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노인과 바다>의 ‘자이가르닉 효과’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노인과 바다>의 ‘자이가르닉 효과’

<노인과 바다> 는 1952년 9월 발표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다.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1953년)과 노벨문학상(1954년)을 안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에 대해 “평생을 바쳐 쓴 글이다.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말했다.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다.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했다. 40일째까지는 한 소년이 같이 탔지만 지금은 떠났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여느 때보다 일찍 바다로 나갔다. 한낮에 이르러 해안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떠나왔을 때 ‘무지무지한 놈’이 물렸다. 배보다 더 큰 청새치였다. 해가 지고 뜨기를 사흘. 노인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가물가물해 오지만 노인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런 고기를 못 잡고 죽어버릴 수야 없지. 하느님 그저 견딜 수 있게 해주십시요.”
노인은 왜 그리 청새치에게 집착할까. 노인은 청새치를 낚아 올리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버틴다. 먹을 것이 없으니 다랑어와 돌고래, 날치를 뜯어먹는다. 때로 메스껍지만 오직 청새치를 잡기 위해 견딘다. 노인은 몇 번이나 중얼댄다. “아무리 힘들어도 난 널 잡고야 말 테다.” 무엇이 노인에게 이런 힘을 줬을까.
노인은 안다. 이 정도 크기의 청새치라면 잡기도 어렵고, 잡았다 하더라도 운반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자칫 포기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흘 밤낮 동안 청새치와 사투 벌여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식당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웨이터들은 수많은 손님들로부터 주문을 받은 뒤 이를 주방에 전달하는데 신기하게도 주문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했다. 잠시 뒤 자신에게 음식을 날라준 웨이터에게 “조금 전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웨이터는 머리를 갸우뚱대더니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주방에 주문내역을 말할 때 외워 말했으면서 금세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자이가르닉은 의문을 갖고 있다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은 일을 끝내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일을 끝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조사를 해보니 방해를 받아 일을 마치지 못한 쪽에서 자신들이 수행한 업무를 더 잘 기억했다. 그 웨이터도 손님의 주문을 주방장에게 전달하는 자신의 역할을 끝내기 전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갖지만, 그 역할이 끝나면서 잊어버린 것이었다. 자이가르닉은 이런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어떤 일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상태가 계속된다. 속된 말로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든다. 틀린 시험문제가 더 잘 기억나고,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더 기억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시작한 일을 끝내고 싶어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마케팅 심리로 이용된다. 연속극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끝난다. 시청자들은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된다. ‘To be continued’다. 퀴즈쇼, 예능오락 프로그램도 이런 형식을 많이 활용한다. 유료 영화 채널을 보면 중간에서 슬쩍 광고를 끼워 넣기도 한다. 티저 형식의 광고도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용한다. 버스에 붙여놓은 ‘누나 사랑해’는 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도대체 저 광고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인가 싶어 수소문하게 된다. 정보를 다 공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한다. 영화 상영 전 예고편도 비슷한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이다.
완성되지 못한 천재에 대해서도 대중은 그리움이 많다. 자살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등진 뮤지션이나 배우는 오랫동안 기억된다. 유재하·김광석이 그랬고, 제임스 딘, 장국영이 그렇다. 의료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신해철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가진 천재성을 세상에 다 풀어놓기도 전에 생을 마무리한 데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커 대중은 이들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미국인이 가장 추앙하는 대통령인 링컨과 J.F. 케네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장수인 이순신 장군도 삶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끝나버린 데 대한 아쉬움이 분명 있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교통사고나 예상치 못한 일로 이별을 해버리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그리워하게 된다. 천수를 누린 어르신들의 호상과는 다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가족들의 애끓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투자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특히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조직의 리더나 팀장이다. 실패한 프로젝트나 투자를 잊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겨두다 보면 현명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완결시켜야 되겠다는 집착은 때로 불필요한 투자를 결정하게 만든다.
조직의 리더·팀장이라면 불필요한 집착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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