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그 후] ‘런던=유럽 금융 중심지’ 옛 영화 될 수도
[브렉시트 그 후] ‘런던=유럽 금융 중심지’ 옛 영화 될 수도
문제는 이제부터다. 영국의 선택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였다. 72.2%의 높은 투표율에 51.9%의 찬성으로 결정이 됐다. 영국은 가입 43년 만에 EU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탈퇴를 결정한 나라가 됐다. EU의 지원을 받던 그리스가 지원 조건이 가혹하다며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를 시도하며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독일 등을 위협한 적은 있지만 EU를 지탱하던 메이저 국가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역시 처음이다.
영국은 ‘경제적인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영국 국민이 지난 6월 24일 높은 투표율 속에서 치른 국민투표에서 선택한 브렉시트가 몰고올 거센 후폭풍에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브렉시트는 지금까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넓고도 깊은 상처를 영국은 물론 유럽과 글로벌 경제에 안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처음부터 결과에 상관없이 영국은 물론 유럽과 글로벌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잔류 여부와 무관하게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잔류하더라도 잔불이 상당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투표 결과가 탈퇴로 나오면서 이런 우려는 극대화되고 있다. 우선 국제경제 질서가 브렉시트발 대대적인 재편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유로존(유로화를 통화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아니지만 거대한 금융산업을 바탕으로 국제금융 질서를 이끄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로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대상은 단연 영국 금융산업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번 국민투표 과정에서 잔류파 진영에 서서 브렉시트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진보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In: EU 잔류)’을 외쳤다. 독특한 것은 캐머런 총리의 EU에 대한 태도다. 그는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것에는 찬성한다. EU 창설과 유럽 통합의 대의명분에도 동의한다. 그가 문제를 삼는 것은 통합의 심도와 속도다. 그는 EU가 현재 수준 이상으로 통합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EU가 주도하는 금융산업 규제에 발 벗고 반대해왔다. 금융산업은 영국을 먹여 살리는 ‘서비스 산업의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EU는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 업체 경영진의 급여가 과도하다며 EU 역내에서는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추진했다. 영국은 마거릿 대처 정권 이후 규제 완화를 주무기로 삼아 글로벌 금융산업을 육성했다. 현재 영국의 금융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7.6%, 고용의 4%를 차지하는 거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런던 동부에 있는 금융가를 일컫는 ‘시티’라는 용어는 미국 뉴욕의 월가와 더불어 금융산업의 대명사가 됐다. 1970년대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고 저물어가면서 짜낸 대안이다. 일반적으로 대처 이후 영국 정부는 금융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문호를 개방해 세계의 금융 업체와 투자자금, 그리고 인재를 영입해 금융산업을 키웠다고 평가한다. 규제 완화가 금융 업체의 다양한 상품개발과 자금의 글로벌 이동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가 금융 산업에 다양한 특혜를 제공해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규제 완화가 시티에 자금과 인재가 국경을 넘어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글로벌화의 기회를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규제 완화와 글로벌화는 서로 짝을 이루며 영국 금융산업의 양날개 역할을 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시티가 EU의 창설과 유럽 통합의 대표적인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EU 창설 이후 시티는 유럽으로 영입되는 글로벌 자금의 창구 역할을 했다.
유럽은 2002년 1월1일 유로화를 정식 법정화페로 유통시키기 시작했지만 영국은 유로화 사용을 거부하고 자국의 독자 화폐인 ‘스털링 파운드’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티는 유럽이 금융 중심지로 남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리 잡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이자 유럽의 금융 부심에 머물렀다. 시티의 경쟁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금융 업체들은 EU 회원국의 특혜를 맘껏 누렸다. 유럽 어디에나 지점을 설치하고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2년 정도의 협상을 거쳐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런던의 시티가 저물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런던에 둥지를 튼 미국 등의 글로벌 금융 업체가 옮겨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어를 쓰는 아일랜드 등에서 좋은 조건으로 유치를 제안할 수도 있다. 모두 런던을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시티의 지위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을 수가 없다. 당장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 세계 외환시장이 큰 변동성에 시달리고 있다. 이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영국 경제는 유럽 내에서 우등생이었다.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2005년 2조8490억 달러다.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다. 1인당 GDP는 4만3770달러에 이른다. 세계 13위의 부자 나라다. 세계 경제가 침체했다고 하지만 영국은 올해 2.1%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적표는 영국 경제의 글로벌화, 특히 유럽이라는 거대하고 접근하기 쉬운 시장이 옆에 있어 가능했다는 점이다.
영국 산업의 특징은 서비스 분야가 비대하다는 점이다. 2014년 추정에 따르면 서비스 분야는 GDP의 78.4%를 차지한다. 제조업은 14.6%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서비스산업은 상당수가 유럽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었다. 사실 영국 경제는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다. 2016년 3월 통계 기준 노동인구는 3158만 명에 이른다. 현재 고용 비율은 74.2%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실업률은 2016년 4월 기준으로 5%로 167만 명이 실업 상태다. 서비스산업은 고용의 78.7%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제조업이 18.8%, 농업이 1.5%를 차지한다. 월평균 임금(세전 기준)은 2014년 기준 2480파운드이며 달러로 환산하면 3814달러다.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한다. 수출은 2014년 기준으로 5030억 달러로 세계 9위를 차지한다. 영국의 주요 수출 대상 국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에 집중돼 있다. 독일(10.8%)·미국(10.4%)·네덜란드(8.1%)·스위스(7.2%)·프랑스(6.5%)·아일랜드(6.4%)·벨기에(4.5%)의 순이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 국가이며 미국과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관세가 없는 EU 회원국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회권국에서 영국 상품에 관세를 매기게 되므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참고로 영국은 스위스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수출보다 중요한 것이 수입이다. 영국은 비교우위 이론을 제시한 고전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르도를 낳은 나라라서 그런지 무역이 발달해서 그런지 제조업이 무너져서 그런지 수입이 많다. 영국은 수출액보다 60% 가까이 많은 8020억 달러를 수입한다. 세계 5위의 수입국이다. 주요 수입 대상국가는 독일(14.9%)·중국(9%)·네덜란드(7.8%)·미국(6.5%)·프랑스(6.1%)·벨기에(5.2%)·이탈리아(4.1%) 순이다. 이 역시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EU 회원국이다. 이들 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관세를 물게 되면 영국 국내 소비자 물가가 오르는 것은 물론 중간재 가격이 높아져 상품 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브렉시트의 무역학이다. 모든 것이 영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외교역과 경제개방 및 자유화로 성장의 열매를 누려온 영국의 시대도 저물 수밖에 없다.
영국은 국가신용도 평가에서 현재 최고의 등급을 누리고 있다. S&P는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AAA등급을, 무디스는 Aa1등급을, 피치는 AA+등급을 각각 부여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를 해왔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불안전성이 커진 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외환보유액은 2016년 1월1일 현재 1593억 4000만 달러에 이르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적인 대외 원조국가다. 2015년 기준으로 GDP의 0.7%인 190억 달러를 세계 곳곳에 공여했다. 국제사회에 할 일은 다해온 책임 있는 국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국내의 고립주의 기류가 드러난 이상 대외정책에서도 기조가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는 EU 차원에서도 거대한 도미노의 시작일 수 있다. EU 내에서 회원국들이 추가 탈퇴하거나 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EU 회원국 둥 유로화를 쓰지 않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선 EU 탈퇴 의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체코와 헝가리 등 옛 사회주의권 회원국이 영국의 뒤를 따를 가능성도 크다. 이들 나라에서는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정권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를 쓰는 국가 중에서도 네덜란드에선 최소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EU 창설을 이끌었던 프랑스에서도 국민투표 요구가 거세다. 영국발 도미노는 자칫 EU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동안 해왔던 유럽 통합 작업에 급제동을 걸 가능성도 상당하다. 브렉시트가 EU 각국으로 파급되면 후폭풍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EU 통합 작업도 원점에서 재검토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경제 분야는 물론 군사·사법·치안 등 다방 면에서 통합을 시도해왔지만 이런 부분은 주권과 관련된 것이므로 건드리지 말자는 여론이 각국에서 비등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군사·정보·법률 분야의 정치인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운동이 진행됐다. EU는 계속 유지되더라도 통합의 속도와 깊이는 아무래도 지금과 같이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렉시트 투표를 계기로 영국에서도 글로벌화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영국, 특히 런던은 외국인의 도시나 다름없다. 거주자의 60~70%가 외국 출신(현재 국적과는 무관하다)이다. 세계의 인재가 영국에 몰려와 공부하고 일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으면서 영국 경제와 문화를 풍성하게 키워왔다. 런던 시장부터가 파키스탄계 이민자의 아들이다. 브렉시트로 이런 멀티컬처의 전통이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민을 억제하는 반(反)글로벌화를 기치로 내세운 브렉시트가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면서 영국은 이런 기풍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제화는 영국의 자랑이자 경쟁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종교·종족에 무관하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나라였다.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 기술자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해 산업을 키웠다.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자금과 의술, 보석세공 기술을 들고 몰려들었다. 네덜란드는 이런 개방과 관용의 분위기에서 제국을 이뤘다. 지금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이와 완전 반대 방향이다. 고립주의나 민족주의의 대두는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국은 경제 대신 정체성을 택했다. 영국이 EU를 떠나 과연 번영을 계속 누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 다른 문제는 캐머런 총리의 리더십이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캐머런의 공약이었다. 그는 국민투표에서 그간의 논란을 마무리하고 메르켈 등과 했던 EU 잔류 협상을 추인받고 싶어했다. 그는 협상력을 발휘해 충분한 양보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국민투표 공약은 자충수가 됐다. 캐머런이 더 이상 권좌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EU와도 더 이상 협상할 명분이 없어졌다. 영국이 진짜 EU를 떠난다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영국의 간판을 맡아 탈퇴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영국에 와 있는 200만 명 이상의 EU 출신의 이민자와 수많은 난민 앞에서 캐머런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은 벌써부터 탈퇴는 ‘편도 열차표’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영국은 유럽에서 따돌림 당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이 영국을 도울 수 있을까? 과거 대영제국 시절을 함께 했던 인도·파키스탄·남아공 등이 영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의문 속에 영국의 브렉시트가 전 지구적인 고민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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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경제적인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영국 국민이 지난 6월 24일 높은 투표율 속에서 치른 국민투표에서 선택한 브렉시트가 몰고올 거센 후폭풍에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브렉시트는 지금까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넓고도 깊은 상처를 영국은 물론 유럽과 글로벌 경제에 안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처음부터 결과에 상관없이 영국은 물론 유럽과 글로벌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잔류 여부와 무관하게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잔류하더라도 잔불이 상당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투표 결과가 탈퇴로 나오면서 이런 우려는 극대화되고 있다.
국제경제 질서 대대적 재편 가능성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번 국민투표 과정에서 잔류파 진영에 서서 브렉시트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진보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In: EU 잔류)’을 외쳤다. 독특한 것은 캐머런 총리의 EU에 대한 태도다. 그는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것에는 찬성한다. EU 창설과 유럽 통합의 대의명분에도 동의한다. 그가 문제를 삼는 것은 통합의 심도와 속도다. 그는 EU가 현재 수준 이상으로 통합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EU가 주도하는 금융산업 규제에 발 벗고 반대해왔다. 금융산업은 영국을 먹여 살리는 ‘서비스 산업의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EU는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 업체 경영진의 급여가 과도하다며 EU 역내에서는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추진했다. 영국은 마거릿 대처 정권 이후 규제 완화를 주무기로 삼아 글로벌 금융산업을 육성했다. 현재 영국의 금융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7.6%, 고용의 4%를 차지하는 거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런던 동부에 있는 금융가를 일컫는 ‘시티’라는 용어는 미국 뉴욕의 월가와 더불어 금융산업의 대명사가 됐다. 1970년대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고 저물어가면서 짜낸 대안이다. 일반적으로 대처 이후 영국 정부는 금융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문호를 개방해 세계의 금융 업체와 투자자금, 그리고 인재를 영입해 금융산업을 키웠다고 평가한다. 규제 완화가 금융 업체의 다양한 상품개발과 자금의 글로벌 이동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가 금융 산업에 다양한 특혜를 제공해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규제 완화가 시티에 자금과 인재가 국경을 넘어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글로벌화의 기회를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규제 완화와 글로벌화는 서로 짝을 이루며 영국 금융산업의 양날개 역할을 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시티가 EU의 창설과 유럽 통합의 대표적인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EU 창설 이후 시티는 유럽으로 영입되는 글로벌 자금의 창구 역할을 했다.
유럽은 2002년 1월1일 유로화를 정식 법정화페로 유통시키기 시작했지만 영국은 유로화 사용을 거부하고 자국의 독자 화폐인 ‘스털링 파운드’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티는 유럽이 금융 중심지로 남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리 잡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이자 유럽의 금융 부심에 머물렀다. 시티의 경쟁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금융 업체들은 EU 회원국의 특혜를 맘껏 누렸다. 유럽 어디에나 지점을 설치하고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2년 정도의 협상을 거쳐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런던의 시티가 저물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런던에 둥지를 튼 미국 등의 글로벌 금융 업체가 옮겨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어를 쓰는 아일랜드 등에서 좋은 조건으로 유치를 제안할 수도 있다. 모두 런던을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시티의 지위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을 수가 없다. 당장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 세계 외환시장이 큰 변동성에 시달리고 있다. 이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영국 경제는 유럽 내에서 우등생이었다.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2005년 2조8490억 달러다.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다. 1인당 GDP는 4만3770달러에 이른다. 세계 13위의 부자 나라다. 세계 경제가 침체했다고 하지만 영국은 올해 2.1%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적표는 영국 경제의 글로벌화, 특히 유럽이라는 거대하고 접근하기 쉬운 시장이 옆에 있어 가능했다는 점이다.
영국 산업의 특징은 서비스 분야가 비대하다는 점이다. 2014년 추정에 따르면 서비스 분야는 GDP의 78.4%를 차지한다. 제조업은 14.6%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서비스산업은 상당수가 유럽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었다. 사실 영국 경제는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다. 2016년 3월 통계 기준 노동인구는 3158만 명에 이른다. 현재 고용 비율은 74.2%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실업률은 2016년 4월 기준으로 5%로 167만 명이 실업 상태다. 서비스산업은 고용의 78.7%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제조업이 18.8%, 농업이 1.5%를 차지한다. 월평균 임금(세전 기준)은 2014년 기준 2480파운드이며 달러로 환산하면 3814달러다.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한다.
EU 회원국에 편중된 영국의 수출입
수출보다 중요한 것이 수입이다. 영국은 비교우위 이론을 제시한 고전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르도를 낳은 나라라서 그런지 무역이 발달해서 그런지 제조업이 무너져서 그런지 수입이 많다. 영국은 수출액보다 60% 가까이 많은 8020억 달러를 수입한다. 세계 5위의 수입국이다. 주요 수입 대상국가는 독일(14.9%)·중국(9%)·네덜란드(7.8%)·미국(6.5%)·프랑스(6.1%)·벨기에(5.2%)·이탈리아(4.1%) 순이다. 이 역시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EU 회원국이다. 이들 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관세를 물게 되면 영국 국내 소비자 물가가 오르는 것은 물론 중간재 가격이 높아져 상품 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브렉시트의 무역학이다. 모든 것이 영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외교역과 경제개방 및 자유화로 성장의 열매를 누려온 영국의 시대도 저물 수밖에 없다.
영국은 국가신용도 평가에서 현재 최고의 등급을 누리고 있다. S&P는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AAA등급을, 무디스는 Aa1등급을, 피치는 AA+등급을 각각 부여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를 해왔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불안전성이 커진 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외환보유액은 2016년 1월1일 현재 1593억 4000만 달러에 이르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적인 대외 원조국가다. 2015년 기준으로 GDP의 0.7%인 190억 달러를 세계 곳곳에 공여했다. 국제사회에 할 일은 다해온 책임 있는 국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국내의 고립주의 기류가 드러난 이상 대외정책에서도 기조가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는 EU 차원에서도 거대한 도미노의 시작일 수 있다. EU 내에서 회원국들이 추가 탈퇴하거나 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EU 회원국 둥 유로화를 쓰지 않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선 EU 탈퇴 의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체코와 헝가리 등 옛 사회주의권 회원국이 영국의 뒤를 따를 가능성도 크다. 이들 나라에서는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정권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를 쓰는 국가 중에서도 네덜란드에선 최소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EU 창설을 이끌었던 프랑스에서도 국민투표 요구가 거세다. 영국발 도미노는 자칫 EU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동안 해왔던 유럽 통합 작업에 급제동을 걸 가능성도 상당하다. 브렉시트가 EU 각국으로 파급되면 후폭풍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EU 통합 작업도 원점에서 재검토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경제 분야는 물론 군사·사법·치안 등 다방 면에서 통합을 시도해왔지만 이런 부분은 주권과 관련된 것이므로 건드리지 말자는 여론이 각국에서 비등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군사·정보·법률 분야의 정치인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운동이 진행됐다. EU는 계속 유지되더라도 통합의 속도와 깊이는 아무래도 지금과 같이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한 도미노의 시작?
17세기 네덜란드는 종교·종족에 무관하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나라였다.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 기술자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해 산업을 키웠다.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자금과 의술, 보석세공 기술을 들고 몰려들었다. 네덜란드는 이런 개방과 관용의 분위기에서 제국을 이뤘다. 지금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이와 완전 반대 방향이다. 고립주의나 민족주의의 대두는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국은 경제 대신 정체성을 택했다. 영국이 EU를 떠나 과연 번영을 계속 누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캐머런의 리더십에 큰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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