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의 아성에 도전하는 백인 래퍼

릴 디키의 하이프맨(백업 래퍼) 가타(GaTa)가 소파 위에 누워서 말한다. “난 여자가 필요해. 시애틀 여자들은 끝내주지. 아시아계와 흑인 등 섹시한 여자가 많아. 난 시애틀이 좋아.”
“나도 시애틀이 좋아.” 릴 디키가 맞장구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여자’는 안중에 없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그가 다급하게 말한다. 내가 마리화나 말이냐고 물으니 릴 디키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바디워시와 샴푸.”
몇 분 전 릴 디키는 분장실에 샤워실이 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연을 끝낸 뒤 힘들게 호텔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그에겐 정말 잘된 일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하고 기분이 찝찝하다”고 그가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24시간 이상 샤워하지 않고 버틴 적이 없는 것 같다.”
릴 디키는 지난 8월 데뷔 앨범 ‘Professional Rapper’가 빌보드 랩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힙합계를 놀라게 했다. 스눕 독과 듀엣으로 부른 타이틀 곡과 유튜브 조회수 800만 회 이상을 기록한 뮤직 비디오가 큰 몫을 했다. 필라델피아 교외 첼튼햄의 중산층 가정 출신인 그는 래퍼가 되기 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릴 디키는 범버슈트 뮤직 페스티벌 본무대를 준비하면서 섹스보다는 샤워에 더 신경 썼다.
“이 근처에 비누 파는 데 없을까?” 릴 디키가 매니저 마이크 허츠에게 묻는다.
허츠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 제정신이야?”
“비누를 살 데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게 다야.” 릴 디키가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허츠가 대답한다. “편의점이 있는지 알아볼게.”
난 옆 분장실에선 어떤 대화가 오갈까 상상해봤다. 샴푸와 바디워시에 관한 내용은 아닐 듯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릴 디키의 매력 포인트다. 갑자기 인기 뮤지션이 됐다고 해서 신경증적인 경향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의 랩에는 마리화나와 알리제(술의 일종)가 아니라 애더럴(각성제)과 탄산수가 등장한다. 그는 이 순회공연을 ‘사랑 찾기(Looking for Love)’ 투어라고 부른다. 도중에 신부감을 만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레퍼로 활동하기 전에 광고회사에서 일해
가타는 이 모든 게 짜증스럽다. 그래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말다툼을 한다. 가타는 “인기를 이용해야 해. 좀 즐겨봐”라고 릴 디키에게 충고한다. “래퍼에게는 헤픈 여자들이 따라다니지. 까다롭게 굴 것 없어.” 하지만 릴 디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래퍼가 되고 난 뒤 예전과 달리 여자들과 잘 기회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명성이 그저 그런 래퍼로서 이런 기회를 원치는 않았다고 말한다. “내게 온 이런 기회들을 썩 좋은 것으로 여기진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물론 그런 여자들과 섹스할 수도 있다. 한번은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콘서트 재미있었어요. 정말 멋진 남자 같아요. 끝나고 술 한잔하고 싶은데요.’” 두 여자가 한꺼번에 섹스를 제안한 적도 있었다. “정말 역겨웠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리 섹시해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래퍼에게 서슴없이 몸을 내주는 여자가 성병이 있을지 알 게 뭔가?”
릴 디키의 세계에서는 성병도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다. “난 성병에 매우 신경 쓴다”고 그는 말했다. “섹스는 스트레스가 많고 매우 힘든 일이다.” 모든 섹스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어떤 상대와의 첫 번째 섹스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래퍼가 되기 전 그가 잠자리를 같이 한 여자는 5명뿐이다. “래퍼가 됐다고 해서 더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진 않을 생각”이라고 그가 말했다. 가타는 한심하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릴 디키는 여자들과 섹스할 기회가 많은 래퍼 생활을 약간 불편하게 여기는 듯 보인다. 그건 어쩌면 그가 우연히 이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리치몬드대학에 다녔고 졸업 후엔 샌프란시스코의 광고회사 굿비 실버스타인 & 파트너스에서 일했다. 그는 월간 보고서를 랩 비디오로 만들어 제출했는데 그것이 상사들의 마음에 들어 크리에이티브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릴 디키는 여가 시간에 자비로 랩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싱글 ‘Ex-boyfriend’는 당시 여자친구가 전에 핸섬하고 완벽한 남자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느낀 질투심과 불안감을 묘사한 노래다. 이 뮤직 비디오는 인터넷에 올린 지 24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기록했다.
거들먹거리는 랩계의 분위기 바꾸고 싶어
그의 노래들은 히틀러와의 랩 배틀을 묘사하고, 이스트 오클랜드와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면서 흑인들에게 시달린 경험을 들려준다. “남성성 과잉과 비이성적인 거들먹거림”이 판치는 랩계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작곡과 작사에 두루 능하지만 스타성이 보이진 않는다. 그도 안다. 그의 랩은 자기비하적이고 그의 허세는 농담이다. 그는 힙합계의 제리 사인펠드(유명 코미디언)다. 그 특유의 유머는 많은 팬(특히 젊은 백인 남성)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릴 디키의 큰 강점이자 약점이다. 지난 10월 바이스 미디어 그룹의 음악 사이트 ‘노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피처 에디터 드루 밀라드가 그에게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릴 디키는 수세에 몰려 부적절한 답변을 했다. 그 후 그는 자주 그 말을 돌이키며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풍자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노이지에 “난 이 음악을 내놓으면서 이전에 인정받은 능력의 80%를 내던졌다”고 말했다. 밀라드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릴 디키는 기껏해야 빅 션(힙합 가수)의 바보 같은 말장난과 래리 데이비드(코미디언)의 풍자적 시각을 합쳐 놓은 인물이다. 아니면 론리 아일랜드(가수 겸 코미디언 그룹)의 1인판이든가. 나쁘게 말하면 자기방어적인 멍청이에 불과하다.”
“위대한 래퍼가 되고 싶다”

다시 시애틀로 돌아와 릴 디키는 무대 옆쪽에 세워진 울타리 사이로 객석을 내다봤다. 젊은 백인 남성이 대다수인 그의 팬들이 군중을 헤치고 본무대 앞쪽에 자리 잡았다. 그가 나올 순서가 되자 팬들은 “우린 딕을 원해! 우린 딕을 원해!”라고 외쳤다.
릴 디키는 그 장면을 보고 아주 좋아했다.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었다. 자기비하적일 때가 많긴 하지만 그에게도 야망이 있다. 지난 7월 릴 디키를 전화로 처음 인터뷰했을 때 그는 “마음 속으론 위대한 래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좋아하면 좋겠다. 드레이크(캐나다의 래퍼 겸 배우)가 날 알까? 내 노래를 좋아할까?”
릴 디키가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인종과 성 차별 문제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할까? 그렇진 않을 듯하다. 릴 디키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로 충격을 받는다 해도 곧 괜찮아진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사우스파크’(코미디 센트럴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인종 차별적인 농담을 들어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흑인이 지배하는 힙합 장르에 나 같은 백인이 끼어들었으니 사람들이 내 작품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릴 디키는 자신의 유머가 힙합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 주장한다.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힙합을 존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범버슈트 뮤직 페스티벌에서 릴 디키는 입고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 야구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고 무대 위로 뛰어나왔다. 그는 무려 11곡의 노래를 매우 빠른 속도로 불렀다. 마지막 곡 ‘Lemme Freak’을 위해 허츠는 꽃을 준비해 뒀다. 릴 디키는 객석 앞줄의 한 젊은 여자 관객을 지목해 무대 위로 불러올리더니 의자에 앉혔다. 노래를 절반쯤 불렀을 때 릴 디키는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가 셔츠를 풀어헤친 웃통을 들이밀며 기겁하게 만들었다(그 여자 관객은 놀라긴 했지만 매우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그는 입고 있던 반바지를 찢고 속옷 바람으로 다시 한번 그녀를 놀래켰다. 섹스에 서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릴 디키가 무대 위에선 전문 래퍼 같은 행동을 보여줬다.
공연이 끝난 후 그 여자 관객은 무대 뒤까지 그를 따라가서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릴 디키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를 2㎝ 정도 벌려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자신의 예명 ‘릴(Lil)’을 상징하는 표시다.
- WINSTON ROS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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