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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내딛은 첫발

힘겹게 내딛은 첫발

서울 관악구 난곡동 아동일시보호소에서 관계자 및 자원봉사자가 아기를 돌보고 있다.
“정말 끔찍한 전망이군요.”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연사들이 발표를 끝낼 때마다 연신 되풀이해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매일경제가 주최한 제16회 세계지식포럼 ‘인구절벽, 글로벌 경제 대침체 도화선 될까’ 세션에서다. 인구학자 해리 덴트, 메릴랜드대학 에우헤니아 칼나이 교수, 연세대 한준 교수가 연사로 나서 ‘인구절벽’ 현상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그들의 전망은 하나 같이 암울했다. 세계는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으며 추락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인구절벽이란 말은 덴트가 처음으로 공론화한 개념이다. 인구 집단의 규모가 정점에 달했다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경제가 크게 위축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사례는 베이비붐 세대다. 전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경제 발전과 소비 증가가 동시에 일어났지만, 이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자 그동안 쌓아놓은 경제 구조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베이비붐 세대가 만든 거품이 이제 꺼지기 시작했다”고 덴트는 말했다.

전후 일본 사회는 인구절벽의 파괴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덴트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절벽에서 추락한 첫 사례”다. 일본은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가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를 지나 인구절벽에 도달했다. 1950년대에 걸쳐 출산율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바람에 베이비붐 세대의 뒤를 이을 소비자가 부족했던 탓이다. 일본은 이후 20여 년 동안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이렇다 할 인구 정책을 내놓지 못했고, 그 결과 인구와 출산율이 동반 하락했다. “일본은 죽어가고 있다”고 덴트는 단언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덴트는 “한국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며 “한국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맞이할 2018년이면 한국도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접어든다”고 전망했다. 부동산부터 내수 소비·취업률 등 한국의 주요 경제 지표가 서서히 하락하는 것이 그 조짐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덴트는 한국에 “2~3년 시간이 남아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인구절벽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국은 수년 전부터 출산율을 높여 인구절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 정부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2005년이다. 2006년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연령에 진입하고 초저출산 세대가 가임연령에 도달하는 2020년 이후’ 고령화가 가속될 것이며 2018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리라는 계산을 이미 마쳤다. 2011년에는 제1차 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제2차 계획을 내놓았다. 모두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한국의 출산율은 2005년 1.08에서 2014년 1.21로 등락을 반복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1·2차 기본 계획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결혼한 가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제1차 계획 보고서는 저출산의 원인을 “사회·경제적 환경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결혼연령 상승과 자녀 출산 기피”로 지목했다. 문제가 되는 사회·경제적 환경으로는 불안정한 고용요건과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 미비·육아인프라 부족 및 양육비 증가가 꼽혔다. 제2차 계획 보고서 역시 출산 기피 원인을 “1차 기본계획 수립 당시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대책은 기혼 부부의 출산을 가로막는 사회·경제적 환경 개선에 집중됐다.

이번엔 조금 다른 듯하다. 지난 10월 18일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에선 심지어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정부는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만혼과 비혼을 지적하며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마련해 비혼 남녀가 만나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새누리당은 결혼 연령을 앞당기자는 차원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현행 6년제에서 5년제로 줄이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그 밖에 비혼·동거가구 차별 금지법 제정과 가족관계등록법 개정, 다문화가족 및 입양가족 지원 확대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지 강화”도 포함됐다. 기혼 부부에 초점을 맞추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정부는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단체 맞선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가 지난 10월 개최한 미혼남녀 미팅페스티벌.
단체 맞선부터 학제개편이라는 초강수를 동원해 초혼 연령을 낮추겠다는 발상에 일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결혼 직후에 해당하는 30~34세 인구의 출산율은 예외다. 이 연령집단의 출산율은 113.8로 한국보다 합계출산율이 높은 미국(100.8), 일본(100.5), 터키(101)보다 높다. 결혼한 가정은 사회·경제적 상황이 어렵고 양육비 부담이 높더라도 자녀를 충분히 낳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니 이 연령 집단을 중심으로 출산 장려책을 펼친 지난 정책들은 사실상 잘못된 과녁을 겨냥했던 셈이다.

문제는 나머지 연령대다. 30~34세를 제외한 모든 구간의 출산율은 심각하게 낮다. 한때 가장 출산율이 높던 25~29세 구간의 2014년 출산율은 63.4로 터키(135)의 절반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초저출산국가로 꼽히는 일본(84.8)보다 낮다. 20~24세 구간의 경우 13.1로 호주(51.6)의 4분의 1, 일본(29.7)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는 높은 초혼 연령만이 출산율 증가의 원인은 아님을 보여준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는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맞물린 전 세계적 현상이다. 2013년 미국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7세로 1990년 23세보다 4년이나 늦다. 그럼에도 평균 초혼 연령보다 낮은 20~24세 구간 출산율은 한국보다 6배 높은 79다. 비혼 여성의 출산이 이 구간 출산율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수치다.

한국보다 선진국이거나 경제 규모가 비슷한 중진국을 보면 비혼 여성의 출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미국에선 전체 출산의 40.3%(2014년), 호주에선 33.4%(2007년)가 비혼 여성의 몫이었다. 젊은 층으로 가면 이 비율은 한층 늘어난다. 존스홉킨스대학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엄 세대(26~31세) 중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64%가 혼외 출산을 겪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비혼 여성이 전체 출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3년 기준 1.9%에 불과하다. 한국과 함께 초저출산 국가로 꼽히는 일본 역시 2008년 기준 2.1%로 낮은 비율을 보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을 장려해 비혼모를 줄이고 초혼 연령을 낮추는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미국은 1996년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결혼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의 뒤를 이어 저소득층 비혼 커플을 지원하는 ‘튼튼한 가정 세우기(BSF)’ 프로젝트를 실시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3년 뒤 BSF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은 커플과 그렇지 않은 커플의 애착도·동거율·혼인율을 조사한 결과 두 집단 사이에 차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헤어지거나 동거를 그만둔 커플은 BSF 집단쪽에 더 많았다.

결혼 연령을 가능한 낮추돼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자는 3차 계획의 방향성은 그래서 적절하다. 문제는 사회의 인식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10월 19일 열린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공청회가 끝난 후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인데, 현 정부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부 보수 단체는 벌써부터 강한 반발에 나섰다. 한국교회언론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출산·양육비 과다, 살인적인 교육비, 취업난, 주거난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하고 엉뚱하게 혼외아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한국을 비윤리 국가로 만들겠다는 나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영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에 대응하려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문화적 토대가 보다 개방적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며 비혼율의 상승과 비혼 인구의 증가 추세에 맞춰 혼외출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혼외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혼외출산한 비혼모들은 사회적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취업이나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차별과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2010년 내놓은 ‘인공임신중절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의 조사 결과에서 전체 비혼모의 89%는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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