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 &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 &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회사 설립 첫 해인 2013년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레드닷 어워드 1개 부문 수상. 2014년 2개 부문 수상. 2015년 3개 부문 수상. 2016년 4개 부문 수상. 4년 동안 레드닷 어워드만 10개를 받았다. 신생업체인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녹스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에 걸친 ‘세계 최고’를 향한 집념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6·25 후 황폐해진 한국 땅에는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기업들은 해외에 김을 팔고, 뱀장어를 팔았다. 아낙들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내 가발을 만들어서 수출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도 축적됐다. 해외 유명 브랜드에 우리 기술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어 제품 개발까지 독자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속속 탄생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마침내 삼성·현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브랜드’가 산업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이런 한국 산업계의 성장사는 라제건(62) 동아알루미늄(DAC) 대표의 선친으로부터 아들까지 이어지는 기업인 3대(代)의 삶에 오롯이 녹아있다. 라제건 대표는 연세대에서 사학·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미국 퍼스트인터스테이트은행과 동아무역 기획실장 등을 거쳐 1988년 동아알루미늄(DAC)를 창업했다. 아들인 라영환(32) 헬리녹스 대표는 아버지가 개발한 초경량 아웃도어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기획·판매하는 기업 헬리녹스를 2013년 창업했다. 대를 잇는 부자경영이다.
“선친께선 ‘나는 (해외에) 김·미역 수출하고, 미국 컴퓨터 들여와 팔았지만 너는 네 우물을 파라’고 하셨죠. 저는 처음부터 ‘세계 최고’가 목표였어요. 그래서 기술로 승부하는 사업을 택했습니다”
라 대표의 선친은 상공부 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라익진 동아무역·동아컴퓨터 회장(1915~1990)이다. 아버지가 못 이룬 세계 최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라 대표는 ‘특수 기술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지만, 대기업이 뛰어들기엔 좀 작은 시장’을 샅샅이 찾은 끝에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분야에 1988년 뛰어들었다.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우면 값을 3배라도 낼 만한 시장’도 찾아냈다. 현재 DAC는 현재 텐트용 알루미늄 폴(뼈대)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한 독보적인 세계 1위다. 텐트 구조 설계부터 알루미늄 폴 개발과 생산까지 모두 하는 전형적인 ODM 기업이다. 항공기 합금 수준의 초경량 고강도 알루미늄 TH72M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기존 폴 무게의 30%를 줄인 것이 성공 비결이다. 라제건 대표는 “초경량 알루미늄이기 때문에 같은 강도라면 더 가벼운 제품, 같은 무게라면 더 튼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DAC가 독일 업체인 줄 알더라고요. 노스페이스의 히트 상품인 ‘돔 에잇’ 텐트도 10년 전에 제가 설계해서 만든 것인데 아무도 한국 중소기업이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하는 겁니다.”
‘브랜드의 장벽’이었다. 진정한 세계 1위가 되려면 자체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 싶었다. 태양신(헬리오스)과 밤의 여신(녹스)의 이름을 담아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를 2011년 만들었다. 300g에서 200g으로 줄인 혁신적인 등산 스틱을 내놓았지만 브랜드 사업은 쉽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는 기업의 최종 단계가 자체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노력했는데도 잘 안되더라구요.”
전환점은 2012년 개발한 ‘체어원’이라는 획기적인 제품과 아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의 합류였다. 캠핑용 의자인 체어원은 물 1L보다도 가벼운 850g으로 접으면 어른 남성 신발 크기 정도다. 그런데도 성인 남성 두 명 정도(145㎏)의 무게를 지탱한다. 시장은 ‘어디서도 못 본 제품’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세계 아웃도어 시장 1위인 미국 유통망의 절반 정도를 장악한 REI가 캠핑 가구 부문 전체에서 연간 800만~1200만 달러 어치를 파는데, 출시 첫 해에 REI가 체어원 한 제품만 가지고 800만 달러 어치를 팔았으니까요.”
체어원도 처음에는 REI 등에 ODM 제품으로만 팔릴 예정이었다. REI의 판매 시기가 늦어지면서 아들 라영환 대표가 진두지휘해 헬리녹스 브랜드로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자체 브랜드로도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라영환 대표는 “손끝에 달랑 종이처럼 가볍게 의자를 올려놓은 사진을 비롯해 새로운 컨셉트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2013년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헬리녹스는 다음달 마무리되는 2015년 회계연도 예상 매출이 210억원이다. 직원은 4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라제건 DAC 대표는 “나는 매출 200억원을 하는데 20년쯤 걸렸는데 헬리녹스는 3년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약 2㎏의 초경량 야전 침대 ‘코트원’ 등 혁신적인 제품이 연달아 헬리녹스의 이름으로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헬리녹스는 언제나 세상에 없던 제품만을 내놓는다. 자체 개발한 뒤 시장에 조금이라도 비슷한 제품이 있으면 아예 출시를 포기한다”고 입을 모았다. 라제건 대표는 “DAC가 1990년에 처음 등산 스틱에 도전했을 때 실패했다. 나쁘지 않은 제품이었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미 투(me too)’ 제품이었기 때문”이라며 “그게 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이제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면 안 내놓는다”고 말했다.
헬리녹스의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처음엔 체어원이 매출의 100%였지만 지금은 40% 정도다. 캠핑용 뿐 아니라 인테리어 용품으로도 쓸 수 있는 색상과 무늬의 제품도 여럿 내놓았다. 일본에서는 와인과 체어원이 들어가는 가방 세트(약 55만원)를 200개 한정 판매로 내놓아 매진되기도 했다. 아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 내놓은 가방 브랜드는 아예 이름이 ‘시행착오 연구 모임’이라는 뜻을 담은 터그(TERG, Trial and Error Research Group)다. TERG 가방은 올해 일본에만 100만 달러 넘게 수출했다.
“새로 개발한 알짜 사업을 아들에게 넘기고 아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라제건 DAC대표는 “아들이 없었다면 지금 체어원은 노스페이스나 REI 브랜드로 팔리고 있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희 세대에서는 할 수 없던 브랜드 사업을 아들 세대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성실하고 꼼꼼하고 오래 버텨야 하는 제조업과 브랜드 마케팅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 세대는 우리와 달리 해외 여행도 일찍 경험하고, 여러 나라의 좋은 물건을 쓰고 자라서 눈높이가 다르다”며 “아들 세대가 왔기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제건 대표는 “헬리녹스가 빨리 성장한 덕에 DAC 매출도 늘었어요. 지금은 DAC의 세계 80여개 거래처 중 헬리녹스의 가장 비중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DAC에서 분리해 브랜드를 키웠기 때문에 ODM 매출도 함께 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아들 라영환 대표는 “DAC의 혁신적인 기술이 없었다면 헬리녹스가 아무리 차별화한 디자인과 마케팅을 해도 지금처럼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DAC는 다른 브랜드에 납품해도 되지만 헬리녹스야말로 DAC가 만든 ‘세상에 없던 제품’이 없다면 사업 기반이 흔들리는 셈”이라고 화답했다. 라제건 대표는 선친의 ‘세계 최고’ 꿈을 물려받았지만 사업 기반은 물려받지 않았다. 아들 라영환 대표는 DAC의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지만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지는 않았다. 라영환 대표는 “헬리녹스가 DAC의 브랜드일 때 제가 직접 만든 로고를 만들었는데도 분사할 때 상표를 2억8000만원을 내고 샀다”며 웃었다. 헬리녹스 역시 불량 제품은 곧장 DAC에 리콜한다. 라제건 대표는 “아들이니까 봐주고 형이니까 봐주고 이런 식으로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라영환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 최고를 향한 아버지의 꿈을 자연스럽게 저도 품게 됐고, 어깨 너머로 보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아웃도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로 승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무차입 경영이나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배운 ‘닮은꼴 경영’이다.라제건 대표는 “무조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고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바탕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아무 기반도 없이 시작하면 당대에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야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한다”며 “기업이 대를 이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상대로만 거래하던 아버지도 아들이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소비자 중심 마인드’를 갖게 됐다. 라제건 대표는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토종 제품 개발 스토리를 소개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블로그 팬들 100여 명이 DAC 공장 견학을 왔을 정도다. DAC가 텐트 납품 업체인 만큼 헬리녹스 브랜드로는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했던 텐트 제품도 블로그 팬들의 성화에 내놓았다. 제품 개발에 블로그 팬들의 의견을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반영해 기존에 없던 검정색의 텐트 ‘알파돔’, ‘노나돔’을 내놓았다. 올해 레드닷 어워드 수상작 중 하나다.
라제건 DAC 대표는 선친이 자신의 호를 따서 생전에 만든 ‘각당(覺堂)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매년 지원하고 있다. 아들 라영환 대표도 헬리녹스 설립 첫 해부터 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라제건 대표는 ‘선친의 꿈과 제 꿈이 아들에게서 실현되고 있다”며 “대를 잇는 한국 기업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글 구희령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런 한국 산업계의 성장사는 라제건(62) 동아알루미늄(DAC) 대표의 선친으로부터 아들까지 이어지는 기업인 3대(代)의 삶에 오롯이 녹아있다. 라제건 대표는 연세대에서 사학·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미국 퍼스트인터스테이트은행과 동아무역 기획실장 등을 거쳐 1988년 동아알루미늄(DAC)를 창업했다. 아들인 라영환(32) 헬리녹스 대표는 아버지가 개발한 초경량 아웃도어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기획·판매하는 기업 헬리녹스를 2013년 창업했다. 대를 잇는 부자경영이다.
“선친께선 ‘나는 (해외에) 김·미역 수출하고, 미국 컴퓨터 들여와 팔았지만 너는 네 우물을 파라’고 하셨죠. 저는 처음부터 ‘세계 최고’가 목표였어요. 그래서 기술로 승부하는 사업을 택했습니다”
라 대표의 선친은 상공부 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라익진 동아무역·동아컴퓨터 회장(1915~1990)이다. 아버지가 못 이룬 세계 최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라 대표는 ‘특수 기술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지만, 대기업이 뛰어들기엔 좀 작은 시장’을 샅샅이 찾은 끝에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분야에 1988년 뛰어들었다.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우면 값을 3배라도 낼 만한 시장’도 찾아냈다.
초경량 아웃도어 제품으로 공전의 히트
“그런데 소비자들은 DAC가 독일 업체인 줄 알더라고요. 노스페이스의 히트 상품인 ‘돔 에잇’ 텐트도 10년 전에 제가 설계해서 만든 것인데 아무도 한국 중소기업이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하는 겁니다.”
‘브랜드의 장벽’이었다. 진정한 세계 1위가 되려면 자체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 싶었다. 태양신(헬리오스)과 밤의 여신(녹스)의 이름을 담아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를 2011년 만들었다. 300g에서 200g으로 줄인 혁신적인 등산 스틱을 내놓았지만 브랜드 사업은 쉽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는 기업의 최종 단계가 자체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노력했는데도 잘 안되더라구요.”
전환점은 2012년 개발한 ‘체어원’이라는 획기적인 제품과 아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의 합류였다. 캠핑용 의자인 체어원은 물 1L보다도 가벼운 850g으로 접으면 어른 남성 신발 크기 정도다. 그런데도 성인 남성 두 명 정도(145㎏)의 무게를 지탱한다. 시장은 ‘어디서도 못 본 제품’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세계 아웃도어 시장 1위인 미국 유통망의 절반 정도를 장악한 REI가 캠핑 가구 부문 전체에서 연간 800만~1200만 달러 어치를 파는데, 출시 첫 해에 REI가 체어원 한 제품만 가지고 800만 달러 어치를 팔았으니까요.”
체어원도 처음에는 REI 등에 ODM 제품으로만 팔릴 예정이었다. REI의 판매 시기가 늦어지면서 아들 라영환 대표가 진두지휘해 헬리녹스 브랜드로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자체 브랜드로도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라영환 대표는 “손끝에 달랑 종이처럼 가볍게 의자를 올려놓은 사진을 비롯해 새로운 컨셉트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2013년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헬리녹스는 다음달 마무리되는 2015년 회계연도 예상 매출이 210억원이다. 직원은 4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라제건 DAC 대표는 “나는 매출 200억원을 하는데 20년쯤 걸렸는데 헬리녹스는 3년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닮은꼴 경영으로 윈윈
헬리녹스의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처음엔 체어원이 매출의 100%였지만 지금은 40% 정도다. 캠핑용 뿐 아니라 인테리어 용품으로도 쓸 수 있는 색상과 무늬의 제품도 여럿 내놓았다. 일본에서는 와인과 체어원이 들어가는 가방 세트(약 55만원)를 200개 한정 판매로 내놓아 매진되기도 했다. 아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 내놓은 가방 브랜드는 아예 이름이 ‘시행착오 연구 모임’이라는 뜻을 담은 터그(TERG, Trial and Error Research Group)다. TERG 가방은 올해 일본에만 100만 달러 넘게 수출했다.
“새로 개발한 알짜 사업을 아들에게 넘기고 아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라제건 DAC대표는 “아들이 없었다면 지금 체어원은 노스페이스나 REI 브랜드로 팔리고 있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희 세대에서는 할 수 없던 브랜드 사업을 아들 세대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성실하고 꼼꼼하고 오래 버텨야 하는 제조업과 브랜드 마케팅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 세대는 우리와 달리 해외 여행도 일찍 경험하고, 여러 나라의 좋은 물건을 쓰고 자라서 눈높이가 다르다”며 “아들 세대가 왔기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제건 대표는 “헬리녹스가 빨리 성장한 덕에 DAC 매출도 늘었어요. 지금은 DAC의 세계 80여개 거래처 중 헬리녹스의 가장 비중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DAC에서 분리해 브랜드를 키웠기 때문에 ODM 매출도 함께 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아들 라영환 대표는 “DAC의 혁신적인 기술이 없었다면 헬리녹스가 아무리 차별화한 디자인과 마케팅을 해도 지금처럼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DAC는 다른 브랜드에 납품해도 되지만 헬리녹스야말로 DAC가 만든 ‘세상에 없던 제품’이 없다면 사업 기반이 흔들리는 셈”이라고 화답했다.
“대를 잇는 한국 기업의 롤모델 될 것”
라영환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 최고를 향한 아버지의 꿈을 자연스럽게 저도 품게 됐고, 어깨 너머로 보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아웃도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로 승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무차입 경영이나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배운 ‘닮은꼴 경영’이다.라제건 대표는 “무조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고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바탕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아무 기반도 없이 시작하면 당대에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야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한다”며 “기업이 대를 이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상대로만 거래하던 아버지도 아들이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소비자 중심 마인드’를 갖게 됐다. 라제건 대표는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토종 제품 개발 스토리를 소개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블로그 팬들 100여 명이 DAC 공장 견학을 왔을 정도다. DAC가 텐트 납품 업체인 만큼 헬리녹스 브랜드로는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했던 텐트 제품도 블로그 팬들의 성화에 내놓았다. 제품 개발에 블로그 팬들의 의견을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반영해 기존에 없던 검정색의 텐트 ‘알파돔’, ‘노나돔’을 내놓았다. 올해 레드닷 어워드 수상작 중 하나다.
라제건 DAC 대표는 선친이 자신의 호를 따서 생전에 만든 ‘각당(覺堂)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매년 지원하고 있다. 아들 라영환 대표도 헬리녹스 설립 첫 해부터 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라제건 대표는 ‘선친의 꿈과 제 꿈이 아들에게서 실현되고 있다”며 “대를 잇는 한국 기업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글 구희령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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