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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1%대 금리 시대 - 韓銀도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

사상 첫 1%대 금리 시대 - 韓銀도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

이주열 한은 총재.
한국의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1%대에 진입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3월 12일 기준금리를 2%에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1.75%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취임 초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전인미답의 경제정책을 예고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1%대 기준금리로 통화정책을 꾸려가야 한다. 이번 금리 인하로 예·적금 위주 중산층의 보수적인 투자 관행에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도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 대출이 더 늘어나는 등 가계부채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 전환에 가속도가 붙어 전세난이 악화될 거라 예상한다. 다만, 실물경기가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한은의 금리 인하 발표 전까지만 해도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동결’을 전망했다. 금통위는 지난해 8월과 10월 각각 0.25%포인트 금리를 인하한 뒤 넉 달 째 동결 기조를 이어왔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금통위에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파른 것이) 금리 동결의 이유”라며 기준금리 운용에 신중을 기해왔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 총재가 정부와 여당의 금리 인하 압박을 계속 견딜 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상 최저의 기준금리 상황이 벌어지자 ‘이 총재가 정부의 인하 압박에 굴복해 가계부채의 고삐를 놓아버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금통위가 금리 인하를 결정한 것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커진 때문이다. 최근 경제지표가 부진하고 올해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치보다 낮은 게 주요 이유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난 2달 간의 지표를 보니 경기 하방 위험이 예전보다 커졌다”면서 “이런 흐름이 확인된 이상 금리를 가급적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가계부채 고삐 놨나?
지난해 말 이후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던 경기지표가 연초 이후 기대 이하의 모습이다. 1월 광공업 생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상품수출도 10% 급감했다. 한은은 4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3.4%→3.2%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1.3%로 하향 조정할 예정이다.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1월과 2월 지표가 기존 흐름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내수 회복이 미약한 상태가 오래가면 성장잠재력 자체가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이만우 의원(새누리당)은 금리 인하 관련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우려는 있지만 가계부채가 양적으로는 늘어도 질적으로는 개선되고 있어 문제가 크게 불거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금리 인하로 풀린 돈이 금융시장에 머물러 실물경기에 효과를 못줄 것이란 예상에 대해선 “금리 인하 외에도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통과시켜 경기활성화를 도모해야 실물시장으로 효과가 파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세계 주요국이 연이어 금리를 인하해 자국 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린 것도 이번 금리 인하의 이유 중 하나다. 금리 인하는 통상 자국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최근 강(强)달러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우려할 만큼 높진 않다. 하지만 엔화와 유로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강세다.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수출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한은이 나서 ‘금리 인하→원화 약세→수출 증가→경기 부양’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는 실제 외환시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금리 인하 발표 직후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07원 하락한 1122.5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전 3거래일 동안 27.6원 오른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금통위 발표 다음날엔 오히려 원화 가치가 다시 반등하는 등 금리 인하에 따른 원화 약세 효과는 거의 없었다. 주식시장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금리 인하 발표일 코스피 지수는 3월 9일부터 이어진 하락세를 이어가며 10.24포인트 하락한 1970.59을 기록했다. 발표일 장초반에는 금리 인하 기대효과로 코스피 지수가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날이 선물 옵션 동시만기일이어서 외국인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요 종목 주가 상승세가 주춤하며 결국 하락 마감했다.

금리를 더 내릴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향후엔 금리 인하 대신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15조원에서 5조원 더 늘리는 등의 간접적인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 박종연 연구원은 “추가 금리 인하 여부는 4월 수정 경제전망치 달성 여부와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속도에 달려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돈 줄을 죄면 한국 경기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금리 인상은 한국 금리 인하의 구실이 될 수 있다. 미 연준은 오는 6월 이후 언제든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된다. 하지만 최근 미국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국제 유가가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미국도 금리 인상을 올해 하반기 이후로 미룰 거란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한은도 금리 인하를 미룰 여지가 있다.
 미 금리 인상 여부, 일본·유럽의 양적완화가 변수
하지만 미국 외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 절하로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동부증권 문홍철 연구원은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가치 하락과 경기부양책을 쓸 수 있어 통화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은이 올해 상반기 중에 한차례 더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중국·호주의 경기부양책, 혹시 모를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등을 고려하면 원·유로, 원·엔 환율을 포함한 통화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한국의 경기 침체가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연구원은 “원화가 계속 상대적 강세를 보인다면 추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 여당은 이번 금리 인하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경기활성화 정책에 한은이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다. 이만우 의원은 “금리 인하는 시의적절하나 이왕이면 0.5% 포인트 정도 내려 정부의 경기활성화에 효과를 더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현재 투자나 소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보일 만큼 거시지표가 부진한 상황이라서 향후 경기 추이를 봐가면서 추가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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