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논란 - 대기업·중소기업 둘 다 싫다는데 왜?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논란 - 대기업·중소기업 둘 다 싫다는데 왜?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2월 24일 열린 제33차 동반성장위원회에서다. 지난해 말 적합업종 권고 기간이 만료된 77개 업종 가운데 두부·김치·플라스틱병 등 49개 업종이 재지정 됐다. 문구소매업 등 3개 업종은 신규 지정됐다. 지난 회의에서 새로 지정된 떡국떡 및 떡볶이떡, 보험대차 서비스업(렌터카)을 포함하면 신규 지정 업종은 총 5개다. 동반성장지수 평가를 받는 기업의 숫자도 지난해 132개에서 올해 151개로 늘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에선 금호석유화학·부영주택·OCI 등 5개 기업이 추가됐고, 중견기업(1차 협력사 포함) 중에선 다이소아성산업·도레이첨단소재 등이 새로 포함됐다. 이들 기업은 동반위의 중소기업 체감도조사와 공정위의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이행실적평가를 연 2회 받게 된다. 동반위는 금융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동반성장지수 평가안도 올해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동반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마트·롯데백화점·홈플러스의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에 따라 협약이행실적평가 점수를 감점한 것을 반영해 3개사의 2012년 동반성장지수 등급을 각각 한 단계씩 강등하고, 롯데마트의 인센티브도 취소했다.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첫 지정 이후 발광다이오드(LED)와 막걸리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면 이번엔 문구류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은 “대형마트가 판매할 수 있는 문구 품목 수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의견을 감안해 매출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3월부터 3년 간 대형마트는 문구류 판매 사업을 자율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사업 규모가 2014년 문구품목 매출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동반위 또 신학기 할인행사 같은 판촉행사를 자제하고, 학용품을 팔 때도 낱개가 아닌 묶음으로만 판매만 하도록 권고했다. 일단 ‘신학기 할인전’을 계획했던 대형마트는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설 연휴 필기구 등 문구류를 최대 40%까지 할인하는 행사를 열었던 이마트는 “동반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향후 할인행사를 축소 또는 취소할 방침이다.
적합업종 지정은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위반하면 동반성장지수 평가 점수가 낮아진다. 두 차례 시정 권고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벌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문구류의 매출 비중이 크지 않고, 최근 몇 년간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라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할인행사를 기다리는 고객이 많은데 오히려 소비자가 저렴하게 학용품을 구입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형 문구전문점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내버려두고 대형마트만 규제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중소 문구소매 업계도 동반위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는 규제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동반위의 권고안은 ‘자율적 사업 축소’다. 일반적으로 적합업종을 지정할 때 동반위가 ‘확장자제 및 진입자제’를 권고하는 것과 다르다. 판매할 수 없는 품목을 확실히 명시하거나 신규 출점을 금지한 게 아니란 의미다. 대형마트가 각종 할인행사와 자체상표(PB) 상품으로 골목 상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완 없이 강제성이 없는 규제로 구색만 갖췄다는 설명이다. 방기홍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장은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한 중소 문구점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대형마트의 요구만 수용한 결과”라며 즉각 철회를 주장했다.
보호의 대상인 중소기업, 규제의 대상인 대기업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이상한 규제가 탄생한 셈이다. 사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은 2011년 도입 당시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대기업 사업 영역에 제한을 둬서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실제로 지난 3년 간 대기업이 사업에 손을 떼면서 업황이 도리어 나빠지거나 외국계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2011년 적합업종에 지정된 LED(조명)는 전체 시장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LG이노텍 등은 국내 영업망을 축소했고, 서울반도체·루멘스 등 중견 LED 기업도 매출이 줄었다. 막걸리는 대기업이 아예 국내 사업을 철수하다시피 했고, 재생타이어는 국내 업체들이 생산을 줄인 탓에 해외 업체가 시장을 점유율을 크게 늘렸다. 대기업이 덜 판다고 중소기업이 더 판 것도 아니고, 대기업이 사업을 안 한다고 중소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란 얘기다. ‘적합업종이 시장의 파이를 축소시키고,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동반위의 추진 의지도 확실히 약해진 듯 보인다. 이번 논의 과정에서 동반위는 77개 대상 중 49개 업종(신규 5개 제외)만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했다. 아스콘과 부동액 등 7개 업종은 대기업 시장침해를 주기적으로 살피는 ‘시장감시’ 품목으로, 맞춤양복과 세탁비누 등 21개 업종은 대기업과 자율적인 협약을 맺는 ‘상생협약’ 품목으로 지정됐다. 시장감시와 상생협약은 적합 업종보다 규제 강도가 낮다. 사실상 적합업종 제도의 후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논란이 됐던 LED 역시 적합업종에서 제외돼 상생협약 대상으로 분류됐다. 대기업이 강력하게 해제를 주장했던 분야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측에서는 동반위가 적합업종 지정 대신 상생협약을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요즘 동반위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는 곳인지, 대기업 민원을 들어주는 곳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가 약한데다 친기업 성향의 안 위원장 취임 이후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적합업종에서 해제됐다기보다 ‘적합업종’과 ‘상생협약’ 투 트랙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상생협약은 더 시장 보완적이고 친화적인 방향이며 지금은 새로운 협력 모델을 새로 정착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정책’이라는 반론이 거센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폐지든 법제화든 제도의 존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살 길을 터주자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가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런 애매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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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문구류 판매 축소 소비자만 피해”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첫 지정 이후 발광다이오드(LED)와 막걸리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면 이번엔 문구류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은 “대형마트가 판매할 수 있는 문구 품목 수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의견을 감안해 매출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3월부터 3년 간 대형마트는 문구류 판매 사업을 자율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사업 규모가 2014년 문구품목 매출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동반위 또 신학기 할인행사 같은 판촉행사를 자제하고, 학용품을 팔 때도 낱개가 아닌 묶음으로만 판매만 하도록 권고했다. 일단 ‘신학기 할인전’을 계획했던 대형마트는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설 연휴 필기구 등 문구류를 최대 40%까지 할인하는 행사를 열었던 이마트는 “동반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향후 할인행사를 축소 또는 취소할 방침이다.
적합업종 지정은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위반하면 동반성장지수 평가 점수가 낮아진다. 두 차례 시정 권고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벌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문구류의 매출 비중이 크지 않고, 최근 몇 년간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라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할인행사를 기다리는 고객이 많은데 오히려 소비자가 저렴하게 학용품을 구입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형 문구전문점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내버려두고 대형마트만 규제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중소 문구소매 업계도 동반위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는 규제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동반위의 권고안은 ‘자율적 사업 축소’다. 일반적으로 적합업종을 지정할 때 동반위가 ‘확장자제 및 진입자제’를 권고하는 것과 다르다. 판매할 수 없는 품목을 확실히 명시하거나 신규 출점을 금지한 게 아니란 의미다. 대형마트가 각종 할인행사와 자체상표(PB) 상품으로 골목 상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완 없이 강제성이 없는 규제로 구색만 갖췄다는 설명이다. 방기홍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장은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한 중소 문구점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대형마트의 요구만 수용한 결과”라며 즉각 철회를 주장했다.
보호의 대상인 중소기업, 규제의 대상인 대기업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이상한 규제가 탄생한 셈이다. 사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은 2011년 도입 당시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대기업 사업 영역에 제한을 둬서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실제로 지난 3년 간 대기업이 사업에 손을 떼면서 업황이 도리어 나빠지거나 외국계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2011년 적합업종에 지정된 LED(조명)는 전체 시장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LG이노텍 등은 국내 영업망을 축소했고, 서울반도체·루멘스 등 중견 LED 기업도 매출이 줄었다. 막걸리는 대기업이 아예 국내 사업을 철수하다시피 했고, 재생타이어는 국내 업체들이 생산을 줄인 탓에 해외 업체가 시장을 점유율을 크게 늘렸다. 대기업이 덜 판다고 중소기업이 더 판 것도 아니고, 대기업이 사업을 안 한다고 중소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란 얘기다. ‘적합업종이 시장의 파이를 축소시키고,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동반위의 추진 의지도 확실히 약해진 듯 보인다. 이번 논의 과정에서 동반위는 77개 대상 중 49개 업종(신규 5개 제외)만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했다. 아스콘과 부동액 등 7개 업종은 대기업 시장침해를 주기적으로 살피는 ‘시장감시’ 품목으로, 맞춤양복과 세탁비누 등 21개 업종은 대기업과 자율적인 협약을 맺는 ‘상생협약’ 품목으로 지정됐다. 시장감시와 상생협약은 적합 업종보다 규제 강도가 낮다. 사실상 적합업종 제도의 후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논란이 됐던 LED 역시 적합업종에서 제외돼 상생협약 대상으로 분류됐다. 대기업이 강력하게 해제를 주장했던 분야다.
효과는 없고, 추진 의지도 미약
야당을 중심으로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정책’이라는 반론이 거센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폐지든 법제화든 제도의 존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살 길을 터주자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가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런 애매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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