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예보 모델 만든다
금융위기 예보 모델 만든다
미국 금융시스템 전체의 색상지도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그래서 글로벌 위기가 닥치기 전에 취약점과 다가오는 재앙을 예고해준다면 말이다.
미국 하원에선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의 엄격한 규제를 완화하는 안건을 두고 의원들이 실랑이를 벌인다. 도드-프랭크법은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마련한 규정이다. 그 한편에서 월스트리트 베테랑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의 경제학자 리처드 북스테이버(64)는 똑같은 목표를 가진 야심찬 프로젝트를 소리 없이 추진 중이다. “정부에선 대부분 현재 이런 일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른다”고 북스테이버가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조사국(OFR)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에 관해 뉴스위크에 말했다.
북스테이버의 프로젝트는 이른바 ‘행위자 기반 모델(ABM)’을 이용한다. 개별 행위주체(예를 들면 은행이나 월스트리트 트레이더 등)들의 행동이 어떻게 더 광범위한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초기에는 철새의 이동을 보면서 행위자 기반 모델의 기본적인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새들이 ‘이봐 친구들, V자 패턴을 만들기로 하자’고 정하는 건 아니다. 옆에서 나는 새들에 맞춰 행동한다. 그들이 이루는 패턴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으며 방향을 간단히 다른 쪽으로 돌린다. 어떤 새가 다른 새들의 행동에 따라 움직인다면 상당히 복잡한 그룹 기반 행태를 이루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ABM이 주목 받게 됐다.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MIT는 ABM의 미래 재앙을 예방하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상업적인 응용 면에선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3년 남짓 초기 모형을 만지작거리던 북스테이버가 올해 말께는 실제 데이터 처리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해 모델이 정밀해지면 미국 금융 시스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에 큰 보탬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믿는다.”
OFR은 종종 금융시장의 폭풍 경보 시스템에 비유됐다.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독립적이고 엄격하게 조사된 금융 데이터를 수집하는 워싱턴의 전문위원단 자격으로 창설됐다. 무엇보다도 필요할 경우 공적이든 사적이든(은행과 헤지펀드의 정보 포함) 어떤 정보든 요청하는 소환권을 갖는다. 그렇게 확보한 정보로 모델을 수립해 임박한 위협을 미국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예고하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물론 전에도 모델을 활용한(그래서 실패한) 적이 있었다. 2008년 베어스턴즈 같은 거대 은행들이 파산할 때까지 월스트리트의 상당수 금융 모델들은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행위자기반모델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같은 감염병의 확산경로 추적으로부터 차량과 비행기의 통행 패턴 예측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효과를 나타냈다. 몇 년 전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경고신호를 놓쳤을 때 이용했던 금융 모델과는 달리 ABM은 거품과 가격폭락 같은 시장의 급변하는 신호를 포착하도록 짜여 있다. 피드백 메커니즘이 내장돼 있어 군중심리가 우위를 점할 때 작은 이상이라도 증폭시킬 수 있다.
“처음엔 금융위기를 변방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통제 가능한 해프닝으로 여기던 사람도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그것은 카리브해의 폭풍우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2008년 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정말 중요한 교훈이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였다. 피드백 그리고 그런 문제가 어떻게 시스템에 침투했는지 도표로 작성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역동적인 ABM이 필요하다.”
ABM은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월스트리트, 미국 정부, 중앙은행들이 의존했던 모델들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기존 모델들은 패닉이 일어난 뒤에도 시장이 효율적이고 스스로 균형을 되찾는 경향을 보인다는 그릇된 전제에 근거했다. 2010년 하원 청문회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사용한 모델(이른바 ‘동태확률일반균형’ 모델)에의 의존이 그렇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ABM은 어떻게 작용할까? 북스테이버의 시뮬레이션 모델은 병렬처리(parallel processing, 여러 가지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를 이용해 이른바 ‘위기 역학’에서 가능한 시나리오 도표를 작성한다. 이 모델은 모든 핵심 참가자들에게 ‘결정 규칙(decision rules, 프로그램화된 기준)’을 할당한다. 그들의 우선과제, 자금현황, 현실적 행동 패턴을 반영한 규칙들이다. 그들의 상호의존적 관계, 다양한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지 모르는 갖가지 행동, 그와 같은 행동의 잠재적인 결과를 감안한다. 북스테이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충격이 발생하기 전에 일종의 예보 서비스를 개발하려 한다. 그 서비스는 ‘이것이 더 큰 폭풍우로 발전하겠는가, 그리고 그 진행방향에 누가 있는가? 은행 같은 대형 금융 시스템인가(큰 문제다), 아니면 석유 시장인가(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OFR 연구원들이 시뮬레이션 모델에 실제 데이터를 입력할 때 제기하는 의문은 광범위하다. ‘금리가 인상되면 어떻게 되나?’ 같은 거시적인 문제나 ‘시티그룹은 현재 어느 정도 노출돼 있는가?’ 같은 미시적인 문제도 가능하다. 북스테이버는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서 모델을 수천 번 돌려 모든 범위의 결과를 도출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몇 번이든 반복해 실현 가능한 일반적인 분포를 얻어낸다. 특정 시점에 이르러 분포 모델이 명확해지면 ‘이제 됐다’는 감이 온다.”
이 모델은 월스트리트와 학계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북스테이버는 말한다. 사람들이 다양한 개인·그룹·기관의 현실적 행태에 기초한 모델들보다는 수리모델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쏠림(herding)’ ‘2차효과(second-order effects)’ ‘비선형 역학(non-linear dynamics)’을 촉발할지도 모른다. “수학보다는 공학이나 물리학과 더 밀접한 문제”라고 북스테이버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한 은행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때 시스템 전반에 그 효과가 파급된다. 하지만 이는 수학적으로 파악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ABM에선 미국 경제를 두고 이론에 근거한 하향식(top-down) 가정을 하지 않는다(예컨대 시장은 효율적이며 가격으로 결정되는 균형을 향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식). 대신 은행·헤지펀드·투자자 같은 다수 참가자의 동기를 따른다. 그것은 현장중심의 상향식(bottom-up) 행동규칙을 바탕으로 한다. 참가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장의 돌발 변수에 따른 그들의 행동 변화뿐 아니라 그들이 서로 어떻게 반응할지를 감안하는 규칙들이다. 일단 실제 데이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북스테이버가 그 모델들을 정밀 조정해 갈수록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갈 수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정확하고 실제적인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경제의 경우엔 시스템 문제가 서서히 커진다. 어디를 들여다봐야 할지만 알면 확연히 드러나는 편이다. 꾸준히 연구하며 조금씩 개선해 나가려는 구상이다. 기상 예보 모델들도 처음에는 보잘것없었지만 요즘엔 10일치 예보까지 제공되지 않는가.”
OFR에 합류하기 전 북스테이버는 무어 캐피털 매니지먼트사의 리스크 관리 담당자였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루이스 베이컨이 운용하는 12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다. 북스테이버는 금융위기 전부터 시장과 혁신기법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을 특히 우려했다. 2007년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악마(A Demon of Our Own Design)’라는 책을 펴냈다. 그해 말에 일어날지 모르는(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위급상황을 묘사했다. “시장은 상황에 민감한 이질적인 사람들로 이뤄진다. 그들은 이 같은 접근법의 바탕을 이루는 수학적 최적화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고차원적 가정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그는 책에 썼다. “경제영역에선 복잡성의 성격 또한 실제 시스템과 다르다. 그런 복잡성이 도박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스템의 규칙과 가정의 변경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스테이버는 2009년 고위 정책고문으로 증권거래위원회에 합류해 볼커 룰(Volcker Rule, 금융사의 위험투자 및 대형화 억제 목적으로 만든 규제)을 담당했다. 볼커 룰은 도드-프랭크법의 일부다. 국민 세금으로 뒷감당하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은행의 위험 부담을 제한하려는 목적이다. 2012년부터 재무부에서 풀타임으로 행위자기반모델을 전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남은 평생 동안 후회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OFR이 이미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추적해 금융안전감독위원회(FSOC)에 보고한다. 하지만 북스테이버의 모델들은 월스트리트 데이터를 소환하는 OFR의 권한과 결합해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리처드 버너 OFR 위원장의 말마따나 ‘현명한 연장통(prudential tool kit)’ 말이다.
북스테이버는 ”이를 모델로 만듦으로써 정부는 특정한 정보의 요청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월스트리트로부터 ‘정보 낚시(fishing expeditions)’라고 반발을 사지 않게 됐다.
버너 위원장은 FSOC 의결권이 없는 위원이며 OFR은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워싱턴의 고위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조언한다. 예를 들면 잭 루 재무장관을 비롯해 재닛 옐런 FRB 의장, 메리 조 화이트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리처드 코드레이 소비자금융보호국 국장 등 10여 명의 FSOC 위원이다.
북스테이버처럼 실제 데이터 모델을 도입한다고 하루 아침에 정책입안자들이 활용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ABM을 갈고닦아 완벽하게 만들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미국 경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주요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가까운 장래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다.
OFR과 FSOC는 이미 ABM을 사용하고 있다. 거대자산의 청산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고, 금융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평가한다. OFR 대변인 윌리엄 러베리의 설명이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FSOC가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노터데임대 멘도자 경영대학 금융학과에서 금융규제를 전문으로 하는 폴 슐츠 교수의 평이다. “이들은 지난번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바로 그 그룹이다. 말만 더 많이 한다고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버너 OFR 위원장과 FSOC의 루 재무장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ABM을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간주하는 듯하다. 그 프로젝트에 가까운 한 소식통이 뉴스위크에 전한 말이다. 그러나 집계·분석된 데이터가 독점소유권을 인정받아 결과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소식통은 내다봤다.
월스트리트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OFR이 실제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할 경우 보안 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 데이터의 자산가치를 보호해야 한다”고 미국 연방의원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에 있는 증권업·금융시장협회 대표인 켄 벤트슨은 지적했다.
북스테이버는 모델을 개량해 나가면서 재무부를 통해 그 결과를 계속 공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위기관리 방법을 개발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싱글맘의 실직 확률을 1%라도 줄일 수 있다면 사회에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과업이다.”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하원에선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의 엄격한 규제를 완화하는 안건을 두고 의원들이 실랑이를 벌인다. 도드-프랭크법은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마련한 규정이다. 그 한편에서 월스트리트 베테랑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의 경제학자 리처드 북스테이버(64)는 똑같은 목표를 가진 야심찬 프로젝트를 소리 없이 추진 중이다. “정부에선 대부분 현재 이런 일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른다”고 북스테이버가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조사국(OFR)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에 관해 뉴스위크에 말했다.
북스테이버의 프로젝트는 이른바 ‘행위자 기반 모델(ABM)’을 이용한다. 개별 행위주체(예를 들면 은행이나 월스트리트 트레이더 등)들의 행동이 어떻게 더 광범위한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초기에는 철새의 이동을 보면서 행위자 기반 모델의 기본적인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새들이 ‘이봐 친구들, V자 패턴을 만들기로 하자’고 정하는 건 아니다. 옆에서 나는 새들에 맞춰 행동한다. 그들이 이루는 패턴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으며 방향을 간단히 다른 쪽으로 돌린다. 어떤 새가 다른 새들의 행동에 따라 움직인다면 상당히 복잡한 그룹 기반 행태를 이루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ABM이 주목 받게 됐다.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MIT는 ABM의 미래 재앙을 예방하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상업적인 응용 면에선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3년 남짓 초기 모형을 만지작거리던 북스테이버가 올해 말께는 실제 데이터 처리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해 모델이 정밀해지면 미국 금융 시스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에 큰 보탬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믿는다.”
OFR은 종종 금융시장의 폭풍 경보 시스템에 비유됐다.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독립적이고 엄격하게 조사된 금융 데이터를 수집하는 워싱턴의 전문위원단 자격으로 창설됐다. 무엇보다도 필요할 경우 공적이든 사적이든(은행과 헤지펀드의 정보 포함) 어떤 정보든 요청하는 소환권을 갖는다. 그렇게 확보한 정보로 모델을 수립해 임박한 위협을 미국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예고하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물론 전에도 모델을 활용한(그래서 실패한) 적이 있었다. 2008년 베어스턴즈 같은 거대 은행들이 파산할 때까지 월스트리트의 상당수 금융 모델들은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행위자기반모델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같은 감염병의 확산경로 추적으로부터 차량과 비행기의 통행 패턴 예측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효과를 나타냈다. 몇 년 전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경고신호를 놓쳤을 때 이용했던 금융 모델과는 달리 ABM은 거품과 가격폭락 같은 시장의 급변하는 신호를 포착하도록 짜여 있다. 피드백 메커니즘이 내장돼 있어 군중심리가 우위를 점할 때 작은 이상이라도 증폭시킬 수 있다.
“처음엔 금융위기를 변방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통제 가능한 해프닝으로 여기던 사람도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그것은 카리브해의 폭풍우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2008년 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정말 중요한 교훈이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였다. 피드백 그리고 그런 문제가 어떻게 시스템에 침투했는지 도표로 작성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역동적인 ABM이 필요하다.”
ABM은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월스트리트, 미국 정부, 중앙은행들이 의존했던 모델들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기존 모델들은 패닉이 일어난 뒤에도 시장이 효율적이고 스스로 균형을 되찾는 경향을 보인다는 그릇된 전제에 근거했다. 2010년 하원 청문회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사용한 모델(이른바 ‘동태확률일반균형’ 모델)에의 의존이 그렇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ABM은 어떻게 작용할까? 북스테이버의 시뮬레이션 모델은 병렬처리(parallel processing, 여러 가지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를 이용해 이른바 ‘위기 역학’에서 가능한 시나리오 도표를 작성한다. 이 모델은 모든 핵심 참가자들에게 ‘결정 규칙(decision rules, 프로그램화된 기준)’을 할당한다. 그들의 우선과제, 자금현황, 현실적 행동 패턴을 반영한 규칙들이다. 그들의 상호의존적 관계, 다양한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지 모르는 갖가지 행동, 그와 같은 행동의 잠재적인 결과를 감안한다. 북스테이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충격이 발생하기 전에 일종의 예보 서비스를 개발하려 한다. 그 서비스는 ‘이것이 더 큰 폭풍우로 발전하겠는가, 그리고 그 진행방향에 누가 있는가? 은행 같은 대형 금융 시스템인가(큰 문제다), 아니면 석유 시장인가(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OFR 연구원들이 시뮬레이션 모델에 실제 데이터를 입력할 때 제기하는 의문은 광범위하다. ‘금리가 인상되면 어떻게 되나?’ 같은 거시적인 문제나 ‘시티그룹은 현재 어느 정도 노출돼 있는가?’ 같은 미시적인 문제도 가능하다. 북스테이버는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서 모델을 수천 번 돌려 모든 범위의 결과를 도출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몇 번이든 반복해 실현 가능한 일반적인 분포를 얻어낸다. 특정 시점에 이르러 분포 모델이 명확해지면 ‘이제 됐다’는 감이 온다.”
이 모델은 월스트리트와 학계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북스테이버는 말한다. 사람들이 다양한 개인·그룹·기관의 현실적 행태에 기초한 모델들보다는 수리모델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쏠림(herding)’ ‘2차효과(second-order effects)’ ‘비선형 역학(non-linear dynamics)’을 촉발할지도 모른다. “수학보다는 공학이나 물리학과 더 밀접한 문제”라고 북스테이버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한 은행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때 시스템 전반에 그 효과가 파급된다. 하지만 이는 수학적으로 파악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ABM에선 미국 경제를 두고 이론에 근거한 하향식(top-down) 가정을 하지 않는다(예컨대 시장은 효율적이며 가격으로 결정되는 균형을 향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식). 대신 은행·헤지펀드·투자자 같은 다수 참가자의 동기를 따른다. 그것은 현장중심의 상향식(bottom-up) 행동규칙을 바탕으로 한다. 참가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장의 돌발 변수에 따른 그들의 행동 변화뿐 아니라 그들이 서로 어떻게 반응할지를 감안하는 규칙들이다. 일단 실제 데이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북스테이버가 그 모델들을 정밀 조정해 갈수록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갈 수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정확하고 실제적인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고 북스테이버가 말했다. “경제의 경우엔 시스템 문제가 서서히 커진다. 어디를 들여다봐야 할지만 알면 확연히 드러나는 편이다. 꾸준히 연구하며 조금씩 개선해 나가려는 구상이다. 기상 예보 모델들도 처음에는 보잘것없었지만 요즘엔 10일치 예보까지 제공되지 않는가.”
OFR에 합류하기 전 북스테이버는 무어 캐피털 매니지먼트사의 리스크 관리 담당자였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루이스 베이컨이 운용하는 12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다. 북스테이버는 금융위기 전부터 시장과 혁신기법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을 특히 우려했다. 2007년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악마(A Demon of Our Own Design)’라는 책을 펴냈다. 그해 말에 일어날지 모르는(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위급상황을 묘사했다. “시장은 상황에 민감한 이질적인 사람들로 이뤄진다. 그들은 이 같은 접근법의 바탕을 이루는 수학적 최적화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고차원적 가정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그는 책에 썼다. “경제영역에선 복잡성의 성격 또한 실제 시스템과 다르다. 그런 복잡성이 도박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스템의 규칙과 가정의 변경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스테이버는 2009년 고위 정책고문으로 증권거래위원회에 합류해 볼커 룰(Volcker Rule, 금융사의 위험투자 및 대형화 억제 목적으로 만든 규제)을 담당했다. 볼커 룰은 도드-프랭크법의 일부다. 국민 세금으로 뒷감당하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은행의 위험 부담을 제한하려는 목적이다. 2012년부터 재무부에서 풀타임으로 행위자기반모델을 전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남은 평생 동안 후회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OFR이 이미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추적해 금융안전감독위원회(FSOC)에 보고한다. 하지만 북스테이버의 모델들은 월스트리트 데이터를 소환하는 OFR의 권한과 결합해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리처드 버너 OFR 위원장의 말마따나 ‘현명한 연장통(prudential tool kit)’ 말이다.
북스테이버는 ”이를 모델로 만듦으로써 정부는 특정한 정보의 요청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월스트리트로부터 ‘정보 낚시(fishing expeditions)’라고 반발을 사지 않게 됐다.
버너 위원장은 FSOC 의결권이 없는 위원이며 OFR은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워싱턴의 고위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조언한다. 예를 들면 잭 루 재무장관을 비롯해 재닛 옐런 FRB 의장, 메리 조 화이트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리처드 코드레이 소비자금융보호국 국장 등 10여 명의 FSOC 위원이다.
북스테이버처럼 실제 데이터 모델을 도입한다고 하루 아침에 정책입안자들이 활용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ABM을 갈고닦아 완벽하게 만들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미국 경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주요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가까운 장래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다.
OFR과 FSOC는 이미 ABM을 사용하고 있다. 거대자산의 청산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고, 금융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평가한다. OFR 대변인 윌리엄 러베리의 설명이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FSOC가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노터데임대 멘도자 경영대학 금융학과에서 금융규제를 전문으로 하는 폴 슐츠 교수의 평이다. “이들은 지난번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바로 그 그룹이다. 말만 더 많이 한다고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버너 OFR 위원장과 FSOC의 루 재무장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ABM을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간주하는 듯하다. 그 프로젝트에 가까운 한 소식통이 뉴스위크에 전한 말이다. 그러나 집계·분석된 데이터가 독점소유권을 인정받아 결과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소식통은 내다봤다.
월스트리트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OFR이 실제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할 경우 보안 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 데이터의 자산가치를 보호해야 한다”고 미국 연방의원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에 있는 증권업·금융시장협회 대표인 켄 벤트슨은 지적했다.
북스테이버는 모델을 개량해 나가면서 재무부를 통해 그 결과를 계속 공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위기관리 방법을 개발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싱글맘의 실직 확률을 1%라도 줄일 수 있다면 사회에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과업이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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