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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등록제 “정당” vs “월권”

드론 등록제 “정당” vs “월권”

지난 5년 동안 드론은 가격이 저렴해지고 날리기도 쉬워지면서 취미생활의 하나로 자리 잡아간다.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극심한 가뭄 속에서 오랜 이상고온 현상에 시달렸다. 급기야 로스앤젤레스 동북부의 바짝 마른 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강풍을 타고 불길이 널리 번지면서 수백 명이 대피하고 주요 고속도로에서 차량 수십 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1000명 이상의 소방관이 동원돼 진화 작업을 벌였지만 초기 불길을 잡기까진 한참 애를 먹었다. 드론 때문이었다.

연방정부 산림청 직원들은 인근에서 사람들이 취미로 드론을 계속 날리는 바람에 소방용 비행기가 뜨지 못해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발화 지점 근처에는 주말에 드론 애호가들이 몰리는 공터가 있다. 산림청 직원들이 화재 현장 상공에 드론이 여러 대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드론 소유자들을 철수시킨 후에야 헬리콥터와 비행기가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 캘리포니아 주 산림 소방국의 대니얼 벌란트 대변인은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드론을 띄우는 게 멋지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상황에서 드론을 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모른다.”

캘리포니아 주 산불 현장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기술이 발달하면서 드론은 가격이 저렴해지고 날리기도 더 쉬워졌다. 동시에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공해라는 비난도 일었다. 아이들에게 돌진하고, 공항 가까이 떠돌며, 백악관 마당에 추락해 소동을 빚기도 했다.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선 소형 드론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40층에 부딪쳐 추락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수년 동안 드론 산업을 방치하다가 드디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말 FAA와 미국 교통부는 드론 업계의 지원을 받아 드론 애호가를 위한 온라인 등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우발적인 사고를 예방하고 법을 어기는 소유자를 추적해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다. 등록 지침에 따르면 무게 250g 이상의 드론을 소유한 미국인은 이름과 거주지 주소, 이메일 계정을 FAA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기간 3년에 해당하는 등록비는 5달러로 결제 한 달 후 돌려받는다. FAA는 등록을 마친 소유자에게 다른 비행기와의 충돌, 고도제한 이상 높이의 비행, 공항 접근 등을 추적하기 위해 드론에 붙일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한다. 등록하지 않으면 25만 달러의 벌금형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드론 애호가 중 FAA의 새 규정을 따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FAA는 지난 2월 8일 기준으로 드론 소유자 32만9954명이 등록했다고 밝혔다. 앤서니 폭스 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무인기 애호가도 분명히 비행사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비행사란 명칭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소형 드론이 백악관 마당에 추락해 경호팀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이 일었다.
그러나 드론 등록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일부 드론 소유자는 등록제가 불법이라며 FA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그 싸움의 선봉장은 매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 사는 드론 애호가로 보험 전문가인 존 테일러다. 지난해 12월 드론 등록제가 시행되자 그는 소송을 준비할 변호사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직접 소송을 냈다. 그는 “FAA가 등록제를 정당화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난 확신한다”고 말했다.

테일러는 FAA의 현대화·개혁법의 반쪽짜리 조항을 바탕으로 등록제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FAA가 모형 항공기에 관한 새로운 법이나 규정을 만들 수 없다는 조항이다. 테일러는 FAA가 드론 등록제를 시행함으로써 사실상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AA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등록제는 새로운 규정이 아니라 1950년대 하반기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법제화된 일반 항공기 서류 등록제의 연장선상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 옳든 드론 등록제는 또 다른 문제도 제기한다. 1946년 제정된 별도의 법에 따르면 연방기관이 만드는 모든 규정은 일정한 공고 기간을 거친 뒤 시행돼야 한다. 비정부기구와 시민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검토할 시간을 주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FAA는 드론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이 과정을 무시했다. 드론의 사회적 문제가 커지기 전에 신속히 등록제를 실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테일러의 소송을 돕고 있는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 비치의 항공전문 변호사 조나선 루프레히트는 FAA가 공고 기간을 무시함으로써 공공 신뢰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FAA가 시민을 돕고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독재자처럼 보인다.”

드론 애호가들은 다른 문제도 우려한다. 사생활 보호다. FAA는 드론 등록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개별적 식별번호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소장에서 인용했듯이 드론 소유자 여러 명은 등록을 마친 뒤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FAA 대변인은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논평을 거부했다.

판결이 언제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FAA로선 대안이 없는 듯하다. 판사가 드론 등록제를 불법이라고 선언한다면 의회가 새로운 드론 규정을 제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당쟁이 심한 의회가 언제 그 규정에 합의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면 테일러는 승소를 확신한다. 그는 드론 등록제를 연방정부의 ‘월권 행위’라고 주장하며 그런 행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루프레히트 변호사도 FAA와의 싸움을 즐기는 듯하다. 그는 “드론 등록제를 무산시키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 승 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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