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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중국 회사채 시장] 정크등급 기업까지 싼값에 회사채 발행

[불붙은 중국 회사채 시장] 정크등급 기업까지 싼값에 회사채 발행

돈에도 눈과 귀가 달렸다. 덩치를 불릴 곳을 찾아 쉼없이 두리번거린다. 복잡한 현대 금융시장 구조와 중앙은행의 반복되는 유동성 조절은 때로는 돈의 공포를, 때로는 돈의 탐욕을 조장한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폐쇄적인 자본시장 구조로 돈의 쏠림은 상대적으로 더 극적이다. 중국 회사채 시장 이야기를 해보자. 시쳇말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늘 그렇듯 쏠림은 급한 되돌림의 위험을 잉태한다. 시장 한 편에서 불안감이 자라고 있다.
 마이너스 실질금리의 산물
요즘 중국 본토 금융인들 사이에서 회사채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기업 재무 사정이 나빠지고 있는데도 돈이 계속 회사채로 몰리고 있어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인민은행이 기준으로 삼는 1년짜리 예금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1월부터 인민은행은 두 달에 한번 꼴로 기준금리를 내렸다. 1년짜리 실질 예금기준금리는 빠르게 제로 영역으로 떨어졌고, 8월부터는 마이너스권으로 내려왔다.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를 받지만 물가 상승분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거나 오히려 손해다. 돈들은 다시 눈과 귀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과거 비슷한 시기 돈들의 움직임은 어떠했을까. 지난 1990년 이래 중국의 실질 예금 기준금리가 기조적으로 마이너스를 보였던 시기는 네 차례다. 가깝게는 2006년 12월, 2008년 10월, 그리고 2010년 2월, 2012년 3월이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이네 번의 기간에 공통으로 나타났던 현상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주택시장에 반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몇몇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름세가 완연할 뿐 전국적 현상은 아니다. 제3선과 제4선 도시를 중심으로 미분양 물건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동산 투자는 미덥지 않고, 주식시장은 지난여름의 대폭락 공포가 남아있다 보니, 자연스레 돈이 채권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다.

덕분에 1년 전 3.5%이던 3년물 국채수익률은 최근 2.8%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3년물 국채와 AAA급 회사채 간 스프레드는 1.7%에서 0.78%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더 높은 이자를 좇아 회사채로 자금이 몰리면서 회사채 수익률이 국채 수익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해(회사채 가격이 국채 가격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해) 스프레드가 빠르게 좁혀진 것이다.

홍콩 등 역외조달 시장에서 돈을 구하던 정크등급 기업들도 본토 회사채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홍콩에서 10%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던 이들이 지금은 본토에서 4%대 금리로 자금을 조달중이다. 회사채 발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회사채 투자가 돈이 된다 하니 당연히 투기적 레버리지도 가세했다. 매입한 채권을 담보로 머니마켓에서 단기자금을 구해 채권 매입을 더 늘리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올 상반기 본토 증시를 힘껏 들어올렸다, 나락으로 빠뜨렸던 주식담보 신용거래의 복사판이다. 물론 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 제때 원리금을 갚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지금 중국 기업들의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기업의 10월 순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감소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기업들의 누계 순익은 전년동기 대비 2.0% 감소했고, 광업 섹터 순익은 56.3%나 급감한 상태다.
 돌려막기의 변주
주목할 점은 과거 그림자 금융 영역에서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던 부동산업체와 굴뚝기업들의 움직임이다. 가뜩이나 제조업 경기 악화로 경영상황이 나빠진 이들이지만, 물을 만난 고기처럼 회사채를 찍고 있다. 재무사정이 열악한데도 돈들은 우량기업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한다는 이유로 이들 회사채를 매입하고 있다. 회사채 투자자들이 이처럼 리스크에 둔감한 이유는 뭘까. 어떻게든 정부가 손실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중국에서는 크고 작은 디폴트가 잇따랐다. 그러나 이자 지급이 지연됐을 뿐 지방정부와 국유은행, 모기업 등이 나서 원금은 복구해줬다. 오히려 중국 당국은 채권 발행시장의 각종 규제와 절차를 간소화하며 발행을 부추기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2월 2일에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회사채 시장 추가 완화조치를 내놨다. 그 중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NDRC는 보험사들에 CDS(신용부도스왑) 상품을 개발하라고 독려했다. 회사채 디폴트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상품 설계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확인했듯 버블 붕괴로 채권이 부실화하는 시기에 CDS는 위험 분산이 아닌 위험의 확대 재생산을 낳았다. 그래서 CDS와 같은 신용파생 상품은 그간 중국 당국이 잘 허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회사채 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당국의 기업부채 대책은 은행대출에서 그림자 금융으로 갔다가, 다시 그림자 금융의 위험이 커지면서 은행대출로 회귀했고, 본격적인 산업 구조 조정기를 앞두고 다시 회사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달아오른 중국 회사채 시장의 위험이 현실화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의 디폴트가 더 빈발해지는 경우다. 물론 이를 제어하기 위해 당국도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더 풀 것이다. 씨티그룹의 채권전략팀이 내년 중국의 제로금리 진입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다. 두 번째 경로는 주식시장 랠리가 재개되면서 돈들이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자발적으로 회사채 시장을 떠나는 경우다. 서서히 돈이 빠지다가 일시에 출구 쪽으로 몰리기 시작하면 회사채 가격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회사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 투자비중을 늘렸던 이들은 마진콜에 걸린다. 이를 기점으로 회사채 가격은 더 빠르게 하락하며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도 경색된다.

세 번째는 당국의 채권시장 개혁이 가속화하는 경우다. 최근 인민은행은 2020년까지 본토 채권시장을 2.5배(100조 위안 규모)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해외자금을 채권시장으로 끌어들여 부채 문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당장 본토 채권시장으로 몰려들 리는 없다. 한바탕 옥석 가리기와 기업 회계장부 투명화, 디폴트 처리에 대한 법적 제도적 정비, 신용평가사 등급평정의 신뢰도 제고 등이 이뤄지고 난 뒤라야 안심하고 들어온다. 중국 당국으로서도 글로벌 자금들의 입맛에 어느 정도 부응하려면 채권시장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채권시장 확대 부추기는 중국 정부
물론 이는 모두 상정해볼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다. 현실이 이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지나오면서 다들 성장의 길은 찾지 못해도 부실을 틀어막는 데는 귀재가 됐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부문의 부실은 어떤 경로를 거치더라도 결국 정부 부채로 전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겪으며 중국의 성장률은 둔화되고 국채 발행량은 불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판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나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 혹은 본격적인 양적완화(QE)를 목격한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역시도 자본시장 성숙을 위한 성장통이라면 성장통인 거다.

-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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