깨어나 잠이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됐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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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전기조명이 생기기 전엔 대다수 사람이 잠을 많이 잤으며, ‘분할 수면(segmented sleep)’을 취했다고 믿는다. 분할 수면이란 해가 지면 몇 시간 잔 뒤 한밤중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먹고 마시고 기도하고 친구와 이야기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자는 수면 형태를 말한다. 수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A 로저 에키르크에 따르면 전기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전체 수면 시간이 짧아졌다.
지금도 우리는 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전쟁에서 여전히 우리가 승리한다. 최근 시카고대 연구팀은 장기간에 걸친 수면 패턴을 연구한 결과 미국인이 60년 전보다 1~2시간 적게 잔다고 결론지었다. 1970년대 미국인 대다수는 하룻밤에 7.1시간의 수면을 취했다. 지금은 평균 수면 시간이 6.1시간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그 잠이 전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계속 잠을 빼앗기고 있을까?
당연히 현대 기술이 그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화면은 전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한다. 절전 효과는 크지만 우리의 체내 시계를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의 찰스 체이슬러 수면의학 과장은 “이런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빛은 응축된 달빛과 같은 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푸른빛은 신체의 밤낮 주기를 관장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의 생산을 억제한다. 따라서 침대에서 역광을 발하는 기기로 글을 읽으면 잠들기가 더 어려워져 다음날 더 피곤해진다고 체이슬러는 설명했다.
그러나 수면 문제를 전부 푸른빛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 솔직하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에디슨 덕분에 해가 져도 자극이 멈추지 않는 세계를 창조해냈고 지금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 자극에 중독됐다.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메일, 트위터 계정,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확인해 새로운 정보 조각을 얻을 때마다 우리 뇌는 쾌락과 흥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흥건히 젖는다. 워싱턴대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전문가 캐시 질은 “문자 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을 볼 때마다 우리는 즉시 만족(instant gratification)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파민의 즉각적인 쾌감을 맛보려는 유혹은 의지력으로 억누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의지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잠들 시간이 지난 지 오래도록 침대에 앉아 이메일 수신함을 초초하게 확인한다.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우리 머리를 베개 위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극 중독이 그렇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중독 때문에 잠을 없애려는 우리의 노력은 초현실적 차원으로 진화한다. 과거엔 커피와 차로만 섭취했던 카페인이 이제는 온갖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피부에 뿌리면 졸음을 방지해주는 카페인 스프레이, 샤워할 때 잠을 확 깨워주는 카페인 비누, 신으면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카페인 스타킹, 양치할 때 잠을 깨워주는 치약 등. 카페인이 함유된 식품은 전부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하다. 맥주, 마시멜로, 막대 사탕, 생수는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오락용 각성제를 만들려는 사람은 대중이 카페인을 그토록 강렬히 원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약전(의약품의 제법·성능·품질·저장법을 알려주는 책)을 뒤지며 제품 개발에 전력을 쏟는다. 의약품과 식품보조제를 각성 음료 첨가제로 용도 변경한다는 뜻이다. 인기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Red Bull)은 과거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타우린(taurine, 동물 조직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의 일종)을 유명하게 만들면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한편 미군도 경두개 직류자극(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tDCS)을 연구한다. 뇌를 전기로 자극하면 군인들이 끊임없이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미 공군의 연구자 앤디 매킨리는 그 현상에 관한 논문의 공동 저자다. 그는 “30시간 동안 깨어 있도록 했을 때 민첩성 증진에 tDCS가 카페인의 두 배 효과를 냈다”고 논문에 적었다. “효과의 지속 시간도 두 배 이상이었다. 카페인의 효과는 두 시간 정도지만 tDCS의 효과는 약 6시간 지속됐다.”
잠을 원치 않는 대중을 위해 규제도 승인도 받지 않은 tDCS 기기가 이미 출시됐다. 최근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강력한 각성제 모다피닐(modafinil)도 시판 중이다. 미국에서 프로비질(Provigi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모다피닐은 원래 기면증(narcolepsy, 수면 발작) 같은 수면장애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래 그 각성제는 월스트리트 금융사 임원 등 24시간 활력을 원하는 ‘알파 메일(alpha male: 강한 이미지의 남성들)’들이 애용하고 있다. 미국 의학협회 저널(JAMA) 내과학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그 약의 허가용도 외 사용은 2003~2013년 15배 이상 늘었다.
게다가 ‘위버맨(Uberman)’ 수면법도 있다. 4시간마다 20분씩 수면을 취해 하루 두 시간만 자는 방식이다. 인간은 두 종류의 수면을 경험하지만 생존에는 그중 한 가지만 필요하다는 이론이 위버맨 수면법의 근거다. 우리가 꿈꾸는 수면 단계인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REM) 수면은 실험실 연구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쥐에게 REM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자 단 5주 만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수면 시간의 20%만 REM 수면에 할애한다. 대부분 우리는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선 급속안구운동이 없는 비(非)REM 수면을 거쳐야 한다. 과학자들은 비REM 수면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분할 수면 옹호단체 폴리페이직 소사이어티(Polyphasic Society)는 우리에겐 비REM 수면이 필요 없으며, 그 수면에 사용하는 시간은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위버맨 수면법으로 뇌의 수면 주기를 변경하면 비REM 수면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REM 수면으로 들어가 매일 금쪽 같이 귀중한 시간을 차곡차곡 비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위버맨 수면법을 택한 사람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 같은 대단찮은 신체적 스트레스로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요즘 잠과 전쟁을 치르는 수단은 위버맨 수면법 외에도 많다. 건강을 지키려면 하루 8시간 잠을 자야 한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근년 들어 CEO 증언, 라이프해킹(life-hacking, 일상적 활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자신을 개조하는 방법) 조언, 심지어 일부 과학 연구도 하루 5시간만 자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려 애쓴다.
작가 더글라스 해도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을 세웠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이 돈이라는 논리다. 해도는 기존 상업 광고를 뒤틀고 뒤집는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비영리 격월간지 애드버스터 최신호 기고문에서 요즘 우리가 적게 자는 것은 우리가 잠귀신(sandman)과 월츠를 추는 동안은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일반 여가 시간과 달리 잠자는 동안엔 다른 사람이 만든 제품을 소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거래 같은 경제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
잠을 잘 때 우리 몸과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기억을 저장한다, 뇌를 재구성한다, 에너지를 절약한다, 면역체계를 복구한다는 등 이론이 다양하다. 그러나 잠자는 동안 우리 몸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은 스마트폰 게임 캔디 크러시에서 추가로 삶을 구입하거나 뉴스위크를 위해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 수면은 ‘능률의 적’으로 인식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낭비되는 시간인 것이다.
기업가와 자본가는 그런 사실을 오래 전부터 잘 알았다. 산업혁명(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 시대에 커피와 차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근로시간이나 그 혁명이 초래한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톰 스탠디지가 저서 ‘역사 한 잔 하실까요?: 여섯 가지 음료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The History of the World in Six Drinks)’에서 논했다.
공장 소유주는 긴 근로시간으로 직원들이 지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수면 시간을 늘려주는 대신 공짜로 차를 제공했다. 스탠디지는 이렇게 썼다. “차는 오래고 지루한 근무시간 동안 근로자가 졸지 않게 해주고 빨리 움직이는 기계를 작동할 때 집중력을 강화해줬다. 공장 근로자는 잘 돌아가는 기계의 부품 역할을 해야 했다. 거기서 차는 공장이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해주는 윤활유였다.”
요즘은 상황이 그보다 더 나쁘다. 지금은 하루 24시간 호출이나 지시에 대기하는 것이 일반화된 세계다. 1992년 ‘과로하는 미국인(The Overworked American)’의 저자 줄리엣 쇼어는 1990년의 미국인은 1970년의 미국인보다 평균 한 달을 더 일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주목을 끌었다. 그때 이후로 근무시간은 더 길어졌다. 1990년과 2001년 사이 미국인의 근로시간은 한 해 1주가 더 늘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요즘 미국인은 집계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일한다. 미국인 약 700만 명이 현재 두어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런 사람들은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고 불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과 여가시간을 갖기 어렵다.
특히 교대근무제 근로자의 상황이 열악하다. 영국 국민건강 조사(The Health Survey for England)에 따르면 아침 7시에서 저녁 7시 사이의 12시간 이외의 시간에 일하는 영국인이 낮 시간대에 일하는 영국인보다 ‘병을 앓거나 비만’인 경우가 훨씬 많다. 직업·환경의학 저널(The Journal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실린 2014년 논문은 교대근무제가 치매에 걸릴 위험을 크게 높인다고 지적했다.
역시 밀레니얼 세대(1982~1997년 출생한 세대, Y세대라고도 한다)가 가장 취약하다. 2014년 웰스파고 은행의 의뢰로 해리스폴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밀레니얼 세대 중 40%가 시간제, 계약제, 임시직, 1회직으로 일하며 절반 이상이 저축을 못하고 급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영국 국민건강 조사에 따르면 교대근무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연령층은 현재 16~24세다. 미국 심리학회(APA) 2014년 논문은 현재의 세대 분류(밀레니얼, X, 베이비붐, 노년층) 중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으며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잠이 없는 세대가 돼 가는 중이다. X세대가 하룻밤 수면 시간이 가장 적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 18~33세의 약 3분의 1은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모든 일을 생각하느라”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약 3분의 1은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해”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X세대의 경우 그렇게 응답한 비율은 19%,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는 13%에 그쳤다.
그러니 에너지 드링크 제조업체가 젊은 층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것도 당연하다. ‘대학 시절 잠을 더 자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가 레드불의 광고 문구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심한 청년층을 상대로 하는 판촉은 큰 수익으로 이어졌다. 현재 세계 전체의 에너지 드링크 시장은 275억 달러(약 30조원) 규모이며 미국에서 에너지 드링크 소비는 1999년 이래 5000% 증가했다.
최근 들어 수면 관련 장애가 증가하고 있다. 나이 많은 근로자 사이에서 조금씩 늘고 있으며, 젊은 층에서 아주 흔해졌다. 잠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 수면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추악하게 변형돼 여러 면에서 충분히 잠을 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최근 실린 논문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유전자 700개 이상의 발현 수준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유전자 중 다수는 염증, 면역,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이 있다”고 PNAS 연구에 참여한 영국 서리대의 맬컴 본 섄츠 교수가 설명했다. 수면 부족과 인지 결손(병식 형성 장애부터 작업 기억 감퇴까지 다양하다)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도 수십 건이 넘는다. 본 섄츠에 따르면 그 외에도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사망률 증가, 특히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인식 기능 손상과 관련 있다.
뇌세포를 유지하는 데는 특히 REM 수면이 필요하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의 체이슬러는 “사람들이 평생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체내 세포 중 하나가 뇌세포”라고 말했다. “우리 기억을 저장하는 뇌세포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대체하기 어렵다.” 잠잘 때 우리 몸이 축적한 독소가 뇌에서 빠져나간다. 잘 알려진 악성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가 그중 하나다. 그 플라크가 쌓이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 수 있다.
갈수록 잠을 늦게 잘 수 있도록 해주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지 않고 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뇌를 전기로 자극하거나 하루 2시간만 자는 것이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히 잠을 줄여갈 수는 없다. 인간은 어느 정도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한 가지 해결책은 맞바꾸기 거래를 하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할 일을 16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압축적으로 해내고 나머지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 약’을 사용해 그런 거래를 하는 사람이 많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리탈린, 애더럴, 그리고 누트로픽 계열인 피라세탐, 옥시라세탐 같은 인지기능 항진제가 그런 약에 속한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스마트 약’ 사용이 대유행이다. 미국에선 아이비리그(8개 동부 명문 사립대) 학생 중 18%가 인지기능 항진제를 사용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여러 면에서 볼 때 그런 약의 사용은 양립이 불가능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과 ‘잠을 많이 자는 것’의 요구에 대한 섬뜩할 정도로 합리적인 대응이다. 커피나 콜라, 모다피닐과 달리 그런 약은 잠을 빼앗지 않고 능률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간주된다. 피라세탐을 복용하는 사람은 탈진이나 극도의 피로나 불길한 건강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축복받은’ 8시간 동안 달콤한 잠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초한 무한 생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사회 전체가 스마트 약을 복용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일까? 그런 약의 사용과 남용에 따르는 건강 위험이 아직 광범위하게 연구되진 않았지만 신경과학 프런티어 저널(Journal Frontiers in Systems Neuroscience)에 실린 2014년 논문은 인지기능 항진제의 장기 복용이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단기적인 생산성 제고의 대가는 장기적인 창의성과 지능의 저하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까다로운 윤리적 문제도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신경학 교수 앤전 채터지는 우리 사회가 “성취를 목표로 하는 군비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진 사람(스마트 약을 구입할 수 있고 기꺼이 복용하려는 사람)이 갖지 못한 사람(그런 약을 구입할 여력도 없고 복용할 생각도 없는 사람)을 밀어내는 상황을 가리킨다. 군비경쟁처럼 그런 상황도 위험한 극단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잠을 줄이려는 그들의 욕구도 솟구친다. 진정한 해결책은 우리의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일지 모른다. 독일에선 공무원에게 근무 시간 외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금지됐다. 브라질 의회는 2012년 퇴근 후 고용주로부터 전화나 이메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근로자는 초과근무 수당을 받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선 일부 진보적인 기업이 앞장섰다. 온라인 뉴스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사내에 낮잠방을 설치했고, 교육전문 회사 트리하우스는 주 4일 근무를 제도화했다.
이런 노력은 모두에게 이롭다. 생활·근로 조건 증진을 위한 유럽재단(European Foundation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의 생산성은 직원이 1주에 약 30시간 일할 때 가장 높다. 또 국제학술지 인지저널(Journal Cognition)에 실린 2010년 논문에 따르면 직장에서 낮잠을 자는 것 같은 짧은 휴식도 일 집중도를 크게 높인다. ‘더 적게 자고 더 많이 일하는’ 추세에 저항하기 위해 과학을 따르는 나라와 기업은 수면이 낭비되는 시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 이제 우리 모두 깨어나 잠이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됐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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