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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사람 죽인다”

“건물이 사람 죽인다”

2010년 규모 7의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왼쪽)와 2011년 규모 8.9의 대지진과 잇따른 쓰나미로 원전 사고까지 발생한 일본 동부. 그러나 두 나라의 인명피해는 큰 차이가 났다.
네팔을 강타한 지진이 초래한 재난은 너무나 임의적이고 아주 드문 일처럼 보인다. 어쩌면 번개에 맞을 확률처럼 별로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인구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은 다른 어떤 자연재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최근의 네팔 비극을 보면서 과학자들은 더 암울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지진이 세계 전역에서 인간의 삶과 재산에 가하는 트라우마가 갈수록 더 악화된다는 경고다.

사실 과학자와 건축가 등 전문가들은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의 대부분을 막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이미 갖고 있다. 다만 세계의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기초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할 뿐이다.

1994년부터 2013년 사이 지진은 약 7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세계가 단일 지진 발생으로 사망자 수의 기록을 계속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지질학자 로저 빌람 교수는 “지금 상황으로 보면 지진이 세계의 거대도시 부근에서 발생할 경우 그 하나만으로 사망자가 100만 명이 넘는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미 과학자는 취약 지역에서 지진 활동을 탐지할 수 있는 정교한 도구를 개발했다. 또 건축가는 초대형 지진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건축 기법을 터득했고, 일부 정부는 소중한 골든타임 몇 초 동안 주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마련했다.

2000~2009년 규모 5 이상의 지진 활동을 보여주는 세계 지도. 지진은 지각판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한다. 색은 지진의 심도를 표시한다. 붉은 색이 가장 얕고 녹색이 가장 깊다.
그런데도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뭘까? 부분적으론 글로벌 인구 추세와 관련 있다. 현재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이다. 2050년이면 9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게다가 대도시로 이주하는 주민이 갈수록 많아진다.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산다. 유엔은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한다.

도시계획 전문가는 현대식 건축법 같은 장치의 발전으로 지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개도국의 인구 증가율은 선진국의 2배다. 게다가 그중 다수는 불안전한 주거지에 살기 때문에 지진으로부터 전혀 보호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진 대비에 초점을 맞춘 비영리단체 지오해저드 인터내셔널(GHI)은 2000년 기준으로 지진 취약지역 주민 10명 중 9명이 개도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세계 10대 도시 중 8개는 단층선 위에 위치한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인도의 3개 도시가 거기에 포함된다. 그런 도시에서 대충 지은 아파트와 사무실 건물은 국제 건축 기준에 미흡해 지진이 발생하면 죽음의 덫으로 변한다.

빌람 교수는 “과거 지진이 일어난 마을과 읍이 이제는 도시와 거대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거대도시의 많은 건물이 내진 설계 없이 세워져 상당히 취약하다.”

GHI는 2001년 건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건물이 많은 도시를 평가한 결과 네팔의 카트만두를 지진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았다[이번 지진의 진앙(epicenter)에서 약 80㎞ 떨어져 있다]. 터키의 이스탄불, 인도의 델리, 에콰도르의 키토, 필리핀의 마닐라도 대형 지진이 일어날 경우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도시라고 GHI는 경고했다.

특히 빈곤, 부패, 공공 무지라는 3가지 요인을 모두 갖고 있는 나라와 도시가 지진의 인명 피해가 가장 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진에 의한 사망의 90%는 필리핀,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아르메니아, 파푸아뉴기니 등 부패율이 높은 빈곤국가에서 발생한다.

빈곤한 주민은 산사태가 발생하기 쉬운 비탈 등 취약한 곳에 허약한 자재로 집을 짓기 쉽다. 빌람 교수는 그런 거주지를 “비공인 대량살상무기(an unrecognized weapon of mass destruction)”라고 부른다. 그들은 위험을 인식하기 어렵다. 해당 지역의 지진 활동 정보에 접근할 수 없거나 아예 그런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루뱅대학 재난역학연구소(CRED)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은 50년 전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더 많을 뿐 아니라 범람지, 지진대 등 고위험 지역에 집과 건물을 많이 지어 일상적인 자연의 위험이 중대한 재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경 없는 엔지니어회(Engineers Without Borders)’ 영국 지부에 따르면 네팔에선 신축 건물의 80%가 공학 전문지식 없이 ‘비공식’적으로 지어진다. CNN 방송에 따르면 네팔의 건축기준은 1994년 수정된 게 마지막이다. 또 네팔은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4년 부패 지수 순위에서 175개국 중 126위를 차지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네팔 지부의 재난 전문가 산토시 지아왈리는 2013년 뉴스레터에서 새로운 건축기준의 시행이 “매우 더뎌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고 경고하며 신속한 실시를 촉구했다. 아울러 카트만두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최소한 10만 명이 사망하고 30만 명이 부상하며 160만 명이 이재민이 될 수 있다고 당시에 예측했다. USAID 해외재난지원국은 2012년 네팔에서 건축허가 심의를 강화하고 엔지니어 400명에게 최신 건축 기법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높은 부패율도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건축업자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저급한 건축 자재를 사용해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에 깔려 숨진 건수의 83%는 부패율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했다.

건축기준의 준수 정도에 따라 같은 규모의 지진으로 입는 인명 피해가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2011년 도쿄 동북쪽 370㎞ 지점을 강타한 규모 8.9의 지진은 2010년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의 지진보다 1000배는 강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사망자는 약 1만5900명이었지만 아이티에선 2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의 지진학자 리처드 앨런 교수는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온라인 기고문에서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은 일본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지진 대비가 잘 된 나라 중 하나인 반면 아이티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지진 전문가들은 빈곤국에서 지진이 발생할 때 주민이 직면하는 진짜 위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인다.” 네팔의 참상은 그런 암울한 경고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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