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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잠정 타결로 주목받는 이란 - 아랍인 듯, 아랍 아닌, 아랍 같은 나라

핵협상 잠정 타결로 주목받는 이란 - 아랍인 듯, 아랍 아닌, 아랍 같은 나라

이란 테헤란 북부의 타즈리쉬(Tajrish) 광장의 저녁 풍경.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 언제나 활기찬 분위기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핵협상 타결과 제재 해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생각보다 차분하고 신중하다. 지난 4월 2일 이란과 ‘P5+1(UN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은 우여곡절 끝에 핵협상 최종 타결을 위한 포괄적 공동합의문을 도출한다는 데 합의했다. 세계 언론은 스위스 로잔에서 날아든 이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이란의 변화를 환영했다. 한바탕 국제 뉴스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 테헤란은 지금 매우 고요한 분위기다. 전면타결 아니면 결렬(All or nothing)이 이번 협상의 원칙이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이란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최종 협상은 6월 말쯤 이뤄질 전망이다.

테헤란 북부의 타즈리쉬 광장. 부촌이 밀집돼 있는 북쪽 지역의 대표적인 바자르(Bazar, 전통시장)가 있으며, 이란의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문화와 상업 중심지다. 서울로 치면 신촌과 홍대쯤 된다. 이 곳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 유럽 등으로 이민을 떠난 이란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핵협상 타결 이후 찾은 타즈리쉬 바자르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란 사람들 특유의 활기가 돌고 있었다. 장기간 지속된 경제제재와 인플레이션으로 이란 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이란 경제의 특성상 미국 주도의 제재가 생각보다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핵협상 타결과 제재 해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협상 결과를 두고 “헤일리 후베(Kheili-khub-e, ‘Very good’에 해당하는 페르시아어 표현)”를 연발하는 타즈리쉬 시장 주방용품점 주인 아흐마드 무스타파의 목소리에는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엿보인다. 2002년 8월,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이란 국민저항위원회 (NCRI)는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알리지 않고 우라늄 농축시설 및 중수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이란은 서구 주요 국가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고, 강도 높은 제재로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2013년 자국 통화인 리알화 가치는 두 배 이상 폭락했고, 물가상승률은 35%에 육박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을 버틴 이란 국민은 길고 길었던 어둠의 터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2015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이란
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비즈니스를 하러 이란에 간다고 가정해보자. 인천에서 출발해 두바이나 도하를 거쳐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까지 오는 여정은 15시간이 걸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하지만 물리적 시간과 거리를 떠나 우리에게 이란은 분명 먼 나라다. 부시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악의 축’ 국가 중 하나, 피비린내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당사자, 최고 지도자가 가장 큰 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국가, 끊임없는 핵개발 야욕, 매너 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는 침대 축구까지….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이 이란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닐까?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란은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확립한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중동이지만 아랍 문화와는 차별화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제국을 이루었던 만큼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이 있는 국가다. 또한 온화한 기후에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이란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한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와와 유럽·러시아·CIS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평가받는다.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 나라를 접하고 있어서 주변국 진출의 거점 지역으로 꼽힌다. 또한 남부의 해안지대를 이용한 물류의 출입 활동이 용이하고 인접국과의 도로·철도 등 기반시설도 비교적 우수하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인구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많은 8100만명에 이르며, 중동 최대의 내수시장으로 알려져 있다.전체 인구의 60%가 30대 이하로 구성된 젊은 국가로,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다. 하지만 이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산업화를 추진해 왔다. 1990년대부터 5년 단위로 ‘경제·사회개발 계획’을 수립해 석유 의존 경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20년 미래계획’을 발표하며 중동 제일의 경제·과학 선진국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 사랑 유별난 이란인들
타즈리쉬 광장 근처에 있는 이맘자데 살레(Imamzadeh Saleh) 모스크. 정교일치 국가답게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서구와의 관계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4월 초, 스위스 로잔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란이 예정된 협상기한을 넘기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핵협상에 정치적으로 합의했다는 뉴스였다. 2013년 8월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일관되게 평화적 메시지를 전달해왔으며 결국 ‘정치적 프레임워크 도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 냈다. 최근 CNN은 ‘제재가 풀릴 경우 이란이 중동의 독일 같은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14년 기준으로, 이란은 우리나라의 26위 수출대상국이다. 한국은 이란에 41억7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전체 수출량의 0.73%다. 주요 수출품목은 TV·디스플레이 등 가전제품과 합성수지·자동차부품 등이다. 2012년에는 62억6000만 달러를 수출하며 20위 수출대상국에 올랐으나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심화되면서 수출량이 대폭 감소했다. 이란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인지도가 매우 높으며, 유럽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한국산 자동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이미 국민차 대열에 올랐다. 기아자동차가 사이파와 합작해 2005년까지 프라이드를 현지에서 생산·판매하고 조립라인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사이파는 사바(Saba, 프라이드 베타), 나심(Nasim, 프라이드)이라는 이름으로 프라이드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이란은 건설·플랜트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수주 시장이기도 하다. 1970년대 첫 진출 후, 2000년대 중반까지 5위권 안팎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 서구의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이란 진출이 거의 끊겼다. 이란은 원유 생산량에 비해 정제기술이 부족하고 전반적인 도시 인프라가 미흡해 건설 수요가 많다. 제재가 완화되면 16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발주가 예상되며, 우리 기업의 본격적인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KT&G는 2008년 이란 현지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담배 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생산 목표는 5억 개비에 달하며, 에쎄(ESSE) 브랜드는 2014년 기준 시장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 2006년 처음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시청률이 90%를 기록할 정도였고, 국민의 요청으로 재방영을 거듭했다. 또한 이란의 태권도 인구는 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20만명에 달한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태권도를 정식 교육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태권도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아랍인과 동일시하면 낭패
1. 테헤란 북부 파크웨이 브릿지(Parkway Bridge), 정차된 차 중 프라이드 베타(현지명 Saba)와 소나타 등 한국 차량을 많이 볼 수 있다. / 2. 발리에아스르(Vali-e-Asr) 거리에 있는 한국 정수기 코웨이 대리점.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어디일까?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테헤란과 동의어 혹은 대체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서울이 대한민국의 전부가 아니듯이 이란도 마찬가지다. 이란에 거주하면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도시는 테헤란이 아니라 오히려 에스파한이었다. 에스파한은 페르시아어로 ‘네스페 자한(Nesf-e-Jahan)’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는 세상의 절반(Half of the World)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는 집권기간 동안 딱 세상의 절반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싶었고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 이란 소개 책자에는, ‘이란에서 해야 할 첫째 경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에스파한에 가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현 시점에서 에스파한이 세상의 절반은 아닐지라도 이란 문화의 절반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이란은 아랍의 일부가 아니다. 이란인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란인을 아랍 사람과 동일시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 역사를 ‘무지의 시대(Jahiliyya, 자힐리야)’로 구분한다. 이란은 이슬람이 유입되기 전에도 고대 중동 역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페르시아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란인들은 국제정세 불안으로 지속된 경제 악화에도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내재하고 있다. 만약 이란 바이어를 자신보다 문화 수준이 한 단계 낮다고 여기는 아랍 문화권의 일부로 취급하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Farsi)는 아랍어(Arabic)와 완전히 다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어의 문자를 차용한 후 알파벳 4개를 독자적으로 추가해서 문자 체계를 구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고유 언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문법·표현·발음 등은 큰 연관성이 없다. 또한 1935년에 페르시아에서 변경된 국호 이란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이고 아랍인은 셈족이다. 아리아인 계통의 이란인과 비교해 아랍인은 피부색이 조금 더 검고 머리카락이 곱슬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역사적·문화적·민족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지리적·종교적 이유만으로 같은 아랍권으로 묶어서 인식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이란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혼동되는 여러 개념을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랍 혹은 아라비아라는 말은 민족적 개념에서 파생된 단어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를 통칭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정신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랍연맹을 만들어 결속하고 있다.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이다. 비아랍권 무슬림 국가도 분명 존재하므로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중동이라는 단어는 지리적 개념으로,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다. 정리하자면 이란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이며 지리적으로 중동에 속하지만, 민족적·언어적으로 아랍이 아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이란 사람들에게는 ‘터로프(Taarof)’라고 하는 특유의 빈말 문화가 있다. 터로프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는 언어 습관이다. 우리 역시 체면을 중시해서 비슷한 언어 습관을 갖고 있지만, 이란의 터로프 표현은 매우 다양하고 시적이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난 당신을 위해 희생할 거예요(고맙습니다).”, “당신은 내 눈동자 위에서 걸을 수 있어요(환영합니다).”, “당신 눈의 빛이 되고 싶어요(훌륭합니다).” 등이다.

페르시아 특유의 터로프 습관은 문화·역사·종교적 배경과 연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 문화의 특성상 이란인들은 말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발화의 내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는 80%가 지시적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합리성을 중요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언어에 투영된 까닭이다. 반면 페르시아어의 80%는 암시적인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상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이란은 역사적으로 침략이 잦았다. 아랍·투르크·몽골 등 제국의 점령을 겪으면서 대립적인 현실을 피하고 싶은 위한 바람이 언어습관에 투영된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이란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시아파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니파가 중심이며 시아파는 소수에 속한다. 오랜 종교 분파 대립의 역사에서 소수파는 주류를 향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감춰야 했다.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의 언어습관에 모호한 표현이 많은 또 하나의 이유다. 바이어를 만나서 가격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언어습관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면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인의 모호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제재 완화 추이 꼼꼼하게 모니터링 해야
1. 멜라트 공원 맞은 편에 있는 현대자동차 대리점. 현대·기아 등 한국차는 고급차로 분류되는 등 브랜드 가치가 높다. / 2. 멜라트(Mellat)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테헤란 시민들. 이란은 가족 중심의 문화로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란과 서방은 6월 말까지 포괄적 공동합의문(JCPOA)을 도출한다는 데 합의했다. 양측의 신뢰구축 정도에 따라 향후 전면적인 제재 완화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제재 완화가 시작되면 우리 기업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제재가 본격화된 2009년 이후 한국의 수주 실적은 전혀 없다. 국내 기업의 건설·플랜트 프로젝트 수주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철강제품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경제성 높은 이란산 원유 수입이 확대되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제품은 보다 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석유화학제품의 수요 확대는 장기적으로 해운 수송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반다르압바스 등 주요 항만의 서비스가 전면 재개될 가능성도 커졌다. 애프터 세일즈 시장으로 제한해 수출이 허용되고 있는 자동차부품의 경우, 점차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완성차 수출은 미국의 지속적 압력으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포괄적 공동합의문 도출을 위한 추가 핵협상 진행상황 및 제재 완화 추이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란은 계약 체결시 신용장(L/C) 개설에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게임의 룰을 알면 경기는 재밌어지게 마련이다. 현지 바이어보다 더욱 느긋한 자세로 거래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우리 기업의 이란시장 진출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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