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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억제의 열쇠는 ‘순환경제’

기후변화 억제의 열쇠는 ‘순환경제’

순환경제는 우리를 제2차 산업혁명의 문턱으로 이끌 변화다. 지난 11월 30일 파리에서 시작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자동차를 아예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치자. 온갖 수리와 세금납부의 책임이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자동차 수명이 다했을 때 소유자가 그것을 폐차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프랑스 파리·리옹·보르도 또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주민이라면 그런 식의 자동차 운행이 이미 가능하다. 파리에 거주하는 회원들이 도시 각지에 있는 충전소에서 갖다 쓰고 다시 돌려주는 전기 자동차 공유 시스템 오토리브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파리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크게 줄었다. 자동차 2만5000대를 도로에서 덜어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오토리브는 내년엔 런던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오토리브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소유의 개념에 대전환을 상징하는 사례다. 나아가 여러분과 내가 온갖 제품을 소비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현재 한 제품의 전형적인 수명 패턴은 이렇다. 한 기업이 자원을 추출하고 다른 기업이 그것을 제품화한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다가 최종적으로 용도 폐기해 매립지 또는 자동차의 경우 폐차장으로 보낸다. 그러나 낭비의 시대는 끝났다. 기업들이 갈수록 수명이 긴 제품 개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재사용하거나 수리하고 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용도폐기의 막다른 골목을 뚫어 다시 연결시키는 순환 과정이다. 소비자는 갈수록 제품보다는 사용과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이 같은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는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에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지난 11월 30일 파리에서 시작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지구온난화를 임계치 아래로 유지하기로 전체적인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런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갖고 있지만 천연자원 보존과 기후변화 억제를 뛰어넘는 의미도 있다. 서방경제의 성장과 고용창출, 그리고 전 세계에 걸친 개발의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5년 뒤에는 10만 명, 그리고 2030년에는 200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순환 경제 지지자들은 말한다. 순환경제에선 소비 증가 없이 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 우리를 제2차 산업혁명의 문턱으로 이끌 변화다.

순환경제는 주요 환경·경제 문제의 해법이다. 보통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자원은 평균 29㎏에 달한다. 10세 소년의 체중과 맞먹는다. 인구가 증가할수록 그런 소비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쓰레기 폐기 과정에서 재활용과 회수를 담당하는 기업들에 매년 수억 유로를 융자해 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하수, 침전물, 금속 찌꺼기 배출 속도는 재사용이나 재활용으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기술발전도 특효약이 아니다. 디지털화로 종이는 절약되지만 전자기기에 쓰이는 희토류 금속(rare earth metals, 첨단산업에 주로 쓰이는 금속)의 개발이 크게 증가한다.

순환경제는 이름만 근사한 재활용이 아니다. 이상적으론 한 제품이 폐기·재사용 또는 재활용되는 단계 오래 전에 시작된다. 제품의 구상과 설계 단계부터 순환경제 사고가 반영돼야 한다. 그래서 제품 수명을 늘리고 재사용·보수·재활용의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EIB에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진 기업들을 후원해 그런 사이클을 완성하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한다. 예컨대 EIB는 핀란드 제지업체 스토라 엔소에 납품하는 폴란드 골판지 공장을 후원했다. 스토라 엔소가 지역의 재활용 섬유를 재사용하면서 인근 지역에서 폐기물이 더 많이 수거됐다. 그에 따라 골판지 공장에서의 생산량도 늘어났다. 스토라 엔소와 수거 업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순환 성장 과정이다.

전체적으로 EIB가 지난 10년 동안 주로 유럽에서 공동 후원한 순환 경제 프로젝트는 약 150억 유로(18조4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기대하는 만큼 순환경제가 영향을 미치려면 융자 규모를 더 확대해야 한다.

순환경제는 기업의 수익창출 방식뿐 아니라 사업방식을 바꿔놓는다(예를 들어 제품을 단기 또는 장기 임대하는 식). 따라서 회사의 자금유입 흐름도 달라진다. 제품을 판매할 때 돈을 받는 대신 필시 회원제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수익을 올리게 된다. 민간 은행 입장에선 추가적인 리스크로 보인다. 그들은 투자를 서서히 회수하는 기업엔 신용대출을 꺼린다. EU은행인 EIB 같은 공공 대출기관이 개입해 순환경제 혁신을 후원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에서 순환경제가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유럽의 미래 번영이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순환경제에서 기업들이 창조적 사고를 발휘하도록 장려하는 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IB는 세계 최대 기후변화 대출기관이다. 막대한 지구 온난화 억제 잠재력을 지닌 분야에의 연구와 투자를 촉진하도록 자금지원을 편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우리는 유럽집행위원회의 의뢰로 순환경제 프로젝트 후원 자금 활용에 관한 조사를 완성해 가고 있다. 보고서는 12월 중에 룩셈부르크에서 논의될 집행위원회의 새로운 정책 수립에 활용된다. 내년 주요 정책 초점이 될 순환경제의 밑바탕이다.

유럽의 새 정책들은 실질적인 금융 노하우와 수단으로 뒷받침될 것이다. EIB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유럽전략투자펀드(European Fund for Strategic Investments)의 관리다. 향후 3년 동안 3150억 유로(약 390조원)를 EU 경제에 투자하기 위해 EU 은행과 집행위원회가 결성한 펀드다. 은행의 후원 자격을 얻으려면 자원 활용이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여야 한다. 순환경제는 그런 요건을 충족시킨다.

- WERNER HOYER / 번역 차진우



[ 필자 베르너 호이어는 유럽투자은행 총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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