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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인상 그 후] 美 금리 추가 인상 속도가 관건

[美 금리 인상 그 후] 美 금리 추가 인상 속도가 관건

미국 제로금리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예고된 폐막이지만, 이는 새로운 전쟁의 서막을 의미한다. 이미 세계는 금리·환율전쟁에 돌입했다. 이제 관심사는 미국이 앞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많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서냐는 것이다. 점진적인 인상이 예상되지만, 급격한 인상이나 다시 제로금리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것이고, 세계 경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시장은 차분했다. 세계 증시·채권·외환시장은 예고된 악재에 내성이 생긴 듯 보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7년 만에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한 12월 16일(현지시간) 이후 세계 경제에 큰 혼란은 없었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조심스러웠다. “첫 금리 인상을 지나치게 중시할 필요는 없다. 25bp(1bp=0.01%) 올렸을 뿐이다.” 옐런 의장이 금리 인상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선 “완만하게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기 달래 듯 한 이 말을 믿어도 될까. 우리나라 시간으로 17일 공개된 연준 FOMC 성명서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던 지난 10월 성명서보다 미국 경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거칠게 해석하면 ‘올릴 만해서 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명서에는 이런 문구도 담겨 있다. ‘위원회는 연방기금 이자를 점진적으로 올리도록 보장하는 방식으로 경제 상황이 진화하기를 기대한다. 연방기금 이자는 장기적으로 달성된 수준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상당 기간 머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자율의 움직임은 경제 전망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얘기다.
 미 기준금리, 내년 말 1.35% 안팎 전망
예상할 수 있는 경로는 단순하다. 네 가지뿐이다. 급격히 올리거나, 완만히 올리거나, 오랜 기간 동결하거나, 다시 내리거나. 현재로서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인상에 무게가 실린다. 17일 공개된 연준 금리전망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금리 전망치는 1.25~1.5%다. 2017년 말 전망치는 2.25~2.5%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 17명이 예상하는 금리 전망치를 무기명으로 적은 표를 말한다. 전망대로라면, 연준은 내년에 3~4차례에 걸쳐 ‘베이비 스텝(Baby Step)’으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 컨센서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전망의 근거에는 과거 미국 금리 인상기의 뼈아픈 기억이 깔려 있다. 미국은 한 번 금리를 올리면 다른 나라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급격히 올린 전력이 있다. 하지만 2~3년 내에 반드시 부메랑을 맞았다. 1994년 초부터 1년 2개월 동안 3%포인트를 올린 후에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1999년 중순부터 1년간 1.75%포인트를 올렸을 때는 IT버블 붕괴가 뒤따랐다. 또한 2004년 중순부터 2006년 7월까지 무려 4.25%포인트를 올린 후폭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때문에 연준이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이번 FOMC 성명서에 향후 금리 조정 시기와 관련 ‘외국 지표도 고려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도 이런 기대와 무관치 않다.

미국 경제 상황과 전망도 점진적인 금리 인상에 무게를 싣는다. 옐런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가 잘하고 있고(doing well), 또한 미국 경제가 신흥국과 다른 나라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옐런 의장이 이번 금리 인상을 “선제적 조치”라고 했듯이,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연준이 가장 주목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1월 0.5%로 연준 목표치인 2%에 한참 못 미친다. 또한 미국 경기 회복은 2009년 이후 세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4조5000억 달러(약 5270조원)를 쏟아 부은 결과다. 금리 인상으로 풀린 돈이 회수되면 회복 지속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강화되면 미국 수출이 둔화할 가능성이 커 속도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신흥국 자본 유출 가능성과 중국의 경기 둔화, 저유가 지속 등 대외 여건도 미국이 과거 폭주기관차처럼 금리를 올리는 데 브레이크를 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미 연준이 왜 금리를 올리려 했는지 봐야 한다. 연준의 신뢰 때문에? 미국이나 세계 경제가 호황이어서? 옐런은 이번 금리 인상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 동안 이어진 비정상 시기의 종료”라고 규정했다. 제로금리 상태에서 미국은 경기를 조절할 카드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양적완화(QE)라는 초유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었다. 이제 더 이상 동원할 정책 수단이 없다. 때문에 미국은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끌어올려서 다음에 불어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 부작용이 없는 범위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예상 못 한 변수 탓에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수입 물가가 오르거나, 부동산 시장이 다시 폭등할 경우에도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미국이 다시 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연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고용시장이 다시 악화하면 다시 제로금리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거나, 일부 취약한 신흥국에서 금융·외환위기가 발생해 파장이 다른 나라로 전염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중국이 대폭적인 위안화 추가 절하에 나서면 미국도 금리 인하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 경제
한국 경제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미국이 올린다고 바로 따라 올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그랬다. 2004년 7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했을 때, 오히려 한국은 같은 해 8월과 11월에 기준금리를 내렸고, 15개월 뒤에야 따라 올렸다.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내렸던 2007년 중순 이후에도 한국은행은 13개월 후에야 금리를 내렸다. 걱정을 놔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처지다. 수출 부진과 경기 침체를 생각하면 내려야 하지만, 미국과의 장단기 금리차 확대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고, 가계부채가 증가할 위험이 크다. 반대로 미국을 따라 올리자니, 가계·기업 이자 부담과 긴축에 따른 경기 악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행 입장과 상관없이 시중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단기 정책금리는 미국과 달리 갈 수 있어도, 장기 시중금리는 미국과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미 10월 초를 고비로 시중금리가 상승하며, 대출 변동금리에 영향을 주는 CD금리·코픽스금리·금융채 금리가 소폭 올랐다. 은행들도 가산금리를 높였다. 부채가 많은 가계나 기업 입장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 영향은 결코 제한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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