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구나윤 갤러리 구 대표

구나윤 갤러리 구 대표

2003년 호텔리어를 시작으로 명상센터, 의류편집숍, 미술전시기획사, 가방 브랜드를 론칭하며 다양한 도전을 해온 구나윤 대표가 갤러리 구를 오픈해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나윤 대표는 작품을 구입할 때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갤러리 구는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가 중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분들을 선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소개함으로써 한국 미술의 확장과 발전에 기여하고자 문을 연 화랑입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구’에서 만난 구 대표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한때 핸드백 디자인에 관여했을 정도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그는 전시회를 열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림에도 재능이 있으며, 프로급 댄스스포츠 실력까지 갖춘 팔방미인이다. 그런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야심차게 도전한 분야는 바로 갤러리스트.

우리에겐 다소 낯선 갤러리스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품을 조사·연구하고, 전시를 기획·진행하는 큐레이터와는 달리, 갤러리(상업화랑)에서 전시 기획과 미술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미술인력을 말한다. 구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의 개념 구분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탓에 갤러리에서 전시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스스로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갤러리스트들이 미술관 같은 공공기관의 큐레이터들과 차별성을 키워가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갤러리스트는 미술작품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은 물론 갤러리 운영, 미술시장 분석, 아트 컨설팅 및 미술품 거래와 판매의 영역까지도 다뤄야 하는 전방위 미술현장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의 장녀로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듯하지만 의외로 구 대표의 전공은 인문학과 패션 분야다. 1999년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에스모드 서울(ESMOD SEOUL) 패션스쿨을 수료한 구 대표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VIP 마케팅팀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달랐지만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를 원했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미술을 본업으로 삼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 셈”이라고 말했다. 2009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전시 기획자로, 개인적으로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아트 컬렉터로 꾸준히 활동해온 구 대표는 결국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 구’를 오픈하고야 만다. “2009년부터 아트 컨설턴트로 일하며 여러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동시에 컬렉터로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됐습니다. 기획자와 컬렉터로서의 다양한 경험이 저를 자연스럽게 갤러리스트의 길로 이끌어준 셈이죠."

구 대표는 요즘 기존 상업 갤러리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르 구애 없이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먹회화’, ‘신동양화’라 불리는 젊은 동양화 작가들의 작업에 매력을 느껴요. 다행히 요즘 제 취향에 공감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자신감도 생기고 이대로 밀고 나가면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먹회화’개척하는 젊은 작가들에 주목
갤러리 개관 1주년 기념전의 주인공인 유의정 작가의 대표작 ‘추파춥스’. 동양의 오브제인 도자기 위에 서양 문명의 상징을 더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구 대표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들은 6월초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 부산 페어’에 소개할 예정인 유의정, 신건우, 김진희 작가다. 특히 유의정 작가는 지난 3월 27일부터 한 달 동안 개관 1주년 기념으로 ‘The Skin of Desire’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동양의 오브제인 도자기 위에 서양 문명의 상징을 더하는 유의정 작가는 전통적인 기법들과 재료들이 동시대의 시각 이미지로 환원되는 방식을 취한다. 또 단순히 현재 유행하고 있거나 각광받고 있는 기호적 가치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욕망의 구조나 그로 인한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유의정 작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시대의 상징을 도예 작품에 차용합니다. 최근 전시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끈 것은 ‘추파춥스(Chupa Chups)’ 엠블럼을 수금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인데요. 추파춥스는 살바도르 달리가 로고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지만 막대사탕이 기계화되어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된 제품이기도 해요. 작가는 마트 계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사랑받는 사탕에 금색을 덧입혀 극강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어요. 또 예부터 한국에서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생활용품에 새긴 ‘수복강령’을 주제로 한 작품도 함께 선보였어요. 갤러리 개관 1주년을 맞아 앞으로 오랫동안 갤러리의 의미 있는 행보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유의정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게 됐지요.”

전시를 기획하다보면 젊은 작가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구 대표는 “컬렉터에서 갤러리스트가 되면서 작가들과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제가 일하는 주변의 갤러리나 미술관의 여러 작품을 돌아보곤 하는데요, 요즘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창작스튜디오 등을 즐겨 찾고 있어요. 특히 이곳에서 1년에 한두 번 정도 마련하는 오픈 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이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작가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구 대표는 최근 한국 미술계의 트렌드로 주저 없이 단색화 열풍을 들었다. 단색화는 1970년대의 주요 미술사조로 한국의 추상회화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우환, 박서보, 김환기, 하종현, 정상화 등이 있으며, 이들의 작품은 1년 사이 5~10배 이상 매입가격이 올랐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 대표는 “단색화만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면서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미술이 주목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작품 구입 전에 작가와 깊이 있는 대화 나눠야
“한국 미술계는 수준 높은 전시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실력을 갖춘 작가들도 매우 많아요. 더욱 긍정적인 현상은 투자가치보다 감성적인 이유로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는 컬렉터 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것이죠. 컬렉터들이 미술작품과 작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각종 미술 교양, 아티스트 토크, 큐레이팅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단색화 열풍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업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갤러리 오픈을 앞두고 부모님이 지어준 ‘구진희’라는 이름 대신 ‘구나윤’으로 개명까지 할 만큼 갤러리의 성공과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구 대표. 그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 “갤러리스트가 되고 나서 어떻게하면 저와 한배를 탄 작가들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공감의 장을 열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요. 아울러 대중들이 미술을 더 가까이에서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술 컬렉터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 작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라”고 조언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더 많은 전시와 작가를 만나볼 것을 권합니다. 컬렉터는 유명하고 비싼 작품을 소장한 사람이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고 자신이 아끼는 작품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작품도 서둘러 구입하기 보다는 많은 작품을 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 후 구입하는 것이 좋아요. 작품을 구입할 때도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구입할 것을 권하고 싶어요.”

먼 훗날,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고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는 구 대표는 앞으로 국내 전시에만 머물지 않고 싱가포르, 홍콩, 중국,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해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다. 또 올해 새롭게 설립한 ‘Graphite on Pink’라는 출판사를 통해 작가들의 도록은 물론 한정판 아트북, 큐레이터나 컬렉터가 쓴 현대미술 서적들을 꾸준히 발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본격적으로 미술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은 느낌입니다. 갤러리 구에 대한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갤러리스트라는 전문 분야를 개척해가는 구 대표의 각오에 열정이 느껴졌다.

-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