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게릴라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게릴라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의 땅 한반도. 분단의 태초 원인과 뼈아픈 비극, 여태껏 아물지 않는 상처 등을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왜 60년이 지나도록 이 모양 이 꼴이냐는 대목에 가서는 말문이 턱 막힌다. 관광 삼아 한가하게 DMZ를 둘러보는 외국인들이 우리 한민족을 어떻게 생각할지 착잡하기만 하다.
우리처럼 두 개의 국가로 나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전쟁이 한창인 나라가 또 있다. 바로 커피로 유명한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에는 한반도의 약 5배 면적에 4000만 명이 살고 있다. 땅도 비옥하고 생물자원도 풍부하다. 에메랄드 생산 세계 1위고, 원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부와 좌익 반군 간에 치열한 내전이 이어져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묵은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이다. 반군 중에서도 특히 1964년에 결성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Fuerzas Armada Revolucionarias)이 두드러진다. FARC는 주로 농민들로 구성돼 있는데, 기득권 층을 타파하고 좌익정부 수립을 목적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해왔다.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2000년대 초까지는 2만 명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들은 유괴나 강탈, 마약 밀거래, 그리고 불법 광산업 등을 통해 돈을 마련해서 테러와 무차별 폭탄 공격을 자행했다. 지난 50년 동안 5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되었고,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피해가 커지자 기존의 군사적, 정치적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콜롬비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광고대행업체 뮬런로웨 그룹(Mullen Lowe Group)을 이끌고 있는 호세 미구엘 소코로프(Jose Miguel Sokoloff) 회장에게 FARC의 무장 해제와 전쟁 종식을 위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의뢰했다.
처음에 호세 회장은 게릴라들이 총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가장 전통적인 선전 방법을 시도해 봤다. 과거에 자진해서 반군을 뛰쳐나온 게릴라들의 사연을 TV나 라디오에 실어 보내고, 헬기로 게릴라가 밀집한 정글 상공을 돌며 귀환을 독려하는 육성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게릴라들은 정부군이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혹은 협박을 받아서 억지로 꾸며낸 얘기라 여기며 선전 내용을 믿지 않았다.
호세 회장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먼저 과거에 정부군에 투항했던 게릴라 60여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릴라가 된 동기가 무엇이고, 게릴라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고충과 애환을 들었다. 이를 통해 그는 게릴라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그들도 자신들이 납치했던 인질들과 다를 바 없이 사실상 죄수에 가깝다는 것도 알았다. 일단 반군에 가입하면 제 발로 걸어 나오기 어려웠던 것이다.
호세 회장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설득보다는 공통적인 가치와 인간애에 호소하기로 했다. 일명 ‘크리스마스 작전(Operation Christmas)’이다. 2010년 크리스마스 때, 그는 기발한 방법을 시도했다. 반군들의 정글 속 이동 루트를 파악하고 눈에 잘 띄는 주요 길목 9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해서 불을 밝혔다. ‘정글에도 크리스마스가 왔습니다. 당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엔 안 되는 게 없으니까요(At Christmas, everything is possible)’라는 메시지도 함께 적었다. 효과는 놀라왔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331명의 게릴라가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숫자는 당시 전체 반군의 5% 정도였는데, 숫자 자체보다는 캠페인이 먹혔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이 캠페인은 칸 국제 광고제에서 티타늄상을 받았다. 티타늄상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광고의 틀을 깨는 아이디어에 주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2년 크리스마스 때는 일명 ‘베들레햄 작전(Operation Bethlehem)’을 전개했는데, 게릴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쉽게 찾도록 콜롬비아 산간 마을 위에 반짝이는 별을 달았다. 그 다음 해에는 게릴라 가족들의 선물이나 편지 약 6000개를 일일이 플라스틱 공에 담아 정글 속을 흐르는 강에 띄우는 일명 ‘불빛 강물(Rivers of Light)’ 캠페인을 펼쳤다(플라스틱 공에서 불빛이 난다). 이것을 집어 든 게릴라들은 평균적으로 매 6시간 마다 1명씩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 있다. 2014년 크리스마스에는 게릴라들의 어릴 적 사진을 구해서 정글 곳곳에 붙였다. 어릴 적 사진은 게릴라 본인만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주변 게릴라들의 시선과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사진에는 게릴라 어머니들의 메시지를 적었다. ‘게릴라가 되기 전에 너는 내 아이였단다. 집으로 오너라. 엄마가 널 기다리고 있단다.’ 사진을 본 많은 게릴라가 집으로 향한 것은 당연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즈음해서는 TV를 비롯한 모든 매체를 통해 게릴라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뿌렸다. ‘어서 정글에서 나와. 네 자리도 맡아 놨어.’ 콜롬비아는 FIFA 랭킹 8위의 축구 강국이며,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정부군, 반군을 떠나 전 국민이 축구광이다.
지성이면 감천인 걸까. 아님 가랑비에 옷 젖은 걸까. 호세 회장이 게릴라들을 상대로 온갖 종류의 ‘감성’ 캠페인을 펼친 지 8년여 동안 1만7000여 명의 게릴라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다음은 뻔하다. 게릴라들의 계속되는 이탈로 인해 FARC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명분도 여력도 없었으리라. 결국 FARC는 2013년 11월에 정부군과 평화협상을 통해 토지 개혁과 FARC의 정치 참여, 마약 밀매 퇴치 등의 안건에 합의했다. 2015년 9월에는 2016년 3월까지 공식적으로 내전 종식을 선언하고 반군들은 모두 무장해제 할 것을 합의했다.
TED 무대에 선 호세 회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캠페인이 변화를 부르는 강력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바꾸거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꼭 연락 주세요.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호세 회장의 자신에 찬 말이 유난히 솔깃하게 들린다. 허나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도 맘대로 못 밝히고, 전단지 담은 풍선 날리기도 여의치 않은 우리 실정을 그가 알기나 할까. 어수룩한 콜롬비아 반군과 대놓고 핵무기를 휘두르는 북한을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뾰족한 방도도 없지 않았는가. 밑지는 셈 치고 한번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호세 회장은 2015년 8월에 부산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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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두 개의 국가로 나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전쟁이 한창인 나라가 또 있다. 바로 커피로 유명한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에는 한반도의 약 5배 면적에 4000만 명이 살고 있다. 땅도 비옥하고 생물자원도 풍부하다. 에메랄드 생산 세계 1위고, 원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부와 좌익 반군 간에 치열한 내전이 이어져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묵은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치열한 내전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피해가 커지자 기존의 군사적, 정치적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콜롬비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광고대행업체 뮬런로웨 그룹(Mullen Lowe Group)을 이끌고 있는 호세 미구엘 소코로프(Jose Miguel Sokoloff) 회장에게 FARC의 무장 해제와 전쟁 종식을 위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의뢰했다.
처음에 호세 회장은 게릴라들이 총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가장 전통적인 선전 방법을 시도해 봤다. 과거에 자진해서 반군을 뛰쳐나온 게릴라들의 사연을 TV나 라디오에 실어 보내고, 헬기로 게릴라가 밀집한 정글 상공을 돌며 귀환을 독려하는 육성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게릴라들은 정부군이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혹은 협박을 받아서 억지로 꾸며낸 얘기라 여기며 선전 내용을 믿지 않았다.
호세 회장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먼저 과거에 정부군에 투항했던 게릴라 60여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릴라가 된 동기가 무엇이고, 게릴라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고충과 애환을 들었다. 이를 통해 그는 게릴라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그들도 자신들이 납치했던 인질들과 다를 바 없이 사실상 죄수에 가깝다는 것도 알았다. 일단 반군에 가입하면 제 발로 걸어 나오기 어려웠던 것이다.
호세 회장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설득보다는 공통적인 가치와 인간애에 호소하기로 했다. 일명 ‘크리스마스 작전(Operation Christmas)’이다. 2010년 크리스마스 때, 그는 기발한 방법을 시도했다. 반군들의 정글 속 이동 루트를 파악하고 눈에 잘 띄는 주요 길목 9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해서 불을 밝혔다. ‘정글에도 크리스마스가 왔습니다. 당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엔 안 되는 게 없으니까요(At Christmas, everything is possible)’라는 메시지도 함께 적었다. 효과는 놀라왔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331명의 게릴라가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숫자는 당시 전체 반군의 5% 정도였는데, 숫자 자체보다는 캠페인이 먹혔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이 캠페인은 칸 국제 광고제에서 티타늄상을 받았다. 티타늄상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광고의 틀을 깨는 아이디어에 주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2년 크리스마스 때는 일명 ‘베들레햄 작전(Operation Bethlehem)’을 전개했는데, 게릴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쉽게 찾도록 콜롬비아 산간 마을 위에 반짝이는 별을 달았다. 그 다음 해에는 게릴라 가족들의 선물이나 편지 약 6000개를 일일이 플라스틱 공에 담아 정글 속을 흐르는 강에 띄우는 일명 ‘불빛 강물(Rivers of Light)’ 캠페인을 펼쳤다(플라스틱 공에서 불빛이 난다). 이것을 집어 든 게릴라들은 평균적으로 매 6시간 마다 1명씩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감성 캠페인에 게릴라 1만7000여 명 집으로
지성이면 감천인 걸까. 아님 가랑비에 옷 젖은 걸까. 호세 회장이 게릴라들을 상대로 온갖 종류의 ‘감성’ 캠페인을 펼친 지 8년여 동안 1만7000여 명의 게릴라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다음은 뻔하다. 게릴라들의 계속되는 이탈로 인해 FARC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명분도 여력도 없었으리라. 결국 FARC는 2013년 11월에 정부군과 평화협상을 통해 토지 개혁과 FARC의 정치 참여, 마약 밀매 퇴치 등의 안건에 합의했다. 2015년 9월에는 2016년 3월까지 공식적으로 내전 종식을 선언하고 반군들은 모두 무장해제 할 것을 합의했다.
TED 무대에 선 호세 회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캠페인이 변화를 부르는 강력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바꾸거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꼭 연락 주세요.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호세 회장의 자신에 찬 말이 유난히 솔깃하게 들린다. 허나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도 맘대로 못 밝히고, 전단지 담은 풍선 날리기도 여의치 않은 우리 실정을 그가 알기나 할까. 어수룩한 콜롬비아 반군과 대놓고 핵무기를 휘두르는 북한을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뾰족한 방도도 없지 않았는가. 밑지는 셈 치고 한번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호세 회장은 2015년 8월에 부산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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