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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맞수 열전 (9) 농심 VS 삼양식품

기업 맞수 열전 (9) 농심 VS 삼양식품

전 세계에서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이 한국이다. 2조원 규모의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는 6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농심이다. 농심의 맞수를 꼽는다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이지만, 라면의 원조인 삼양식품의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은 남기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센 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식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분말수프를 3분의 2만 넣는다.”(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중에서)
 한국인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농심을 부동의 1위로 만든 신라면. 1986년 출시일부터 2014년까지 국내 누적판매량이 240억 개나 된다.
작가 김훈의 신작 수필집은 ‘라면 조리법’으로 시작된다. 라면은 이제 유명 작가의 수필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1963년 한국에 처음 선보인 후 라면이 친숙하고 대중적인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1월 1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2015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를 살펴보면 라면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라면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14년 한국인 라면 소비량은 3590만 개, 인구수로 나누면 1년 동안 한명이 71.2개를 소비했다.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은 43.3개에 불과했고, 베트남(55.1개)과 인도네시아(52.8개)가 뒤를 이었다.

라면 시장 규모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1998년 처음으로 1조원 시대를 열었고, 15년 후인 2013년 2조원 시대를 열었다. 수출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얘기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라면·파스타·국수 등 전체 면류 수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면류 수출액은 2007년 1억7936만 달러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3억2021만 달러로 확대됐다. 수출된 면류 중 라면이 6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라면은 무려 100여 개국에 수출된다. 심지어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한국 라면을 맛볼 수 있다.

라면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빨간 국물에서 시작해 하얀 국물 그리고 국물 없는 라면으로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다. 2015년에는 국물 맛의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면발’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굵은 면발을 내세운 프리미엄 짜장라면인 농심 ‘짜왕’이 인기를 끈 이유다. 2016년에는 프리미엄 짬뽕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라면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시장의 경쟁도 치열하다. 2조원대 라면시장의 선두주자는 농심이다. 점유율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40% 시장을 삼양식품·오뚜기·팔도 등이 분할하고 있다. 농심과 삼양식품, 현 상황에서 라면시장의 맞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에 처음 라면을 선보인 삼양식품의 상징성까지 무시하기는 어렵다. 농심의 맞수로 삼양식품을 꼽은 이유다.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1위로 올라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농심은 라면시장의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이겨내고 1위에 올라서는 힘을 보여줬다. 라면과 스프의 맛을 살리기 위해 연구개발과 시설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63년 9월 삼양라면이 출시된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라면=삼양식품’이었다. 1965년 12월 롯데공업주식회사(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변경)가 ‘롯데라면’을 출시하고 이후 풍년식품의 ‘풍년라면’, 신한제분의 ‘닭표라면’ 등 다양한 라면들이 나와도 라면은 삼양라면이었다. 1965년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은 라면의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삼양라면 천하에 뛰어든 농심은 맛의 차별화로 승부수를 걸었다. 1970년 출시한 ‘소고기라면’은 한국 라면의 국물 맛을 변하게 했다. 그동안 라면은 닭고기 국물 맛을 베이스로 했지만, 소고기라면 이후부터 국물 맛이 소고기 맛 베이스로 바뀌었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국물 맛의 변화다. 소고기라면이 그 변화의 시작”이라고 자랑했다. 소고기라면 덕분에 농심은 라면 시장 점유율을 10%에서 22.7%로 끌어올렸다.
 1986년 신라면 출시로 농심 1위 등극
한국의 라면 원조인 삼양식품의 ‘삼양라면’. 1963년 9월 삼양라면의 출시 가격은 10원에 불과했다.
1982년은 라면 시장 1위 기틀을 마련한 해다. 안성스프 전문공장이 준공된 해다. 스프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건조기술이다. 당시 스프는 열풍건조로 만들었는데, 제조 과정에서 맛과 영양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었다. 농심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결건조와 진공건조라는 신기술을 채택했다. 농심 관계자는 “안성공장 덕분에 라면의 맛과 질을 높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안성스프 공장과 더불어 농심은 히트작을 연달아 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라면이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등이다. 더불어 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도 계속 치솟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1위 자리를 놓고 삼양식품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농심이 부동의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1986년 출시한 신라면 덕분이다.

‘깊은 맛과 매운 맛이 조화된 얼큰한 라면’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신라면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신춘호 농심 회장의 결단 덕분이다. 신라면 출시에 앞서 열린 내부 시식회에서 ‘너무 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신 회장은 “오히려 매운 맛이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제품 출시를 독려했다고 전해진다. 신 회장은 신라면의 이름과 포장 디자인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챙기면서 신라면 출시에 앞장섰다. 1986년 10월 출시된 신라면은 출시 3개월 만에 판매액 30억원을 기록했다.

신라면은 농심의 현재를 만든 제품이다. 라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브랜드다. 출시 이후 2014년까지 국내 누적판매량은 240억 개,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108바퀴나 도는 양이다. 국내 시장에서 1년 동안 판매되는 양은 4800억원(해외 판매액을 합하면 7000억원 정도다)이나 된다. 2조원 라면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2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농심 관계자는 “식품 업계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이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례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고, 융푸라우 정상에서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서도 맛볼 수 있다. 농심은 신라면 덕분에 국내 라면시장 선두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농심의 혁신은 ‘농심 R&D 연구소’ 덕분에 가능했다. 농심 관계자는 “신 회장의 고집으로 1965년부터 연구개발실이 활동했다. 농심 라면의 맛이 여전히 이어져 오는 것은 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농심 본사에 있는 R&D 연구소에는 150여 명의 연구원이 활동하고 있다. 라면개발실과 상품개발실(스낵과 음료를 담당)로 나뉘어 있다. 라면개발실에는 면개발팀, 스프개발팀, 별첨개발팀이 각 분야를 맡아 연구 중이다.

농심은 2014년 1조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중 라면이 70%의 매출을 차지하고, 새우깡 등을 포함한 스낵이 15%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 우지 파동’으로 추락한 비운의 삼양식품
신동원 농심 부회장 / 중앙포토
1960년대 초 40대 기업인이 남대문 시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배고픈 이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본 것.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한다는 애국심과 사명감을 그 기업인은 느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본에서 맛본 적이 있는 라면을 떠올렸다. 1963년 9월 한국에 처음으로 라면을 선보인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다. 당시 한국에는 라면을 만들 기술이 없었다. 전 회장은 일본 명성식품에서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처음 라면이 출시됐을 때는 미곡중심의 식생활 탓에 밀가루 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라면을 플라스틱이나 실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삼양식품 관계자는 “정부의 혼분식 정책으로 10원짜리 삼양라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고 설명했다.

초창기 삼양라면은 일본라면처럼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맵고 얼큰한 맛으로 변해갔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전 명예회장에게 “라면 맛이 좀 얼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라면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라면업계의 리더이자 원조답게 삼양식품은 1970년대 라면 트렌드를 이끌었다. 국내 최초 짜장면으로 기록된 ‘삼양 짜장면’(1970년 3월), ‘삼양 냉면’(1970년 5월), ‘카레라면’(1970년 9월), 국내 최초의 컵라면인 ‘컵라면’(1972년 3월)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라면 시장을 이끌던 삼양식품의 추락은 1989년 벌어진 ‘우지 파동’ 때문이다. 삼양식품 임직원들에게 가장 아픈 사건으로 꼽힌다. 1989년 11월 삼양식품이 면을 튀길 때 사용한 기름이 ‘공업용 우지(소 기름)’라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삼양식품이 수입 사용한 우지는 공업용이 아닌 식용이었지만, 한번 불거진 우지 파동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라면 제조 라인은 올 스톱됐고, 시중에 출시된 모든 라면은 임직원이 일일이 수거했다. 1000여 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당시 우리가 사용했던 우지는 경쟁사가 사용했던 팜유보다 훨씬 비싸다. 검찰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수사하면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다. 7년 9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고 토로했다. 라면의 원조였던 삼양식품은 이 사건으로 라면 시장 점유율이 10%대로 추락했다. 라면 시장 1위를 두고 농심과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이 사건 이후 선두경쟁은 무의미해졌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 삼양식품의 남겨진 숙제다.

2014년 삼양식품은 30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라면을 포함한 면류가 82%의 비중을 가지고 있고, 스낵(4%)과 유제품(14%)이 나머지 매출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하반기 이후 현재까지 라면시장에서 삼양식품은 오뚜기에 뒤쳐져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양라면과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불닭볶음면 외에 히트 라면이 없기 때문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식품업의 특성상 사건 하나에 기업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히트 제품이 나오면 삼양라면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창업주의 2세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2세 경영에 대한 평가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농심은 신춘호 회장의 장남 신동원(58)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신 부회장은 1979년 농심에 사원으로 입사했고, 1997년 국제담당 대표이사를 거쳐 2000년부터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지분 정리가 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세 경영능력 평가는 희비 엇갈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2003년 농심그룹은 지주회사 농심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농심으로 분할됐다. 2015년 9월 현재 농심의 최대주주는 농심홀딩스로 32.7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농심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신동원 부회장으로 36.8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대주주는 신 부회장의 동생인 신동윤 농심홀딩스 부회장으로 19.6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농심홀딩스 지분 2.2%를 가지고 있는 신 회장의 막내딸 윤경씨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글로벌 진출을 진두지휘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공장 건설, 1997년 칭다오공장, 1999년 선양공장, 2005년 미국 공장 준공까지 라면의 글로벌화를 진두지휘했다. 신 사업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07년 중국 길림성 안도현에 연변농심광천음료유한공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생수 사업이다. 2010년 10월 ‘백두산 천연광천수’라는 이름으로 생수 제조판매에 들어갔다. 기존 25만 톤 생산 규모의 기존 공장에 더해 200만 톤 생산 규모의 신공장을 얼마 전 준공했다. 농심 관계자는 “제2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의 70%는 중국에서 판매되고, 나머지 30%는 국내에서 판매된다. 아직까지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지만, 제2공장 준공으로 점유율은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3월, 삼양식품 창업주의 장남 전인장(53)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본격적인 2세 경영을 알리는 인사였다. 당시 전 회장은 취임사에서 “신사업 진출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 회장은 1992년 삼양식품에 입사한 뒤 경영관리실과 기획조정실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31살, 사장에 취임한 후 사업 다각화를 주도하면서 삼양식품의 변화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회장 자리에 오른 후 좌불안석이다. 라면시장 업계 2위에서 3위로 추락한 것은 전 회장에게 뼈아프다. “전 회장이 삼양식품의 본류인 라면 사업보다는 다른 사업에 관심이 높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호면당과 제주우유 인수, 시리얼 시장 진출에도 석연치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이 사업들 모두 라면과 연관되어 있다. 전인장 회장도 라면 한길을 파고 있다”고 해명했다.

도덕성 논란은 전 회장에게는 뼈아픈 구설수다. 지난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양식품이 계열사인 내츄럴 삼양을 부당지원했다는 이유로 26억2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족 소유의 내츄럴삼양에 높은 판매장려금을 줬다는 공정위의 발표로 전 회장이 비판을 받은 것. 삼양식품 관계자는 “공정위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이겼다. 내츄럴삼양이 이마트에 납품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전 명예회장께서 오래 전에 가족들에게 지분을 나눠줬는데, 이런 논란이 생겨서 당혹스럽다”고 해명했다.

-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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