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기는 한데 ‘하프’라서…
예쁘기는 한데 ‘하프’라서…
일본엔 ‘튀어나온 말뚝이 얻어맞는다’는 말이 있다. 튀기보다는 조화를 이루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조화라면 대다수 일본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구 약 1억2700만의 이 섬나라는 지구 상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동질적인 사회 중 하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가별 통계자료(World Factbook)에 따르면 일본 민족이 전체 인구의 98.5%를 차지한다. 나머지 1.5%는 한국계와 중국계다. 특히 시골지역에선 일본인이 아닌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다.
따라서 일본에서 튀면 정말 튀는 사람이다. 미스 유니버스 재팬 미야모토 아리아나(21)는 튄다. 그녀가 크고 쭉 뻗은 몸매에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얼굴,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함 없는 자연스런 미소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처럼 돋보이는 외모는 모델 사이에선 드물지 않다. 맞다. 미야모토는 모델이다.
미야모토가 튀는 이유는 흑인 혼혈이라는 데 있다. 일본 인구조사에 인종이나 민족에 관한 통계는 없다. 따라서 일본에 혼혈인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교적 드문 편이다.
미인대회 우승자에게 돋보이는 건 대체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미야모토가 미스 유니버스 재팬 왕관을 차지했을 때 일부 일본인 사이에서 반감이 표출됐다. 그들의 불만은 그녀의 미모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일본적인 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나가사키 대표는 정말 예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얼굴은 아니다”고 한 트위터가 미야모토를 비판했다. “미스 유니버스의 얼굴은 명백한 외국인!”이라고 또 다른 사람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 반응을 두고 미야모토는 “놀랍지 않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사실, 예상하고 있었다.”
이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에선 민족과 국적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 혼혈인은 ‘하프(half)’로 불린다. 그들 중 다수가 ‘순혈’ 일본인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고 푸념한다.
미야모토는 일본인 엄마와 미국인 흑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군이었던 부친이 일본 큐슈 남단에 있는 사세보 해군기지에서 근무하던 중 엄마를 만났다.
미야모토가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이 신체 접촉을 꺼렸다고 미야모토는 돌이켰다. 피부의 검정이 자기에게 묻을까봐 두려워서였다. 풀장에서 같이 수영하기를 거부한 아이들도 있었다. 미야모토는 걸음마를 배우면서부터 티아라(왕관 모양 머리장식)를 쓰기 시작한 미국의 몇몇 미인대회 참가자들과는 달랐다. 올초 ‘미스 나가사키 2015’가 처음 참가한 대회였다고 한다. 거기서 2015년 미스 재팬 출전 자격을 획득한 뒤 이번 전국 본선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내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2015 콘테스트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미야모토는 같은 혼혈인 친구가 자살했을 때 미인대회의 세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친구의 자살은 일본 사회에서 혼혈인이 맞닥뜨리는 특유의 장벽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미야모토는 진단한다.
미야모토도 그 친구와 같은 일을 겪는다고 니시쿠라 메구미는 말한다. 메구미는 일본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어머니를 둔 영화제작자다. 그녀의 최근 영화 ‘하프’는 일본 혼혈인의 삶을 조명한다. “일본에선 매일 내가 일본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고 그녀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미국에선 미국인임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아주 피곤해진다.”
배타적인 주류 집단에의 소속감이 집단적 조화의 토대를 이루는 일본 사회에서 혼혈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들러리처럼 느껴지기 일쑤라고 니시쿠라가 말했다.
많은 지역에서 타인종과의 결혼이 여전히 금기시된다. 따라서 하프가 늘어나긴 해도 여전히 드물다고 니시쿠라는 전한다. 흑인 하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에릭 로빈슨은 일본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블로그 ‘블랙 도쿄’에 기록한다. 일본에서 흑인이 겪는 어려움은 미국 흑인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더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일본에선 인종차별적인 단속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총기 폭력에 희생될 걱정도 없다. 하지만 일본인 고유의 의식은 극복하기 힘들다. 미야모토가 일본의 새 얼굴이라고 이해시키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야모토의 모친처럼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을 멸시하는 일본인이 아직도 많다. 일본에는 부라쿠(black)와 빵스케(pansuke, 매춘부)를 합친 부라빵(burapan)이라는 속어가 있다. 흑인 파트너를 선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로빈슨은 설명한다. 올초 일본 힙합 그룹 래츠&스타는 일본 외신기사클럽에서 얼굴을 검게 칠하고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그와 같은 퍼포먼스 소식이 알려지자 공연을 취소했다.
이번에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 뽑힌 미야모토는 내년 초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한다. 이를 일본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신호로 여기기 쉽다. 미야모토의 선출을 두고 일본이 ‘다름’을 더 많이 포용하게 됐다는 증거라고 많이 말한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본과 아일랜드계 혼혈 사회학자 레베카 치요코 킹 오리에인이다. 그녀의 저서 ‘일본의 미국식 미인대회에서 인종 평가(Pure Beauty: Judging Race in Japanese American Beauty Pageants)’는 인종 순수성에 관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미인대회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해부한다.
“(미야모토가) 일본인의 태도를 바꿔놓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오리에인이 말했다. “하지만 일본인이 정말로 그렇게 많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그녀가 공개투표로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주 엄선된 소규모 심사위원단의 선택이었다.” 미야모토의 미스 유니버스 선출은 미인대회 기획자들의 영리한 선택에 더 가깝다고 오리에인은 주장한다. 일본이 인종적인 문제에 너그러워졌다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과거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 몇몇을 살펴보면 상당히 키가 크고 대단히 서구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그리고 참가자가 서구적인 외모에 가까울수록 더 높은 자리까지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미인대회 우승을 위한 전략적 선택 이외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는 의미다. ‘가이진’으로 불리는 외국인 또는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배척한다는 이미지를 벗어 던질 생각이 그들에게 없을 수도 있다. 일본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다. 그로 인한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일본 의회는 미숙련 이민 노동자에게 문호를 개방해 그 골을 메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 보수 성향의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외국인 근로자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자가 37%에 그쳤다. ‘사회적 통합’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외국인은 일본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일본인이 여전히 많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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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일본에서 튀면 정말 튀는 사람이다. 미스 유니버스 재팬 미야모토 아리아나(21)는 튄다. 그녀가 크고 쭉 뻗은 몸매에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얼굴,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함 없는 자연스런 미소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처럼 돋보이는 외모는 모델 사이에선 드물지 않다. 맞다. 미야모토는 모델이다.
미야모토가 튀는 이유는 흑인 혼혈이라는 데 있다. 일본 인구조사에 인종이나 민족에 관한 통계는 없다. 따라서 일본에 혼혈인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교적 드문 편이다.
미인대회 우승자에게 돋보이는 건 대체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미야모토가 미스 유니버스 재팬 왕관을 차지했을 때 일부 일본인 사이에서 반감이 표출됐다. 그들의 불만은 그녀의 미모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일본적인 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나가사키 대표는 정말 예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얼굴은 아니다”고 한 트위터가 미야모토를 비판했다. “미스 유니버스의 얼굴은 명백한 외국인!”이라고 또 다른 사람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 반응을 두고 미야모토는 “놀랍지 않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사실, 예상하고 있었다.”
이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에선 민족과 국적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 혼혈인은 ‘하프(half)’로 불린다. 그들 중 다수가 ‘순혈’ 일본인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고 푸념한다.
미야모토는 일본인 엄마와 미국인 흑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군이었던 부친이 일본 큐슈 남단에 있는 사세보 해군기지에서 근무하던 중 엄마를 만났다.
미야모토가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이 신체 접촉을 꺼렸다고 미야모토는 돌이켰다. 피부의 검정이 자기에게 묻을까봐 두려워서였다. 풀장에서 같이 수영하기를 거부한 아이들도 있었다.
타인종과의 결혼은 여전히 금기
미야모토는 같은 혼혈인 친구가 자살했을 때 미인대회의 세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친구의 자살은 일본 사회에서 혼혈인이 맞닥뜨리는 특유의 장벽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미야모토는 진단한다.
미야모토도 그 친구와 같은 일을 겪는다고 니시쿠라 메구미는 말한다. 메구미는 일본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어머니를 둔 영화제작자다. 그녀의 최근 영화 ‘하프’는 일본 혼혈인의 삶을 조명한다. “일본에선 매일 내가 일본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고 그녀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미국에선 미국인임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아주 피곤해진다.”
배타적인 주류 집단에의 소속감이 집단적 조화의 토대를 이루는 일본 사회에서 혼혈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들러리처럼 느껴지기 일쑤라고 니시쿠라가 말했다.
많은 지역에서 타인종과의 결혼이 여전히 금기시된다. 따라서 하프가 늘어나긴 해도 여전히 드물다고 니시쿠라는 전한다. 흑인 하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에릭 로빈슨은 일본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블로그 ‘블랙 도쿄’에 기록한다. 일본에서 흑인이 겪는 어려움은 미국 흑인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더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일본에선 인종차별적인 단속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총기 폭력에 희생될 걱정도 없다. 하지만 일본인 고유의 의식은 극복하기 힘들다. 미야모토가 일본의 새 얼굴이라고 이해시키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야모토의 모친처럼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을 멸시하는 일본인이 아직도 많다. 일본에는 부라쿠(black)와 빵스케(pansuke, 매춘부)를 합친 부라빵(burapan)이라는 속어가 있다. 흑인 파트너를 선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로빈슨은 설명한다. 올초 일본 힙합 그룹 래츠&스타는 일본 외신기사클럽에서 얼굴을 검게 칠하고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그와 같은 퍼포먼스 소식이 알려지자 공연을 취소했다.
이번에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 뽑힌 미야모토는 내년 초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한다. 이를 일본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신호로 여기기 쉽다. 미야모토의 선출을 두고 일본이 ‘다름’을 더 많이 포용하게 됐다는 증거라고 많이 말한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본과 아일랜드계 혼혈 사회학자 레베카 치요코 킹 오리에인이다. 그녀의 저서 ‘일본의 미국식 미인대회에서 인종 평가(Pure Beauty: Judging Race in Japanese American Beauty Pageants)’는 인종 순수성에 관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미인대회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해부한다.
“(미야모토가) 일본인의 태도를 바꿔놓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오리에인이 말했다. “하지만 일본인이 정말로 그렇게 많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그녀가 공개투표로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주 엄선된 소규모 심사위원단의 선택이었다.”
고령화 대비해 해외 인력에 문호 개방해야
미인대회 우승을 위한 전략적 선택 이외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는 의미다. ‘가이진’으로 불리는 외국인 또는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배척한다는 이미지를 벗어 던질 생각이 그들에게 없을 수도 있다. 일본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다. 그로 인한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일본 의회는 미숙련 이민 노동자에게 문호를 개방해 그 골을 메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 보수 성향의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외국인 근로자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자가 37%에 그쳤다. ‘사회적 통합’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외국인은 일본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일본인이 여전히 많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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