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
공포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
언제 어디서나 입과 코를 가리는 얇은 수술용 마스크가 한국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최근 한국에서 마스크 판매가 급증했다. 치명적으로 알려진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팝스타부터 관광객까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다.
지난 6월 12일 현재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으로 11명이 사망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당국의 필사적인 조치로 3680여 명이 격리됐고, 2700여 개 학교가 휴업했다. 대중은 쇼핑몰과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지금까지 메르스 확진 환자는 126명이다. 지금까지 중동 밖에선 한국이 메르스 환자가 가장 많다. 메르스의 치사율이 약 36%로 알려졌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부 전문가는 반드시 그렇진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메르스 발발에 대한 한국 당국의 대응이 과하지 않은지, 역효과가 나진 않는지 우려한다.
미국 듀크대학(노스캐롤라이나주)의 감염병학자 그레그 그레이 교수는 한국의 메르스 대응을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 우편물이 일으킨 정신적 공황에 견준다. “당시 대중의 우려가 너무 커 탄저균의 위협보다 그에 대한 공포가 더 위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대중은 의사에게 불필요한 요구를 하고 걸핏하면 응급구급대를 불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메르스는 고열과 기침, 숨가쁨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하면 폐렴이나 장기 기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첫 메르스 환자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왔다. 동물, 특히 낙타가 바이러스 매개체로 알려졌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기는 것은 기침이나 재채기에서 나오는 비말이라고 WHO는 추정한다. 한국의 메르스 발발은 지난 5월 20일 시작됐다. 68세의 남성이 중동 4개국을 여행한 뒤 돌아와 증세가 나타났다.
한국이 메르스 확산을 저지하려고 그토록 긴박하게 총력대응을 하는 이유는 아시아 지역이 2003년 경험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때문인 듯하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약 8000명이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750명이 사망했다. 메르스와 사스는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 일으킨다. 그러나 현재로선 메르스 바이러스가 훨씬 전염성이 약한 듯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바이러스학자 앤드루 페코츠 교수는 “현재로선 메르스가 사스처럼 세계적인 위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메르스 발발 초기의 느슨한 대처로 늑장, 뒷북 대응이라는 맹비난을 받아 그런 실수를 만회하고 싶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첫 환자는 병원 4곳을 거친 뒤에야 메르스 진단을 받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6월 8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초동대응에서 좀 더 면밀히 대응했으면 지금보다는 좀 더 빨리 메르스 사태를 종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6월 9일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이번 주 내 종식시킨다는 각오로, 적극적인 총력대응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레이 교수는 대중이 불필요하게 두려움을 가지면 지나친 예방 조치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학교가 갑자기 휴업하면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고민한다. 또 건강한 사람이 감염 여부의 확인을 요구하면서 의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공황은 궁극적으로 귀중한 자원을 소모시킨다. 메르스 사태로 영화 관람객도 크게 줄어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6월 첫째 주(6~7일) 전국 극장 관람객은 122만4804명으로 메르스 사태 발생 전인 5월 첫째주(2~3일) 221만5301명에 비해 44.7% 감소했다. 특히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한(5월 20일) 이후인 넷째 주말(23~24)에는 196만6122명, 다섯째 주말(30~31일)159만9227명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화제작 ‘연평해전’은 개봉을 당초 6월 10일에서 24일로 연기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집계한 결과 메르스를 이유로 한국 여행 예약을 취소한 인원은 총 5만4000명에 이르렀다. 이 중 90%가량이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여행객이다. 싱가포르는 한국 수학여행을 전부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한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국민에게 권고했다.
페코츠 교수는 “그런 여행 제한으로 발생하는 경제적·사회적 피해가 어떤 잠재적 혜택보다도 훨씬 크다”고 말했다. 메르스 발병 건수가 상대적으로 극소수이기 때문에 여행 자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WHO도 이런 경우 여행 제한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5일 발표한 공지문에서 한국의 메르스 발병을 3단계인 공지 등급 중 가장 낮은 ‘주의’로 분류하며 여행자들에게 통상적 수준의 주의를 요망했다.
메르스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타리크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은 “메르스가 발생한 국가에 대한 여행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지적하며 메르스 사태가 신속히 효과적으로 종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중이 공중보건 권고 사항을 지키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총력대응과 대중의 공황을 유발하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도 마음이 불안하겠지만 과민하게 반응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에선 지금까지 메르스가 병원 내 감염으로만 나타났지만 학교 수천 곳이 휴업했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강철인 교수는 그런 조치가 과잉 대응이라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레이 교수도 “병원에서 감염된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선 병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를 식별하고 신속히 격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절차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메르스 공포로 경기 남부 소재 대형마트의 매출이 30% 가까이 떨어지는 등 유통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백화점도 대부분 5~8%가량 매출이 줄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는 상대적으로 반사혜택을 누렸다. 한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6월 1~6일 매출이 전년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특히 면역력 강화제가 인기 상품이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쉽게 전파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변이가 없어 전염성이 강하지 않다. 한국의 메르스 바이러스는 사우디에서 발견된 메르스 바이러스와 다르지 않다고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이 말했다. “당분간 변이는 없으리라고 본다.”
페코츠 교수는 “메르스는 다른 여러 호흡기 감염증보다 전염성이 약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메르스 바이러스의 주된 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증식하거나 사람 사이에서 퍼지기가 어렵다.” 사람 사이에서는 주로 밀접 접촉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메르스 바이러스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왜 전염성이 약한지,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과학자들도 모른다. 따라서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페코츠 교수는 덧붙였다. “변이되지 않는다면 메르스는 신속한 통제가 가능하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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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현재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으로 11명이 사망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당국의 필사적인 조치로 3680여 명이 격리됐고, 2700여 개 학교가 휴업했다. 대중은 쇼핑몰과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지금까지 메르스 확진 환자는 126명이다. 지금까지 중동 밖에선 한국이 메르스 환자가 가장 많다. 메르스의 치사율이 약 36%로 알려졌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부 전문가는 반드시 그렇진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메르스 발발에 대한 한국 당국의 대응이 과하지 않은지, 역효과가 나진 않는지 우려한다.
미국 듀크대학(노스캐롤라이나주)의 감염병학자 그레그 그레이 교수는 한국의 메르스 대응을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 우편물이 일으킨 정신적 공황에 견준다. “당시 대중의 우려가 너무 커 탄저균의 위협보다 그에 대한 공포가 더 위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대중은 의사에게 불필요한 요구를 하고 걸핏하면 응급구급대를 불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메르스는 고열과 기침, 숨가쁨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하면 폐렴이나 장기 기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첫 메르스 환자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왔다. 동물, 특히 낙타가 바이러스 매개체로 알려졌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기는 것은 기침이나 재채기에서 나오는 비말이라고 WHO는 추정한다. 한국의 메르스 발발은 지난 5월 20일 시작됐다. 68세의 남성이 중동 4개국을 여행한 뒤 돌아와 증세가 나타났다.
한국이 메르스 확산을 저지하려고 그토록 긴박하게 총력대응을 하는 이유는 아시아 지역이 2003년 경험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때문인 듯하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약 8000명이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750명이 사망했다. 메르스와 사스는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 일으킨다. 그러나 현재로선 메르스 바이러스가 훨씬 전염성이 약한 듯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바이러스학자 앤드루 페코츠 교수는 “현재로선 메르스가 사스처럼 세계적인 위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행 제한은 경제적·사회적 피해 키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6월 9일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이번 주 내 종식시킨다는 각오로, 적극적인 총력대응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레이 교수는 대중이 불필요하게 두려움을 가지면 지나친 예방 조치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학교가 갑자기 휴업하면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고민한다. 또 건강한 사람이 감염 여부의 확인을 요구하면서 의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공황은 궁극적으로 귀중한 자원을 소모시킨다.
철저한 감시 필요해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집계한 결과 메르스를 이유로 한국 여행 예약을 취소한 인원은 총 5만4000명에 이르렀다. 이 중 90%가량이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여행객이다. 싱가포르는 한국 수학여행을 전부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한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국민에게 권고했다.
페코츠 교수는 “그런 여행 제한으로 발생하는 경제적·사회적 피해가 어떤 잠재적 혜택보다도 훨씬 크다”고 말했다. 메르스 발병 건수가 상대적으로 극소수이기 때문에 여행 자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WHO도 이런 경우 여행 제한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5일 발표한 공지문에서 한국의 메르스 발병을 3단계인 공지 등급 중 가장 낮은 ‘주의’로 분류하며 여행자들에게 통상적 수준의 주의를 요망했다.
메르스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타리크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은 “메르스가 발생한 국가에 대한 여행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지적하며 메르스 사태가 신속히 효과적으로 종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중이 공중보건 권고 사항을 지키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총력대응과 대중의 공황을 유발하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도 마음이 불안하겠지만 과민하게 반응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에선 지금까지 메르스가 병원 내 감염으로만 나타났지만 학교 수천 곳이 휴업했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강철인 교수는 그런 조치가 과잉 대응이라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레이 교수도 “병원에서 감염된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선 병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를 식별하고 신속히 격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절차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메르스 공포로 경기 남부 소재 대형마트의 매출이 30% 가까이 떨어지는 등 유통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백화점도 대부분 5~8%가량 매출이 줄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는 상대적으로 반사혜택을 누렸다. 한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6월 1~6일 매출이 전년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특히 면역력 강화제가 인기 상품이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쉽게 전파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변이가 없어 전염성이 강하지 않다. 한국의 메르스 바이러스는 사우디에서 발견된 메르스 바이러스와 다르지 않다고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이 말했다. “당분간 변이는 없으리라고 본다.”
페코츠 교수는 “메르스는 다른 여러 호흡기 감염증보다 전염성이 약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메르스 바이러스의 주된 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증식하거나 사람 사이에서 퍼지기가 어렵다.” 사람 사이에서는 주로 밀접 접촉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메르스 바이러스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왜 전염성이 약한지,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과학자들도 모른다. 따라서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페코츠 교수는 덧붙였다. “변이되지 않는다면 메르스는 신속한 통제가 가능하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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