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12)] 당신은 지금도 광기에 휩싸여 있나요?
[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12)] 당신은 지금도 광기에 휩싸여 있나요?
인간은 대부분 돈을 좋아한다. 천재 역시 돈 버는 데 혈안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젊은 시절 돈에 더욱 광분하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번 성공하면 그 달콤한 유혹을 버리기 어렵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1720년 대 주식 투자에 뛰어들어 한 때는 엄청난 수익을 올려 투자 규모를 늘렸지만, 원금까지 모두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파산을 경험한 뉴턴은 시장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는 별들의 움직임을 계측할 수 있지만,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인간의 광기는 계산이 불가능하다(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the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
우리가 남보다 더 돈을 잘 버는 것은 남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일까? 남보다 똑똑해서 현실을 확률적으로 설명해주는 모델을 발명했다고 치자. 수학을 통한 예측이 잘 들어맞을 경우 시장도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 10대 주식 투자광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머튼이다. 공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후에도 주식 시세판을 보는 것을 공대 공부보다 더 즐거워했다. 그는 경제학으로 전공을 옮겨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당시 주식 옵션 평가 모델의 대명사인 ‘블랙-숄스 방정식(Black-Scholes Model)’을 변형해 만든 파생상품 평가 모델이 유행했다. 월가에는 수없이 많은 파생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투자 은행들은 한동안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박사과정을 마친 머튼은 그의 이름을 보탠 블랙-숄스-머튼 모형을 만들어 파생 상품 시장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숄즈는 파생상품을 발전시켜 금융의 영역을 크게 넓힌 기여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블랙은 안타깝게도 1995년 암으로 사망해 사후에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는 전통에 따라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숄즈와 헤지 펀드를 같이 만든 ‘한 때 10대 주식 투자광’이었던 머튼이 공동 수상했다.
머튼은 당대의 천재들이 모인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를 만들어 큰 수익을 낸다. 그는 30년 만기 신규 발행 국채와 29년6개월 된 이미 발행된 국채의 아주 미묘한 금리 차이에 주목했다. 신규 발행 채권의 유동성이 높고 인기가 높아 이미 발행된 채권보다 금리가 다소 낮고 채권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을 보고 차익거래를 이용하는 데 원금의 약 30배나 되는 엄청난 레버리지(차입)를 사용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법(무위험 아비트리지)은 세상을 다 줄 것 같았다. 기쁨도 잠시. 의기양양해진 그에게 신은 저주의 화살을 보냈다. 시장 불안과 함께 변동성이 커져 천재들의 헤지펀드로 불렸던 LTCM의 높은 수익률 파티는 끝났다. 한 순간에 파산했고, 머튼은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자산은 물론 평생 쌓은 명성까지 다 날려버렸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나? 파생상품은 시간을 먹고 산다. 1초 1초에 희비가 엇갈린다. 인간이 1초 1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시간은 어찌 보면 초 단위를 넘어 인간의 무지를 경고한다.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위험이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리스크의 가장 큰 원천은 시간이다. 시간은 항상 그것이 지닌 가치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만든다. 미미하게 평가된 리스크도 레버리지가 커지면 엄청난 손실로 다가올 수 있다. 위험이 낮은 실물이면 계속 보유하면 그만이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고 과도한 차입을 한 상품은 어쩔 수 없이 팔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우리는 경제에서나 인생에서나 ‘시간과 차입’이라는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요인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면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더 높은 산을 오르려면 더 큰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투자 원칙이다. 만약 당신이 위험 회피자인데 과도한 수익을 바란다면 그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가 자신이 세운 투자회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면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노장이 된 로버트 머튼의 새로운 관심사는 재무설계였다. 그는 ‘목표에 기초한 투자(Goal-based Investing)’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서 치기 어린 ‘천재의 야심찬 향기’보다 이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노장의 성숙된 투자자의 향기’가 난다. 그는 이제 이론과 모델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다. 그에게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는 투자의 참고서일 뿐이다. 미래는 인생처럼 예측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실패 후 천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변했다. 수익률이 아무리 좋은 상품이더라도 과거의 수익률이지 앞으로도 그런 수익률이 계속 되리라고 보긴 어렵다. 같은 항로를 오가는 비행기라도 조종사들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좀 더 안전하고 기분 좋은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펀드를 살 때도 그저 기존 모범사례(best practice)들을 참고할 뿐이다.
고령화 시대의 최대 위험 요인을 개인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건강하지 않은데,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장수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가 보유한 자산이 많지 않을 경우 오래 사는 게 두렵다. 은퇴 후의 자금 설계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닌 전업주부나 군인, 학생 등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이 갈수록 늘어 사상 최대라고 한다. 제대로 된 자금 설계를 위한 조언을 투자의 백전노장 로버트 머튼에게 물어 본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가?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투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본입니다. 그것이 ‘목표에 기반한 투자(Goal-based Investing)’의 개념입니다. 퇴직연금의 예를 들어보지요. 개인이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들은 마치 퇴직 연금의 목표를 일정한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닙니다. 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은퇴 이후에 고정 수입을 올려 일정한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겁니다.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가가 투자를 좌우하는 겁니다. 연소득이 6000만원이고, 은퇴 후 희망 소득을 70% 수준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퇴직 후 필요한 연금은 연 4200만 원입니다.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얼마를 충당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투자를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 목표를 위해 얼마를 저축할 것인지,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 비중은 얼마나 늘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보수적인 목표를 잡아놓고 희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축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로버트 머튼의 설명이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우리네 일상에서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맞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일단 은퇴 후 희망하는 목표 소득을 달성하는 경우에는, 주식을 비롯한 위험 자산 투자를 전부 줄이고 안전자산에만 투자해야 한다.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목표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 리스크에 노출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을 것이다. “저축이 부족하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택이라는 자산을 활용해야 합니다. 미래에 주택이라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지금의 소득이 더 중요합니다. 자기가 보유한 주택 자산을 유동화해서 매달 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고객에게 유용한 정보는 자신의 현재 소득과 은퇴 예상 시기, 자신이 원하는 목표 소득과 그걸 달성하기 위한 저축 규모와 달성 가능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은 더 저축할 것인지 아니면 목표 소득을 낮출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역모기지에 의한 소득 흐름도 그러한 정보에 들어간다. 역모기지 제도를 적극 칭찬하는 그에게서 자식에게 집 한 칸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대한민국 노부모들의 심정이 어떻게 보일까? “많은 세계인은 돈이 궁해 그저 ‘사는 게 연명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아무리 아껴도 병원비나 경조사비는 내야 하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자녀들에게 용돈 달라고 손 내밀기도 두렵지요. 자식들도 사는 데 숨이 벅차니 이해는 가죠. 집 물려주는 것보다는 당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자식한테 더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목표에 기반한 투자의 가치입니다.”
정부가 주택연금 활성화 대책으로 내놓은 ‘내 집 연금 세트’는 주택을 담보로 넘겨 가계부채를 갚는 것이다. 가계부채를 갚고 남은 주택자금은 매월 연금방식으로 지급받아 노후보장도 이루는 제도다. 주택연금은 집값이 오르면 차액을 추후 돌려받지만,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연금지급액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대출까지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대출금 부담으로 집을 되파는 대신 주택연금으로 전환한다면, 주거 안정과 노후준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로버트 머튼은 성숙한 투자자의 자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은퇴 후 목표 수입을 정해놓고 개개인에 맞춤화된 은퇴 계획을 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배분이 됩니다. 인생에서 중대한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게 목표를 조절하고 투자 계획도 상응하게 변경하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은퇴소득을 얻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더 오래 일하거나, 더 저축하거나, 더 많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겁니다.”
주식 투자를 하면 비이성적 상황에 매몰되게 마련이다. 주식이 오르고 너도 나도 주식을 하면 군중본능(herd instinct)에 휩쓸려 주식에 발을 담근다. 주식을 처분한 후에도 주가가 오르면 너무 일찍 처분해 더 큰 수익을 놓쳤다고 후회한다. 주변 사람들이 큰 부(富)를 이루었다면 눈알이 튀어 나올 지경이 된다. 시기의 눈초리가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 참다 못해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그동안 거두지 못했던 수익을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욕망에 돈까지 차입한다. 그 후 버블이 터져 주가가 폭락할 때도 과거 주가 수준에 집착한다. 쉽게 손절매하지 못하고 결국 주가 폭락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야 겨우 손을 털고 나온다. 주식 투자에 성공하려면 결국 자신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절제와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버트 머튼의 투자 원칙을 들은 후 몇 가지 생각이 든다. 개인의 경우는 물론 되도록 확정된 수입을 통해 연금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연금저축이나 공적연금, 확정급여형을 통해서 얻는 소득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 국가나 기업의 경우에 고령화·저금리로 자산 운용이 쉽지 않아 원금을 보장하거나 확정급여형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목표에 기반한 투자를 정부에 적용해 보자. 자산과 부채를 알수 있는 정부 대차대조표의 부채항목에 연금지출 의무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세계적으로 연금 개혁이 화두로 등장한 가운데 시카고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금 부담으로 파산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연금 개혁 실패에 따른 신용등급 추락으로 ‘정크시티’가 된 시카고의 금고에는 돈이 없다. 시카고는 수백 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시는 연금 적자(시카고 시 예산의 3분의 1 수준)로 재정이 파탄이 나자 고육책으로 공무원연금구조 개혁안을 추진했지만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대적인 공무원 감원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과도한 연금 지급 부담 때문에 교육의 핵심 기능이 위협받고 있다. 초등학교 스포츠팀의 보조금을 삭감해야 하고 스쿨버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등학교 수업을 45분 늦게 시작하고 많은 수의 교사를 해고하고 학급 당 학생 수도 대폭 늘어나게 생겼다.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다.
기업의 퇴직연금은 어떤가? 로버트 머튼은 저금리로 운용 실적이 좋을 수 없어 확정급여형 연금제도가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확정급여형 연금 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급여가 사전에 확정된 퇴직연금제도다. 사용자가 매년 부담금을 금융회사에 적립해 책임지고 운용하며, 운용 결과와 관계없이 근로자는 사전에 정해진 수준의 퇴직급여를 수령한다. 이와 달리 고용주와 근로자가 비용을 함께 부담하고 근로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은 운용 주체가 근로자라 세제 혜택을 제외하고 운용 성과의 책임이 근로자에게 간다. 확정급여형은 운용을 잘하면 사업자의 부담이 줄어드나 요즘처럼 저금리 시기에는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로버트 머튼은 지난 10년 간 퇴직연금이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바뀌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진단했다. 고령화와 저금리로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머튼은 최고경영자(CEO)가 기업 경영을 하는 리스크보다 연금 리스크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 더 두렵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은퇴 후 근로자와 경영인, 국가와 국민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두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약속을 지키라는 입장과 ‘지속가능성의 없음’을 두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을 60대, 70대로 본 연금제도가 100세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저금리가 상수(常數)라면 더욱 문제가 될 것 같다. 원리금 보장 연금상품이 판매 금지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은퇴 자금이 필요한 지금 궁핍함 없는 노후를 위해 목표에 기반한 투자를 지금 당장 시작하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1944년 7월~): 1966년 콜롬비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MIT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파생상품의 가치 측정 공식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 전문가로 ‘블랙-숄스 방정식’을 활용해 마이런 숄스 스탠퍼드대 교수와 파생상품 가치 측정 공식을 공동 개발해 세계 파생시장을 급성장시켰다. 수학을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 당시 지도교수가 미국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이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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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인간의 광기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머튼은 당대의 천재들이 모인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를 만들어 큰 수익을 낸다. 그는 30년 만기 신규 발행 국채와 29년6개월 된 이미 발행된 국채의 아주 미묘한 금리 차이에 주목했다. 신규 발행 채권의 유동성이 높고 인기가 높아 이미 발행된 채권보다 금리가 다소 낮고 채권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을 보고 차익거래를 이용하는 데 원금의 약 30배나 되는 엄청난 레버리지(차입)를 사용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법(무위험 아비트리지)은 세상을 다 줄 것 같았다. 기쁨도 잠시. 의기양양해진 그에게 신은 저주의 화살을 보냈다. 시장 불안과 함께 변동성이 커져 천재들의 헤지펀드로 불렸던 LTCM의 높은 수익률 파티는 끝났다. 한 순간에 파산했고, 머튼은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자산은 물론 평생 쌓은 명성까지 다 날려버렸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나? 파생상품은 시간을 먹고 산다. 1초 1초에 희비가 엇갈린다. 인간이 1초 1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시간은 어찌 보면 초 단위를 넘어 인간의 무지를 경고한다.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위험이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리스크의 가장 큰 원천은 시간이다. 시간은 항상 그것이 지닌 가치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만든다. 미미하게 평가된 리스크도 레버리지가 커지면 엄청난 손실로 다가올 수 있다. 위험이 낮은 실물이면 계속 보유하면 그만이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고 과도한 차입을 한 상품은 어쩔 수 없이 팔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우리는 경제에서나 인생에서나 ‘시간과 차입’이라는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요인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
시간과 차입의 리스크 발생시키는 요인 관리해야
노장이 된 로버트 머튼의 새로운 관심사는 재무설계였다. 그는 ‘목표에 기초한 투자(Goal-based Investing)’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서 치기 어린 ‘천재의 야심찬 향기’보다 이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노장의 성숙된 투자자의 향기’가 난다. 그는 이제 이론과 모델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다. 그에게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는 투자의 참고서일 뿐이다. 미래는 인생처럼 예측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실패 후 천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변했다. 수익률이 아무리 좋은 상품이더라도 과거의 수익률이지 앞으로도 그런 수익률이 계속 되리라고 보긴 어렵다. 같은 항로를 오가는 비행기라도 조종사들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좀 더 안전하고 기분 좋은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펀드를 살 때도 그저 기존 모범사례(best practice)들을 참고할 뿐이다.
고령화 시대의 최대 위험 요인을 개인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건강하지 않은데,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장수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가 보유한 자산이 많지 않을 경우 오래 사는 게 두렵다. 은퇴 후의 자금 설계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닌 전업주부나 군인, 학생 등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이 갈수록 늘어 사상 최대라고 한다. 제대로 된 자금 설계를 위한 조언을 투자의 백전노장 로버트 머튼에게 물어 본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가?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투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본입니다. 그것이 ‘목표에 기반한 투자(Goal-based Investing)’의 개념입니다. 퇴직연금의 예를 들어보지요. 개인이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들은 마치 퇴직 연금의 목표를 일정한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닙니다. 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은퇴 이후에 고정 수입을 올려 일정한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겁니다.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가가 투자를 좌우하는 겁니다. 연소득이 6000만원이고, 은퇴 후 희망 소득을 70% 수준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퇴직 후 필요한 연금은 연 4200만 원입니다.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얼마를 충당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투자를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 목표를 위해 얼마를 저축할 것인지,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 비중은 얼마나 늘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보수적인 목표를 잡아놓고 희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축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로버트 머튼의 설명이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우리네 일상에서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맞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일단 은퇴 후 희망하는 목표 소득을 달성하는 경우에는, 주식을 비롯한 위험 자산 투자를 전부 줄이고 안전자산에만 투자해야 한다.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목표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 리스크에 노출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을 것이다. “저축이 부족하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택이라는 자산을 활용해야 합니다. 미래에 주택이라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지금의 소득이 더 중요합니다. 자기가 보유한 주택 자산을 유동화해서 매달 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은데, 돈 없이 오래 사는 리스크
정부가 주택연금 활성화 대책으로 내놓은 ‘내 집 연금 세트’는 주택을 담보로 넘겨 가계부채를 갚는 것이다. 가계부채를 갚고 남은 주택자금은 매월 연금방식으로 지급받아 노후보장도 이루는 제도다. 주택연금은 집값이 오르면 차액을 추후 돌려받지만,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연금지급액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대출까지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대출금 부담으로 집을 되파는 대신 주택연금으로 전환한다면, 주거 안정과 노후준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로버트 머튼은 성숙한 투자자의 자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은퇴 후 목표 수입을 정해놓고 개개인에 맞춤화된 은퇴 계획을 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배분이 됩니다. 인생에서 중대한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게 목표를 조절하고 투자 계획도 상응하게 변경하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은퇴소득을 얻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더 오래 일하거나, 더 저축하거나, 더 많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겁니다.”
주식 투자를 하면 비이성적 상황에 매몰되게 마련이다. 주식이 오르고 너도 나도 주식을 하면 군중본능(herd instinct)에 휩쓸려 주식에 발을 담근다. 주식을 처분한 후에도 주가가 오르면 너무 일찍 처분해 더 큰 수익을 놓쳤다고 후회한다. 주변 사람들이 큰 부(富)를 이루었다면 눈알이 튀어 나올 지경이 된다. 시기의 눈초리가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 참다 못해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그동안 거두지 못했던 수익을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욕망에 돈까지 차입한다. 그 후 버블이 터져 주가가 폭락할 때도 과거 주가 수준에 집착한다. 쉽게 손절매하지 못하고 결국 주가 폭락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야 겨우 손을 털고 나온다. 주식 투자에 성공하려면 결국 자신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절제와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버트 머튼의 투자 원칙을 들은 후 몇 가지 생각이 든다. 개인의 경우는 물론 되도록 확정된 수입을 통해 연금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연금저축이나 공적연금, 확정급여형을 통해서 얻는 소득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 국가나 기업의 경우에 고령화·저금리로 자산 운용이 쉽지 않아 원금을 보장하거나 확정급여형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저금리·고령화로 확정급여형 연금제도 유지 어려워
기업의 퇴직연금은 어떤가? 로버트 머튼은 저금리로 운용 실적이 좋을 수 없어 확정급여형 연금제도가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확정급여형 연금 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급여가 사전에 확정된 퇴직연금제도다. 사용자가 매년 부담금을 금융회사에 적립해 책임지고 운용하며, 운용 결과와 관계없이 근로자는 사전에 정해진 수준의 퇴직급여를 수령한다. 이와 달리 고용주와 근로자가 비용을 함께 부담하고 근로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은 운용 주체가 근로자라 세제 혜택을 제외하고 운용 성과의 책임이 근로자에게 간다. 확정급여형은 운용을 잘하면 사업자의 부담이 줄어드나 요즘처럼 저금리 시기에는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로버트 머튼은 지난 10년 간 퇴직연금이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바뀌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진단했다. 고령화와 저금리로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머튼은 최고경영자(CEO)가 기업 경영을 하는 리스크보다 연금 리스크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 더 두렵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은퇴 후 근로자와 경영인, 국가와 국민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두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약속을 지키라는 입장과 ‘지속가능성의 없음’을 두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을 60대, 70대로 본 연금제도가 100세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저금리가 상수(常數)라면 더욱 문제가 될 것 같다. 원리금 보장 연금상품이 판매 금지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은퇴 자금이 필요한 지금 궁핍함 없는 노후를 위해 목표에 기반한 투자를 지금 당장 시작하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1944년 7월~): 1966년 콜롬비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MIT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파생상품의 가치 측정 공식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 전문가로 ‘블랙-숄스 방정식’을 활용해 마이런 숄스 스탠퍼드대 교수와 파생상품 가치 측정 공식을 공동 개발해 세계 파생시장을 급성장시켰다. 수학을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 당시 지도교수가 미국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이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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