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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아라크네의 귀환, 인공 거미줄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아라크네의 귀환, 인공 거미줄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거미. 검어서 거미라고도 하고, 사로잡은 먹이를 거머쥐어서 거미라고도 한다. 전 세계에 약 4만종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는 약 700종이 분포한다. 거미는 환경 지표생물뿐 아니라 해충의 천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별늑대거미는 중금속 환경오염에 민감하고, 긴호랑거미는 기후변화 지표생물이다. 황산적거미는 해충인 멸구류를 잡아먹기 때문에 농업 및 산림 생태계에서 매우 유용하다. 그 외 여러 거미들이 독극물 검출에 이용되기도 하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어디 그뿐인가. 거미의 DNA를 물려받은 스파이더맨은 뒷골목 악당들까지 때려잡는다.

이러한 활약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거미에 대해 갖는 생각은 대개 부정적이다. 기분 나쁘고 징그럽다는 것이다. 한적한 교외나 시골 길을 기분 좋게 걷다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거미를 보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친다. 특히 얼굴이며 팔, 다리에 척척 감기는 거미줄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옛 속담들도 대개 ‘거미줄도 줄은 줄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같이 하나같이 삐딱한 것 일색이다. 나름 최선을 다했던 거미로서는 억울할 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싫은 건 싫은 거다.
 인공 거미줄 상용화 연구 한창
‘인공 거미줄’ 강연 동영상.
그렇게 홀대받던 거미에게 자존심 회복의 기회가 왔다. 초(超)강도, 초(超)유연 첨단 소재로서 거미줄(spider silk)의 놀라운 특성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01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UC Riverside) 생물학 교수로 재직 중인 거미박사, 셰릴 하야시(Cheryl Hayashi) 교수의 얘기를 들어 보자.

거미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3억8000만년 전이라고 한다.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것이 고작 700만년 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거미는 집을 짓고, 먹이를 잡고, 이동하고, 알을 보호하기 위한 다목적으로 거미줄을 만든다. 보통 거미줄에는 대략 7가지 종류의 다른 성분이 포함된다. 천장 구석에 생긴 거미줄의 바깥 궤적, 세로 줄, 그리고 이것을 연결하는 동심원 등이 모두 필요에 따라 다른 성분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아마도 최초의 거미 조상은 한가지 성분으로만 거미줄을 만들었을 게다. 그런데 3억8000만년이 지나는 동안 그 하나의 거미줄 유전자가 다양화되고 전문화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오늘날 다양한 성분으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거미줄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지름이 3~8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철의 4배, 방탄조끼에 쓰이는 케블라(Kevlar) 섬유의 6배나 된다! 만약 거미줄을 연필 정도의 두께로 묶어서, 그 실로 거대한 거미집을 쳐두면 ‘날고 있는 점보 비행기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추론까지 있을 정도다. 이와 달리 무게는 철의 4분의 1, 탄소섬유의 절반 정도다. 인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인공 혈관과 인공 인대, 수술용 봉합사, 임플란트 재료 등에도 쓰일 수 있다. 가볍고 질긴 성질을 활용해 방탄복, 낙하산 등 군사용 소재로도 안성맞춤이다. 하야시 교수가 설명하듯이 거미줄은 강성(剛性, strength), 연성(延性, extensibility), 인성(靭性, toughness) 등 소재가 갖춰야 하는 모든 성능 지표에서 누에고치, 울, 케블러, 탄소섬유를 능가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가축화에 성공한 누에와는 달리 거미는 대량 사육이 불가능하다. 영역에 민감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두면 서로 잡아먹기 때문이다. 또 입맛이 고상해서 생식(生食)만 즐긴단다. 굶어 죽을지언정 죽은 먹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설사 거미의 대량 사육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거미줄에는 7가지 정도의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원하는 성분만 골라내는 것도 문제다.

결국은 누에처럼 거미를 사육하기보다는 인공 거미줄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거미줄의 놀라운 능력은 피브로인(fibroin)이라는 단백질 덕분인데, 최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이 단백질을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서 인공 거미줄을 경제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제각각 독특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흥미롭다.

미국 ‘크레이그 바이오 크래프트 연구소’는 거미줄 섬유의 유전자를 누에고치에 이식해서 누에가 거미줄과 똑같은 비단실을 만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크레이그 측은 이렇게 개발된 거미줄에 ‘몬스터 실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업생산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 기술대학 연구진은 거미줄의 강도와 특성을 지닌 미세구조 고분자 섬유를 개발했다. 거미줄을 이루는 실크 단백질이 스프링 모양으로 꼬여있는 구조를 본 따서 높은 강도를 갖게 만든 섬유다.

일본의 벤처기업 스파이바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 거미줄의 피브로인과 거의 동일한 성질의 단백질 성분을 미생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분말로 해서 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간 20t을 생산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KAIST·서울대 공동연구팀은 대사공학을 이용해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거미줄을 만드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넣어 증식시키는 방식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박테리아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단백질을 거미실관을 모사한 주사기로 뿜어내자 실제 거미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인체 내 서식하는 대장균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생체적합도(biocompatability)가 높아 각종 외과 수술용 섬유나 조직개발에 유리하다고 한다.

굉장히 독특한 방법도 있다. 캐나다 ‘넥시아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미국 육군 생화학사령부 공동 연구팀은 거미줄 유전자를 염소의 젖세포와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염소의 젖에서 거미줄의 단백질을 대량 분비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인조 거미줄에 강철처럼 강하다는 뜻에서 ‘바이오스틸(BioSteel)’이라는 근사한 이름도 붙였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거미는 사실 인간이었다. 리디아라는 도시에 살았던 아라크네(Arachne)는 자기가 여신 아테나보다베 짜는 솜씨가 뛰어나다며 까불고 다니다가, 그만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평생 뱃속에서 줄을 뽑아 베를 짜야 하는 천벌을 받게 된 것이다. 첨단 유전공학의 힘으로 아라크네의 저주가 풀리고 있다.
 자연의 지혜에서 배우는 생체모방학 각광
바야흐로 바이오재료(biomaterials) 시대다. 크게 보면 생체모방학(biomimetics)의 일환인데,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들의 특징을 이용해서 산업에 필요한 각종 소재와 부품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거미줄 외에도 수직 벽에 붙어있게 해주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빗방울이 통통 튀겨나가는 연꽃의 잎, 태풍이 와도 끄떡없이 바위를 붙잡고 있는 홍합의 족사, 위협을 느끼면 딱딱해지고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말랑해지는 해삼의 피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비단벌레나 진주조개 껍데기 등이 모두 훌륭한 바이오 재료다.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요즈음, 생체모방학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거미가 한국 섬유산업의 옛 영광을 되살리고, 주력인 전자 및 바이오산업의 숨겨진 필살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는 토종 거미가 많다. 이들 거미들이 큰 마음먹고 국부 창출의 전사(戰士)가 되어준다면, 더 이상 거미는 혐오 곤충이 아니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 곤충’으로 대접받게 될 거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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