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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낳는 기계’의 반란

‘아기 낳는 기계’의 반란

일본의 저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로 낙태 규제의 압력 커져
일본 사이타마현 하토야마 뉴타운은 출산율 0.6명, 노인 비율 38%의 노인 도시다.
일본 남부 시코쿠의 나고로는 ‘인형의 마을’로 불린다. 오래 전 폐쇄된 버스 정류장에 실물 크기의 인형들이 말없이 서 있다. 그중 양복 입은 인형은 언제나 초조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 인형을 만든 아냐노 쓰키미는 올해 65세지만 나고로 마을 주민 35명 중 가장 나이가 적다. 그녀가 봉재로 만든 인형들은 사망했거나 다른 곳으로 떠난 주민을 닮았다. 지금은 그 인형이 주민 수보다 많다.

그 인형들은 인구가 급감하고 시골이 텅 비어가는 일본의 실상을 증언한다. 지금 일본에는 이처럼 서서히 황폐해져가는 ‘유령 마을’이 약 1만 개나 된다. 일본 인구의 나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출산율은 꼴찌 다음이다. 지난 2월 실시한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일본 인구는 약 100만 명 줄었다. 향후 50년 안에 인구 3분의 1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인구 감소로 일본 사회에 경제 붕괴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런 암울한 전망에 직면해 일본 정부는 독신 남녀의 짝찾기부터 탁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원하면서 출산을 장려한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은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막을 조치를 취할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여권운동가들은 정치인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생식권(재생산권)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경고한다. 미국 몬태나주립대학의 인류학 부교수 야마구치 토모미는 “출산 장려 운동이 낙태와 생식 선택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보수 다수당인 자민당이 일본 여성의 상대적으로 허약한 생식권을 더욱 침해하는 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은 1999년에야 유엔 회원국 중 마지막으로 피임약을 합법화했다. 낙태는 불법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경우는 예외다. 일본에서 매년 낙태 시술을 받는 여성 20만 명 중 대다수가 그 이유를 댄다.

도쿄에 있는 파크사이드 히루 여성병원의 오니시 요시코 박사는 “원칙적으로 자녀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만 낙태가 허용되지만 실제론 낙태를 원하는 사람 모두가 시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마구치 박사에 따르면 새로운 여성건강법안이 일본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런 관행마저 금지될 수 있다. “새 법안은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성을 ‘아기 낳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자녀를 갖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는 조항은 아예 없다.”그 법안은 낙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야마구치 박사를 비롯한 여권운동가는 궁극적으로 여성의 생식권 제한으로 이어지는 정책 변화를 향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물론 그 법안은 자궁내막증·자궁근종·우울증 같은 임신 관련 증상과 골다공증 같은 고령 관련 질환에 대한 지원과 연구를 촉구한다. 그러나 도쿄 소재 소피아대학의 정치학 교수 미우라 마리는 성폭력과 일본의 높은 성병 감염율 등 여성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안의 목적은 분명하다. 국가는 더 많은 아기가 태어나길 원한다.”

일본 시코쿠의 ‘인형 마을’ 나고로는 인형이 주민 수보다 많아 시골이 텅 비어가는 일본의 실상을 증언한다.
아울러 소시렌 같은 유명한 일본의 여권단체는 정부가 여성을 지원하는 법을 구실로 경제난의 부담을 여성에게 지우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 법안은 지난 회기 국회가 해산되기 전에 표결에 들어가지 못했다. 자민당은 올해 그 법안을 다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법안 발의자인 다카기 에미코 의원은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도 논평을 거부했다. 자민당은 이전에도 인구를 늘리는 방편으로서 여성의 생식권을 제한하는 아디어를 제시해 여론의 추이를 살폈다. 일본 정부의 아리무라 하루코 여성활약담당상은 개인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3년엔 5선 여성 의원 노다 세이코가 일본의 주요 신문에 출산율 제고를 위한 낙태 금지를 지지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매년 낙태가 20만 건 시술된다. 떨어지는 출산율을 막으려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건강 전문가들은 그런 아이디어를 거세게 비난했다. 도쿄에 있는 도호 여성병원의 다케우치 마사토 박사는 “너무도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나이 많은 보수 관리들에게서 나오지만 그들이 낙태 전면 금지를 밀어붙일 능력은 없다고 본다.”

2014년 6월 도쿄 도의회에선 여성 의원 시오무라 아야카가 임신·출산·불임 등에 관해 여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자 자민당 의원들이 “본인이나 빨리 결혼하면 좋겠다. 애는 안 낳을 거냐”고 야유를 보내 물의를 빚었다. 2007년 1차 아베 내각의 각료 중 야나기사와 하쿠오 후생노동상은 인구 감소의 문제점을 지적한 연설에서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라고 부르며 “기계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 각자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 여론의 분노를 샀다. 아베 신조 총리는 두 사례 모두에서 자민당을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위미노믹스(womenomics)’를 밀어붙인다. 더 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끌어들여 일본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이다. 그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 여성의 66%가 일자리를 가졌다. 일본으로선 최고 기록이지만 대다수 선진국보다 낮은 비율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일자리 형태다. 대다수는 ‘비정규직’이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도 복지혜택도 적게 받는다. 일부 여성은 출산 휴가에서 복귀하면 ‘비정규직’으로 지위가 바뀐다. 또 일부는 처음부터 그런 일자리에 배속된다. 게다가 탁아시설도 턱없이 부족해 많은 여성의 경우 출산 후 직장 복귀가 무척 어렵다.일본의 지도자 계층에 속하는 여성도 소수다. 일본 기업의 관리자 직급 중 여성은 9%에 불과하다(미국의 경우 43%). 아베 총리는 그 비율을 2020년까지 3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는 그 목표를 절반으로 줄였다.

2014년 도쿄도의회에서 자민당 소속의 남성 의원이 시오무라 아야카 의원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해 사과했다.
정책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찾느라 애쓰는 동안 젊은 일본 여성은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감소로 줄어드는 노동력을 강화하는 책임이 전부 자신에게 지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피아대학의 정치학과 학생인 하세가와 노조미(21)는 최근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턴 자리를 얻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녀는 아기도 낳고 일도 해야 한다는 상충되는 압력을 심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젊어서 아기를 낳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출산 휴가 후 직장에 복귀하기도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여권운동가들은 국회의 다른 움직임도 경계한다. 현재 국회는 여성이 결혼 전의 성을 유지하도록 허용해야 할지(지난해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부부가 같은 성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민법 750조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성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할지 논의 중이다. 그러나 모두가 비관적이진 않다. 아베 총리의 ‘위미노믹스’ 의제 설정에 기여한 골드먼삭스의 일본전략가 캐시 마쓰이는 도쿄의 한 여성단체 모임에서 닥쳐오는 경제위기로 인해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변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 변화를 결심하는 데 오래 걸릴 뿐이다. 일본은 동질 사회다. 개성을 강조하기보다 모두가 정해진 틀에 맞추려 한다. 따라서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변화는 아주 빨리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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