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말라 가는 ‘캘리포니아 드림’
메말라 가는 ‘캘리포니아 드림’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o1sfPcEz_1.jpg)
우리는 차를 타고 새크라멘토 남쪽 센트럴 밸리를 통과했다. 이곳에서도 가뭄의 위력이 실감났다. 평소 부드러운 녹색으로 덮히던 서쪽 구릉의 풀가 나무가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다. 양쪽으로 수㎞ 펼쳐진 들판도 바싹 타들어가 밟으면 바스러질 듯했다. 군데군데 작물이 살아 있긴 했지만 사면으로 죽음에 포위된 상태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가뭄이 캘리포니아의 목을 서서히 조였다. 적은 강수량과 기록적인 고온으로 역사상 어느 때보다 끔찍한 기후였다. 최근의 나이테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가뭄(2011년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은 1200년만에 최악이다. 지난 4월 1일 시에라네바다 산맥 해발 2072m에서 측정한 적설량은 매년 평균량의 5%에 불과했다. 관측 사상 최저로 기록된 1977년과 2014년의 25%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쌓인 눈은 캘리포니아 전체 수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마카스 위원장은 이젠 누구도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적극 모색한다는 얘기였다. “주정부가 세운 계획이 완벽하진 않지만 향후 5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준다.”
화성 정착지 같은 거대도시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yROnlkcN_2.jpg)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e8MHU197_3r.jpg)
그들이 만들어낸 캘리포니아의 생태계는 비와 눈이 충분히 내릴 때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가뭄이 닥치면 전혀 쓸모없다. 게다가 지금은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극히 위험한 상태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캘리포니아는 하나의 이상을 상징했다. 그림 같은 해변, 광대한 푸른 잔디밭, 언제나 내려 쬐는 햇볕, 미국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 이주자들에게 진정한 천국으로 선전됐다. 그러나 전부 거짓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초목이 무성하고 비옥한 대지가 아니라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끝없이 넓은 잔디밭과 오렌지 숲, 아몬드 과수원이 있을 곳이 아니다. 현재의 인구 3800만 명을 지탱할 수도 없는 곳이다. 남캘리포니아의 거대 도시권은 마치 화성의 정착지 같다. 모든 것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빛이 바래고 뜨거운 열기로 바싹 메말라 간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다.
물 부족 문제를 관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공학적 노하우, 대규모 공공사업 욕구가 한데 어우러져 캘리포니아를 현재의 캘리포니아로 만들었다. 시발점은 북쪽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도시 허브(hub)였다. 20세기 초 샌프란시스코가 뻗어 나가면서 물 수요도 급증했다. 1916년 헤치헤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 계곡을 가로막아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 건설공사였다. 그 후 20년 동안 엔지니어들이 터널, 댐, 저수지, 수력발전소, 그리고 약 240㎞의 수로를 건설했다. 1934년 수로가 개통됐다. 세계 최대의 인공 수로 중 하나로 하루 2억6000만 갤런(약 9억8420만ℓ)의 물을 공급했다.
물의 양을 잴 때 흔히 갤런(3.785ℓ) 단위를 생각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수준에선 그런 단위로 계산하기가 불가능하다. 물 관리업계는 주로 100만에이커피트(MAF) 단위를 사용한다. 1에이커피트(AF)는 1에이커(4047㎡)를 1피트(30.48cm)의 높이로 채우는 수량을 말하며 32만5000갤런 이상에 해당한다. 헤치헤치 수계는 연간 29만AF 이상의 물을 제공했다. 당시로선 충분했지만 그 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헤치헤치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미국의 거부들이 달려들었다. 그중에는 농산물을 동부로 운송하기 위해 서던 퍼시픽과 유니언 퍼시픽 철도가 합작한 퍼시픽 프루트 익스프레스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태양과 땅은 있지만 물이 없는 센트럴 밸리를 농업 낙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30년대 말 센트럴 밸리 프로젝트(CVP)가 댐과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
지금 CVP는 22개 저수지에 약 11MAF의 물을 저장해 연간 7.4MAF를 센트럴 밸리로 공급함으로써 농지 약 1만 2140㎢에 물을 댄다. 1960년대 새크라멘토도 그 뒤를 따라 캘리포니아 물프로젝트(SWP)를 시작했다. 5.8MAF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수지 20개를 만들어 주민 2500만 명과 농지 약 3035㎢에 연간 약 3MAF의 물을 공급했다. 헤치헤치와 CVP, SWP를 합하면 수로의 길이가 약 2000㎞에 이른다.
그런 인프라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캘리포니아를 만들었다. CVP는 샌와킨 밸리를 고지대 사막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농산물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자만심과 공학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그 프로젝트를 “지구 표면의 최대 인공 개조”라고 불렀다. 또 SWP는 로스앤젤레스와 인랜드 엠파이어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의 로버트 체스터 환경 역사학 교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인의 모든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으로 연상됐다”고 말했다. “그런 이미지는 특히 남캘리포니아의 부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렌지를 심기만 하면 절로 자라는 천국으로 비쳤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으로 자리매김했다.”
캘리포니아 주민은 그런 수리학자·엔지니어의 독창성과 재능에 매료됐다. 그들은 물이 필요하면 그 재주꾼들이 물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황금의 땅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주의 별명)’의 사전엔 물 절약이란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도 구석구석 그런 자만심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 섀스타 호수로 연결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콜로라도강(샌디에이고 주변에 물을 공급한다)을 미주리강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 물 부족을 해결하자는 자못 ‘진지한’ 제안도 있다.
체스터 교수는 “수리 공학이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문화적 근시안을 낳았다. 제한된 수자원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적 접근법의 검토를 가로막았다.”
스탠퍼드 우즈환경연구소는 2014년 보고서에서 “물 분야의 기술적 변화가 1970년대 이래 대체로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청정 에너지 분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00~2013년 청정 에너지 투자액은 690억 달러(약 75조원)인 반면 수자원 관련 투자액은 15억 달러에 불과했다. 또 지난 10년 동안 태양전지판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고 전기차도 곧 보편화될 기세다.
반면 물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는 신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자원 인프라가 노후화됐다. 캘리포니아 도시물절약위원회는 76개 도시와 협력한다. 2012년 그 도시들은 약 573억 갤런의 물을 낭비했다.
최근의 가뭄은 캘리포니아의 물 기술이 완전히 한물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자만심을 버리고 캘리포니아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새로운 과학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화장실 오수를 식수로
파운틴 밸리의 하수 재활용 시스템(GWRS)에선 모든 것이 보수 유지가 잘 돼 반짝인다. 수천 개의 파이프, 수백 개의 공압 밸브와 다양한 배관 시설로 이뤄진 거대하면서도 효율적인 네트워크다. 전부 자동으로 가동된다.
GWRS는 세계 최대의 간접 정수 시스템으로 하루 평균 식수 215AF를 생산한다. 2008년 가동을 시작했고 용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 오는 5월 말이면 하루 식수 공급량이 307AF에 이를 전망이다. GWRS의 마이클 마커스 대표는 그 정도면 85만 명(오렌지 카운티 인구의 약 3분의 1)의 하루 물 수요량을 맞추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가뭄이 심했던 2008년엔 우리가 마치 천재처럼 보였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왔다.”
GWRS는 오렌지 카운티에 아주 저렴하게 물을 공급한다. 1AF 당 478달러에 물 판매업체로 넘어간다. 옛 주립 수자원 채권의 보조금으로 그처럼 가격이 낮아졌다. 하지만 보조금이 없더라도 850달러면 된다고 마커스 대표는 말했다. 콜로라도강과 북캘리포니아에서 끌어오는 물이 1MAF 당 1000달러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또 에너지 사용량도 물 수입의 절반에 불과하다.
배관 공사가 매우 복잡하지만 과학과 효과적인 물 정책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법에 따르면 실내 폐·오수(싱크, 샤워, 화장실)는 깨끗이 정화해서 바다로 흘려보내야 한다. 엄청난 일이고 낭비가 심하다.
그 대신 오렌지 카운티에선 처리된 폐수를 GWRS로 보내 추가로 3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친다. 먼저 물리적 정밀여과로 고형물질, 원생동물, 박테리아·바이러스를 걸러낸다. 그 다음 역삼투 과정으로 용존 소금와 유기화학물, 약품을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자외선 처리 과정을 통해 마지막 남은 미세 유기물질을 파괴하고 소독한다. 일반 수돗물보다 더 깨끗하다.
오렌지 카운티의 제임스 허버그 위생처장은 “GWRS가 우리 카운티의 일급 비밀”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다른 카운티에도 소규모 폐수 재활용 공장이 있지만 오렌지 카운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주된 이유는 폐수 재활용 기술에 별로 관심도 없고 투자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잔혹한 가뭄으로 그런 성공을 본뜨려는 사업이 속속 등장했다. 마카스 위원장은 “앞으로 폐수 재활용의 폭발적인 증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미 최소 10개 프로젝트가 계획돼 있다. 그중 샌디에이고 프로젝트의 규모가 가장 크다. 샌디에이고의 공익재 사업 책임자 할라 라자크는 지난해 11월 그 프로젝트의 승인을 받았으며 앞으로 20년 안에 샌디에이고의 물 공급량 중 3분의 1이 폐수 재활용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리 연구기관 퍼시픽연구소는 캘리포니아주 전체의 효율적인 폐수 재활용으로 매년 1.2~1.8MAF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비정부기구 워터리유즈의 멜리사 미커 대표는 “처리된 폐수를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멋진 발상”이라고 말했다. “마치 공짜로 얻는 물로 생각된다.”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dXWUYJru_4.jpg)
문제는 바닷물을 그냥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해수는 작물을 죽이기 때문에 농업용수로도 쓸모없다. 경제적인 비용으로 해수를 담수화하는 것이 오래 전부터 물 안보 분야의 ‘성배’였다. 최근의 프로젝트는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는 1928년부터 해수를 탈염해 담수화하는 공장이 있었다. 현재 그곳의 아루바섬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담수화 공장이 있다. 중동의 물 빈곤 국가들에는 해수 탈염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72억 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의 해수 탈염 공장을 세웠다. 하루 식수 약 2억7000만 갤런을 생산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식수의 40%가 탈염 해수에서 공급된다. 2050년까지 그 비율이 70%로 늘어날 전망이다.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5Clr32ZB_5.jpg)
그러나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대규모 담수화 공장이 곧 문을 연다. 샌디에이고 북쪽 해안지역 칼스바드 남단에 10억 달러를 들인 포세이돈 워터 담수화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그곳의 피터 맥래건 부사장은 내년에 공장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공기를 단축해 빠르면 내달 가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맥래건 부사장은 물이 부족한 샌디에이고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전 가뭄에 관해 묻자 그는 친구 가족이 소유한 땅의 호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970년대 말 심한 가뭄 동안 그 호수가 바짝 말랐다. 얕게 고인 물에 물고기만 가득해 돌을 던지면 물고기가 떼로 푸드덕거리는 바람에 땅이 흔들렸다. 메기는 견디지 못하고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샌디에이고가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는 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공급되는 물의 85%를 콜로라도강이나 북쪽 지역에서 공급 받는다. 샌디에이고는 서서히 외부 물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그런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맥래건 부사장은 “이제 샌디에이고는 현지의 물만 사용하던 7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폐수를 재활용하고, 그 나머지는 바다에서 얻을 것이다.”
해수 담수화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에너지 소모량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담수화에 에너지가 턱없이 많이 든다는 것이 시대에 뒤진 정보에 기초한 잘못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칼스바드 프로젝트(이스라엘의 담수화 기술로 유명한 ICE 테크놀로지의 자문으로 설계됐다)의 경우 가압펌프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거의 전부를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회수시설을 갖췄다.
맥래건 부사장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회생브레이크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식수를 생산하려면 과거엔 해수를 2번 여과해야 했지만 지금은 1번이면 족하다. 또 과거엔 여과 필터를 3년밖에 쓸 수 없었지만 지금은 8~10년은 간다. 또 필터가 성능이 크게 개선돼 예전보다 적게 필요하다.”
칼스바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태평양 연안에 비슷한 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전망이다. 오렌지 카운티의 헌팅턴 비치, 캠프 렌들턴(칼스바드 북쪽의 해병대 기지), 몬터레이 카운티 등에서 이미 18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샌타바바라도 담수화 공장을 되살릴 계획이다.
아몬드 나무의 묘지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NrX3YlOZ_6.jpg)
그러나 물 정책 전문가 다수는 그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그들은 플로리다주 탬파,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바라, 호주의 실패 사례를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공공정책 연구소의 엘렌 하나크 연구원은 “호주는 새천년의 가뭄 동안 담수화 시설에 대거 투자했지만 에너지 비용이 너무 높아 지금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처럼 저렴한 대안이 없는 곳에서만 담수화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스탠퍼드대학 서부 수자원 프로그램의 도시 물 정책을 담당하는 뉴샤 아자미 국장은 “담수화 비용은 세 가지 요인에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대지, 에너지, 인프라의 비용이다.” 경제적인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 비용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담수화 비용이 가장 낮은 이유는 대지가 사실상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슈켈론 담수화 공장은 이스라엘 정부가 무료로 제공한 대지에 건설됐다. 그와 비슷하게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대지와 연료가 싸고 풍부하다.
그에 비해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의 대지는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또 화석연료 가격이 상대적으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는 그와는 다른 풍부한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태양이다.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JDPjSVpb_7.jpg)
최근 대형 농장이 물 부족 사태에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일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농장은 매년 3230만AF의 물을 사용한다. 캘리포니아주 전체 물 사용량의 약 40%, 주민이 사용하는 물의 80%를 차지한다(나머지는 대부분 그냥 흘려보낸다). 하지만 그 정도는 캘리포니아주의 국내총생산(GDP) 22조 달러 중 2%에 해당할 뿐이다. 그런데도 농장이 물을 과다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빌미로 다수는 농업 부문의 물 사용을 더 줄이라고 주지사에게 압력을 가한다.
미주리대학 물 역사학자 캐런 파이퍼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농업 현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농업 부문에서 물이 낭비되는 경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CVP가 완공되자 센트럴 밸리의 소규모 농장들은 작물 재배에 외부에서 끌어온 물을 맘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파이퍼 교수는 “농민이 그 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당국은 물을 그냥 버린다며 다른 사람에게 그 물을 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iwrGvQMh_8.jpg)
최근 농장은 물 사용을 크게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새크라멘토부터 샌디에이고까지 도시에선 어떤 회사나 가정에 들어가 수도를 틀면 물이 계속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나 라즈코비치의 과수원을 비롯한 여러 농장의 경우는 벌써 2년째 전혀 물 공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CVP는 농장의 물 공급을 중단했다. 새크라멘토의 SWP는 지난해 예정된 할당량의 15%만 공급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농지의 약 5%는 놀려야 했다. 그로 인해 2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일자리 1만7000개가 사라졌다. 올해 CVP는 다시 물 공급을 중단할 계획이다. SWP는 계약된 수량의 20%만 공급할 예정이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농업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다. 라즈코비치가 8년 전 심은 아몬드·체리·포도 나무는 CVP의 물에 의존해 자랐다. 그러나 지난해엔 CVP의 물이 한 방울도 공급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농민은 자신의 밭에서 규제 받지 않는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댈 수 있었지만 라즈코비치는 그런 운도 없었다. 그는 “밭의 여러 곳에 수백m 깊이로 구멍을 뚫어봤지만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즈코비치는 아몬드 나무의 묘지가 돼버린 밭을 보여줬다. “올해로 2년째 물을 못 댄다. 아직은 나무에 푸른 잎이 몇 개 붙어 있지만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다. 수확도 없고 나무를 구할 희망도 없다.” 그래서 그는 대안을 찾았다. 과수원을 갈아엎고 다른 종류의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라즈코비치는 나를 차에 태우고 인터스테이트 5번 고속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 수로를 건넜다(“수위가 사상 최저로 내려갔다”고 그는 말했다). 몇 ㎞를 더 가다 노스스타 프로젝트 부근에 섰다. 휴면 상태의 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세워지고 있었다. 금속봉 위에 세워진 태양광 전지판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라즈코비치는 주차장이 거의 만원인 것을 보고 놀랐다. 노스스타 프로젝트의 시공사 퍼스트 솔라는 올 여름 완공될 공사로 400개의 건설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영구 일자리도 50개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즈코비치의 농장에선 이제 할 일이 없다. 그는 “연중 내내 일하는 근로자는 4~5명 줄었지만 계절 근로자는 수백 명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태양광 발전시설 시공업체와 협의 중이다. “예전의 아몬드 과수원에 비하면 수익이 크게 떨어지겠지만 수익이 전혀 없는 것보단 낫다.”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Dy56ICYL_9.jpg)
캘리포니아에선 북부든 남부든 해안이든 산악지대든 모두가 동의하는 아이디어가 있다.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은 없으며 잘못된 풍요의 문화를 떨칠 수 있다면 캘리포니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민은 뒤뜰과 동네 공원에 물집약적인 조경을 중단해야 한다. 매년 416만5000AF의 물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사용하는 물의 10%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조경의 경제적인 가치는 거의 없다. 스페인, 이탈리아, 남아공, 칠레, 이스라엘은 전부 장식용 잔디밭 없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캘리포니아도 그럴 수 있다. 태평양연구소의 글리크 소장은 “멋진 잔디밭이 반드시 좋은게 아니라 나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기호와 행동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자동차의 안전띠와 흡연을 생각해 보라. 사회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효율성 제고에는 기술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는 시대에 뒤진 물 관리를 최신 첨단 기술로 혁신해야 한다. 모든 점에서 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새크라멘토는 모든 신축 공사에서 물 효율성 기준에 부합하는 배관 시설을 의무화할 수 있다. 글리크 소장은 “물론 물이 적게 나오는 화장실보다 해수 담수화 공장을 방문하는 게 훨씬 멋지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이 적게 나오는 화장실을 설치하면 훨씬 낮은 비용에 더 많은 물을 얻을 수 있다.”
또 캘리포니아는 당국이 제대로 일을 한다면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인터뷰한 거의 모든 정책 담당자는 캘리포니아의 미래 물 안보에서 관건은 물 사용 감시와 신고 강화라고 말했다. 적어도 다른 물 빈곤 국가들이 세운 기준까지는 도달해야 한다.
마커스 위원장은 “호주의 경우 주요 물 저장 시설의 현황을 지금 당장 내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그 근처에도 못 간다. 새크라멘토는 다른 지역에서 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그곳의 물 관리자는 이웃 지역은 상관하지 않고 현지인 수요에 맞게 조치한다. 누락된 데이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표면 수로와 지하수 대수층에서 전용되는 물의 양이다.
캘리포니아주 공공정책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저자들은 “주민이 물에 관해 무엇을 아는지 주 당국이 정확히 파악한다면 관리와 정책 마련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는 오랫동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언제나 풍부했고, 물이 부족할 때는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안이하고 낙천적이며 캘리포니아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의 하나크 연구원은 “이젠 그런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행정명령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런 부주의함을 끝내고, 물 사용 신고를 강화하고 물의 오용과 남용을 더 엄격히 처벌하는 것이다. 또 효율성 제고에 인센티브를 주고 물 혁신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런 당근과 채찍 병행전술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직 캘리포니아는 죽지 않았다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낙천주의가 팽배하다. 미국 토마토 생산의 중심지인 욜로 카운티를 통과하면서 마커스 위원장은 캘리포니아 수자원 관리위원회가 물 위기를 해결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어떤 주민은 우리를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주민은 우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요점은 우리가 문제의 해결사라는 사실이다. 정책 결정이 우리의 원동력이다. 완벽에 집착하다간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그러면서 마커스 위원장은 차창 밖을 가리켰다. 새로 심은 과일 나무가 늘어선 과수원이 보였다. “아니, 미안하다. 길이 울퉁불퉁하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저 어린 나무를 꼭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 번역 이원기
![](/data/ecn/image/2021/02/24/ecn3696406334_mhe5FPnf_lastRR.jpg)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기타맨’ 제작자 “故 김새론, 복귀 의지 강했다”
2농심, 네덜란드 판매법인 신설...“2030년 유럽매출 4배로 키운다”
3hy, 국내 최초 위 건강 이중제형 ‘윌 작약’ 출시
4서울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속도낸다…"통합심의 적극 추진"
5“타는 냄새”…공덕역 연기 발생해 무정차 통과 중
6 권영세 “尹 하야,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옳은 방법 아냐”
7서울 아파트 평당 매매가 4천만원 붕괴…전월 대비 5.2%↓
8‘이민정♥’이병헌, 늦둥이 딸 손잡고 산책... 딸바보 다 됐네
9故 김새론 팬들, 추모 성명문... “잘못에 지나치게 가혹한 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