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새 대통령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 정치 왕조의 고질병 몰아낼까
[필리핀 새 대통령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 정치 왕조의 고질병 몰아낼까
지난 5월7일 열린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임기 6년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한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71)는 1억 필리핀 국민 대다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외신들은 범죄자를 초법적으로 마구 처형하고 각종 막말을 일삼아온 ‘필리핀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위 후보보다 600만 표가 넘는 압승을 거둘 만큼 5000여만 필리핀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당선은 필리핀이 소수 특권층의 정치 장악 속에 빈부격차, 치안 불안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의 표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필리핀당(PDP-Laban) 후보인 두테르테는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며 치안 최우선주의를 추구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에서 “취임 후 6개월 내 모든 범죄를 소탕하고 부패한 공직자와 피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 이를 긁어준 것이 주효한 셈이다. 특히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왔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인구 145만의 대도시 다바오의 시장을 22년(7선) 간 맡아온 그는 범죄자에 대한 ‘제로 관용(Zero Tolerance) 정책’으로 주민들에게 인기를 모아왔다. 이 덕분에 ‘처단자(The Punish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도 얻었다. 다바오시의 부시장과 시의원을 지낸 뒤 시장이 된 풀뿌리 경력의 정치인이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에서 시장으로 가장 오래 봉직한 공직자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당선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필리핀 국민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처럼 부정부패와 범죄를 막고 국민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범죄에 대한 초법적인 강경 대응 때문에 비난을 받아왔다. 시장 재임 중 자경단을 조직해 1000명이 넘는 범죄자를 범죄 없이 ‘처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해 두테르테를 사법 당국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초법적인 처단을 부인해 왔지만 대선 유세가 한창 진행되면서 “직접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치안 불안으로 고통 받던 유권자들은 그의 발언에 열광했다. 그러자 그는 대선 우세 중 “그 숫자는 1000명이 아니라 사실은 1700명이라며 “이 숫자를 1만 명으로 만들겠다”고 외쳐왔다. 치안 확보는 그의 핵심 대선공약이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 3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 후보들을 두 자릿수 이상으로 눌러 대선에서 최종 승리를 거뒀다.
경쟁자들이 제기한 막말 논란도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지난 해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당시 교통체증을 유발했다며 교황을 “개자식”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인구의 80%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선을 넘은 발언이었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아키노 현 대통령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정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경쟁 후보들의 단일화를 시도하는 등 두테르테를 견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필리핀은 아키노 대통령 재임 기간 연평균 6%대의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고질적인 빈부격차는 완화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범죄는 여전히 만연했다. 그러자 국민은 필리핀의 기성정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필리핀 국내 총생산(GDP)의 76%를 장악한 ‘코후앙코’ 가문의 정치·경제 독점에 유권자들이 식상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왕조’ 또는 ‘정치 가문’으로 번역되는 ‘코후앙코’는 필리핀만의 독특한 정치 구조다. 유력 집안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좌지우지하다가 중앙 정계에 진출해 상·하원 의원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직에 도전하며 족벌 정치를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튼튼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정계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공적이어야 할 정치가 사유화되고 ‘패밀리 비즈니스’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배경도, 후원자도 없다”며 “썩은 정치인과 공무원, 군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외친 두테르테는 그들에게 구세주로 보였을 것이다.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층에 속한 필리핀에서 민주주의 가치보다 범죄로부터의 보호나 빈곤 탈출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정치 왕조의 활동은 정계에 국한되지 않으며 정치를 기반으로 필리핀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대토지 또는 산업체, 지역 상권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독점적인 경제적 지위를 유지한다. 이런 경제적 기반은 정치적 기반의 바탕이 되고, 정치적 배경은 경제적 독점지위를 유지하는 힘이 되는 독특한 순환구조다. 이 때문에 이들은 정경 유착을 넘어 정경 결합체의 성격을 지닌다.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비효율과 부정부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필리핀의 시민단체는 이를 두고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비난한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물론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선거에서 승리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부정 선거, 상대후보 매수에 심지어 살인극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정치 왕조는 부정부패와 경제적 독점 등으로 필리핀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필리핀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를 지닌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다수 국민이 아닌 소수 정치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올리가르히(러시아의 과두 재벌)’ 체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의는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모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 은 이유다.
고질적인 필리핀 정치 왕조 또는 정치 가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필리핀인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부르짖으며 투쟁에 나섰던 ‘필리핀 혁명(독립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에서는 ‘타갈로그 전쟁’으로 부르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다. 필리핀인들은 1896년 무장 독립투쟁을 시작했지만 실패했고,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상황에서 다시 봉기해 의회를 설립하고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해 필리핀의 지배권을 얻은 미국은 독립에 반대해 필리핀인들은 게릴라전으로 들어갔다. 끈질긴 투쟁으로 1916년 자치를 인정받고, 1934년에는 ‘10년 뒤 독립’을 약속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점령으로 미뤄지기는 했지만 필리핀은 1946년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이 과정에서 반스페인, 반미, 항일 독립운동에 참가한 인물이나 지도자를 돕던 부하, 또는 뒤를 이은 인물들이 정치 가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으로 독립국가가 되면서 투표권을 확보한 유권자들은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대통령과 의원, 주지사를 맡도록 투표했다. 문제는 이렇게 당선한 정치인들이 권력의 맛을 본 뒤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것은 물론 권력을 가족들에게 맡기면서 사유화하기 시작했다. 정치 가문은 결국 이들의 욕심이 만든 욕망의 정치체제인 셈이다.
문제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점이다. 부패를 넘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끔찍한 범죄를 벌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남부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에 속한 마긴다나오주를 사실상 지배하는 암파투안 가문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하였던 안달 암파투안(1941~2015)은 민주화 시대가 된 이후에도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1~2008년 마긴다나오 주지사를 지내며 지역에 토대를 닦았다. 그러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세습하기 시작했다. 그의 큰 아들 안달 암파투안 주니어(55)는 마긴다나오주 다투운사이 시장을 지냈으며 작은 아들 잘디 암파투안(53)은 2005~2009년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 지사를 맡았다. 문제는 이들이 집안의 본거지인 암파투안 마을에서 정적과 지지자 58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마긴다나오주 지사로 출마했던 에스마엘 만구다다투(52)의 부인, 여동생, 부하, 변호사, 유세를 취재하던 34명의 기자와 오토바이를 타고 우연히 학살 현장을 지나가던 목격자까지 살해됐다. 이들은 후보등록을 하러 가던 중 살해됐다. 필리핀 정치의 무법성과 지역 치안불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암파투안 가문은 무사했다. 권력을 이용해 수사를 막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아직 권력의 갑옷을 뚫지 못하고 있다. 암파투안 가문 소속 80여 명의 정치인은 여전히 지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필리핀의 2선 하원의원 출신인 로메오 할로스호스는 남부 삼보앙카 주지사로 출마하려고 했지만 나설 수 없었다. 16세 된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자신의 동생인 도미나도르를 출마시키려고 했지만 과거 뇌물수수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 출마 자격조차 없었다. 정상적인 국가였으면 아예 정치적으로 매장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들고 거리를 다니고 있다. 가족 9명이 지자체나 하원의원으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3명의 자녀와 1명의 사위가 국회에 도전했으며, 아들과 딸이 각각 주지사와 시장 재선을 노렸다. 동생은 이웃 주의 지사 자리를 노리고 출마했다. 여동생 둘은 시장에 출마했다. 범죄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정치 가문의 수장은 온갖 파렴치한 범죄 혐의로 자신의 출마가 금지돼도 가족들을 출마시키면서 계속 지역과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할로스호스 가문은 필리핀을 지배하는 178개의 정치 왕조 또는 정치 가문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치 왕조들은 전국 80개 지역 가운데 73개를 지배한다. 지자체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기반을 다져온 대토지 소유주다. 나머지는 1986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피플파워 이후 부상했다. 독립투쟁과 독재정치는 물론 민주화 투쟁도 정치 왕조를 낳고 있다.
필리핀 상황을 특별 취재한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고질적인 정치 왕조의 폐해는 끝이 없다. 필리핀 상원의원인 미리암 산타이고는 “필리핀은 전 세계 정치 왕조의 수도”라고 상황을 요약한다. 그는 “정치 가문은 마피아 범죄조직이나 다름없다”라고 비난했다. 시민단체인 ‘거버넌스의 피플파워 강화 센터’의 정책연구소장인 바비 투아손은 “필리핀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는 주된 원인이 바로 이들 정치 가문”이라며 “1억이나 되는 필리핀 사람 중에서 불과 몇몇 가문 출신만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지성·열정·의지를 갖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4명의 상원의원 중 21명이, 229명의 하원의원 중 80%가 정치 왕조 소속이거나 영향권에 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의회가 정치 왕조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 왕조에 속하는 상원의원 중에는 ‘민중의 벗’으로 불렸던 조세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두 아들도 포함된다. 이 두 아들은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다.
심지어 국민의 손으로 뽑는 대통령도 정치 가문이 좌우하고 있다. 이번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노이노이(베니노 3세) 아키노(55)도 정치 가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의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1933~2009)는 독재자 11대 대통령(1982~92 재임)이었다. 코라손은 독재자로 10대 대통령(1965~86)을 지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89)와 1986년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어 정권의 부정선거 시도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해 필리핀에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코라손의 남편이자 노이노이의 아버지인 베니그노 아키노 2세(1954~83)는 상원의원으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적이었다. 1983년 해외 망명을 청산하고 귀국하다가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됐다. 아키노 대통령의 숙모와 사촌들도 상원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다. 2001~2010년 14대 대통령을 지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68)는 1961~65년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그는 부패 혐의를 받던 13대 대통령 조지프 에스트라다(79, 1998~2001년 집권)가 2001년 2차 민중봉기로 밀려나자 뒤를 이었지만 그 자신도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됐다.
독재자로 국민에 의해 밀려난 마르코스의 가족들도 유력 정치 가문을 형성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86)는 퍼스트 레이디 시절 수천 켤레에 이르는 구두를 수집했다 권력을 잃은 뒤 그 사실이 공개돼 망신을 당했다. ‘이멜다의 구두’는 전 세계에서 부정부패와 권력형 사치의 대명사가 됐다. 마르코스 일가는 100억 달러에 이르는 국고를 빼돌린 혐의를 받으며 지금까지 이 중 37억 달러가 환수됐다. 나머지도 모두 찾아 환수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필리핀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멜다와 마르코스 일가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멜다는 1986년 남편인 마르코스를 따라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귀국했다. 귀국 후 그의 행보는 필리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국민의 손가락질 속에서 비참하게 살기는커녕 정치 명문가의 수장으로 거듭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멜다는 2010년 하원의원 선거에 나서 당당히 당선했다. 그 전에 마닐라 시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편이 대통령으로 있던 독재 정권 시절인 1975~85년 마닐라 시장을 지낸 적이 있는데 민주화 시대에 그 자리에 출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녀 아이메 마르코스는 일로코스 주지사에 당선했으며 장남 페르디난드는 주지사와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이번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다.
다수 필리핀 국민은 정치가 정치 가문이 아닌 전통적인 정당에 의해 통제되기를 바란다. 그게 합리적이고 부패도 막을 수 있다. 이번 필리핀 대선은 정치 왕조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당이 정권 운영의 주체가 되면 필리핀의 경제적인 자원도 통제하고 있는 정치 왕조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리핀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일까. 필리핀에 적어도 한 마리의 제비는 날아왔다.
-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리핀의 트럼프’ ‘처단자’
검사 출신의 변호사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인구 145만의 대도시 다바오의 시장을 22년(7선) 간 맡아온 그는 범죄자에 대한 ‘제로 관용(Zero Tolerance) 정책’으로 주민들에게 인기를 모아왔다. 이 덕분에 ‘처단자(The Punish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도 얻었다. 다바오시의 부시장과 시의원을 지낸 뒤 시장이 된 풀뿌리 경력의 정치인이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에서 시장으로 가장 오래 봉직한 공직자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당선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필리핀 국민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처럼 부정부패와 범죄를 막고 국민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범죄에 대한 초법적인 강경 대응 때문에 비난을 받아왔다. 시장 재임 중 자경단을 조직해 1000명이 넘는 범죄자를 범죄 없이 ‘처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해 두테르테를 사법 당국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초법적인 처단을 부인해 왔지만 대선 유세가 한창 진행되면서 “직접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치안 불안으로 고통 받던 유권자들은 그의 발언에 열광했다. 그러자 그는 대선 우세 중 “그 숫자는 1000명이 아니라 사실은 1700명이라며 “이 숫자를 1만 명으로 만들겠다”고 외쳐왔다. 치안 확보는 그의 핵심 대선공약이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 3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 후보들을 두 자릿수 이상으로 눌러 대선에서 최종 승리를 거뒀다.
경쟁자들이 제기한 막말 논란도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지난 해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당시 교통체증을 유발했다며 교황을 “개자식”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인구의 80%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선을 넘은 발언이었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아키노 현 대통령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정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경쟁 후보들의 단일화를 시도하는 등 두테르테를 견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필리핀은 아키노 대통령 재임 기간 연평균 6%대의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고질적인 빈부격차는 완화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범죄는 여전히 만연했다. 그러자 국민은 필리핀의 기성정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필리핀 국내 총생산(GDP)의 76%를 장악한 ‘코후앙코’ 가문의 정치·경제 독점에 유권자들이 식상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왕조’ 또는 ‘정치 가문’으로 번역되는 ‘코후앙코’는 필리핀만의 독특한 정치 구조다. 유력 집안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좌지우지하다가 중앙 정계에 진출해 상·하원 의원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직에 도전하며 족벌 정치를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튼튼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정계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공적이어야 할 정치가 사유화되고 ‘패밀리 비즈니스’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배경도, 후원자도 없다”며 “썩은 정치인과 공무원, 군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외친 두테르테는 그들에게 구세주로 보였을 것이다.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층에 속한 필리핀에서 민주주의 가치보다 범죄로부터의 보호나 빈곤 탈출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정치 왕조의 활동은 정계에 국한되지 않으며 정치를 기반으로 필리핀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대토지 또는 산업체, 지역 상권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독점적인 경제적 지위를 유지한다. 이런 경제적 기반은 정치적 기반의 바탕이 되고, 정치적 배경은 경제적 독점지위를 유지하는 힘이 되는 독특한 순환구조다. 이 때문에 이들은 정경 유착을 넘어 정경 결합체의 성격을 지닌다.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비효율과 부정부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필리핀의 시민단체는 이를 두고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비난한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물론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선거에서 승리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부정 선거, 상대후보 매수에 심지어 살인극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정치 왕조는 부정부패와 경제적 독점 등으로 필리핀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필리핀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를 지닌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다수 국민이 아닌 소수 정치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올리가르히(러시아의 과두 재벌)’ 체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의는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모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 은 이유다.
교황을 ‘개자식’으로 불러도 인기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해 필리핀의 지배권을 얻은 미국은 독립에 반대해 필리핀인들은 게릴라전으로 들어갔다. 끈질긴 투쟁으로 1916년 자치를 인정받고, 1934년에는 ‘10년 뒤 독립’을 약속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점령으로 미뤄지기는 했지만 필리핀은 1946년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이 과정에서 반스페인, 반미, 항일 독립운동에 참가한 인물이나 지도자를 돕던 부하, 또는 뒤를 이은 인물들이 정치 가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으로 독립국가가 되면서 투표권을 확보한 유권자들은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대통령과 의원, 주지사를 맡도록 투표했다. 문제는 이렇게 당선한 정치인들이 권력의 맛을 본 뒤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것은 물론 권력을 가족들에게 맡기면서 사유화하기 시작했다. 정치 가문은 결국 이들의 욕심이 만든 욕망의 정치체제인 셈이다.
문제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점이다. 부패를 넘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끔찍한 범죄를 벌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남부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에 속한 마긴다나오주를 사실상 지배하는 암파투안 가문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하였던 안달 암파투안(1941~2015)은 민주화 시대가 된 이후에도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1~2008년 마긴다나오 주지사를 지내며 지역에 토대를 닦았다. 그러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세습하기 시작했다. 그의 큰 아들 안달 암파투안 주니어(55)는 마긴다나오주 다투운사이 시장을 지냈으며 작은 아들 잘디 암파투안(53)은 2005~2009년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 지사를 맡았다. 문제는 이들이 집안의 본거지인 암파투안 마을에서 정적과 지지자 58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정치 왕조가 필리핀 전역 90% 지역 지배
뿐만 아니다. 필리핀의 2선 하원의원 출신인 로메오 할로스호스는 남부 삼보앙카 주지사로 출마하려고 했지만 나설 수 없었다. 16세 된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자신의 동생인 도미나도르를 출마시키려고 했지만 과거 뇌물수수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 출마 자격조차 없었다. 정상적인 국가였으면 아예 정치적으로 매장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들고 거리를 다니고 있다. 가족 9명이 지자체나 하원의원으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3명의 자녀와 1명의 사위가 국회에 도전했으며, 아들과 딸이 각각 주지사와 시장 재선을 노렸다. 동생은 이웃 주의 지사 자리를 노리고 출마했다. 여동생 둘은 시장에 출마했다. 범죄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정치 가문의 수장은 온갖 파렴치한 범죄 혐의로 자신의 출마가 금지돼도 가족들을 출마시키면서 계속 지역과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할로스호스 가문은 필리핀을 지배하는 178개의 정치 왕조 또는 정치 가문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치 왕조들은 전국 80개 지역 가운데 73개를 지배한다. 지자체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기반을 다져온 대토지 소유주다. 나머지는 1986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피플파워 이후 부상했다. 독립투쟁과 독재정치는 물론 민주화 투쟁도 정치 왕조를 낳고 있다.
필리핀 상황을 특별 취재한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고질적인 정치 왕조의 폐해는 끝이 없다. 필리핀 상원의원인 미리암 산타이고는 “필리핀은 전 세계 정치 왕조의 수도”라고 상황을 요약한다. 그는 “정치 가문은 마피아 범죄조직이나 다름없다”라고 비난했다. 시민단체인 ‘거버넌스의 피플파워 강화 센터’의 정책연구소장인 바비 투아손은 “필리핀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는 주된 원인이 바로 이들 정치 가문”이라며 “1억이나 되는 필리핀 사람 중에서 불과 몇몇 가문 출신만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지성·열정·의지를 갖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4명의 상원의원 중 21명이, 229명의 하원의원 중 80%가 정치 왕조 소속이거나 영향권에 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의회가 정치 왕조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 왕조에 속하는 상원의원 중에는 ‘민중의 벗’으로 불렸던 조세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두 아들도 포함된다. 이 두 아들은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다.
권력형 사치의 대명사 이멜다도 건재
독재자로 국민에 의해 밀려난 마르코스의 가족들도 유력 정치 가문을 형성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86)는 퍼스트 레이디 시절 수천 켤레에 이르는 구두를 수집했다 권력을 잃은 뒤 그 사실이 공개돼 망신을 당했다. ‘이멜다의 구두’는 전 세계에서 부정부패와 권력형 사치의 대명사가 됐다. 마르코스 일가는 100억 달러에 이르는 국고를 빼돌린 혐의를 받으며 지금까지 이 중 37억 달러가 환수됐다. 나머지도 모두 찾아 환수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필리핀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멜다와 마르코스 일가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멜다는 1986년 남편인 마르코스를 따라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귀국했다. 귀국 후 그의 행보는 필리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국민의 손가락질 속에서 비참하게 살기는커녕 정치 명문가의 수장으로 거듭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멜다는 2010년 하원의원 선거에 나서 당당히 당선했다. 그 전에 마닐라 시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편이 대통령으로 있던 독재 정권 시절인 1975~85년 마닐라 시장을 지낸 적이 있는데 민주화 시대에 그 자리에 출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녀 아이메 마르코스는 일로코스 주지사에 당선했으며 장남 페르디난드는 주지사와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이번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다.
다수 필리핀 국민은 정치가 정치 가문이 아닌 전통적인 정당에 의해 통제되기를 바란다. 그게 합리적이고 부패도 막을 수 있다. 이번 필리핀 대선은 정치 왕조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당이 정권 운영의 주체가 되면 필리핀의 경제적인 자원도 통제하고 있는 정치 왕조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리핀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일까. 필리핀에 적어도 한 마리의 제비는 날아왔다.
-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發 ‘관세 전쟁’의 서막…“캐나다‧멕시코에 관세 25% 부과”
2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에 한진만 사장
3신한투자증권, 정보보호 공시 우수 기관 선정
4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 "내년 美 주도 디지털자산 시장 온다"
5카카오뱅크, 인니 슈퍼뱅크와 협력 강화…“K-금융 세계화 선도”
6현대차증권,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에 14% 급락…52주 신저가
7전동공구 업체 ‘계양전기’가 ‘계모임’을 만든 이유
8“삼성 인사, 반도체 강화가 핵심”...파운더리 사업에 ‘기술통’, 사장 2인 체제
9교육부·노동부, 청년 맞춤형 취업 지원 '맞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