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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째 빈티지 나온 ‘루체’] 이탈리아+미국 와인 명가의 합작품

[20번째 빈티지 나온 ‘루체’] 이탈리아+미국 와인 명가의 합작품

베니니 부사장은 “루체는 미국과 이탈리아 와인 명가가 만나 심혈을 기울인 와인인 만큼 맛과 향에서 프랑스 보르로 지역의 특급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했다
와인 업계에서는 명문가들이 서로의 장점을 살린 합종연횡(合從連衡)을 종종 볼 수 있다. 구대륙 와인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와 신대륙 와인의 맹주인 미국이 만나 새로운 명품 와인을 만들어낸다. 1998년 미국 워싱턴주 최대의 와이너리인 샤또 생 미셸과 이탈리아 레드 와인의 명가 안티노리가 합작해 만든 콜 솔라레(Col Solare)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고급 와인에 속하는 100달러 전후 가격으로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과 로버트 몬다비의 만남
이보다 먼저 두 나라가 합작품을 만든 게 바로 이탈리아의 특급 와인 루체다. 루체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로버트 몬다비와 이탈리아 700여년 역사의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가문이 만나 탄생했다. 1995년 몬탈치노 지역에 이탈리아 최초의 와인 조인트 벤처인 ‘루체 델라 비테’가 설립됐다. 올해로 20번째 빈티지를 출시하면서 프레스코발디 가문의 30대 손인 스테파노 베니니(Stefano Benini) 부사장이 수입원인 신동와인 초청으로 지난 7월 한국을 찾았다. 베니니 부사장은 “루체는 미국과 이탈리아 와인 명가가 만나 심혈을 기울인 와인인 만큼 맛과 향에서 프랑스 보르로 지역의 특급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멜롯과 산지 오베제를 블렌딩한 최초의 와인으로 유기농법으로 소량 생산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프레스코발디의 전통, 로버트 몬다비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합친 게 서로에게 윈-윈 이었다”고 덧붙였다.

몬다비는 앞서 1985년 프랑스 유명 와이너리 무통 로칠드 가문과 합작해 ‘오퍼스원’을 선보여 성공을 거뒀다. 몬다비는 이후 선조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최고 등급의 와인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런 기회가 맞아 프레스코발디그룹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2004년 로버트 몬다비가 글로벌 와인유통 기업인 콘스틸레이션에 인수됐고, 이후 루체 델라 비테 와이너리는 프레스코발디가 독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프레스코발디는 1308년 설립돼 올해로 무려 707년째인 가족 기업이다. 그는 ”프레스코발디의 와인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도나텔라,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같은 유명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며 “14세기부터는 영국 왕실과 유럽 귀족의 명품 와인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루체는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좋은 품질과 훌륭한 맛과 향이라는 기본기뿐 아니라 강렬한 태양을 상징하는 라벨이 한국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베니니 부사장은 “루체는 이탈리어 말로 ‘빛’을 뜻한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라벨을 바꾼 적이 없다”고 말한다. 루체 라벨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건축가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산토 스피리토 디 피렌체 성당’의 제단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성당이 세워진 땅을 프레스코발디가 기증했다. 빛을 의미하는 루체 이름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새 출발을 하는 사람에게 ‘빛나는 미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선물로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 루체 20주년을 기념하는 2012년산 18L 대형 사이즈를 선보인 바 있다. 20번째 빈티지를 기념하기 위해 단 12병만 제작됐다. 한 병 가격은 1000만원 대다. 베니니 부사장은 “2012년은 포도 재배에 맞는 좋은 날씨 덕분에 훌륭한 맛의 와인을 만들어냈다”며 “루체 2012는 잘 익은 탄닌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산도의 조화가 뛰어날 뿐 아니라 입안에 스모키한 향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루체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루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으로 중요한 손님이 오면 무조건 루체를 대접한다. 우선 맛과 밸런스가 좋다. 입 안에 남는 여운도 길다. 상대에게 내가 당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루체는 과일 향이 짙고 맛의 균형이 뛰어나다. 음식과 궁합도 좋다. 나는 주로 고기와 매칭을 하는데 가끔 파스타를 곁들인다. 토마토 소스로 조리한 생선 요리와 함께 먹었는데 루체 특유의 신맛이 입안을 깔끔하게 헹궈줬다.”
 ‘빛나는 미래를 기원한다’
시음한 루체 2012년 빈티지는 야생 블랙베리 같은 잘 익은 과실향과 블랙페퍼의 복합적인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입안에서는 풍부한 볼륨감뿐 아니라 벨벳 같은 부드러움도 느껴진다. 잘 익은 탄닌의 촉감과 긴 여운이 와인의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가격은 28만6000원. 일본의 유명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 18권에서 주인공 소믈리에인 시즈쿠는 루체를 이렇게 설명한다. “피존 블러드(비둘기의 피로 최고의 루비색을 표현하는 말), 여름의 끝, 뉘엿 뉘엿 해 질 무렵 초원의 향기라고 할까. 단 한 모금의 루체를 혀에 올려놨을 뿐인데 커다란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은 과일로 변신해요. 넘치는 황금빛, 오렌지, 라임 그린과 군청색, 그리고 석양의 선명한 붉은빛이 보입니다. 온천지에 가득한 빛을 심호흡과 함께 들이마시면, 어두운 마음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패배감은 전부 어제 일이 되어 버립니다. ‘자, 다시 미래를 향해 걸어가자’는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해 주는 와인이 루체이죠. 왠지 기운이 펄펄나요.”

베니니 부사장은 와인을 손쉽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와인 투어를 추천한다. “와인은 해당 지역의 삶을 바탕으로 둔 문화다.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 오너가 자신의 와인 창고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본격적인 와인 투어가 시작됐다. 이탈리아도 2000년부터 와인 투어를 많이 한다. 피렌체에서는 단체로 베스파 스쿠터를 빌려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음식을 즐기는 사람도 상당수다. 몬탈치노의 루체 와이너리도 와이너리를 보고 점심과 곁들여 와인을 마시는 행사가 자주 열린다. 아시아에선 주로 중국·일본 애호가들이 많이 온다. 한국인도 와인 투어를 즐겼으면 좋겠다. 값진 경험이 될 거다.”

- 김태진 전문기자 kim.taeji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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