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선수가 몰려온다
쿠바 선수가 몰려온다
미국 트래블 채널 프로그램 ‘노 레저베이션스(No Reservations)’의 2011년 시즌 첫 방송 때의 일이다. 진행자인 요리연구가 앤서니 부르댕이 서반구의 현존하는 마르크스주의 기념비인 쿠바를 방문했다. 맛기행 프로그램 호스트답게 럼주로 목을 축이고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문화에의 갈증을 달랬다. 야구는 쿠바 최고의 국민 스포츠다. 부르댕은 그 카리브해 섬나라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리에 나시오날(내셔널 시리즈) 경기에 매료되는 듯했다. 그러던 참에 구내매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맥주가 없다고요?” 피터 비야크먼이라는 미국인 가이드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르댕이 말했다. “확실히 혁명이 실패한 모양이네.”
볼멘소리를 하는 그의 뒤편에선 그의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에코 데 아빌라’ 팀의 외야수 러스니 카스티요가 홈런을 날린 뒤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당시 현지 야구선수였던 그는 기껏 2000~30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카스티요는 3년 뒤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팀과 7년간 7200만 달러(약 785억원)를 받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3시간 동안 파도와 싸우는 항해 끝에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한 뒤였다. 비바 라 레볼루션(혁명 만세)!
“전에는 쿠바에서 야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국가적인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비야크먼(73)이 말했다. 아바나 북부에 거주하며 요양 중인 그 학자는 분명 쿠바 야구의 가장 열렬하고 박식한 팬이지 싶다. “요즘 쿠바 사람들의 화제는 온통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팀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가 어젯밤에 어떤 경기를 했다느니, 카스티요가 정말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느니 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쿠바인의 침공이 시작되고 있다. 제한적인 수준으로 (야구) 베이스 위에 국한되지만 말이다. 침략자들은 칙칙한 황갈색 전투복이 아니라 LA 다저스의 청색 유니폼과 신시내티 레즈의 적색 유니폼 차림이다. 그들이 쏘아대는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홈런과 시속 160㎞의 강속구다. 그리고 1962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쿠바 간 통상금지 조치 때문에 이 같은 침략의 선봉에 선 군인들은 수입 금지품목이다.
메이저 리그 야구(MLB)는 팀들에 쿠바 선수들과의 계약을 허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다. MLB는 쿠바 선수들을 다른 주권국가에 먼저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이 같은 자율적 금지조치를 우회한다. 오늘날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967년 이후 어느 때보다 많은 쿠바 출신 선수가 활약한다. 이들이 체결하는 계약은 ‘자본주의 돼지들의 월계관(Bay of Capitalist Pigs)’을 연상케 한다. 1961년 미국이 침공했던 쿠바 피그스만(Bay of Pigs)에 빗댄 표현이다.
카스티요 말고도 4년간 3600만 달러에 계약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6년간 5800만 달러(덤으로 계약 보너스 1000만 달러)를 받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1루수 호세 아브레유도 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외야수 야스마니 토마스는 6년에 6850만 달러를 받는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쿠바인은 푸이그다(7년간 4200만 달러). 하지만 다저스 구단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쿠바 출신 선수는 그가 아니다. 그 영예는 유격수 알렉스 게레로에게 돌아간다. 올 시즌 신인선수로 700만 달러를 받는다.
이 모든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미국에서 배트 한 번 휘두르기 전, 하지만 불법적으로 고국을 탈출한 즉 망명한 뒤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투옥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썼다. 때로는 마약과 무기를 밀수하는 범죄자들의 손(그리고 보트)에 운명을 맡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엘 두케(본명 올란도 에르난데스)가 뉴욕 양키즈 투수로 처음 계약할 때 질문을 받았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긴장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는 웃기만 했다.”
이들 대다수가 과거 같은 쿠바 리그에서 서로 경쟁하던 선수였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수 평균 월급이 125달러에 경기당 입장료가 대략 12센트인 리그다. 구장과 필드가 얼마나 오래 되고 낡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매일 밤 경기가 사실상 옛날을 추억하는 기념행사인 셈이다.
“아바나의 라틴 아메리칸 스타디움에 가보면 오래 전부터 지붕이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대다수 구장이 60년대에 지어졌다.”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어설픈 쿠바 침공 시도보다 쿠바 야구선수들의 침공이 훨씬 더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아브레유는 2014 시즌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에 뽑혔다. 4시즌 전에는 신시내티 레즈의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 시속 169㎞를 던져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투구로 기록됐다. 지난해 7월에는 쿠바 출신이 5명이나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쿠바 선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대단히 인상적인 성적이다. 메이저리그의 쿠바 출신 선수는 모두 우회로를 거쳐 미국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수 비율은 인구가 쿠바의 1100만 명보다 200만 명 적은 카리브해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 숫자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도미니카 선수는 쿠바 출신보다 4배 이상 많다(83명).
“메이저리그 팀은 모두 도미니카 공화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두고 인재를 양성한다.” 최근 카리브해의 야구를 주제로 3권째 저서 ‘쿠바의 야구 망명자 이야기(Cuba’s Baseball Defectors: The Inside Story)’를 써낸 비야크먼이 말했다. “내가 볼 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개인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그 나라의 시스템은 껍데기만 남았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으로 정권이 무너졌다. 같은 해, 신시내티 레즈 산하 트리플 A급 팀인 아바나 슈가킹스가 마이너리그의 월드시리즈에 해당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해, 카스트로가 쿠바 내의 미국 사업체를 모두 국유화했다. 슈가킹스는 미국의 저지시티로 연고지를 옮겼다. 1961년 쿠바 공산당 정부는 포고령 936호를 발동해 프로 스포츠를 전면 금지했다.
쿠바에서 야구는 끝나지 않았지만 직업정신은 사라졌다.
세리에 나시오날 차원에서 쿠바의 14개 주(덧붙여 1개 섬과 아바나 시)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다. 시엔푸에고스에서 자랐으면 시엔푸에고스 팀에 소속된다. 선수들은 돈벼락을 맞는 대신 지역사회 때로는 국가 차원의 찬양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은 쿠바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한때 156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했던 무적의 팀이었다.
“쿠바 야구와 비교할 만한 가장 비슷한 사례는 미국의 고등학교 미식축구”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지역사회가 팀을 후원하고 팬이 선수들을 속속들이 안다. 어릴 때부터 평생 동안 알고 지낸다. 그것은 야구를 위한 야구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의 경우처럼 야구가 쇼핑몰의 일부가 아니다.”
미국의 그 쇼핑몰들은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 2009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채프먼의 망명을 시작으로 지난 6년 사이 쇼핑몰 주인들은 쿠바 출신 재목들을 닥치는 대로 사재기해왔다. 비용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규정에 따라 미국·캐나다 또는 푸에르토리코의 유망주는 모두 매년 MLB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유망주들은 드래프트에서 제외되며 자유계약선수로 계약할 수 있다. MLB는 최근 그런 선수와의 계약에 할당된 연봉 한도를 초과하는 팀은 100%의 세금을 내는 규칙을 제정했다. 하지만 그런 조치도 선수 사재기를 막지 못했다. “레드삭스 팀은 최근 요안 몬카다라는 19세 유격수와 315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연봉 외에도 MLB에 ‘세금’으로 3150만 달러를 내야 한다.”
불합리한 경제구조다. 뉴저지주 멜빌 출신의 마이크 트라웃은 올스타 팀에 3회 선발됐을 뿐 아니라 2012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과 2014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런데도 첫 세 시즌 동안 200만 달러 남짓한 돈을 받았다. 반면 몬카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 계약 보너스로 827만 달러를 받았다.
불합리한 경제 시스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는가? 국민 대다수가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주요 오락거리인 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알맹이만 쏙쏙 뽑아가는데 정부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래야만 할까?
지난 2년 사이 쿠바는 국가대표팀의 베테랑(즉 애국심 강한) 선수 4명을 일본의 프로야구 리그에 임대해줬다. 내야수인 율리에스키 구리엘(30) 같은 선수들은 200만~400만 달러 대의 수입을 올리면서 그중 20%를 쿠바 정부에 납부한다. 그래도 트라웃의 소득에서 미국 정부가 떼어가는 비율보다 적다. 계약조건의 일부로 그 선수들은 쿠바 리그가 열리는 10~4월에는 본국으로 돌아가 세리에 나시오날에 참가해야 한다. “그 돈은 보수가 절실한 쿠바 야구 인프라 개선 자금으로 들어간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그는 미국의 ‘루이빌 슬러거’ 배트를 밀반입해 쿠바 강타자들에게 공급해 왔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미국에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메이저리그 팀은 소속 선수들이 90경기를 치르는 세리에 나시오날의 일정에 참가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 깜짝쇼를 연출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미국은 쿠바 국민과의 관계를 새로 시작합니다.” 54년간 단절했던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재개하겠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일각에서 쿠바와 메이저리그에 서로 교류하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가능성이 없는 듯하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쿠바 선수들의 활용에 제한이 없어진다는 보도나 환상은 대부분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나온 그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리그의 30개 소속팀에 지침을 전달했다. 쿠바 선수들을 스카웃하거나 직접 계약하는 행위는 변함없이 불법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쿠바와 MLB는 사업 파트너가 아니며 곧 그렇게 될 듯한 낌새도 없다. “쿠바가 선수 기반을 메이저리그에 개방하는 순간 MLB는 현지에 아카데미를 개설해 직접 재목을 양성할 것”이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사실상 미국기업들이 쿠바 야구를 장악하고 운영하게 된다. 그것은 아직 권력을 잡고 있는 카스트로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러스니 카스티요 선수가 연봉 7200만 달러 중 20%를 투자하면 그 구장들이 얼마나 더 좋아지겠는가? 그러나 쿠바에 그 자금이 얼마나 절실한지와는 상관없이 쿠바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원칙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한편, 양국간에 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위반 같은 것도 없다. 쿠바의 한 국영 TV에서 매주 한 번씩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의 녹화 방송을 내보내는 이유다(“메이저리그 야구당국의 명시적인 서면동의도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항상 쿠바 선수가 없는 팀의 경기를 방송하려고 신경 쓴다는 점”이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그런 경기가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맥주가 없다고요?” 피터 비야크먼이라는 미국인 가이드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르댕이 말했다. “확실히 혁명이 실패한 모양이네.”
볼멘소리를 하는 그의 뒤편에선 그의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에코 데 아빌라’ 팀의 외야수 러스니 카스티요가 홈런을 날린 뒤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당시 현지 야구선수였던 그는 기껏 2000~30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카스티요는 3년 뒤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팀과 7년간 7200만 달러(약 785억원)를 받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3시간 동안 파도와 싸우는 항해 끝에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한 뒤였다. 비바 라 레볼루션(혁명 만세)!
“전에는 쿠바에서 야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국가적인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비야크먼(73)이 말했다. 아바나 북부에 거주하며 요양 중인 그 학자는 분명 쿠바 야구의 가장 열렬하고 박식한 팬이지 싶다. “요즘 쿠바 사람들의 화제는 온통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팀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가 어젯밤에 어떤 경기를 했다느니, 카스티요가 정말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느니 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쿠바인의 침공이 시작되고 있다. 제한적인 수준으로 (야구) 베이스 위에 국한되지만 말이다. 침략자들은 칙칙한 황갈색 전투복이 아니라 LA 다저스의 청색 유니폼과 신시내티 레즈의 적색 유니폼 차림이다. 그들이 쏘아대는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홈런과 시속 160㎞의 강속구다. 그리고 1962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쿠바 간 통상금지 조치 때문에 이 같은 침략의 선봉에 선 군인들은 수입 금지품목이다.
메이저 리그 야구(MLB)는 팀들에 쿠바 선수들과의 계약을 허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다. MLB는 쿠바 선수들을 다른 주권국가에 먼저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이 같은 자율적 금지조치를 우회한다. 오늘날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967년 이후 어느 때보다 많은 쿠바 출신 선수가 활약한다. 이들이 체결하는 계약은 ‘자본주의 돼지들의 월계관(Bay of Capitalist Pigs)’을 연상케 한다. 1961년 미국이 침공했던 쿠바 피그스만(Bay of Pigs)에 빗댄 표현이다.
카스티요 말고도 4년간 3600만 달러에 계약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6년간 5800만 달러(덤으로 계약 보너스 1000만 달러)를 받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1루수 호세 아브레유도 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외야수 야스마니 토마스는 6년에 6850만 달러를 받는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쿠바인은 푸이그다(7년간 4200만 달러). 하지만 다저스 구단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쿠바 출신 선수는 그가 아니다. 그 영예는 유격수 알렉스 게레로에게 돌아간다. 올 시즌 신인선수로 700만 달러를 받는다.
이 모든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미국에서 배트 한 번 휘두르기 전, 하지만 불법적으로 고국을 탈출한 즉 망명한 뒤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투옥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썼다. 때로는 마약과 무기를 밀수하는 범죄자들의 손(그리고 보트)에 운명을 맡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엘 두케(본명 올란도 에르난데스)가 뉴욕 양키즈 투수로 처음 계약할 때 질문을 받았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긴장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는 웃기만 했다.”
이들 대다수가 과거 같은 쿠바 리그에서 서로 경쟁하던 선수였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수 평균 월급이 125달러에 경기당 입장료가 대략 12센트인 리그다. 구장과 필드가 얼마나 오래 되고 낡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매일 밤 경기가 사실상 옛날을 추억하는 기념행사인 셈이다.
“아바나의 라틴 아메리칸 스타디움에 가보면 오래 전부터 지붕이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대다수 구장이 60년대에 지어졌다.”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어설픈 쿠바 침공 시도보다 쿠바 야구선수들의 침공이 훨씬 더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아브레유는 2014 시즌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에 뽑혔다. 4시즌 전에는 신시내티 레즈의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 시속 169㎞를 던져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투구로 기록됐다. 지난해 7월에는 쿠바 출신이 5명이나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쿠바 선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대단히 인상적인 성적이다. 메이저리그의 쿠바 출신 선수는 모두 우회로를 거쳐 미국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수 비율은 인구가 쿠바의 1100만 명보다 200만 명 적은 카리브해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 숫자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도미니카 선수는 쿠바 출신보다 4배 이상 많다(83명).
“메이저리그 팀은 모두 도미니카 공화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두고 인재를 양성한다.” 최근 카리브해의 야구를 주제로 3권째 저서 ‘쿠바의 야구 망명자 이야기(Cuba’s Baseball Defectors: The Inside Story)’를 써낸 비야크먼이 말했다. “내가 볼 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개인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그 나라의 시스템은 껍데기만 남았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으로 정권이 무너졌다. 같은 해, 신시내티 레즈 산하 트리플 A급 팀인 아바나 슈가킹스가 마이너리그의 월드시리즈에 해당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해, 카스트로가 쿠바 내의 미국 사업체를 모두 국유화했다. 슈가킹스는 미국의 저지시티로 연고지를 옮겼다. 1961년 쿠바 공산당 정부는 포고령 936호를 발동해 프로 스포츠를 전면 금지했다.
쿠바에서 야구는 끝나지 않았지만 직업정신은 사라졌다.
세리에 나시오날 차원에서 쿠바의 14개 주(덧붙여 1개 섬과 아바나 시)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다. 시엔푸에고스에서 자랐으면 시엔푸에고스 팀에 소속된다. 선수들은 돈벼락을 맞는 대신 지역사회 때로는 국가 차원의 찬양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은 쿠바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한때 156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했던 무적의 팀이었다.
“쿠바 야구와 비교할 만한 가장 비슷한 사례는 미국의 고등학교 미식축구”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지역사회가 팀을 후원하고 팬이 선수들을 속속들이 안다. 어릴 때부터 평생 동안 알고 지낸다. 그것은 야구를 위한 야구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의 경우처럼 야구가 쇼핑몰의 일부가 아니다.”
미국의 그 쇼핑몰들은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 2009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채프먼의 망명을 시작으로 지난 6년 사이 쇼핑몰 주인들은 쿠바 출신 재목들을 닥치는 대로 사재기해왔다. 비용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규정에 따라 미국·캐나다 또는 푸에르토리코의 유망주는 모두 매년 MLB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유망주들은 드래프트에서 제외되며 자유계약선수로 계약할 수 있다. MLB는 최근 그런 선수와의 계약에 할당된 연봉 한도를 초과하는 팀은 100%의 세금을 내는 규칙을 제정했다. 하지만 그런 조치도 선수 사재기를 막지 못했다. “레드삭스 팀은 최근 요안 몬카다라는 19세 유격수와 315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연봉 외에도 MLB에 ‘세금’으로 3150만 달러를 내야 한다.”
불합리한 경제구조다. 뉴저지주 멜빌 출신의 마이크 트라웃은 올스타 팀에 3회 선발됐을 뿐 아니라 2012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과 2014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런데도 첫 세 시즌 동안 200만 달러 남짓한 돈을 받았다. 반면 몬카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 계약 보너스로 827만 달러를 받았다.
불합리한 경제 시스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는가? 국민 대다수가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주요 오락거리인 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알맹이만 쏙쏙 뽑아가는데 정부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래야만 할까?
지난 2년 사이 쿠바는 국가대표팀의 베테랑(즉 애국심 강한) 선수 4명을 일본의 프로야구 리그에 임대해줬다. 내야수인 율리에스키 구리엘(30) 같은 선수들은 200만~400만 달러 대의 수입을 올리면서 그중 20%를 쿠바 정부에 납부한다. 그래도 트라웃의 소득에서 미국 정부가 떼어가는 비율보다 적다. 계약조건의 일부로 그 선수들은 쿠바 리그가 열리는 10~4월에는 본국으로 돌아가 세리에 나시오날에 참가해야 한다. “그 돈은 보수가 절실한 쿠바 야구 인프라 개선 자금으로 들어간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그는 미국의 ‘루이빌 슬러거’ 배트를 밀반입해 쿠바 강타자들에게 공급해 왔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미국에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메이저리그 팀은 소속 선수들이 90경기를 치르는 세리에 나시오날의 일정에 참가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 깜짝쇼를 연출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미국은 쿠바 국민과의 관계를 새로 시작합니다.” 54년간 단절했던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재개하겠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일각에서 쿠바와 메이저리그에 서로 교류하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가능성이 없는 듯하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쿠바 선수들의 활용에 제한이 없어진다는 보도나 환상은 대부분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나온 그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리그의 30개 소속팀에 지침을 전달했다. 쿠바 선수들을 스카웃하거나 직접 계약하는 행위는 변함없이 불법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쿠바와 MLB는 사업 파트너가 아니며 곧 그렇게 될 듯한 낌새도 없다. “쿠바가 선수 기반을 메이저리그에 개방하는 순간 MLB는 현지에 아카데미를 개설해 직접 재목을 양성할 것”이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사실상 미국기업들이 쿠바 야구를 장악하고 운영하게 된다. 그것은 아직 권력을 잡고 있는 카스트로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러스니 카스티요 선수가 연봉 7200만 달러 중 20%를 투자하면 그 구장들이 얼마나 더 좋아지겠는가? 그러나 쿠바에 그 자금이 얼마나 절실한지와는 상관없이 쿠바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원칙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한편, 양국간에 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위반 같은 것도 없다. 쿠바의 한 국영 TV에서 매주 한 번씩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의 녹화 방송을 내보내는 이유다(“메이저리그 야구당국의 명시적인 서면동의도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항상 쿠바 선수가 없는 팀의 경기를 방송하려고 신경 쓴다는 점”이라고 비야크먼이 말했다.
그런 경기가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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